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역사



우리말로 '거룩한 책'이란 뜻의 '성서'(聖書), 또는 '거룩한 경전'이란 뜻의 '성경'(聖經)은 그리스어 '비블리온'(Biblion)을 번역한 것이다.

원래 히브리인들이나 그리스인들은 그냥 '책'을 뜻하는 '비블리아'(Biblia: 비블리온의 복수형), 혹은 '거룩한'이란 뜻의 형용사 '싸크라'(sacra)를 덧붙여 '비블리아 싸크라'(Biblia Sacra)라고 불렀다. 그러던 것이 12세기에 이르러 성경을 가리키는 고유 명사가 되었던 것이다.

한편 'Testament'라는 영어 표현은 라틴어 'Testamentum'에서 유래한 것으로 '계약', '언약'이란 뜻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모세의 중재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과 체결하신 옛 언약을 'Old Testament' 즉 구약이라 부르고,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완성하신 언약을 'New Testament' 즉 신약이라 부른다.

 
 

성경은 크게 구약과 신약으로 나눈다. 그런데 신약은 별 문제가 없지만 구약은 범위를 정하는데 있어서 유대교(물론 유대교에서는 구약 성경만을 정경으로 인정한다)와 개신교 및 가톨릭교 사이에 다소 차이가 있다.

먼저 구약 성경이 정경(正經)과 외경(外經)으로 나누어지게 된 역사를 살펴보자.

기원전 3세기부터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 지방에는 70인경, 혹은 70인역이라고 불리는 구약성경의 그리스어 번역본이 존재하고 있었다. 70인역이라는 이름이 붙게 된 것은 70명의 유대인 학자들이 히브리어로 씌어진 구약성경을 그리스어로 번역했기 때문이다. 70인역 구약성경은 기원전 587년 예루살렘이 바벨론에 의해 패망한 이후 이스라엘 본토를 떠나 그리스 문화권에 흩어져 살던 유대인들(이들을 '디아스포라'라고 부른다)을 위해 쓰여진 성경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70인역 성경에는 히브리어 원문 성경에는 없는 본문 뿐만 아니라 토비트서, 유딧서, 지혜서, 집회서, 바룩서, 마카베오 상·하 등 그리스어로 쓰여진 일곱 권의 책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었다.
그러던 중 기원후 70년 예루살렘 성전이 로마군에 의해 파괴된 후 '얌니아'라는 지방에 있던 예쉬바(Yeshiva)라고 불리는 유대인 랍비들의 아카데미에서 구약 성경의 정경을 결정하는 문제가 논의되었다. 요한난 벤 자카이라는 랍비가 주도한 이 아카데미는 어떤 책들을 '거룩한 책'에 포함시킬 것인가로 의논한 끝에 히브리어로 씌어진 39권의 책만을 구약성경의 정경으로 공식 선포하였고, 이후 유대인들은 그것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한편 16세기의 종교 개혁 이후 개신교는 유대교처럼 히브리어로 쓰여진 39권만을 정경으로 인정하고 나머지 7권은 외경(Apocrypha: 뜻이 명확하지 않거나 출처가 명확하지 않은 책)으로 따로 분류하였다. 반면 가톨릭교에서는 이 7권의 책도 정경에 포함시켜 '제2경전'이라 부르게 되었다.



성경 각 권의 원본은 모두 분실되었거나 파손되어 사라졌고, 다만 사본만 남아 있을 뿐이다. 현재 보존되고 있는 사본들은 원본 또는 다른사본을 베낀 것들이다. 사본은 기원전 11세기 경부터 사용된 파피루스에 가장 많이 기록되었으며, 그 밖에 양피지나 송아지 가죽, 점토, 나무 껍질 등도 재료로 이용되었다.


[1] 구약의 사본

구약 성경의 사본은 그동안 기원후 9세기의 것이 가장 오래된 것이었으나 사해사본이 발견됨으로써 그 연대가 기원전까지 거슬러 올라가게 되었다.


(1) 사해 사본

1947년 사해 북방에 있는 동굴 속에서 구약 성경의 사본들이 적힌 가죽 두루마리들이 발견되었다. 이 동굴은 기원전 2세기말부터 기원후 2세기초까지 유대교의 한 종파인 에세네파에 속한 쿰란 공동체 사람들이 사용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발굴 작업을 통해 에스더서를 제외한 모든 구약 성경의 단편들과 함께 외경과 당시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종파의 문헌들이 발견되었다. 그 후 1951,2년에 다른 동굴에서도 다른 사본들이 발견되었는데, 모두 11개의 동굴들에서 발견된 문서들은 고문서학적 분석 및 탄소 연대 측정법을 통해 기원전 2세기 경의 것으로 추정되었다. 그보다 앞선 것들로는 기원전 3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레위기와 사무엘서의 단편들도 있고, 늦게는 기원후 2세기경의 사본들도 발굴되었다.


