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 Christ


히) ‘마쉬아흐’ משיח

헬) ‘크리스토스’ χριστος “기름부음 받은 자”



그리스도는 구약의 메시야에 대한 신약의 호칭이다,. 복음서에 많이 나타나는 ‘호 크리스토스’는 그리스도 앞에 정관사가 붙은 것으로 구약에 이미 예언되었던 특별한 한 사람(참조. 삼상 2:10; 시 2:2), 즉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기름 부어 세우실 한 특정인물이나, 유일하신 참 그리스도 예수를 지칭할 때 사용되고 있다(요 20:31). RSV 는 시 2:2의 인용인 행 4:26의 헬라어 ‘투 그리스투 아우투’를 “그의 기름부음 받은 자”로 번역했다. 그러나 같은 헬라어를 게 11:15; 12:10에서는 “그의 그리스도”로 옮기고 있다(한글 개역 성경은 ‘그 그리스도’로 통일되게 번역되었다).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어서 예수와 그리스도라는 두 이름은 실제로 서로 바꾸어 부를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예수”는 할례시 아기에게 주어졌던 이름이다(눅 2:21). 그러나 그리스도라는 직분이 언급되고 있는 구절을 이해할 때에는, 특별히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화목자로서의 중보자인신 구세주의 직임과 연관시켜서 생각해야 한다. 종종 바울은 이 둘의 순서를 뒤바꾸어 사용하기도 하였다(“그리스도 예수”, 참조, 롬 3:24; 8:2, 39).



“기름부음 받은 자”라는 명칭은 고대 중동 지방의 관습, 곧 높은 직임을 책임지도록 선택된 사람에게 기름으로 성별케하는 의식에서 유래된 것이다. 구약 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이러한 관습은 매우 친숙한 것이었다. 그들은 선지자, 제사장, 왕들에게 기름을 부었다(왕상 19:16; 시 133:2). 이는 선택된 자들이 그 각각의 직분에 적합하다는 사실을 공적으로 모든 사람들 앞에서 확인시키는 의식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구약의 상징적인 행위들은 그 직임을 맡은 자들이 살고 있던 일정한 기간만 효력이 있었으며, 그 직분자의 일 수행 틍력도 불완전한 것이었기 때문에 이스라엘에는 한 특정한 기름부음 받은 인물의 도래가 예상되었다. 그는 사람이 준비한 기름으로 부음을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의하여 성령으로 부음 받은자인 것이다(마 3:16~17; 막 1:10~11; 눅 3:21~22). 이에 대해서는 예수께서 스스로 증거하셨다. “주의 성령이 네게 임하셨으니...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눅 4:18, 사 61:1의 인용; 참조 행 10:38). 이와 같이 그리스도라는 이름은 그의 백성들의 구속자이며 중보자로서의 그의 임무뿐 아니라, 이러한 임무를 완벽하게 수행하심을 통하여 나타나는 그의 권위와 능력을 포함하고 있다.



Ⅰ. 그리스도의 품성

A. 성경의 교훈: 구약의 고위 성직자들과는 달리 그리스도는 어떤 특별한 때에 그의 직분에 취임하지 않는다. 그리스도는 창조 이전에 이미 기름 부음을 받았다. 벧전 1:20에 따르면, 창세 전부터 이미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자로 존재하셨다(참조. 딤후 1:9). 그는 창세전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을 선택하실 때 이미 존재하셨다(엡 1:4). 바울은, 창세 전부터 하나님게서 가지셨던 뜻을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엡 1:10)고 요약한다.



하나님께서는 마침내 그의 계약 백성들에게 구속자이시며 중보자이신 그리스도의 영원한 직분의 신비를 알게 하셨다. ‘때가 차매’(갈 4:4) 하나님께서는 그의 신적 임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그의 백성들에게 약속하셨던 기름 부음 받은 한 사람을 보내셨다. 구약에서 메시야에 관한 하나님의 계시는 원칙적으로 가장 먼저 주어졌다. 메시야의 도래가 가까워 질수록 또한 시간이 지날수록 계시는 점점 더 자세해졌으며 보충되었다. 그가 오심으로 인하여 만세와 만대로부터 감추었던 복음의 비밀이 이제 그의 성도들에게 나타났다(골 1:26; 참조. 롬 16:25).



