모세 오경


Ⅰ. 모세 오경 개관


1. 모세 오경이란?


 모세 오경은 구약성서의 첫 5권인 창세기, 출애굽기(탈출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를 가리키는 것으로서, 히브리식 용어로는 토라(ה?וֹתּ)라고 부르며, 희랍어로는 펜타테우코스(πεντάτευχος)라고 불리운다. 히브리어 토라는 일차적으로 “가르침”, “교훈” 등의 의미를 갖는 말이지만, 점차 “율법”이라는 뜻을 갖게 되면서 모세오경을 지칭하는 용어가 되었다. 이는 모세 오경이 구약성서 전체를 지탱하는 중요한 법들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율법”이라고 해석한다 해도 즉시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법”의 개념으로 이해하면 안 된다. 오히려 그것을 따라 살아야 한다는 뜻의 “길”로 이해하는 것이 더 타당하다. 왜냐하면 토라 즉 모세 오경은 단순히 지켜야 할 법의 모음집이 아니라 하느님에 의해 창조된 세상 안에서 하느님 백성인 이스라엘이 겪는 갖가지 이야기(설화) 안에서 법들을 제시하면서 왜 그 법을 지키는 것이 살 수 있는 길인가를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하느님께서는 사건을 통해 당신을 드러내시고, 그 하느님과 친교를 이루는 길로 제시되는 것이 토라이다.


 이 율법들을 포괄하면서 모세 오경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설화 부분들은 그 안에 포함하고 있는 법들의 신학적인 의미를 부여해 주고 있다. 달리 말하면, 십계명과 같은 법은 이스라엘 뿐만 아니라 고대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공통된 법규들이지만, 출애굽의 해방 역사를 이루신 야훼 하느님께서 계약을 통해 주신 이 법은 그 법이 지정하는 이웃은 물론 그 법을 주신 하느님과도 올바른 공동체-출애굽 해방의 정신을 기초로 하는-를 이루는 길이 되는 것이다.


 토라 이외에 모세 오경은 ‘모세의 책’이라고도 불리는데(2역대 30,16; 에즈 3,2; 느헤 8,1ff 등), 이 구절들에서 현재 형태의 모세 오경을 지칭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논의의 여지가 있다. 신약 성서에서도 자연스럽게 오경을 모세라는 인물의 권위에 연결시켜 이해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마르 12,26; 마태 19,3-8 등).


 희랍어세 이 토라라는 히브리 용어에 해당하는 νομὀς라는 용어가 있고, 신약 성서에 여러 차례 언급되는 ‘율법(νομὀς)과 예언서’라는 표현에서 율법은 곧 모세 오경과 동의어로 쓰이고 있다. 그러나 차츰 구약 성서의 첫 5권을 지칭할 때에 πεντάτευχος라는 용어를 보다 일반적으로 사용했고, 이것이 그 책들을 공식적으로 ‘모세 오경’이라고 부르는 기원이 된다. 구전 전승이 언제부터 현재와 같은 5권의 책으로 구분되고 또 토라라는 이름으로 권위를 갖게 되었는지는 분명치 않다.


 19세기 말에는 벨하우젠(Wellhausen) 등의 학자들에 의해 여호수아서를 포함하는 ‘육경’이 주장되기도 했다. 이 주장의 근거는 여호수아서가 모세 오경의 역사를 계속하고 있다는 것, 즉 출애굽 이후 40년의 광야 생활의 목적지는 곧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인데, 여호수아서는 이 역사의 종착점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여호수아서는 가나안 땅에의 ‘진입’ 정도를 시작하는 역사이며, 실질적인 땅 ‘점령’의 역사는 후에 다윗에게 이르러서야 이루어질 뿐만 아니라, 이 ‘육경’의 주장은 오경이 구약 성서 안에서 가지는 신학적인 위치를 간과하고 있는 견해이다.


 이와는 달리 마틴 노스(Martin Noth)는 1943년 오경에서 신명기를 제외시킨 소위 ‘모세 사경’을 주장한 바가 있다. 이 주장은 여호수아서에서 열왕기 하권에 이르는 소위 ‘신명계 역사서’들의 사관이 신명기의 법에 기초하고 있음을 근거로 신명기를 앞의 4권과 분리하고 대신 이 역사서들과 결합시키는 입장이다. 이 견해 역시 육경설과 마찬가지로 나름대로의 의미는 있으나 모세 오경의 신학적인 중요성을 대치할 만큼 인정하기는 쉽지 않다.


 모세 오경은 구약 성서 안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한다. 오경 안의 설화들과 계명들은 구약 성서 전체의 중심이 된다. 다른 책들 안에서 여러 차례 모세 오경을 언급하거나(에즈 8,1-3), 오경의 사건을 유비적으로 연관시키기도 하지만(요나 4,2), 오경에 관한 이러한 직접적인 인용이나 포괄적인 언급보다도 오경이 구약 성서 전체의 신학적인 바탕이 된다고 보는 것이 올바른 이해이다. 예컨대,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여호수아서에서 열왕기에 이르는 역사서는 ‘신명계 역사서’라고 불릴 만큼 신학적으로 신명기에 의존하고 있으며, 예언자들은 이스라엘의 우상 숭배와 사회적 불의를 질타할 때에 수 없이 출애굽의 역사와 계약과 계명을 상기시키고 있다. 이는 이스라엘이 출애굽과 계약을 통해 하나의 백성(하느님 백성)으로 탄생하고, 이 역사적이며 신학적인 체험을 바탕으로 그들의 역사와 삶의 길을 정리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창세기 1-11장이 인간의 원역사(元歷史)라면, 출애굽 사건과 시나이 계약을 담고 있는 오경은 이스라엘 백성의 원역사라고 부를 만 하다.


