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적인 복의 개념  

 

“축복” 듣기만 해도 좋은 말이다. 

이 세상에서 복 받기를 거부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오늘날 교회 강단에서 거의 하루도 빠지지 않고 설교자들의 입에 오르는 단어도 ‘축복’일 것이다. 복 = 돈과 성공?복 = 자녀?복 = 장수와 건강? 맞는 것 같기도 하고 틀리는 것 같기도 한데,이왕이면 좋은 것이 좋다고 무조건 아멘? 

 

성경적인 복의 개념을 살펴보자! 

성경이 말하고 있는 최초의 복은 창 1:22에 기록되어 있다.창 1:22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어 가라사대 생육하고 번성하여 여러 바다 물에 충만하라 새들도 땅에 번성하라 하시니라” 하나님은 동물들을 창조하시고 그들에게 복을 주셨다. 복은 단지 사람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창 1: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은 사람에게도 복을 주셨다.

창 2:3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이 날에 안식하셨음이더라”하나님은 일곱째 날에게도 복을 주셨다.사람들이 복에 대해 설교할 때 가장 많이 인용하는 구절은 단연 신 28:1-14 말씀일 것이다. 

신28:1-14에서 하나님은 사람이 받을 수 있는 가능한 모든 복에 대해 약속하셨다. 어디를 가든지 복을 받고, 무엇을 하든지 복을 받고, 모든 싸움에서 승리하고 대적은 패하며, 부귀와 영화를 누리며 자녀들도 잘 되고 모든 일에 최고가 된다. 

 

창 1-2장에 언급된 복과 신 28:1-14에 언급된 복의 차이점은 무엇일까?창 1-2장에 언급된 복은 선택적이지 않으며,조건적이지도 않다. 하나님은 아무 조건이나 전제 없이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피조물에게 가장 필요한 복을 주신 것이다. 피조물들에게 왕성한 번식력과 건강함을 주셨다. 그들을 해롭게 할 것이 없었으므로 그 자체가 얼마나 아름답고 놀라운 행복이었을까? 하나님은 인간에게는 동물에게 주신 축복 외에도 특별히 땅에 있는 모든 것을 다스리는 권세까지 더하셨다.

 

이 모든 것 외에 사람에게 매우 특별한 은혜와 축복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어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행복과 영광이 오래 가지 않았다. 아담과 하와의 불순종과 범죄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졌고, 낙원 에덴에서의 행복도 박살났다(창 3장). 범죄로 인한 타락으로 인해 하나님과의 관계, 인간 상호 간의 관계,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가 모두 심각하게 깨어지고 질서가 파괴되었다. 그리고 인간은 죄의 형벌과 저주 아래 놓이게 되었다. 

 

그러면 창 1장에 선포된 하나님의 복은 어떻게 되었을까? 완전히 사라졌을까? 아니다. 여전히 남아 있지만 그것은 심각하게 깨어진 상태로 존재한다. 완전한 형태의 복은 범죄와 타락으로 인해 잃어버렸다.이 때문에 이제 축복은 무조건적이라기 보다는 조건적이 되었다. 저주와 형벌 아래 있는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큰 행복은 무엇일까? 그 저주와 형벌로부터 자유함을 얻는 것이다(롬 4:5-9). 에덴에서 추방된 인간에게 가장 큰 행복은 그 옛 지위와 행복과 영광을 다시 회복하는 것이다. 신 28장을 읽을 때 조건을 생각하지 않고 읽으면 그것은 하나님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복이 된다.사실 그런 복은 존재하지도 않는다. 

 

신 28:2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미치리니” 창 3장 이후의 모든 복은 조건적인 복이다. 다시 말하면 최초의 손상되지 않은 상태로 주어졌던 복은 더 이상 영원한 것이 아니고 철저히 깨어져서 지극히 일시적인 것으로 변했다. 저주와 형벌 가운데 살면서 세상에서 누리는 건강과 장수와 부귀와 영화가 전부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건강과 장수와 부귀와 영화가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시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 자체가 절대적인 행복을 소유하고 있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시 17:14).

 

 세상에서 누리는 부귀영화가 하나님의 형벌 때문에 주어지는 경우도 허다하다(시 37; 73편).교회에서 믿음과 부귀를 연결시킬 때 많이 언급되고 있는 믿음의 조상은 아브라함이다. 

