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종류


 “믿음”은  모두 같은 것일까?


위에서 살펴 본대로 성서가 사용하는 “믿음”과 일반적인 의미의 “믿음”에는 차이가 있음을 볼 수 있다. 곧 성경은 그들의 신앙의 대상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에 관련된 경우에로 한정된 것을 본다. 아주 드물게 그 신앙의 대상에 대한 믿음을 돕는 역할을 맡은 사람에 대한 믿음이 있다. 곧, 구약의 경우, 모세를 위시해서 선지자들에 대한 믿음이 그것이다. 그러나  예나 오늘이나  선지자들이나, 신앙의 공동체인 교회나 성당에서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격려하는 목사, 신부, 교황등 그외 지도자들에 대한 신뢰로서의 믿음은 궁극적으로 절대자에의 신앙을 향상하는 목적으로만 의미를 갖는다.


기독교중에는 카톨맄을 비롯해서 희랍정교회, 러시아 정교회등에서 교회가 선정하는 성인들에 대한 믿음, 곧 성인들의 믿음이 대부분의 인간의 약한 믿음을 도와 줄 것이라는 의미도 있으나 이는 성경이 확실하게 정의하지 않은, 그들 전통에 의한 풍습에 근거한 믿음이다. 어떤 인간을 믿는것과 절대자를 믿는 것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것이다. 이것을 혼동하게해서 절대자에의 신앙을 사람에게로 오게 하는 것들이 바로 사이비종교가 되는 것이고 이단이라는 부류의 전형이 된다.


인간관계에서의 믿음은 반신반의(半信半疑)도 가능하고 또 이것은 지혜의 하나이기도 하다 (유대인들의 지혜집인 탈무트에는, 어떤 훌륭한 사람을 만나거든 존경을 표하되 깊히 의심하라고 조언한다.) 또는 오히려 완전히 불신하면서 믿어주는 척해서 상대방을 이용할 수도 있다.

믿음이라는 자체가 불신과 혼합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위에서 살펴 본 의미의 믿음외에, 성경은 또 다른 범주의 믿음을 언급하고 있다.

- 적은 믿음/큰 믿음
성경은 생활에서 염려와 근심하는 사람을 믿음이 적은 자라고 말한다 (마 6:30). 신앙한다면서 인생 문제에 당면했을 때, 무서워 하는 사람을 믿음이 적은 자라고 예수는 불렀다 (마 8:23-26). 신앙한다며서 두려워하는 사람에게 예수는 왜 의심하는냐면서 역시 믿음이 적은 자라고 하였다 (마 14:28-32). 이와 반대로, 예수 그리스도는, 이방인인 로마 장교가, 자신의 종의 불구됨을 현장에 갈 필요없이 단지 예수의 말만으로도 고칠 수있다고 믿고 간청하는 그의 신앙심을 “큰 믿음”이라고 하였다((마8:5-10). 또한 역시 이방인인 한여인이 귀신들려 고생하는 딸로 인해서 예수에게 간구하였으나 그의 거부에 좌절하지않고 오히려 예수를 설득하는 믿음을 보며 그과부가  큰믿음을 가졌다고 칭찬하면서 그딸을 고쳐 주었다 (마 15:21-28)

- 믿지 않음/믿음의 결핍
믿음에 반대되는 것은 믿지 않음 또는 믿음의 결핍이다. 믿지않는 사람들의 모임에서는 예수님도 기적을 일으킬 수없었다 (막 6:1-6). 예수님은 그의 부활을 본 증인들의 말을 믿지않은 그의 제자들을 믿음을 결핍했다고 꾸짖기도 하였다 (막 16:14).

- 약한 믿음/강한 믿음
이는 신앙하는 데 필요한 지식이 많아서 분별력이 있어서 현실을 잘 처리하는 사람들이 강한 믿음을 가졌다고 하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향해서 약한 믿음을 가졌다고 표현한 것이다. 여기서는 강한 믿음의 소유자들이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배려해서 처신할 것을 권하는 의도가 있다 (롬 14:1-23)    

- 믿음은 바뀐다
성경이 제시하는 믿음은 바뀐다. 일시적으로 있다가 없어지는 것일 수가 있다는 것이다 (눅 8:13). 또 제자들과 예수님의 대화에서 제자들이 자신을의 믿음을 증가시켜 달라고 요청한 것과 예수님이 믿음을 겨자씨에 비유하는 것(눅 17:5-6)은 흥미있는 일이다.

