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림(Urim)과 둠밈(Thummim)    

“너는 우림과 둠밈을 판결 흉패 안에 넣어 아론으로 여호와 앞에 들어 갈 때에 그 가슴 위에 있게 하라

아론이 여호와 앞에서 이스라엘 자손의 판결을 항상 그 가슴 위에 둘찌니라”(출 28:30)

 국가적으로 중요한 문제가 생겨서 여호와의 대답이 필요할 때 하느님의 뜻을 확인하는 데 사용한 물품들이다.

대제사장이 그 가슴 주머니(출28:15의 '흉패') 속에 넣어 보관하고 있다가 어려운 상황에서 하나님의 뜻을 알아낼 때 쓰던 

 “거룩한 제비”를 말하는데, 대제사장이 하나님의 뜻을 판별하기 위해서 사용한 두 개의 돌이라고 알려져 있다.  

양자택일의 특정한 문제에 대하여서는 긍정 아니면 부정의 답이 나왔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을 어떻게 사용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어서 정확하게 알 수 없다. 


대제사장의 의복 중에는 가슴에 다는 판결 흉패가 있었다.

이 흉패는 정사각형의 모양을 하고 있었는데,  이 정사각형의 모양은 하나님의 공의를 상징하였다. 
 

대제사장의 가슴에 있는 흉패에는 이스라엘의 12 지파를 상징하는 12개의 보석이 달려 있었고  그 보석에는 각각의 지파 이름이 새겨있었다. 
판결의 흉패라고도 불렸던 이 흉패 안에는 ‘우림과 둠밈’이라는 것을 넣어 두었다. 

우림과 둠밈이 어떻게 생겼는지, 보석과 같은 돌로 만들어 진 것인지, 또 그 모양은 어떠한지, 어떻게 제작했는지 등에 대해서는 기록이 전혀 없다. 
 대제사장이 하나님께 하나님의 뜻을 물어 결정을 하거나 판결을 내릴 때에는 대제사장의 판결 흉패 안의 주머니에 보관되어 있었던 '우림'과 '둠밈'을 사용하였다. 

"우림(Urim)"이라는 말은 "빛"을 뜻하는 “우르”의 복수형으로써 “빛들”이고, 
"둠밈(Thummim)"은 "완전"을 의미하는 “톰”의 복수형으로 “온전함”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이는 하나님께서는 모든 숨은 일을 빛으로 드러내시고,

공정하게 재판하신다는 것을 의미하였다. 

그것을 사용하라는 명령에 대해서는 (출 28:30)와 (신 33:8)에 기록되어 있다. 
그 외에도 (레 16:8) (민 27:21) (수 14:2) (삼상 14:41-42)  (스 2:63) (느 7:65) (느 10:34) (느 11:1) (잠 16:33) 등에 기록되어 
있다.  

하나님께 국가적으로 중요한 사안들을 물어볼 때, 대제사장은 ‘예’ 또는 ‘아니오’를 알기 위해 우림과 둠밈으로 제비를 뽑았다. (삼상14:41-45).
또한 법적인 문제로 판결을 결정하기 위해 대제사장은 우림과 둠밈을 사용하였다. (민27:21)

 자신의 마지막 전투의 결과를 알기 위해서 사울왕은 우림을 사용했었다.(삼상28:6) 
하지만 답을 얻지 못하자, 그는 하나님께서 금지하신 무당에게 물어보았다. 

 게마라 (미쉬나, 즉 구전법에 대한 해석으로 탈무드에서 발견된다)는 우림과 둠밈을 어떻게 사용하는지를 자세히 묘사하고 있다. (요마 73:71). 


 탈무드는 또한 소타48에서 제 1차 성전 파괴 이후 우림과 둠밈의 사용이 중단되었다고 언급하고 있다. 
 이 책에서는 우림과 둠밈이 “죽은 자들이 일어나고, 메시아 벤 다비드 [다윗의 자손]가 임재 할 때”까지 다시 사용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탈무드에 따르면, 우림과 둠밈, 언약궤, 영원한 불 그리고 제사장들을 세울 때 바르는 거룩한 기름이 제 2차 성전에는 없었다고 전하고 있다. (호라욧3, 47장). 