그리스도는 선재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실 뿐 아니라 한 인간이었다. 그는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여인(참조. 창 3ㅣ15)에게서 태어났다. 그의 계보는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언약에서 더욱 자세히 나타난다, 곧 아브라함의 후손 가운데 한 사람으로 오실 것이며, 그로 인하여 모든 국가들이 복을 얻게 될 것이다(창 22:17~19). 야곱은 임종 시에 그의 아들들에게 축복을 빌면서 유다 자손으로 메시야가 오실 것을 말하였다(49:10). 후에 선지자들은 좀 더 자세히 메시야의 성품과 사역에 대하여 드러냈다. 사 53장에 의하면, 그 고난의 종은 그 백성들의 죄를 위하여 고난받으며 버림받아 마침내 죽으며, 땅에 묻힌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11:4에서, 그는 “공의로 빈핍한 자를 심판하며 정직으로 세상의 겸손한 자를 판단할 것이며 그 입의 막대기로 세상을 치며 입술의 기운으로 악인을 죽일 것”이라고 묘사한다. 실로 그는 의로운 영원한 왕국의 창조자로 나타난다. 구약 시대가 거의 끝날 무렵, 다윗의 무너진 왕가를 통하여 메시야가 오실 것이라는 미가 선지자의 예언이 주어졌다(미 5:2).



1. 신성(神性)- 그리스도의 선재(先在)에 대한 구약의 이해는 신약에서 크게 확대 되었다. 그리스도께서는 창세 전에도 존재하셨을 뿐 아니라, 영원하고 참되신 하나님으로 계셨다(참조. 요 1:1). 더 나아가 그가 이 세상에 오셨을 때, 그는 사람인 체 한것이 아니라 육신이 되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하나님이셨다(요1:14). “저는 만물 위에 계셔 세세에 찬양을 받으실 하나님이시니라”(롬 9:5).



그리스도의 신성에 대한 교회의 고백은 인간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나님의 자기 계시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이다(마 16:17). 또한 모든 성경의 지적들도 그리스도의 신성에 대하여 모호하지 않고 명백하게 묘사되고 있다(참조. 미 5:2; 사 9:6). 신약에서는 종종 구원주이신 그리스도의 참된 신성이 그리스도 자신에 의하여 엄숙하게 선언되어졌다. 또한 베드로가 예수께, 당신은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라고 고백하였다(마 16:16; 참조. 막 8:29; 눅 9:20). 바울은, 그리스도가 근본적으로는 하나님의 본체이시지만 하나님과 동등굄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않았다고 언급한다(빌 2:6). 요한은 그리스도를 찬양하면서 “그는 참하나님이시오 영생이시라”(요일 5:20)고 고백한다. 대제사장 가야바가 예수님을 심문하면서 “네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인지 우리에게 말하라”고 물었을 때, 에수께서 “네가 말하였느니라”라고 대답하셨다(마 26:63~64; 참조. 막 15:2). 또한 다른 떼에는 하나님 아버지와 자신이 하나라고 말씀하셨으며(요10:30), 그가 아브라함보다 먼저 존재하였다고 선언하셨다(요 8:58).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대제사장 기도에서, 창세전에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를 언급하신다(17:5). 그 외에도 죄를 용서하신다든지 병을 낫게 하실 때(막 2:5~11; 마 9:2~7; 눅 5:20~25), 또한 그의 제자들이 자신을 믿도록 권고하실 때, 자신의 신성에 대한 인식과 결부시키고 계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신약에서 그리스도는 사무이의 제2위로서 하나니믜 아들로 일컬어지고 있다(마 16:16; 26:63~64). 마리아를 방문하였던 천사에 의하면, 마리아가 낳을 아들은 거룩하신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질 것으로 말하였다(눅 1:35).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신 직후에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서 증거하기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셨다(마 3:17; 막 1:10; 눅 4:22), 이것은 단순히 예수께 의례적으로 주어졌던 호칭이나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다, 하나님께 의하여 인정되었던 직분들을 맡을 때나 사사, 왕 등에게 수여되었던 호칭들과는 다르다(참조. 시 82:1; 요 10:34, 시 82:6의 인용). 왜냐하면 성경은 그리스도가 아버지와 같은 독특한 능력을 지녔다고 선언하기 때문이다(요 5:26).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그 아들’로 부르고 있다(롬 8:32). 그리고 요한은 그리스도를 ‘하나님과 함께 계셨던 말씀’으로 곧 하나님이라고 함께 계셨던 말씀‘으로 곧 하나님이라고 말한다(요 1:1). 또한 하나님의 독생하신 아들로도 표현하고 있다(1:14; 참조. 5:18, 예수님 스스로 하나님을 자신의 친아버지라 하셨다).