2. 모세 오경 각 책의 명칭


 유다인들은 본래 모세 오경의 각 책의 이름을 첫 단어로 붙였다(민수기의 경우 다섯 번째 단어인 ‘광야에서’로 붙인 것을 보면 앞의 단어들이 성서에 너무 자주 등장하여 책의 특징을 나타내주기에 부적합한 경우 다음 단어들 중에서 선택한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 이에 비해 희랍인들은 책의 내용을 드러내 줄 수 있는 제목을 만들어 붙였고, 오늘날 우리는 이 희랍식의 이름을 따라 부르고 있다. 오경 각 권의 명칭은 다음과 같다.



 

히브리 성서

희랍어 성서

라틴어 성서

우리말 성서

첫째 권

תישׁארב

ΓΕΝΕΣΙΣ

GENESIS

창세기

둘째 권

תומשׁ

ΕΞΟΔΟΣ

EXODUS

출애굽기

셋째 권

ארקיו

ΛΕΥΙΤΙΚΟΝ

LEVITICUS

레위기

넷째 권

רבדמב

ΑΡΙΘΜΟΙ

NUMERI

민수기

다섯째 권

מירבד

ΔΕΥΤΕΡΟΝΟΜΙΟΝ

DEUTERONOMIUM

신명기


 

3. 모세 오경 연구의 역사


(1) 4대 문서 가설의 역사: 모세 오경에 관한 비판적 연구의 역사

  1) 고대 전승 자료설

   18세기 초반 독일의 목사 H.B. Witter(1711), 중반 프랑스의 의사 J. Astruc(프로테스탄드에서 가톨릭으로 개종, 1753)에 의해 신명(神名)을 비판 기준으로 하는 연구가 제기되었다. Witter는 창조와 낙원 이야기에서 신명과 문체 등의 차이 그리고 반복되는 요소들을 찾아서 비교 연구를 하였다. 이에 따르면 창세 1,1-2,4에서는 하느님(elohim)이, 창세 2,6-3,24에서는 야훼가 쓰임으로서 두 가지 다른 전승이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J. Astruc은 창세기 전반에서 신명을 비교 연구하고 이를 출애굽기 1-2장에 확대하여 적용하고, 모세가 자기에게 전해 온 이와 같이 서로 다른 자료들을 이용하여 창세기를 썼다고 주장하면서 각 전승을 ‘엘로히스트’, ‘야휘스트’라고 이름을 붙였다. Eichhorn은 Astruc의 문헌 가설을 수용하고 이를 노아의 홍수 설화에서 레위기에 이르기까지 적용하여 연구를 하였다. 이들은 Y, E 이외에도 다른 여러 가지의 자료층(예: 창세 14)이 있음을 인정하였다.


  2) 단편 자료 가설

   Goddes(1792), Vater(1802-1805), W.M.L. de Wette(1805-1807) 등의 주장으로, 야휘스트나 엘로히스트 등의 큰 자료층보다는 다양한 독립적인 작은 단편 자료들이 최종 편집자에 의해 모아졌다고 보는 것이다.


  3) 보충 가설

   이는 주된 자료인 ‘엘로히스트’ 자료가 있고 거기에 ‘십계명’, ‘계약의 책’, 야휘스트계의 텍스트 등이 보충되었다는 주장이다. Wette는 위의 이론을 버리고 Kelle(1812), H. Ewald(1823) 등의 견해를 받아들여 1840년 이 가설을 주장하였다. 이 가설은 오경 안에 일관성이 있는 설화의 줄거리가 있음을 인정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이 줄거리를 형성하는 기본 작품은 엘로히스트로 본다.


  4) 기타 가설

   이 이론들이 세워지는 중간에 하느님의 이름이 엘로힘으로 불리는 텍스트에서 두 가지의 다른 원천이 있다는 Ilgen(1798)의 발견은 역사 비평 방법의 발전에 중요한 요소가 된다.

 H. Hupfeld가 1853년의 논문에서 엘로히스트의 첫 원전(E1: 후에 P로 불린 텍스트)을 기본 작품으로 보고 이 원전 텍스트가 창조에서 가나안 정착까지의 역사적 일관성을 내포하고 있다고 한 것도 보충 가설과 맥을 같이 한다. Hupfeld에 따르면, E1과 비슷한 시기에 그와는 문체가 다른 J 원전이 편집되고 그 후에 다시 E1과 사용 개념 및 언어 등에서 가까운 E2가 결합되었다.

 여기에 Riehm(1854)이 신명기가 요시아 개혁(2열왕 22-23: 기원전 622-1년경)과 관련이 있다는 de Wette의 주장을 수용, 확인하였고, 대개 이런 정도의 단계에서 4개 문헌 가설의 기초가 마련되었다. 즉, Ilgen, Hupfeld 등이 창세기 내에서 확인한 3가지 문헌과 신명기의 4문헌이 그것이다.


  5) 4대 문헌의 연대 규정 문제

   Hupfeld는 오늘날 P로 불리는 엘로히스트 원전을 기본 작품으로 규정하였다. 그러나 George(1835)는 오경의 법제와 축제일을 연구하면서 제의(祭儀) 및 사제적 법령이 고대 이스라엘의 정신과 매우 다른 것을 반영한다고 주장하였다.

