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양식의 대명사 흑염소



▲  흑염소 고기가 ‘보약’ 재료에서 건강 식재료로 재탄생하고 있다.

흑염소 고기는 소·돼지고기와 육질이 비슷하지만, 지방이 적고 단백질도 풍부하다.

신선한 흑염소 고기는 구이는 물론 탕, 전골, 육회 등 다양한 방식으로 즐길 수 있다.

김낙중 기자 sanjoong@, 촬영 협조=충북 괴산 하늘목장 염소곰탕



중국 한나라 문헌 명의별록엔  
“혈액 따뜻하게 하고 양기보충  
건강의 영약 신비한 약용동물”  
고혈압·당뇨·심장병 등 예방 

지방함량 1.1% 소의 6분의 1  
pH 6.0∼6.2·100g당 150㎉  
무기물은 일반 육류보다 많아  
건초·사료 먹여 누린내도 없어
 

염소는 오랜 시간 인간과 함께한 가축 중 하나다. 하지만 소, 돼지, 닭처럼 일반적인 식재료로서 인정받기보다는 ‘보양식’의 식재료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래서인지 도시에선 보기조차 쉽지 않다. 하지만 최근엔 흑염소 사육과 전문 음식점들이 늘고, 일반 식재료로서 다양한 조리법들이 소개되며 일반인들도 쉽게 흑염소 고기를 접하게 됐다. 흑염소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음식의 맛을 더할 수 있겠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염소는 ‘산양’ ‘재래산양’ ‘흑염소’ ‘재래흑염소’ ‘토종흑염소’ 등 여러 가지 용어로 지칭되고 있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산양(山羊)은 원래 북부 고산지대의 험준한 산기슭에 사는 야생산양을 의미하는 것으로 가축인 염소와는 품종도 다르다. 염소의 ‘염’(髥·구레나룻수염 염)자는 한자다. ‘턱에 수염이 있는 소’를 통칭해 염소라고 불렀다. 국내에서 사육하고 있는 염소는 대부분 털색이 검은색이다. 근래 체구가 큰 외국산 흑염소가 들어와 국내 흑염소와 교잡돼 외모와 털 색깔로는 재래종과 교잡종을 구분하기가 매우 어려워졌다. 

흑염소의 유래에 대한 옛 자료는 다양하다.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농서(農書)인 ‘제민요술(齊民要術)’에서는 양의 종류를 백양과 고양으로 나눴는데, 여기서 ‘고양’은 검은 암양, 흑염소를 의미했다고 한다. 중국 명나라 때의 ‘본초강목(本草綱目)’에서도 흑염소를 지칭하는 말이 나온다. 한반도에 이 염소가 들어온 것은 약 2000년 전인 삼한 말쯤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문헌에 의한 확증은 지금으로부터 500여 년 이전으로 보고 있다.  

일각에선 염소가 몽골 등 북방 쪽에서 들어와 한반도에 퍼진 것이라고 추측하기도 하지만, 1910년대 한국의 염소가 호남지방을 비롯한 한반도 남부에 편중돼 있었다는 사실에 기인해 중국 동해 연안에서 우리나라 서해 남쪽으로 유입됐을 것이란 추측도 있다. 기록으로 볼 때, 염소는 신라시대를 거쳐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제사용으로 이용하거나 중국사신 접대 및 곡물 상납 시에 함께 이용했다는 내용이 있다. 우리 민족과 매우 오랜 역사를 함께한 가축임은 분명해 보인다.

일반인에게 흑염소(국내에서 가장 일반적)는 보양 음식으로 각인돼 있다. 과거 고문헌에도 그렇게 쓰여 있다. 중국 한나라 때 문헌인 명의별록(名醫別錄)에는 흑염소가 “온양성 식품으로 혈액을 따뜻하게 하고 양기를 보충하며, 건강의 영약으로 신비한 약용동물”이라고 소개돼 있다. 또 “임산부와 노약자에게 좋고, 위장의 원활한 작용과 원기회복에 효과가 있다”(본초강목)는 기록이 있으며 이밖에도 “보혈작용과 혈액순환 개선으로 동맥경화·당뇨병·고혈압·심장병 등 성인병을 예방하고, 신경통·골다공증 예방에 효과가 있다”는 내용이 여러 문헌에 남아있다.  

흑염소에 대해 최초로 기록한 한방문헌인 ‘신농본초경(神農本草經)’에서는 “염소뿔은 뼈마디 속의 결기풍두통·산후통을 다스리고, 골수는 술에 타서 먹으면 양기부족에 좋고, 쓸개는 청맹을 다스리고 눈을 밝게 하고 놀라는 것을 그치게 하며, 오래 먹으면 심장을 안정시키고, 기를 증가시킨다”고 했다. 