2. 인성(人性)- 신약에서는 그리스도의 인성 역시 강조되고 있다. 하나님의 영원한 아들은 ‘사람의 모양으로’ 태어났다(빌 2:7~8). 그는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라고 불리워졌다(딤전 2:5). 그는 말씀이셨지만 육신이 되셔서 우리들 가운데 거하셨다(요 1:14). 그는 그릐 백성들과 같은 혈육에 속하셨다(히 2:14). 결과적으로 그는 인간들과 다름이 없었다. 그는 한 인간으로서 사람들 가운데 사셨으며, 즐거움과 기쁨과 슬픔을 나누셨다. 그리고 같은 음식을 드셨다. 그는 외모뿐 아니라 성품도 사람이셨다. 다른 사람들처럼 그는 아담의 후손이셨다(눅 3:38의 족보). 그리고 그는 한 여인에게서 태어나셨다(눅 2:6~7; 마 1:18이하; 갈 4:4). 그의 조상들로는 아브라함(마 1:1)과 다윗(6절)이 있다.



그리스도는 비록 그 자체는 죄가 없으나 죄로 인하여 연약하여진 인성을 아담으로부터 물려받았다. 곧 그리스도는 ‘죄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이 땅에 오셨다(롬 8:3). 그가 우리의 질고를 지고 슬픔을 당하였지만, 그는 다른 사람들과 구별되지 않으셨다(사 52:2~3). 그러나 그리스도는 우리와 꼭 같은 인성을 지니셨지만, 결코 죄의 유혹에 굴복치 않으셨다. 히브리서 기자에 따르면, 그리스도는 모든 이레서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다고 기록하였다(히 4:15; 참조. 고후 5:21; 요일 2:1; 참조. 사 53:11; 복음서에서 그리스도가 받은 시험이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히 7:26에는, “이러한 대제사장은 우리에게 합당하니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고 죄인에게서 떠나 계시는”자라고, 그리스도를 언급하고 있다.



B. 신학적 반성: 성경은 그리스도께서 참하나님이며, 참 사람이라고 가르친다,. 신약의 기자들 가운데 일부는 그리스도의 인성을 강조하며, 또 일부는 그리스도의 신성을 높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은 그 당시 상황에 의하여 강조되는 부분이 다른 것일 뿐, 인간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에는 모두 동의한다. 후일 헬라어 권내에 있었던 교회들에서는 어떻게 하나님께서 사람이 될 수 있으며, 어떻게 두 품성이 한 사람 안에서 구별 될 수 있는가? 또한 그리스도가 어떻게 시험을 당할 수 있는가 등의 의문이 계속 제기되어 왔다. 그러나 성경 기자들은 이러한 질문들에 대하여 어떤 해답을 제공하려고 하지 않는다.