 이러한 사실에 대하여 유대 현인 람밤 (마이모니데스)은 대제사장들이 더 이상 거룩한 영을 소유하고 있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이러한 물리적인 선택과 결정의 방법은 이 후에 선지자들의 예언 활동이 활발하게 됨으로써 그 필요성이 점차적으로 줄어들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우림과 둠밈을 통해서 계시를 주셨는지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전승이 있다.  
 전승에 의하면, 우림과 둠밈이 하얀 돌과 까만 돌로 되어 있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대제사장이 하나님께 뜻을 물어 결정을 하거나 판결을 내릴 때에 이 돌로 제비를 뽑아 결정하였다고 한다. 
 또 다른 전승에 의하면, 대제사장이 하나님께 문의할 때에, 이 보석에 새겨진 지파의 이름에서 빛을 내면서 질문에 대한 응답이 
계시되었다고 한다.

● 구약에서의 우림과 둠밈의 적용

28 장 30절에 덧붙여, 구약에는 우림과 둠밈에 대한 많은 언급이 있다. 

레위기 8장 8절은, 『흉패를 붙이고 흉패에 우림과 둠밈을 넣고』라고 말한다.


민수기 27장 21절에 의하면 주님은 여호수아에 관하여 모세에게, 

 『그는 제사장 엘르아살 앞에 설 것이요 엘르아살은 그를 위하여 우림의 판결법으로 여호와 앞에 물을 것이며

그와 온 이스라엘 자손 곧 온 회중은 엘르아살의 말을 좇아 나가며 들어올 것이니라』고 말씀하셨다.


에스라 2장 63절과 느헤미야 7장 65절은 동일한 역사적인 상황에 관하여 우림과 둠밈을 말한다.

에스라 2장 63절은,『방백이 저희에게 명하여 우림과 둠밈을 가진 제사장이 일어나기 전에는 지성물을 먹지 말라 하였느니라』고 말한다.

우림과 둠밈은 또한 신명기 33장 8절부터 10절까지와 사무엘상 23장 6절, 9절부터 12절, 28장 6절에도 언급된다.

 ● 우림과 둠밈에 관하여 우리는 데이빗 베런의 책

「고대의 성경과 현대의 유대인(The Ancient Scirptures and the Modern Jew)」의 부록에 의해 도움을 받았다.
우림과 둠밈은 열 두 보석에 더하여 흉패 안으로 넣어진 두 가지였다.


우림은 빛, 조명기(발광체)를 뜻하고 둠밈은 온전함, 완전함을 뜻한다.

우림과 둠밈을 흉패 안에 둘 때 흉패는 판결 흉패가 되었다.

● 아론

 구약의 역사에 의하면 우림과 둠밈은 많은 사람들에게 놓여졌다.
그 첫째 적용은 아론에게였다(레 8:8).
아론이 우림과 둠밈이 있는 흉패를 몸에 지니기는 했지만 우림과 둠밈을 사용한 적이 있는지는 의심스럽다.
아론이 대제사장이었던 동안 모세가 여전히 살아 있었다.
모세는 특별한 사람이었으며, 성경은 하나님이 아무런 수단과 도구나 중개물이 없이 직접 그에게 말씀하셨음을 말해준다.


출33:11은, "사람이 그 친구와 이야기함같이 여호와께서는 모세와 대면하여 말씀하시며" 라고 말한다.


민12:8은 주님이 모세와는 "대면하여 명백히 말하고 은밀한 말로 아니하셨음"을 말한다.

주님이 모세에게 그렇게 직접적이고도 친근한 방법으로 말씀하셨으므로

그가 살아 있는 동안 주님은 아론에게 그분의 뜻을 우림과 둠밈을 이용하여 알리실 필요가 없었다.  


 아론은 모세보다 앞서 죽었다. 그러므로 아론은 흉패와 우림과 둠밈이 있는 에봇을 입었을지라도 그것들을 이용하지 않았다.

다른 말로, 아론의 제사장 시절에 하나님은 그분의 백성에게 우림과 둠밈을 통하여 말씀하시지 않았다.
그분에게는 그분이 대면하여 말씀하신 사람 모세가 있었기 때문이다.

 ● 여호수아를 위한 엘르아살

우림과 둠밈은 아론의 아들 엘르아살에게 적용되었다.
아론과 모세가 죽은 후,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자손을 인도해야 할 위치에 이르렀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세에게 말씀하신 것처럼 그에게 말씀하시지 않았다.
대신 하나님은 모세를 청하여 하나님의 뜻이나 인도하심을 알고자 한다면 제사장에게 가야 한다고 여호수아에게 말하게 하셨다(민 27:21).
그 당시 대제사장은 엘르아살이었다. 그러므로 여호수아는 우림과 둠밈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에 관한 계시를 받기 위해 엘르아살에게 가야 했다.