- 믿음의 조심성
성경은 믿음이 선별적임을 보여 주면서 조심해야 한다고 경고하고 있으니, 곧 오직 어리석은 자들만 아무거나 다 믿으나 지혜있는자는 행동하기전에 심사숙고한다는 것이다 (잠 14:15)  

정리
믿음은 봄으로, 체험으로, 실험을 통해서 무언가를 인정하고 의심않는 것뿐만 아니라, 보지 않고도 미리 알지 못했어도 신뢰할 만한 사람들의 증언이나 말만으로도 생기게 된다. 이것은 모든 인간관계에서 보는 경우이고 우리 삶에서 겪는 것이다. 어렸을 때, 또 자라면서, 우리는 부모를 비롯해서 많은 권위적인 사람들과 상징들, 선생님들, 정치 사회 지도자들의 교훈, 우리가 읽는 고매한 사상가들의 책들, 전통, 풍습, 언어 등, 문화의 영향에 무의식적으로 믿음의 자세로 대하는 것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우리 인간은 천차만별의 자기만의 믿음의 모양을 만들어 간다. 곧 “마음으로 꼭 그렇게 인정하거나 생각하고 의심하지 않는다”는 믿음이 “생각하는”과정에서 무한한 각자의 공통점과 상이점을 확인해 간다. “생각하는” 나는 이 믿음이라는 창을 형성하면서 동시에 믿음을 통해서 일생동안 나의 사고의 틀과 내용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의 믿음에 대해서 기독교의 성경은 훨씬 특정된 의미의 믿음을 정의하고 있으니, 곧 천지 창조자와 그가 보내서 세상에 온 예수에 대한 믿음을 인간에게 요구하는 것이다. 곧, 그전능자와 그가 인간에게 그의 사자들을 통해서 인간 역사를 통해서 인류에게 전해 준 모든 교훈과 그 장래에의 약속에 대한 신앙과 신뢰라는 믿음을 요구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에 관련된 모든 것, 곧 믿음의 결과인 복종의 요구, 행동에의 필연성, 또 모든 선택과 결정이 믿음을 선행해야 한다는 조건의 논리는 결코 신중한 사고와 행동에의 책임을 묻는 데서 성숙을 기대한다. 그러나  참으로 격려적인 것은 신앙은 성장한다는 사실이다. 신앙에 수준이 있는 데, 곧 갓태여난 어린 아이가 자라면서 점점 철이 들고 분별력이 생기고 성숙해지면서 지혜자가 되듯이, 우리의 신앙도 성숙해간다는 것이다. 신앙 정도가 있어서 약한 믿음이 지식을 얻음으로 강한 믿음, 성숙하는 믿음, 큰 믿음으로 바뀌는 과정이 각자의 믿음의 분량에 따라 허락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이과정은 일생에 걸쳐서 진행된다는 사실이다.

믿음에는 첫믿음이 있다. 이것은 시작인 만큼 미약한 것이지만, 이후의 모든 생애를 결정짓는 데 지대한 영향을 준다. 사전 지식이 있던지, 없던지 간에, 믿음은 관계의 시작이냐 아니냐를 결정하게 한다. 사람을 처음 만나는 경우도 그러하고 무언가를 시작하는데도 관심을 가져 보기로 작정하는 것의 중요성. 이것은 아주 쉬운, 가벼운 정도의 믿음이다. 하나님을 믿을 것인가 않을 것인가하는 기로에서, 파스칼의 제안은, 하나님이 있다는 가정에 도박하라는 것은, 이런 첫단계를 말하는 것이다. 일단 있다는 쪽을 선택해서 계속 찾다 보면, 없을 수도 있을 수도 있음을 본다는 것이다. 많은 경우, 기독교인들이 비난을 받는 경우 그내용은 믿음의 정도, 수준의 문제임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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