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전과 예배당의 차이?

 

성전은 지정돤 장소이다.

성전은 하나님 지시대로 세워야한다.

성전에는 제사장이 필요하다.

성전에서는 짐승으로 제사한다.

성전에는 죽어가는 짐승의 소리와 피 냄새가 진동한다.

성전은 아무나 들어갈 수 없다.

성전에는 제사장만 들어갈 수 있다.

성전 법규를 어기면 죽는다.... 성전에서 여호와 하나님을 만났다.

성전은 예루살렘에만 있다.

 

예배당은 어디든 세울 수 있다.

예배당에서 예배한다.

예배당에 짐승도 피도 없다.

예배당에 제사장이 없다.

예배당에 제사하지 않는다.

예배당에 누구나 들어갈 수 있다.

예배당에서 예배하지만 다른 장소에서도 예배할 수 있다.

예배당은 사람들이 알아서 세운다.

예배당은 있든지 없든지 상관없다.

예수님은 예배당에만 계시는 분이 아니다.

여호와 하나님 방식이 아니고 주님이 따로 계시기 때문이다.

 

성전과 예배당은 전혀 상관없다.

성전과 예배당을 혼돈하지 말라.

예배당 짓는 것과 천국은 상관없다.

예배당 건축과 영생 의와 거룩이 상관없다.

예배당이 아닌 곳에서도 예배할 수 있다.

예배당 짓고 안짓고는 인간들 편의를 위해서다.

예배당 한번도 안져보고도 천국가고 예배당 수십게 짓고도 지옥 갈 수 있다.

참 성전이 예수 그리스도만 바라보고 믿고 감사하며

십자가 거룩한 주님의 피만 자랑하는 자가 성도다.


(받은글 게재)




성전과 예배당

 


(다음 까페 에서 느보산님의 글을 정리하였습니다)


교회를 다니면서 누구나 한 번쯤은 성전건축(?)이라는 몸살을 겪습니다. 
그 몸살이 얼마나 지독하기에 아예 성전 건축 없는 교회를 찾겠다며 정든 교회를 떠나기까지 하겠습니까. 
우리 주변에는 성전건축 헌금 강요 때문에 상처받은 교인이 너무나 많습니다. 
제가 친구를 따라 26년 전에 교회에 첫발을 디딜 때만 해도 예배당이라고 불렀지 결코 성전이라 부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당시의 목사님은 오직 천국 가는 구원에 목회의 목표를 두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예배당을 성전으로 부르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목회자의 외침이 천국과 지옥에서  세상 축복, 성전건축으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오늘날 누가 뭐라고 해도 목회 성공의 척도가 성전건축이요, 교세 과시가 성전의 규모에 있고, 
진리의 척도가 성전의 외형에 있다보니 성전건축이 하나님의 계시가 되었고, 교회의 지상과업이 되었습니다.
 마치 목사는 성전건축을 위해서 목회 하는 것 같고, 부흥회는 성전건축을 위한 돈 걷는 방법처럼 비쳐지곤 합니다. 
바치면 축복이라는 책임없는 달콤한 사탕으로 미혹시켜 백지에다 크게 작정케 한 후 지키지 못하면 
저주 운운하며 순진한 교인들의 피를 말리는 것이 진정 복음적이라 할 수 있을까요? 
그렇게 해도 구원받고 천국에 가는데 하등의 장애가 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침묵해야 합니다.
그러나 교회 역사는 분명한 답을 주고 있습니다. 
중세교회가 웅장한 성전건축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면죄부를 판매할 만큼 타락했던 사실을 거울 삼아야 합니다. 
교회가 화려한 벽돌성전에 초점을 맞출 때 구원이 교회 밖으로 밀리거나 희미해졌다는 상대적 관계를 직시해야 합니다. 
왜 이와 같은 변질의 역사가 생겨났습니까? 
문제는 일부 목회자와 교인들이 아직도 성전과 예배당을 구분하지 못한 까닭입니다. 
웅장한 성전을 지어놓고 하나님이 그곳에 계시다고 배우지 않았습니까?  
사람들은 벽돌 건물을 성전이라 높이며, 그곳을 하나님의 집이라고 선포하며, 
심지어 그곳에 하나님이 계시고 그곳에서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난다고 믿고 있습니다. 
사실이 그러한지 성경을 펴놓고 확인해 보십시오.
 