초대 교회는, 그리스도의 인성이 부인되거나 도세티주의자들, 신성이 부인되는(에비온주의자들) 가르침이 확산되자 이에 대한 자구책으로 성경에서 가르치는 그리스도론에 깊은 관심을 기울였다. 콘스탄티노플 종교 회의에서 채택된 니케아 신경(A.D. 381년)에서 교회는 그리스도에 대하여 다움과 같이 고백하고 있다. “나는 한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 그는 하나님의 독생자이시며, 모든 세상에 있기 전에 하나님에게서 나셨으며 하나님의 하나님이시오, 빛의 빛이시오, 참하나님의 참하나님이시다. 그는 하나님에서 나셨으나 지으심을 받지 않으셨으며, 모든 것을 지으신 아버지와 한 본체를 가지신 분이시다” 그 후 인성과 신성의 관계에 대한 그 “품성”(natures ������헬. ‘퓌시스’ φυσις������) 논쟁의 결과로, 교회는 A.D. 451년 칼케돈 종교 회의(The Council of Chalcedon)에서 그리스도의 품성에 대한 가장 권위있는 교리를 확정하였다. “그분은 한 분이시며, 동일하신 그리스도로 성자  주님 독생자이시다. 그는 혼란없이, 변화없이, 분열없이, 분리없이 두 가지 성격을 지니고 계신다. 그러나 성격들의 구분은 그들의 연합을 통하여 소멸되지 않았으며, 두 성격의 원형들은 보존되어 하나의 품성과 본체를 형성하셨으니, 두 품성으로 분리되고 나누어진 것이 아니라 한 분이며 동일하신, 성자이시자 하나님의 독생자, 진리의 말씀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Ⅱ. 그리스도의 세 직분

하나님의 참아들이시며 사람의 참아들이신 그리스도는, 성령으로 기름 부음받은 “우리의 으뜸가는 선지자요 교사이시며...우리의 유일한 대제사장일 뿐 아니라... 우리의 영원한 왕이시다...” (하이델비르그 신조, ⅻ).



비록 성경은 ‘그리스도의 직분’(이 용어는, A.D. 330년경 가이사랴 유세비우스에 의하여 처음으로 사용되었다) 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는 않지만, 그리스도께서 수행하신 많은 역할들의 개념은 모두 다 성경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신 18:15에 의하면, 하나님께서 한 섲지자를 일으키시겠다(참조. 18절)고 말씀하셨다. 시 110:4에서는 여호와께서 그리스도를 ‘영원한 제사장’으로 부르셨다. 슥 6:12~13에는, 장차 ‘순’이라 이름하는 사람이 ‘영광을 얻고’, ‘그 위(位)에 앉아서 다스릴 것’으로 묘사함으로써 그리스도의 왕의 직분이 계시되고 있다. 이러한 그리스도의 세 가지 직분은 타락전의 아담에게도 주어졌던 것으로, 그리스도께서는 완벽하게 그 직분을 감당하셨다.



A. 선지자: 그리스도께서는 구약 시대의 선지자들처럼,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시며 그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져다 주시기 위한 선지자이셨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단순한 한 사람의 선지자나 전령이 아니었다. 그는 가장 위대하신 선지자이셨다. 그의 말씀은 장차 어떤 선지자들에 의하여 더 보강되거나 덧붙여 질수 없는 완성된 것이요 완전한 것이다. 이는 그분 안에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기 때문이다(골 2:3). 또한 그는 하나님의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요 1:18; 참조. 15:15에는 그리스도와 성부와의 특별한 관계가 언급되고 있다). 그리스도의 메시지는 죄인된 사람들에 대한 구속과 부르시사, 의롭다하시고, 영화롭게 하시는 자들에 대한 죄의 용서를 포함하고 있다(롬 8:30). 이러한 하나님께 대한 참된 지식과 구원에 대한 가르침은 ‘세상의 빛이신’(요 8:12)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는 얻을 수 없다, 그리스도를 거절하는 자들은 영적인 어두움 속에 그대로 남아 있게 될 것이다(요 3:18~20). 또한 영원한 생명의 길도 알 수 없다. 그리스도의 설교는 선자자로서의 능력과 권위가 있어서 듣는 사람들에게 믿음과 그의 말씀에 대한 순종을 불러 일으켰다.