 이어 Vatke는 이스라엘 종교사를 헤겔의 변증법적 발전의 이론에 맞추어 정리하면서 P문헌이 후대의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즉, 첫째 기간(正)은 이스라엘이 원시적, 자연 숭배적 종교의 단계이고, 둘째 기간(反)은 이스라엘의 왕정 말기로서 이때 예언자들이 고등적이고 영성적인 종교 형태를 제시하였고, 셋째 기간(合)은 유배와 그 이후의 시기로서 이 때에 율법과 종교가 합법화되었다는 것이다. Kunen 등의 학자들도 제관계 법조문 안에서 신명기적 요소들에 비해 후대에 법제화된 요소들이 들어있다고 지적하였다. E. Reuss는 가장 오래된 자료로서 ‘야휘스트’가 있었고, 두 개의 엘로히스트 자료가 있는데, 두 번째의 엘로히스트(후에 ‘제관계 문서’로 불린 자료)는 가장 후대의 자료로서 신명기 자료가 그에 앞선다고 주장하였다.

 K.H. Graf(1865)는 이상의 연구와 스승 Reuss의 연구를 수용하여 4대 문헌의 연대를 정리하였다. 당시까지 E1가 가장 오래된 문헌이라는 것이 정설로 인정되었었는데 Graf는 이 문헌을 제관계 문헌으로 명명하면서 가장 후대의 문헌이라고 보았다. 즉, P에 의해 집성된 법제는 이스라엘 종교의 출발점이 아니라 오히려 그 도착점이라는 주장이다. Graf는 이후 Kunen과의 의견 교환을 거쳐 1869년 오경의 구성 과정을 다음과 같이 정리하였다.

 ① J, E 원전의 편집

 ② 요시아 개혁에 약간 앞서서 신명기의 편집

 ③ 유배기간 중 위의 세 문헌이 결합

 ④ 유배 이후 제관계 법전이 편집. 에즈라는 바로 이 법전을 선포했던 것으로 본다.

 ⑤ 유배기간 중 결합된 3 문헌과 마지막으로 편집된 제관계 법전이 집대성되어 오경이 최종적으로 편집.


  6) Welhausen(1844-1918)의 문헌 가설 종합

   Welhausen의 주된 관심은 이스라엘 역사의 연구이었고 대표작은 ‘이스라엘 역사의 서설’이며 성서 백과 사전에 기고한 논문 “육경”에 그의 학문적인 입장이 잘 드러난다. 그의 이스라엘 역사 인식은 헤겔의 진보사관을 적용했던 Vatke에 큰 영향을 받고 있다. 즉, 그는 각 문헌에 나타나는 법제와 설화를 비교 분석하면서 ‘원시적 단계-신명기 단계-제관계의 법제화 단계’의 도식으로 정리한다. 몇 가지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사제직에 관한 법제에서, Welhausen은 이 법제가 성전에 관한 법제화와 함께 발전했다고 전제하고, 그 첫 단계로서 원시적 상태에서는 각 성소마다 그 곳에 부속된 사제가 있었다고 한다(1사무 21,2). 다음, 신명기 단계에서 경신례를 중앙 집중화시키고(신명 12) 지방 성소를 폐지하면서도 레위를 사제로 인정하여 그들이 예루살렘에서 제사를 드릴 수 있는 권한을 인정한다(신명 18,6-8). 이 조치는 사실상 실현되지 않았는데(2열왕 23,9), 에제키엘은 레위의 이런 위치가 그들이 고소에서 우상을 섬긴 데 대한 벌이라고 해석하고 있다(에제 44). 그러나 제관계 법전은 레위의 이 법적인 위치를 처벌의 결과로 보지 않고, 사제와 레위의 차별은 지성소와 예배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모세 시대로부터 기원한다고 본다(민수 1,4-8). 민수기의 이 텍스트는 ‘대제관’과 그의 ‘우림’, ‘뚬밈’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데, 우림과 뚬밈은 신명 33,8에서 보는 바와 같이 본래 모든 레위의 휘장이었던 것이다. 이제 이 도구들을 대제관과 관련해서만 언급하는 것이나 대제관이 왕의 도포를 입고 왕처럼 도유가 되는 것 등은 신정체제의 모습으로 이는 실제로는 유배 이후의 이스라엘의 상황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십일조의 경우에도 유배 이전에는 큰 축제일에 백성이 바치던 봉헌물만 인정하고 십일조는 아직 왕에게 바치던 세금에만 적용된 것인데(1사무 8,15), 제관계 문헌은 이를 사제에게 바치는 것으로 바꾸어 놓았다(민수 18,24).

 Welhausen은 이와 같이 당시 학계에 유행하던 진화론과 헤겔의 변증법적 역사 발전의 모델을 오경에 적용하여 자신의 이론을 전개하였다. 그에 따르면 토라는 처음 단계에서는 문자화된 조문의 형태로 존재한 것이 아니라 성전에서 사제가 구두로 결정한 것을 그 내용으로 삼고 있었는데 이 단계를 신정 체제라고 한다면, 그 이후 유배지에서는 신정 체제가 아닌 제정체제(帝政體制) 사회의 하부 구조를 형성하게 되었다. 여기에서 이스라엘은 정통성을 지닌 공동체의 재조직을 위하여 옛 관습과 법령들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과정에서 방대한 제관계 법전을 구성해 냈고 오경을 집대성하게 되었다.