 데이빗 베런의 책 부록에 의하면 우림과 둠밈을 통하여, 아이에서의 이스라엘 자손의 패배를 야기시킨 죄를 가진 자가 아간이었음이 드러나게 되었다.
 이것은 여호수아 7장 16절부터 21절에 기록되어 있다. 우림과 둠밈을 통하여 지파, 가족, 개인이 드러났다.

●  이스라엘을 위한 레위 제사장들

 엘르아살 이후, 우림과 둠밈은 이스라엘을 위하여 레위 족속의 대제사장 각각에게 적용되었다(신 33:8-10, 스 2:63, 느 7:65). 
 신33:8절~10절에서 우리는 어떤 사람이 우림과 둠밈을 통하여 계시를 얻을 자격이 있는가를 본다.
이러한 사람은 거룩할 뿐만 아니라 경건하여야 한다.
경건하다는 것은 경건을 나타내는 것, 즉 하나님과 하나임을 나타내는 것이다.
 경건한 사람은 하나님을 위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과 하나이다.


 거룩한 사람은 하나님을 위할 수 있지만 경건한 사람은 또한 하나님과 하나이다.

신33:8절과 9절은, 『레위에 대하여는 일렀으되 주의 우림과 둠밈이 주의 경건한 자에게 있도다 주께서 그를 맛사에서 시험하시고 므리바 물가에서 그와 다투셨도다 그는 그 부모에게 대하여 이르기를 내가 그들을 보지못하였다 하며 그 형제들을 인정치 아니하며 그 자녀를 알지 아니한 것은 주의 말씀을 준행하고 주의 언약을 지킴을 인함이로다』라고 말한다.


 9절은 이러한 경건한 자들과 하나님 사이에 전혀 분리가 없었음을 가리킨다.
 그들의 식구들조차도 그들을 하나님으로부터 분리시키지 못하였다.
이것은 주 예수께서 복음서들에서 말씀하시는 것과 매우 유사하다.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마 10:37). 


 주 예수께서는 또한,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및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고』라고 말씀하셨다.
구약 시대에도 모세는 원칙상 주 예수께서 가르치신 것과 동일한 것을 가르쳤다.
우리의 가족과의 관계도 우리를 주님으로부터 분리되게 할 수 없다.

 신명기 33장 10절은 계속해서,

『주의 법도를 야곱에게, 주의 율법을 이스라엘에게 가르치며 주 앞에 분향하고 온전한 번제를 주의 단위에 드리리로다』라고 말한다.
이 구절에 의하면 우림과 둠밈을 사용할 자격이 있는 사람들은 또한 번제를 드리고 분향하는 사람들이다.


번제와 향은 주님께 달콤한 향기였다. 예표론에서 오직 두 가지만이 하나님께 그러한 즐거운 향기를 주었다.
하나님은 번제로부터 오는 향기를 맡으셨으며, 특별히 성막 안의 향으로부터 오는 향기를 즐거워하셨다.
 번제도 향도 모두 그리스도의 예표들이다. 그러므로, 경건한 자들은 하나님께 번제와 달콤한 향이신 그리스도를 드린다.
분향하는 것은 하나님께 향기로운 향이신 그리스도를 드리는 것이다.
우리가 참으로 하나님과 하나라면 우리는 그분이 그 달콤한 향기를 누리실 수 있도록 번제를 드리고 분향해야 한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이 그분의 백성에게 말씀하시도록 우림과 둠밈을 사용할 수 있는 기능을 가진 사람들인 제사장들의 자격을 볼 수 있다.
제사장들은 경건한 자들이었고, 하나님과 직접적인 관계를 유지하였으며, 하나님께 번제와 향을 드렸다.

이것이 그들로 하여금 우림과 둠밈을 사용할 수 있게 했다.

● 다윗을 위한 아비아달

사무엘상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 중의 상황이 비정상적으로 되었음을 본다.

대부분의 제사장들이 사울 왕에게 죽임을 당하였으며 제사장 아비아달은 다윗에게로 도망하였다.


삼상 23:6절은, 『아히멜렉의 아들 아비아달이 그일라 다윗에게로 도망할 때에 손에 에봇을 가지고 내려왔었더라』고 말한다.
의심할 것 없이 우림과 둠밈이 그 에봇에 부착되어 있었다.