B. 제사장: 시 110:4에는, 여호와께서 그의 기름 부음 받은 자에게 말씀하시길, “너는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영원한 제사장이라”하셨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아론의 계열에 속하는 혈통적인 승계의 결과로서의 대제사장이 아니라, 여호와의 특별하고도 유일한 부르심과 임명하심을 따른 대제사장이라는 의미이다, 구약의 제사장들이 성막이나 성전에서 봉사한 것은 장차 오실 그리스도의 그림자로서 완전하시고 영원사신 대제사장 그리스도를 예표한다. 그는 “참것의 그림자인 손으로 만든 성소에 들어가지 아니하시고 오직 참하늘에 들어가사” 완전한 큰 대제사장으로 일하고 계신다(히 9:24).



그리스도의 대제사장적인 사역에는 세가지의 양상이 있다. 첫 번째는 그의 생명의 희생을 통하여 자기 자신의 의를 확증하는 일과 죄인들을 위한 속죄의 성취가 있다. 그리스도의 대속적인 희생은, 수세기 동안 옛 언약 아래에서 모든 제사 제도를 통하여 예시되었으며 알려졌다, 특히 유월절에 어린 양의 도살을 통하여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아론과 다른 구약의 제사장들의 제사는 상징적이고도 반복적이었던 것에 반하여 그리스도는 단 한번에 모든 시대를 위하여 완전한 제사를 드리셨던 것이다. 그리스도는 “자기를 단번에 제사로 드려 죄를 없게 하시려고 세상 끝에 나타나셨다”(히 9:26). 그는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시다(요 1:29; 참조, 36절). 고전 5:7에, 그리스도는 ‘우리의 유월절 양’으로 그 자신이 희생되셨다고 밝힌다. 그는 인간의 죄를 위하여 자신이 스스로 희생되시므로 그의 백성들을 위한 속죄의 대가를 하나님께 드리셨다.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다(히 9:28). 구약의 대제사장들이 대 속죄일에 희생의 피를 가지고 지성소에 들어간 것처럼 그리스도 역시 자신의 피를 가지고 하늘에 오르사 하늘의 성소에 들어가셨다. 이렇게 하셔서 그리스도는 자신을 믿는 모든 사람들을 그들의 죄책과 저주에서 구원해내셨다,



무엇보다도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백성들의 구원을 위하여 필요한 모든 것을 행하실 수 있는 능력이 있는 분이시다. 그리스도는 그의 “수동적인 순종”(Passive Obedience)을 통하여 그 백성들의 죄를 대신하셨을 뿐 아니라, 그의 “능동적인 순종”(Active Obedience)으로 율법을 완전하게 지키심으로써 순전하고 흠없는 재물을 스스로 이루셔서 하나님께 드렸다. 이로써 그는 아담의 타락으로 부패된 그의 백성들을 회복시키셨으며, 아담이 했어야 하는 모든 것들을 수행하셨다. 그리스도는 그 자신의 의(義)를 그의 백성들에게 돌림으로써, 그들을 위하여 빼앗을 수 없는 영원한 생명을 얻으셨다.(-> 속죄)