  7) Welhausen 학파의 공통적 체계(오경 진화의 도식)

   Welhausen 이후 그의 학파 제자들은 오경에 대한 문학 분석을 가하면서 J1, J2, J3...E1, E2...D1, D2...등의 세분화를 계속해 갔다. 즉, 히브리 텍스트에서 문체나 신학적인 관점 등의 차이가 발견되면 학자들은 계속 문헌을 세분화시켜 갔던 것인데, 이러한 문헌의 세분화 과정에서 자연히 무리한 결과가 따르기도 했다. 왜냐하면 실제로 같은 저자의 동일한 문학 작품에서도 이러한 차이는 수 없이 찾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무리한 결과가 이 학파의 주장을 무용한 것으로 몰아세울 근거가 되지는 않는다. 부정할 수 없이 명백히 드러나는 문체와 신학의 차이가 히브리 텍스트 내에는 분명히 존재하는 것이 사실인데, 다만 이 학파가 특히 이러한 차이점에 주목하여 텍스트를 계속 세분화해 감으로써 나중에 와서는 학자에 따라 그대로 다 수용하기는 어려울 만큼의 세분화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이 학파의 학자 개인 혹은 그들 간의 세부적인 차이는 있지만 이 학파가 주장하는 전체적으로 공통된 체계는 다음과 같다.


 ① 야휘스트(J): ‘야훼’라는 신명을 사용한다. W.H. Schmidt 이후 기원전 10-9세기로 보는 것이 통설이다. 표현 양식이 고대성을 띠고 있으며, 아르메니아인(기원전 9세기 이스라엘과 전쟁 관계에 있었음)과 관계가 아주 우호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언급되는 장소 및 인물들이 대부분 가나안 남부에 집중되어 있는 것 등에 근거하여 시기를 추정할 수 있다. 남 유다에서 다윗왕 시기를 전후하여 야휘스트가 활동한 것으로 생각한다.


 ② 엘로히스트(E): ‘엘로힘’이라는 신명을 사용한다. 하느님과 인간 사이에 꿈, 천사 등의 중개를 필요로 한다. 예언자들의 활동에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하느님과 특별한 접촉을 가진 인물들, 예컨대 아브라함, 모세가 ‘예언자’의 호칭으로 불린다(창세 20,7; 신명 34,10).


 ③ 신명계(Dtn):  신명기의 대부분이 이 문서에 속한다고 본다. 전기 예언서(역사서, 여호수아서, 사무엘서, 열왕기)는 이 신명기의 신학에 영향을 받은 학파의 작품이다. 기원전 622-621년경 성전 수리 시에 발견되어 요시아왕의 개혁의 밑받침이 되었다는 법전(2열왕 22-23)과 신명기의 편집을 비슷한 시기로 본다. 신명계 신학의 2차 편집이 6세기경 유배 중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④ 제관계(P): 바빌론 유배 이후 편집된 것으로 추정되며, 야휘스트와 엘로히스트의 문헌이 수집된 후 거기에 최종적인 골격 형성의 역할까지 한 것으로 본다. 설화 자료가 적고 출애굽기의 후반부, 레위기 전체 및 민수기의 초반부에 나타나는 제의(祭儀)에 관한 법이 주종을 이룬다.


 여기에서 제시된 각 문헌의 연대는 최종 편집 시기를 말하는 것으로서, 각 문헌 안에 보다 고대의 자료를 포함하고 있다는 것을 배제하는 것은 아니다.


 

(2) 문학비판의 새로운 방법들

  1) 양식사 비판

   고고학의 발전과 더불어 19세기 말부터 고대 근동의 문학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지면서 오경 연구에서도 새로운 비판 방법론들이 대두되게 된다. 이전의 역사비평 방법이 텍스트 내의 단어나 구절들의 특성에 주된 관심을 가졌다면, 새로이 대두된 양식사 비판은 하나의 이야기 단위를 그와 유사한 내용을 담은 당시 혹은 그 이전의 민담이나 다른 텍스트와 비교 연구하면서 그러한 텍스트의 원초적인 발생 배경(Sitz im Leben)과 그 이후의 발전과정을 이해하고자 한다.

 양식사 비판의 개척자인 H. Gunkel은 Eichhorn에게 헌정한 그의 저서 ‘태초와 종말에서의 혼돈과 창조’에서 역사비판 방법의 결과(J, E, D, P의 구별)를 그대로 인정하면서 창세기 1장과 요한 묵시록 21장을 다룬다. Gunkel은 창세기 1장이 P문헌으로서 후대에 편집된 것임을 인정하면서도, 제관계 저자가 이 창조 설화를 독자적으로 자유롭게 구상하고 편집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큰 오류라고 지적한다. 그는 바빌론계와 바빌론의 일정한 영향을 받은 가나안계의 신화의 분석을 통해 제관계 저자가 다른 지방에서 온 요소와 이스라엘의 기원에까지 소급되는 저자의 집필 이전 과거의 유산 등 다양한 자료들을 참고하여 창조 설화를 저술하였음을 입증한다. 또한 Gunkel은 같은 구약 성서 내에서도 예언서와 시편 등에 나타나는 창조 설화의 주제를 이 설화가 표현되는 여러 가지 문학 양식 안에서 비교․제시한다. 이러한 연구 과정에서 특정한 단어나 구절보다는 창조 설화라는 하나의 이야기 단위가 표현되는 다양한 양식이 보다 중요한 연구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이다.