현대 과학으로 흑염소의 영양학적 우수성을 좀 더 따져보자면,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육류는 산성식품으로 pH가 5.4∼5.6이지만, 흑염소 고기는 pH가 6.0∼6.2로 약산성 식품에 속한다. 고기의 지방함량은 1.1% 내외로 소고기 등 일반육류와 비교, 4분의 1~6분의 1 정도로 적은 편이다. 또 칼로리는 신선육 100g당 150㎉ 내외로 일반육류보다 낮다. 이러한 특성을 고려해 보면 흑염소 고기는 소고기나 돼지고기와 비교해 지방 함량이 낮은 육질 특성을 갖고 있다고 판단할 수 있다. 김상우 전북대 국제농업개발협력센터 연구교수는 “흑염소의 가장 큰 특징은 지방함유가 매우 낮은 것”이라며 “단백질 중심의 식단과 다이어트식을 선호하는 현대인들에게 매우 적합한 식재료”라고 평가했다. 

흑염소 고기의 지방산 조성비율은 포화지방산 42.5%, 불포화지방산 57.5%로 몸에 좋은 불포화지방산의 조성비율이 높은 편이다. 불포화지방산은 인체 내에서 콜레스테롤 함량을 저하시킨다. 흑염소 고기의 영양학적 가치가 높은 것도 그 때문이다. 또 불포화지방산의 일종인 리놀레산은 혈청 콜레스테롤을 저하시키는 작용에 관여하는데, 일반고기보다 흑염소 고기에 높게 함유돼 있다. 

이 밖에도 흑염소 고기에는 칼륨을 제외한 거의 모든 무기물 성분이 소·돼지고기보다 높게 들어 있다. 흑염소가 보혈작용과 산후회복, 골다공증 등 여성에게 효과가 있다는 옛 문헌의 내용이 허구가 아니란 의미다. 이러한 흑염소 고기의 육질 특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보면 육류로서의 기능도 있지만 건강을 위한 기능성 식품으로서의 잠재적 가치도 매우 높다. 

현재 흑염소 사육 농가는 전국에 고루 퍼져 있다. 과거엔 ‘건강원’이란 간판을 단 제조처에서 다른 보양재료와 함께 달여 진액 형태로 주로 섭취했지만 이젠 식재료로 더 각광을 받고 있다. 육질이 소고기와 거의 유사하지만 좀 더 질기다. 하지만 지방 맛에 의존한 소고기와 달리 쫄깃한 식감이 뛰어나고 영양학적 측면에서도 흑염소 고기가 더 우위에 있다. 최근 한식진흥원이 한식 전문가 신효섭 셰프를 초청해 선보인 다양한 흑염소 고기 요리에 대해 참가자들의 호평이 이어지기도 했다.

김운혁 한국흑염소협회장은 “흑염소를 소비하는 방식이 많이 달라졌고, 식당에서도 즐길 수 있지만 가정에서도 소·돼지고기처럼 다양한 요리를 할 수 있다”며 “일반 소비자들도 흑염소 농장 등에 인터넷을 통해 신선한 고기를 직접 주문해 구입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런 추세로 인해 전문 음식점들도 많다. 흑염소 전문가들에 따르면 지금 사육되는 흑염소의 90%는 고기를 소비하기 위해서다. 과거부터 내려온 지역 특성과 소비 형태를 감안할 때, 대체로 호남지역에서는 흑염소 고기를 탕·전골 등 국물이 있는 요리의 주재료로 자주 사용했다. 반면 영남지역에서는 구이용으로 소비를 많이 하는 편이다. 이 때문에 지방질을 포함하고 있는 덩치가 큰(60~70㎏ 정도) 흑염소들이 식재료로 자주 쓰인다. 일부 지역에서는 ‘개장국’에 들어가는 개고기의 대용으로 많이 사용하기도 한다. 기름기가 없고 고단백이어서 편견만 없앤다면 소·돼지고기를 넘어설 수도 있다는 게 식품 전문가들의 전반적인 평가다. 


흑염소 고기에 대한 가장 큰 ‘오해’는 ‘잡내가 심하다’는 것이다. 흑염소가 잡식성이다 보니 과거 잔반 등을 먹이는 경우가 많았지만 요즘은 건초, 사료 등으로 사육하기 때문에 고기에서 누린내가 거의 나지 않는다. 사육 단계에서 거세를 한 고기들이 사용되기 때문에 냄새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신효섭 셰프는 “과거에는 모르겠지만 지금 시중에서 식재료로 유통되고 사용되는 흑염소 고기에는 잡내가 거의 없다”며 “육회로도 먹을 수 있으며, 소고기와 거의 유사하다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박정민 기자 bohe00@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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