그리스도의 제사장적 사역의 두 번째 면은 기도이다. 그는 단순히 인류를 하나님께 접근할 수 있도록 할 뿐 아니라 그들이 담대히 은혜의 보좌로 나갈 수 있도록 해준다(히 4:16; 참조. 10:19). 그리스도께서는 기도의 방법을 가르쳐 주실 뿐 아니라(눅 11:1~4; 마 6: 9~13), 누구든지 진실하게 그의 이름으로 기도하면 그 기도를 하나님 앞에서 보증해 주시며, 그의 공로를 기초로해서 하나님께 탄원하심으로 그들의 기도가 응답되도록 하여 주신다(요 16:23~24).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백성들을 위하여 기도하셨으며, 하나님 앞에서 그들의 유익을 위하여 중재하시고 변호하시는 대언자로서의 일을 하셨다. 그러한 일은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서 사역하실 때에 이미 행하셨으며(눅 22:32; 23:34;요17장), 높이되시사 하나님 우편에 낮아 계시기 위하여 하늘 성소에 들어가신 후에도 계속된다(롬 8:34). 그리스도는 인간의 고통과 슬픔을 완전히 이해하고 계셨으며, 인간들의 필요를 잘 알고 계셨으며 긍휼과 자비의 심정으로 이러한 필요에 접근하셨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유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 같이 시험을 받은 자”이시다(히 4:15). 그의 기도는 인간의 필요에 대한 깊은 인식을 반영한다. 그는 그의 백성들의 불완전한 기도를 정화하여 하나님의 면전에서 거룩한 연기로 분향되도록 인도하신다(계 5:8; 참조. 시 141:2).



그리스도의 제사장적 사역의 세 번째면은 그의 백성들을 위하여 복을 비는 일이다. 구약에서 제사장의 임무 가운데 하나가 그의 백성들에게 안수하며 그들을 축복하는 일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제사장들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축복할 때 그들에게 복을 주실 것을 약속 하셨다(민 6:22~27).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 이 지상에서 사역하시는 동안 이미 그 존재하심이 하나의 축복이었으며, 승천하실 때에도 그의 제자들에게 손을 들어 축복하셨다(눅 24:50~51). 또한 지금도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그의 백성들에게 빌어주신다(엡 1:3). 그의 성령을 통하여 하늘의 은사들을 부어주시며, 결코 그치지 않는 축복의 소나기를 내려 주신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는 그 누구와도 비길수 없는 대제사장이시다. 이는 그리스도께서만 유일하게 속죄의 희생이 되실 수 있으며, 그의 백성들 편에서 또한 율법을 온전히 성취하셨기 때문이시다. 따라서 그리스도만이 하늘의 복들을 가져오시는 중보자이시다. 이제 그의 제사장적인 사역을 믿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들의 죄를 위하여 대속할 수 있는 다른 어떤 제사장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과 함께 하는 중보자를 발견할 수 없기 때문에 하늘의 복들 대신에 오히려 영원한 심판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C. 왕: 그리스도께서는 또한 구약의 왕들처럼 그의 직분을 위하여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으셨다. 그러나 그는 그 이전의 왕들처럼, 강압에 의하여 얻어진 영광과 권세를 누리던 그러한 왕들과는 같지 않다. 그리스도는 영원한 왕으로서, 또한 무한하신 능력과 공의와 진리로서 통치하실 왕으로 기름 부음을 받으셨다. 구약은 수세기 동안 그의 왕적인 영광을 예고하여 왔다(창 49:10; 사 9:6; 미 5:2; 참조. 시 110:1~2; 슥 9:9). 덧붙여서, 그의 장엄한 영광의 나라는 구약의 다윗과 솔로몬 통치를 통하여 절정을 이루었던 이스라엘 신정 정치의 왕권에서 예표되고 있다.

 

이스라엘은 메시야 왕권의 특이한 성격을 거의 이해하지 못하였다. 그와 같은 것은 바로 사무엘이 사역하였던 때에도 잘 나타나고 있다. 그때 이스라엘은 주위의 다른 나라들처럼 자신들을 다스릴 왕을 세워주도록 사무엘에게 요청하였다(삼상 8:5). 이와 같은 사상의 맥락은 예수님 때 유대인들에게도 그대로 나타난다. 그들은 그리스도가 이 지상적인 왕으로서, 로마의 속박으로부터 그들을 구해주는 전쟁 승리자적인 왕이 되어 주길 기대하였다. 그리하여 모든 열방가운데서 이스라엘을 영화롭게 하도록 원하였다(참조. 에루살렘 입성 시에 보였던 백성들의 반응, 마 21:9~11; 사단의 유혹, 마 4:8~10; 참조. 눅 4:5).