  2)양식사 비판의 방법론

   Gunkel의 개척으로 시작된 양식사학파는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일정한 문학 양식이 어떠한 역사 환경(사회생활)을 배경으로 형성되고 발전되어 왔는가 하는 것에 주된 관심을 갖는다. 일정한 작품은 그 저자가 살고 있는 세계와 필연적으로 관계를 갖는다는 것을 전제로-신화나 전설 등 종교와 관련된 전승문학은 더욱 그러한 성격을 갖는다는 것이 당연하다 할 것이다- 저자가 살고 있던 사회의 상태 및 그 사회의 심리상태, 역사적인 발전과정 등을 텍스트에 나타나는 문학양식과 관련하여 탐구하고자 하는 것이다. 따라서 텍스트의 ‘삶의 자리’라는 개념은 이 학파의 중심개념이 된다. 이 학파도 역사비평 방법론과 같이 문학양식의 ‘발전과정’에 관심을 갖고 있지만 그것은 Welhausen 학파가 따르는 헤겔식의 진보사관과는 차이가 있다. 예컨대 이 Gunkel 학파가 창조설화의 문학양식에 관한 연구를 할 때, 바빌론 창조설화의 양식, 그 영향을 받은 페니키아의 양식, 가나안의 양식 등을 거쳐 이스라엘의 양식을 비교 연구하면서 유다 묵시문학을 거쳐 요한 묵시록에 이르는 문학양식의 발전과정을 추적한다.

 위에서 어느 정도 언급이 되었지만 이 학파는 비교문학적 방법론을 중요하게 활용한다. 비교문학의 방법론을 통해 객관적인 비교의 초점이 발견되면 이스라엘의 저자들이 활용하고 있는 보편적인 문학양식이 규명되고 또한 하나의 문학양식이 사회적 배경에 따라 어떻게 변형, 발전되어 왔는가를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이들은 설형문자는 물론 에집트 문학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민담’(Sagen: 예배장소에 대한 민담, 어원학적 민담, 인종학적 민담 등)을 역사성을 내포하는 개념으로 이해한다.

 위와 같은 입장에 서있는 양식사학파에게 있어서 구약성서는 단순히 이스라엘의 민족주의적 정신이나 혹은 사제계급에 의해 창출된 독자적인 작품이 아니라 인근 문화와 이스라엘이 겪은 긴 역사적인 관계 안에서 그들이 살아간 구체적인 사건을 표현한 문학적 산물이다. 역사비판 방법이 이스라엘의 역사를 인류 보편적인 역사 안에 편입시킴으로써 구약성서의 초자연적 현존을 전적으로 배제했다면, Gunkel 학파는 성서 메시지가 갖는 초자연적 성격을 부인하지는 않았지만, 성서의 민담을 그와 병행하는 다른 민담들과의 양식사적 비교에 주력함으로써 구약성서 메시지의 초자연성을 적절히 드러내지는 못했다.

 Gunkel의 방법론에 따라 H. Gressmann은 고대 근동의 텍스트와 유적의 사진을 포함하는 두 권의 저서를 출판했는데, 여기에는 약간의 법률 텍스트도 포함하고 있으나 저자는 민간 전승과 민담의 양식에 보다 큰 관심을 보여주고 있다. Eißfeld는 자신의 저서 ‘구약성서 입문’에서 Gunkel 학파가 분류해낸 문학 양식의 연구 결과를 요약하고 있다. 즉, 말씀이나 설교 등 전(前) 문학적 단계(예: 신명기의 모세 연설), 기도문, 문서(예: 야곱과 라반의 계약문서), 편지, 시민법과 종교 의식법, 운문체의 설화, 민담(Eißfeld는 Saga를 “일종의 콩트로서 가공적으로 꾸며낸 이야기가 아니라 구체적인 역사 혹은 지리적 여건과 밀착되어 있는 이야기”로 정의한다), 전설, 역사적 설화, 자서전, 신탁, 축복과 저주문 등이 그것이다. Gunkel 학파에 따르면 오경의 저자들은 자신들의 작품(J, E, D, P) 안에 이전에 이미 존재하던 이런 문학 양식들을 용해시킨 것이다.

 Gunkel 학파의 대표적인 인물로 G. von Rad을 들 수 있다. 그는 ‘육경의 양식사적 문제’(1938)라는 저서에서 육경 텍스트 형성과정을 추적하여 그 중에서 제일 먼저 이루어진 것은 이스라엘 역사 안에서 하느님의 개입과 관계되는 일종의 역사적인 ‘신앙 고백문’(Credo)이라고 주장하고, 그 텍스트는 바로 신명 26,5-10이며 6,20-24 등도 같은 유형의 고백이라고 제시한다.

 von Rad은 이 원시적인 신앙 고백문이 시나이 전승에 관한 설화로 발전되고, 다시 후에 종교예식의 규범으로 사용되어 국가적인 축제 때에 모든 이스라엘 앞에서 봉독되었다고 본다. 이에 따르면, 먼저 ‘계명’이 성문화되고 다음에 이 계명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교훈설화’가 이루어지고 마지막으로 가나안 정복과 분배에 관한 ‘전승’이 형성되었다. von Rad은 다른 학자들에 비해 야휘스트의 활동을 크게 보면서, 야휘스트가 이상의 모든 경신례적 요소를 집대성하여 하나의 문학으로 저술하면서 시나이 전승과 가나안 정복에 관한 전승을 결합시켰고 이 작업은 바로 ‘율법과 복음’을 결합시키는 것이었다고 말한다. 야휘스트는 다시 여기에 시조들에 관한 전승을 연결시킴으로써 그 서두로 삼고, 마지막 단계에서 이 모든 역사의 서문이 될 원사를 썼으니, 이들은 결국 원시적인 신앙 고백문을 출발점으로 하여 이스라엘의 모든 전승을 보편적인 ‘구세사적 전승’으로 발전시킨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von Rad에게는 야휘스트가 이미 오경의 결정적인 형태를 형성시켰고, 이후에 E, D, P는 야휘스트에 의해 갖추어진 이 골격을 변형시키는 것은 아니었다.