1.손으로 지은 성전 
율법시대에는 다윗이 준비하고 솔로몬에 의하여 지어진, 제사와 예배의 예루살렘 처소를 성전이라고 불렀습니다. 
왜 성전이라고 불렀을까요? 그 이유는 한 가지 밖에 없습니다. 그곳에는 하나님이 계셨기 때문입니다. 
“내가 주를 위하여 계실 전을 건축하였사오니 주께서 거하실 처소로소이다”(열상8:13)
“내가 거할 성소를 짓되 장막의 식양과 기구의 식양을 따라 지을지니라”(출25:8,9)
“오직 여호와는 그 성전에 계시니”(합2:20)
율법시대에 손으로 지은 예루살렘 성전은 하나님이 계신 거룩한 전으로써, 인간의 죄가 사함 받는 명실공히 벽돌성전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벽돌건물에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성전이 됩니다. 
 
2.벽돌 성전의 폐지 
때가 이르러 하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을 떠나가신 이후로 이 땅에 벽돌성전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만약 예루살렘 성전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다면 그곳은 더 이상 성전이 아닙니다. 
이 사실은 사도행전 6장과 7장에 나오는 스데반의 증언을 통하여 명백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윗이 하나님 앞에서 은혜를 받아 야곱의 집을 위하여 하나님의 처소를 준비케 하여 달라 하더니 솔로몬이 그를 위하여 집을 지었느니라. 
지극히 높으신 이는 손으로 지은 곳에 계시지 아니하시나니 선지자의 말한 바 주께서 가라사대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등상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짓겠으며 나의 안식할 처소가 어디뇨(행7:46∼49)
“제단 문 어귀 북편에 우상이 있더라 이스라엘 족속이 크게 가증한 일을 행하여 나로 내 성소를 멀리 떠나게 하느니라”(겔8:5,6)
“이스라엘 성소들이 훼파될 것이라”(암7:9)
“인간이 세우신 장막(The holy tent)을 떠나시고”(시78:60)
“만유를 지으신 신께서는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행17:24,25)
오늘날 인간이 하나님을 위하여 아무리 웅장한 건축물을 지어도 그곳에는 하나님이 계시지 않습니다. 
따라서 성전도 아니며 그렇게 불러서도 안됩니다. 
그럼에도 성경을 덮어 버리고 끝까지 성전이라고 부르기를 고집하거나, 
성전건축을 하나님의 계시라 주장한다면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짓겠으며”(행7:49) 
벽돌성전건축은 하나님의 뜻도 아니며 결코 그런 계시를 주지도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벽돌건물을 지어놓고 그곳에 하나님이 계신 것처럼 거룩한 성전이라 부른다면 
그와 같은 행위는 바로 무속의 신당문화에서 비롯된 우상숭배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3.성전인 예수님  
이제는 예루살렘 성전을 떠나가신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어디에 계실까요? 그 해답은 삼위일체에 있습니다. 
예수님이 곧 하나님이시며 또한 예수님 안에 하나님이 계십니다.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딛2:13)
벽돌성전 폐지 이후 하나님이신 예수가 바로 참 성전입니다. 
이것을 믿느냐, 믿지 않느냐 하는 것은 죄인의 구원과 직결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율법시대에 예루살렘 성전에서 죄 사함을 받았듯이 성전된 예수님께 죄 사함의 권세가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요2:19∼21)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요14:11)
구약의 신앙이 성전 중심이었던 것은 그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유일한 길이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성전의 개념을 정립해야 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이 한 분이듯, 하나님이 계신 성전도 오직 한 곳 밖에 없습니다. 
예수님 당시에 예수님 자신이 바로 성전이기에 예루살렘 벽돌성전은 파괴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벽돌성전을 고집했던 유대인들이 끝내 참 성전 된 예수님을 죽이고 말았으며 그 결과 그들은 저주의 형벌을 받고 말았습니다. 
오늘날 역시 벽돌건물을 하나님이 계신 성전으로 믿고 있다가 끝내 죄 사함을 얻지 못한다면 유대인처럼 진리를 알지 못하는 죄악이며, 
그로 인한 모든 형벌의 책임도 스스로의 몫이 될 것입니다. 
 