창12:1-3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복의 근원”으로 삼아주실 것이라고 약속하신 내용이다. 아브라함의 이야기는 어떻게 하면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아낼 수 있는가를 알려주는 교과서처럼 이용된다.많은 목회자들과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복”이 무엇이었는가에 대해 깊이 이해하기도 전에 물질적이고 세속적인 행복으로 연결시키는 경향이 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물질적인 복을 주신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하나님이나 아브라함이 동시에 바라보고 있는 행복은 다른 것이다. 아브라함은 물질적인 행복을 위해 살기 좋은 갈대아 우르를 떠나 멀고 먼 가나안 땅까지 온 것이 아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통해서 천국을 바라보았다. 히 11:10 “이는 하나님의 경영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니라” 창 12:1-3에 있는 복은 갈 3:8, 14절에 잘 설명되고 있는 것처럼 복음이며 구원이다. 하나님께서 이삭과 야곱에게 주시고자 하던 것도 이러한 행복이다(창 18:18; 22:18; 26:4). 천하만민이 아브라함과 그 후손을 통해 오시는 메시야를 통해 구원을 얻는 것이 창 12:1-3에 나타난 “복의 근원”에 대한 약속이다. 잃어버렸던 절대적인 행복을 회복할 뿐만 아니라 더 나은 영원한 천성의 행복이 아브라함을 통해 우리에게도 약속되어진 것이다. 이러한 무한히 거룩하고 절대적인 행복을 100년도 못 누릴 세속적이고 타락하고 저주의 오물 속에서 잠시 누리는 행복으로 대체시켜서는 안된다.

 

예수 그리스도가 없이 이 세상에서 누리는 부귀영화는 그 자체로 저주이다. 하나님께 진정으로 순종하는 것이 복을 받는 비결이라면, 복을 받기 위해 몸부림쳐야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순종하기 위해 몸부림을 쳐야 한다. 하나님께 진정으로 순종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막고서 복을 받기 위해서 몸부림을 친다면 복을 받기는커녕 저주가 약속되어 있기 때문이다(신 28:15 이하). 

 

진정으로 복을 받는 비결은 첫째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면서 그것을 순종하는 것이다(시 1 편). 

악인들도 이 세상에서는 아주 잘 살 수 있다. 형통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자들은 모두 바람에 나는 겨처럼 날아갈 것이며, 불로 시험을 할 때 다 타고 없어질 것이다. 심지어는 허황된 복을 선전하는 목사들과 그들이 세운 교회와 그들이 모든 교인들도 모두 불 시험 앞에서는 모두 잿더미로 변할 것이다(고전 3:14). 

 

진정으로 복을 받는 비결은 둘째 우리가 잘 아는 팔 복이 가르쳐 주고 있는 것처럼 세상 가치관과 정반대로 사는 것이다. 가난한 마음을 갖고, 세상에서 애통하며, 온유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심판에만 의존하며, 의에 주리고 목말라하며, 긍휼을 베풀고,깨끗한 마음으로 살아가며, 화평케 하는 일(단지 인간 사회에서의 피스메이커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죄인을 하나님과 화목시키는 자의 일)을 하며, 의를 위해 핍박을 받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진정으로 복을 받는 비결은 셋째 하나님께서 주신 복, 즉 영생을 지키는 것이다. 계 14:13 “또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가로되 기록하라 자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가라사대 그러하다 저희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저희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 이것은 세상의 욕심과 생명마저 부정하는 것이며,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에게만 허락된 것이다. 

마16:21-27 “이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할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가르치시니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간하여 가로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에게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단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의 행한대로 갚으리라” 

 

성경을 이용하여 세속화를 조장하는 복에 대한 설교들은 성경의 복에 대한 개념과 다른 것이다. 건강과 장수와 재산과 권세가 사람들에게 필요하고 의미 있는 것일 수는 있을지라도 그것들이 결코 복음의 자리를 대신 차지할 수는 없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을 몰아내고 대신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복에 대한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에 정면 충돌하는 잘못된 신학이며 믿음이다. 

 

부자가 되려고 애쓰는 것도 위험한 것인데, 세속적인 성공인 복음인 것처럼 위장하여 가르치는 목회자들의 설교는 성도들을 타락시키는 것이며 사탄적인 것이다(잠 23:4; 딤전 6:9; 약 5:2). 성경은 돈을 사랑하는 것이 일만 악의 근원이 된다고 분명하게 가르치고 있다. 성경의 가르침을 뒤집어 엎는 설교를 하는 목회자들을 떠나 하나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전하는 목회자에게로 가라! 

 

믿음의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두 가지 원칙첫째는 매일 자기 자신을 부정하는 것이다. 세상에서 성공하려는 욕망, 세상에서 목숨을 잃지 않으려는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마음, 심지어는 자기 가족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마음을 부정해야 한다. 주님을 제대로 따르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것이 있으면 그것이 무엇이든지 부정해야 한다. 심지어는 자기 생명까지도 미워해야 한다. 그래야 주님을 제대로 따를 수 있다.

 

둘째는 매일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것이다. 주님을 따른다는 것은 주님의 가르침과 삶을 그대로 순종하며 따른다는 것이다. 주님처럼 낮아지고 겸손해지고 온유하고 죄인들을 용서하며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사명을 감당하되 죽기까지 충성하는 것이다.

 

매일 이 두 가지 원칙을 통해서 우리가 올바른 길을 가고 있는가를 점검해야 한다. 오늘날 무수한 교회들이 세속화를 온 몸으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부추기고 있다. 성공만 하면 모든 것이 정당화되고 있으며 찬양을 받고 있다. 마치 예수님께 다가와 하나님 말씀을 왜곡시키며 예수님을 타락시키기 위해 유혹했던 마귀처럼 오늘날 무수한 목사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시키며 성도들과 교회의 타락을 부추기고 있다.이제는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말씀의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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