 이러한 von Rad의 의견은, 기본적으로 율법의 양식을 통한 ‘하느님의 가르침’이라는 성격을 가진 오경에 신앙 고백을 보다 기본적인 요소로 본다는 점, 그리고 E 원전이 J 원전보다 후대에 편집되었다 해도 E 원전 안에 포함된 자료는 얼마든지 J의 것보다 오래될 수 있음을 간과하고 있다는 등의 문제점이 지적되고 있다.


  3) 전승사 비판 방법론

   G. von Rad은 양식사 비판방법에 이어 ‘전승사에 관한 탐구’에서 오경의 기초를 이루고 있는 여러 가지 전승들을 구별하고 이들의 문학적 특성과 메시지를 연구했다. 여기에서 저자는 하나의 이야기가 가지는 역사성(삶의 자리)에 관한 탐구보다는 오경 안의 설화들이 처음에는 구전으로 전해 내려오다가 오랜 전승사적 단계를 거쳐 마지막 단계에서 성문화되고 고정되었다는 전제 하에 그 과정을 추적한다.

 von Rad에 이어 M. Noth는 ‘전승사 연구’(1943)에서 신명기적 역사 서술과 역대기의 역사 서술을 구성하는 문학적 복합체의 전승사적 연구를 시도한다. 그는 이 연구에서 신명기를 오경에서 분리하여 ‘신명기적 역사서술’의 서문으로 삼음으로써 ‘사경설’의 입장을 취한다.

 그의 또 다른 연구 ‘오경의 전승사’(1948)에서 Noth는 E와 J 안에 있는 시나이 전승과 시조설화의 유사한 자료의 존재를 설명하기 위하여 마치 신약성서 공관복음의 Q자료와 같이 ‘G’(공통된 문학원전)의 존재를 주장한다.

 이러한 연구를 통해 그는 오경의 기틀을 이루고 있는 5개의 큰 주제(전승)로서 ‘에집트 탈출, 팔레스티나 침입, 시조들에게의 약속, 사막 유랑, 시나이 계시’를 제시하고, 이 주제들 사이에 다양한 다른 설화들 예컨대 재앙, 정복, 백성의 불평 그리고 족보, 여정 기타의 편집상의 연결 부분 등이 삽입되면서 전승들이 접합되고 전체적으로 뚜렷한 신학적 문학적 특성을 가진 문헌으로서의 모양을 갖추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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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세상 사람들은 두부류로 구분한다. 준비는 누구보다 열심히 하지만 실전에는 아무것도 못해내는 사람, 늘 빈둥거리는 것 같지만 실전에서는 약 오를 만큼 완벽하게 잘 해내는 사람. 불행히도 나는 전자에 속한다. 어렸을 때, 친구들과 잘 어울리는 편이 못되었는데, 게임에서 언제나 제외되었기 때문이다. 같이 놀기 위해 피 눈물 나게(?) 고무줄도 연습하고 그네타기도 해봤지만, 막상 실전에서는, 그놈의 멀미 때문에 언제나 아웃이 되고 말았다. 그래서인가. 이후의 삶도 준비만 오래하는 스타일로 굳혀진 듯하다. 지난번까지의 내용은 성서를 여행하기 위한 기본적 오리엔테이션이었다. 그런데 여행을 떠나기 전, 다시 한번 구약성서 전체를 짧게 브리핑하는 단계를 거쳐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조금 지연되겠지만, 좀 더 준비를 하고 떠나자는 제안이다. 방대한 구약성서를 크게 모세오경, 예언서, 성문서로 구분하고, 간단한 내용들만을 소개하려고 한다. 물론 무모한 시도일 수 있다. 그 많은 분량을 짧은 지면에 소개하려는 것 자체가, 무식해서 생긴 용기일 수 있기 때문이다. 지면제한 때문에, 여타 서적에서 제시하는 내용은 과감히 생략하기로 한다. 꼭 알아야 할 부분, 같은 내용이지만 새롭게 보아야할 부분만이 이번 브리핑의 주된 내용이다. 여행은 원래 준비할 때가 즐거운 법, 떠나는 순간 이미 고생시작, 이라는 나의 지론을 독자들께 알려드린다면, 매를 버는 일이 되는 걸까?! 이번에 살펴볼 내용은 모세오경이다.

  1. 명칭에 대하여

  모세오경의 히브리어 명칭은 ‘토라’(Torah)이다. 이는 동사 ‘야라’(yarah)에서 파생된 것이며, ‘야라’는 원래 ‘던지다’, ‘쏘다’ 등의 동작을 지칭하는 말이었다. 그런데 무엇을 ‘던지고’ ‘쏘려면’ 방향이 동반되므로, ‘방향을 가리키다’, ‘방향을 선택하다’의 의미로 어의가 확장되었고, 후에는 ‘지시하다’, ‘지도하다’, ‘길을 가리키다’등의 의미로까지 적용되었다. 결국
‘토라’는 삶 전반에 대한 ‘방향제시’, ‘지침’, ‘가르침’, ‘규범’ 등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희랍어 성서는 토라를 ‘율법서’(nomos)라고 번역하고 있다. 모세오경의 많은 부분이 ‘율법’으로 되어 있어서 붙여진 이름인 듯하지만, 이 용어는 모세오경 전체의 내용을 다 담아내지 못하는 ‘협소한’ 이름이다. 모세오경은 ‘율법’으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창세기와 출애굽기 전반부가 제시하듯이 ‘신화’ 혹은 ‘민담’도 대거 등장하기 때문이다.