4.성도의 몸 된 성전 
참 성전 되신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하신 후 이 땅의 성전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언제나 변함없이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이 성전임에는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삼위일체에 의한 성령께서 거하시는 곳이 또한 성전이므로 오늘의 성전은 성령이 거하시는 우리 몸이 유일한 성전임을 알아야 합니다. 
더 나아가 성전 된 예수님이 계신 그곳에 구원이 있듯이 복음시대 역시 성령이 계신 곳에 구원이 있음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따라서 성전과 구원의 관계성을 볼 때에 자신의 구원을 위해서는 분명한 분별이 필요합니다. 
참과 거짓, 그림자와 실체의 분별이 사람에 따라서는 천국이냐, 지옥이냐를 결정하는 중요한 문제가 될 수도 있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이제 성경을 펴놓고 오늘날 무엇이 진짜 성전이지 알아보겠습니다. 
“누구든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시인하면 하나님이 저희 안에 거하시고(요일4:15)
“너희 몸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고전6:19)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알지 못하느냐 (고전3:16)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저희 가운데 거하며 나는 저희 하나님이 되고 저희는 나의 백성이 되리라.”(고후6:16)
당신은 성전이 되었습니까?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당신은 아직 성령을 받지 못한 사람, 곧 아직 구원받지 못한 상태일 수도 있습니다. 
아직도 분명한 확신 없이 벽돌건물 만을 성전으로 바라보고 있지는 않습니까? 지옥의 불못을 바라보며 심각성을 느끼십시오. 
하나님이 계신 곳이 거룩한 곳, 곧 성전이듯 당신이 진정 성전이라면 하나님도 당신 안에 계심을 믿으십시오.
“누구든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시인하면 하나님도 저 안에 거하시고”(요일4:15)
하나님이 당신 안에 거하신다면 당연히 당신의 죄도 100% 씻음 받아 거룩해졌다고 선포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만약 아직도 용서받지 못한 죄가 한 개라도 남아있다면 결코 성전이 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한 개의 죄만 남아 있어도 그 곳에 계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실 예수님께서 이미 2000년 전에 내 평생의 죄 값을 십자가 위에서 100% 지불하셨고, 동시에 100% 용서하셨음을 믿는다면, 
우리 마음에 지옥에 갈 죄는 한 개도 없는 성전이 건설된 것입니다. 
 
5. 교회와 예배당
 
▶ 敎:가르칠교, 會:모을회, 교회=에클레시아(헬):부름을 받아 나온 사람의 모임 ->church
사람들은 교회와 예배당, 그리고 성전을 분별없이 사용합니다. 
교회는 성령강림 이후에 생겨난 것으로 건물이 아닌 거듭난 사람들의 모임체를 말합니다. 
다시 말해 세상에서 부름 받아 칭의(稱義)를 얻은 성도들의 모임체라는 뜻입니다.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고전1:2)
“네 집에 있는 교회에게 편지하노니(The church that meets in your home)”(몬1:2)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행20:28)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마16:18)
교회는 결코 건물이 아닙니다. 손으로 지은 건물은 예배드리는 장소 곧 예배당에 불과합니다. 
물론 필요에 따라 복음 안에서 예배당 건물을 크게 지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배당은 결코 성전이 아닙니다. 
베드로와 바울의 경우를 보십시오. 
언제 한 번 벽돌성전을 건축한 적이 있습니까? 바울은 평생을 예수님의 몸된 교회, 곧 성도를 위하여 바쳤습니다.
개혁자 칼빈의 외침을 들어보십시오.
“교인들은 맹목적인 신앙을 경계해야 합니다. 우리의 목표는 건물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아직도 교회 안에 알곡과 가라지가 있습니다. 맹목적으로 추종하지 말고 말씀대로 따라 가십시오. 
영생의 말씀이 없는 교회는 죽은 교회입니다.”
또 개혁자 루터는 이렇게 외쳤습니다.
“우리는 외식하는 자들처럼 교인의 숫자만 채우는 교회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거듭난 성도의 몸이 성전이요, 성도의 모임체가 교회이고 성전 된 성도의 모임체를 위한 처소가 예배당입니다. 
벽돌 건물은 결코 성전이 아니며, 그곳에는 하나님이 계시지 않습니다. 
간혹 딤전3:15절 말씀을 오해하여 건물을 교회로 알고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여기의 집은 건물이 아니라 생명있는 성도라는 뜻입니다. 
“이 집(성도)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와 기둥의 터니라.”(딤전3:15)
(성도)->“너희도 산 돌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가고”(벧전2:5)
성도의 사명은 자신과 타인을 위한 몸의 성전 건설이지 결코 벽돌성전 건축이 아닙니다.  
어떻습니까? 숭사리 여러분? 여러분들이 지금까지 생각해오신 성전이라는 용어가 과연 복음적이었나요? 아니면....
교회개혁은 우리들의 의식개혁에서 부터 시작합니다. 
바른 신앙을 향한 바른 성경해석이 우리가 추구하는 교회개혁의 밑거름이 될 것으로 믿습니다.
 

느보산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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