삼상 23: 9절~ 12절은 아비아달이 사울에 관한 다윗의 질문에 대해 주님의 대답들을 계시하기 위해 우림과 둠밈을 사용하였음을 가리킨다.
제사장 아비아달에게 에봇을 가져오도록 말한 후 다윗은,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여 사울이 나의 연고로 이 성을 멸하려고 그일라로 내려오기를 꾀한다 함을 주의 종이 분명히 들었나이다 그일라 사람들이 나를 그의 손에 붙이겠나이까 주의 종의 들은 대로 사울이 내려오겠나이까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원컨대 주의 종에게 일러주옵소서』라고 말했다(10-11절).


 우림과 둠밈을 통하여 주님은 다윗에게 사울이 내려오리라는 것과 그일라 사람들이 다윗을 사울의 손에 넘겨주리라는 것을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다윗은 제사장 아비아달이 사용한 우림과 둠밈을 통하여 두 가지 실질적인 질문에 대한 대답들을 받았다.
 다윗은 우림과 둠밈이라는 하늘에 속한 타자기를 통하여 분명한 대답을 받았다.

● 사울에게는 작동하지 않음

 다윗은 경건한 사람이었으므로 주님은 우림과 둠밈을 통하여 그에게 대답하셨다.
 그러나 사울 왕은 경건하지 않으므로 우림과 둠밈을 통하여 아무런 대답도 받을 수 없었다.
 그러므로 우림과 둠밈은 다윗에게는 작동했지만 사울에게는 작동하지 않았다. 다윗은 경건한 사람이었지만 사울은 경건하지 않았다.
 사실 하나님이 더 이상 그와 상관하려 하지 않으신 때가 왔다. 


삼상 28: 6절은『사울이 여호와께 묻자오되 여호와께서 꿈으로도, 우림으로도, 선지자로도 그에게 대답지 아니하시므로』라고 말한다.

이 구절은 분명히 우림과 둠밈이 사울에게 유용하지 않았음을 가리킨다.

삼상 28: 6절은 하나님이 사건을 계시하시는 세 가지 방법-꿈, 우림, 선지자-을 제시한다.
 이러한 방법들 중에 당신은 어느 것을 더 좋아하는가?
나는 꿈의 방법을 더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오히려 하나님이 꿈을 통하는 대신 직접 나에게 어떤 것을 말씀하시기를 바란다. 

그러나 나는 체험을 통해, 어떤 꿈들은 하나님께 속한다는 것과 그분이 꿈들을 통하여 어떤 문제들을 계시하신다는 것을 알고 있다.
 당신은 하나님이 선지자를 통하여 당신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더 좋아하는가?
선지자들이 일으킨 바 된 것은 제사장들과 왕들이 하나님께 실패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제사장들과 왕들과 더불어 계속하실 길이 없었으므로 선지자들이 그분에 의해 일으킨 바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구약에 먼저 제사장들이 있고, 왕들이 있고, 그 다음에 선지자들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누군가가 구약의 선지자들의 방식으로, 『주께서 가라사대 … 』라고 선포하는 것을 듣고 싶어한다.
 만일 당신이 이런 종류의 말을 즐기고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말씀하시는 것을 더 좋아한다면, 이것은 당신이 주님과 가깝지 않다는 암시일 수 있다.
 당신이 주님과 친근한 사람이라면 우림과 둠밈을 몸에 지닌 제사장일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이 꿈이나 선지자들을 통해서가 아니라 우림과 둠밈을 통해서 말씀하시는 것을 더 좋아해야 한다.
 우리는 꿈꾸는 자들이나 선지자들이 아니다. 우리는 우림과 둠밈을 가진 제사장들이다.

참고) 제비   


어떤 일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하여 던지거나 끌어내는 어떤 물건을 말한다. 
그러나 그 물건들이 어떠한 것이며, 또 어떻게 사용했는가는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고 있다. 
 성경에서 기독교인들에 의하여 마지막으로 사용된 기사는 열두 "사도" 중 가룟 유다의 자리를 채우기 위해서 맛디아를 12 제자의 한 사람으로 선출한 사례가 있다.
 (행 1:23~26) “그러자 사람들은 유스도라고 알려져 있고 바사바라고도 불리는 요셉과 맛디아 두 사람을 추천했다. 
 그 때, 사도들은 "주님, 주님께서는 모든 사람의 마음을 아십니다.  주님께서는 이 두 사람 중 누구를 선택하셨습니까?  
 자기 직분을 떠나 자기가 원래 속했던 곳으로 간 유다를 대신해서 이 사도의 직분을 맡을 사람이 누구인지를 저희에게 보여 주십시오" 라고 기도했다.  
기도를 마친 후, 제비를 뽑아 보니 맛디아가 뽑혔다. 
 이 때부터 맛디아는 다른 열한 사도와 함께 사도가 되었습니다.”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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