  2. 모세오경이 제시하는 ‘법’의 개념

  그러므로 토라를 ‘율법서’라고 지칭할 때는, ‘법’의 의미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를 설명하기 위하여 한국말 표현, “그러는 법이 아니야” 라는 문장을 예로 들어 보기로 한다. 너무도 비상식적인 행동이나 폐륜적 행위를 접하게 되었을 때 우리는 “그런 법이 어디 있냐”는 말을 하게 된다. 그런데 이 표현을 자세히 보면 이때 사용된 ‘법’은 단순히 사법적인 의미를 넘어서서,
인간으로 살아가면서 지켜야할 기본적인 ‘도리’와 ‘규범’을 지칭하는 용어임을 알게 된다. 모세오경이 제시하는 ‘법’이란 바로 이런 개념으로 이해되어야한다.

  3. 내용

  모세오경의 내용을 짧게 정리하자면, 천지창조 때부터 모세가 약속의 땅을 바라보며 죽는 부분까지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이 내용은 모두 하나의 이야기처럼 연결되어, 서론(창세기)->본론(출애굽사: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결론(모세의 연설: 신명기)의 구조로 전개된다. 각권이 가지는 연속성 때문에 학계는 토라가 원래 ‘한권의 책’이었다고 보고 있다.

  4. 한 권의 책이었던 토라(사경설, 육경설, 구경설에 대하여)

  한권의 책이었던 토라가 언제부터 ‘오경’으로 구분되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단지 칠십인역(LXX)이 이미 이 구분을 따르고 있어서, 적어도 칠십인역 이전에는 그 구분이 결정된 듯하다(기원전 3-2세기 이전). 그런데 여기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원래 한 권이었던 토라의 ‘범주’에 대한 것이다. 즉 ‘토라’를 현재 우리가 이해하듯이, 창세기에서 신명기까지로 볼 것이냐, 아니면 다르게 볼 것이냐가 문제시되는 것인데, 이와 관련하여 나온 가설이 모세 사경설, 육경설, 구경설이다. 우선 ‘사경설’은, 신명기와 그 다음에 등장하는 4권의 성서(여호, 판관, 사무, 열왕)가 서로 비슷한 신학과 문체로 되어 있어서, 신명기를 ‘토라’에 포함시키지 말고 ‘신명기계 역사서’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육경설’은, 토라가 ‘땅’ 때문에 시작된 이야기이므로, 땅을 차지하고 분배하는 이야기, 즉 여호수아서까지를 토라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입장이다. ‘구경설’은, 땅이 없던 이들이 땅을 차지하는 이야기(창세기에서 여호수아서 까지)와 땅을 얻게 된 그들이 다시 땅을 잃게 된 이야기(여호수아서에서 열왕기까지)가 토라의 내용이라고 보는 입장이다.

  5. 왜 오경인가?

  그러나 우리는 일반적으로 토라가 ‘오경’(펜타튜코스)이었다고 간주한다. 다음 세 가지 요소가 이를 증명한다.
  1) ‘두 번째 법’(Deutero nomion)이라는 이름의 ‘신명기’는 ‘첫 번째 법’을 소개하고 있는 창세기-민수기의 결론에 해당되기에, ‘첫 번째 법’과의 연속성에서 이해해야 한다.
  2) 오경이 대사회적인 기능을 발휘하기 시작한 에즈라 시대는 이스라엘이 페르시아의 허락을 받아 요르단 서쪽 지역에 거주했던 시대였으므로, 요르단 동쪽 땅 정복을 언급하는 여호수아서는 일종의 ‘금서’처럼 여겨졌을 것이다. 즉 일종의 정치적 압력 때문에 여호수아를 토라에 포함시키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3) 유다인들과 대립하며 따로 경전을 구성했던 사마리아 사람들은 그들의 정경을 오경으로 국한했다(사마리아 오경). 이는 토라가 원래 오경이었음을 역으로 증명해준다.

   6. 오경 전체의 구성

토라는 매우 거대한 작품이지만, 사실 두 가지의 ‘양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하나는 ‘이야기’(히브리어로 ‘하가다’)이고, 또 다른 하나는 ‘법 규범’(히브리어로 ‘할라카’)이다. 지난번 지면에서 필자는 하느님께서 당신을 계시하실 때, 그 시대 사람이 가장 선호한 양식을 적용하셨다고 언급한 바 있다. 고대인들이 가장 열광했던 양식 중의 하나는 ‘법조문’이었다. 메소포타미아, 바빌론, 히타이트 등의 유산들은 그들이 얼마나 정교한 ‘법전’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기원전 2000경의 것으로 추정되는 함무라비법전이 그 대표적 경우이다. 법조문 이상으로 고대인들에게 친숙했던 장르는 ‘이야기’(설화)였다. 그 중에서도 ‘신화’(myth)는 독점적인 위치를 차지했는데, 토라의 대부분이 주로 ‘법조문’(할라카)과 ‘설화’(하가다) 양식으로 되어있음은, 당시 대중의 선호가 이 두 장르에 집중되었음을 제시해준다.