 

민족주의적인 왕으로서의 그리스도에 대한 유대인들의 개념과 그들의 정치적인 자유에 대한 기대와는 달리 그리스도의 나라는 영적이었다. 그것은 하나님의 나라로서 다른 어떤 세상의 나라들과는 현저하게 다른 것이었다, 그것은 화려하게 밖으로 드러나지 않고 오히려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의 마음 속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었다(눅 17:20~21). 요한은 그리스도의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주목한다(요 18:36). 바울은, 하나님의 나라가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으로 구성되었다고 교훈한다(롬 14:17; 참조, 고전 1:10, 이는 성령의 역할이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 왕은 자신의 말씀으로 통치하신다고 말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히 4:12). 또한 그리스도의 왕권은 유대 국가 내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의 피로 세워졌다. 그의 교회는 성령에 의하여 인도되며, 영원토록 그리스도에게 소속된다, 그리스도는 왕으로서 그의 교회를 위험에서 보호하신다. 어떤 세력일지라도 교회를 이기도록 허락하시지 않는다, 그것이 비록 지옥(음부)의 세력일지라도 이길 수 없다(마 16:18). 또한 그의 통치는 은혜로우시며 고상하시다. 그는 그러한 통치를 통하여 그의 백성들을 그 권위에 복종케하시며, 그 목소리에 순종케 하신다. 더 나아가서는 비록 그의 통치권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자들일지라도 그리스도의 다스림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이는 하나님께서 아들에게 만물들을 다스리도록 하셨기 때문이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그리스도에게 주셨다(마 28:18). 바울은 승리하신 그리스도께서 악한 천사들의 권세를 벗겨 버리셨다고 기록한다(골 2:15). 사도 요한은,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그리스도를 언급한다(계 1:5).

 

그리스도의 왕권이 이 땅에서는 무시되는 듯이 보이며, 그의 영광은 악한 것들에 의하여 훼방되며 멸시받고 감춰지는 듯하다(시 89:51). 그러나 그의 엄위는 그가 통치하는 '하늘에서'(Heavea)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로서' 계속해서 빛나고 있다(계 19:16). 결국에는 그리스도께서 하늘 구름을 타고 오셔서 믿는자들에게는 존귀를, 믿지 않았던 자에게는 부끄러움을 주실 것이다(마 25:31~46). 그때에는 하늘과 땅 어디에서나 그리스도의 통치가 공의로 나타날 것이다(벧후 3:13; 게 21장). (-> 하나님 나라)

 

신학자들 가운데는, 그리스도의 세 가지 직분이 하나하나 잇달아서 주어졌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에게 있어서, 지상에서 사역하실 때의 그리스도는 선지자이셨으며, 십자가에서 고난 당하실 때에는 제사장이셨으며 그의 부활 후 하늘에 오르신 그리스도는 왕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세 직분에 대한 분리는 신약에서 묘사하는 그리스도와는 거리가 있다. 신약에서 그리스도는 선지자인, 동시에 제사장이시며 왕이셨다. 그리스도께서 한 선지자로서 말씀 하셨을 때 거기에는 왕으로서의 권위가 동반된 가르침이셨다(눅 4:32). 그리스도께서 빌라도에게 자신이 왕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시면서, 그는 한 선지자로서 진리에 대하여 증거하기 위하여 세상에 오셨다고 말씀하셨다(요 18:37). 그리스도께서 기적을 베푸실 때에, 거기에는 그의 왕적인 권능이 나타났으며, 그 기적은 그의 선지자적인 가르침으로 보증이되었고, 제사장적인 긍휼로 말미암아 그 기적이 베풀어지고 있다(마 8:17). (-> 그리스도의 몸)

 

아가페성경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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