  7. 제작 과정과 그것이 시사하는 것

  모세오경은 성서의 첫 부분에 배치되어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순서가 제작 연대를 그대로 따른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 모세오경이 현재의 모습으로 되기까지는 대략 다음과 같은 경로를 거쳤을 것으로 보인다. 기원전 13세기경에 활동하던 모세와 관련된 이야기들(출애굽 사건, 광야에서의 사건들, 시나이 계약 등)이, 기원전 10세기경(다윗-솔로몬 시대) 글로 기록되기 시작하였고, 다양하게 문서화 되다가, ‘유배’ 중에(587-538년) 집대성 된다. ‘토라’라는 책이 최종적으로 완성된 것은 기원전 4-5세기경이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는데, 그렇다면 토라는 거의 1000년에 가까운 제작과정을 거친 대작임이 드러난다. 


  특별히 이 책이 집대성되던 시기가, ‘유배’ 때였다는 것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해준다. 평화 중에는 삶의 본질과 하느님과의 관계에 대하여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았던 이스라엘이, 모든 것을 상실하고 끔직한 종말을 체험함으로써 비로소 자신이 누려왔던 모든 것이 하느님의 축복이었음을 깨닫게 된 것이기 때문이다. 세상의 시작과 자신들의 뿌리, 성조들의 이야기, 하느님과 맺은 계약이 더 없이 소중한 은혜였음을 비로소 깨닫고 이를 문서(文書)로 보존해야 할 것임을 인식하게 된 것이었다.

  8. 저자(문헌 가설)

  모세오경이 거의 천년에 가까운 제작과정을 거쳤다는 사실은, 이 책이 단순히 한명의 저자에 의해 저술된 책이 아님을 명시해준다. 구텐베르그에 의해 인쇄술이 보급되면서 가장 먼저 대중에게 관심을 받은 책은 성서였다. 성서를 쉽게 대할 수 있게 되자 사람들은 성서가 가지는 내용상의 균열과 모순들을 찾아내었고, 이는 자연스럽게 논쟁의 핵으로 등장하였다(충돌되는 여러 전승층의 문제는 지난 지면에서 ‘성서의 무류성’ 주제로 설명한 바 있다). 그 중, 특별히 부각되었던 문제는 ‘모세오경의 저자’에 대한 것이었다. 당시까지 사람들은 단순히 모세오경의 저자를 ‘모세’라고 규정해왔다. 그러나 모세의 죽음과 장례에 대한 보도가 신명기 34장에 제시되고 있음이 확인되면서, 사람들은 전통적인 견해에 문제를 제기하게 된다. 그리하여 진행된 연구의 첫 단계는 ‘모세 저작설 부인’으로 집중되었다. 그 다음 단계에서 학자들은 하느님을 ‘야훼’로 지칭하는 문헌(야훼계 문헌)과 엘로힘이라고 지칭하는 문헌(엘로힘계 문헌)이 서로 다른 저자들에 의한 것임을 밝혀내었고, 세 번째 단계로 접어들면서는 서로 다른 네 개의 문헌을 구별해내기에 이른다. 소위 J, E, D, P라고 표기되는 문헌들이다. 이러한 연구에 의해 결국 모세오경은, 야훼계 문헌(J), 엘로힘계 문헌(E), 신명기계 문헌(D), 사제계 문헌(P)의 합성체이 며, 토라의 저자는 이 문헌들을 저술한 ‘익명의 학자들’이라는 입장이 부상하였다. 이 입장을 ‘문헌가설’이라고 하며, 이 주장은 거의 1980년대까지 모세오경 연구의 기본적인 통찰로 자리 잡았다. 문헌가설은 율리우스 벨하우젠(J. Wellhausen)이라는 학자에 의해 집대성되었는데, 그의 가설을 ‘그라프-쿠에넨-벨하우젠 가설’이라고도 부른다. 벨하우젠 이전에 이미 그라프(K.H. Graf)나 쿠에넨(A. Kuenen) 같은 학자들이 유사한 의견을 제시한 바 있었기 때문이다.

  9. 문헌가설의 공헌, 그리고 비판

  그러나 1980년대 이후, 문헌가설은 여러 측면에서 비판을 받아왔다. 문헌가설 만으로는 모세오경의 복잡한 전승층들의 문제를 완벽히 설명해 낼 수 없다는 지적 때문이었다. 그러나 현재 성서학계는 문헌가설을 필적할 만한 다른 입장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고 따라서 이 가설은 여전히 모세오경 연구를 위한 필수적 지식으로 건재하고 있다.
  여기서 필자가 특별히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문헌가설을 통해 제기된, ‘구약성서에 대한 새로운 인식’에 대한 것이다. 문헌가설 이전, 구약성서는 ‘토라’를 중심으로만 이해되었었다. 즉 모세오경이야말로 구약성서의 핵이요, ‘예언서’나 ‘성문서’는 토라의 ‘재해석’ 정도로 간주되어 왔던 것이다. 그러나 문헌가설은 ‘법이 예언보다 후대’(Lex post Prophetas)라는 유명한 슬로건을 제창함으로써, 예언서의 어떤 부분은 모세오경의 후대 본문보다 먼저 제작되었음을 밝혀내었다.

이러한 발견은 예언서의 고유성과 자체적 가치를 제시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였고, 구약성서가 가지는 복잡하고 다원적 편집 과정과 전승층을 발견하게 한 시발점이 되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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