(2) 맛소라 사본

고대 유대인들은 모음 없이 자음만으로 글을 썼으며, 구약성경의 내용을 거의 암기하여 그것을 구전으로 후대에 전해 주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히브리어는 점차 잊혀지게 되었고 대신 아람어가 통용어가 되었다. 유대인들은 회당에서 율법과 예언서를 낭독했는데, 히브리어가 점차 사어(死語)가 되어가자, 히브리어로 된 율법서와 예언서를 어떻게 읽어야 할지 중대한 문제에 봉착하게 되었다. 그래서 기원전 7세기부터 자음만 있던 히브리어에 모음을 달기 시작했는데, 그 작업을 주도한 유대인 학자들을 '맛소라'라 불렀고 그들에 의해서 모음이 붙은 히브리어 구약성경을 '맛소라 사본'이라 부른다.


(3) 사마리아 오경

사마리아인들은 구약성경의 모세 오경만을 그들의 유일한 경전으로 여기는데 이를 사마리아 오경이라고 한다. 1616년 이탈리아의 한 여행가가 다마스커스에서 처음 발견하였는데 단편들까지 합쳐서 150여 개의 두루마리들이 오늘날까지 보존되어 있으며, 가장 최초의 것은 기원후 9세기경에 기록된 것이고 대부분은 14-15세기의 것들이다. 특히 이중에서도 오늘날 가장 권위 있는 것으로 꼽히는 사마리아 오경은 세겜의 그리심산 기슭에 위치한 사마리아 회당에 보관되어 있는 것으로, 아론의 증손자 이름이 붙여져 아비샤 두루마리라고 불린다. 아비샤 두루마리는 적어도 9명의 필사자들에 의해 편집된 것으로 여겨지며, 이 가운데 1149년에 기록된 것이 가장 최초의 것으로 밝혀졌다.


[2] 신약의 사본

전체이건 부분이건 신약 성경이 기록된 그리스어 사본은 대략 5,000여 개에 이르고 그 밖에도 초기 번역본에 대한 사본들이 약 1만개 이상, 교부들의 인용문도 수천개가 발견되었다. 기원후 9세기까지는 모든 사본 그리스어 대문자로만 기록되었고, 소문자는 그 이후에 사용되었다. 대문자 사본으로 공식 목록에 올라 있는 것들은 214개에 달한다. 그 중 대표적으로 다음과 같은 사본들이 유명하다.


(1) 시내 사본
1884년 시내산의 성 캐더린 수도원에서 독일 신학자 티쉔도르프가 발견한 사본으로 4세기경의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대영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2) 알렉산드리아 사본
1627년 당시 알렉산드리아의 대주교였던 루카리스가 영국왕 찰스 1세에게 증정한 사본으로 5세기 초의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대영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3) 바티칸 사본
4세기 초의 사본으로 1457년 바티칸 도서관에 등록되어 계속 보관 중이다.

이 밖의 중요한 대문자 사본들로는 에프라임 사본(5세기초), 베자 사본(5, 6세기) 등이 있다. 한편 소문자 사본들은 9세기에서 17-8세기에 기록된 것들이다. 모두 2,500여 개가 넘는 사본이 남아 있지만 역시 대부분 단편들이다.

 


[1] 고대 역본

(1) 아람어 탈굼역

바벨론 포로기 이후 회당에서는 성경을 낭독한 다음 당시 히브리어보다 아람어를 더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유대인들을 위해 아람어로 해설해 주었다. 이같은 구두 해석이 전승을 거듭하다가 기원전 2세기에는 문서화되기에 이르렀는데, 이것이 탈굼이라고 하는 아람어 역본이다. 오늘날 전해지는 탈굼은 모세 오경, 예언서, 성문서집 등이다. 하지만 아람어 역시 나중에는 대중들이 이해하지 못하게 되면서 히브리어와 같은 운명을 겪는다.

(2) 그리스어 역본

기원전 3세기 초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서 70명의 유대인 학자들이 히브리어 구약 성경을 그리스어로 번역했는데, 이를 70인역(Septuagint)이라 부른다. 예수 그리스도 시대에 팔레스타인과 지중해 지역의 유대인들과 이방인 개종자들은 이 70인역만을 사용하였다.

(3) 라틴어 역본

기원후 2세기 말엽부터 유럽 각지에서 라틴어로 성경이 번역되었는데 이들을 고대 라틴어역이라고 한다. 그러나 고대 라틴어역들은 무절제한 수정과 내용의 와전으로 많은 혼란을 가져왔다. 그리하여 382년 교황 다마수스 1세는 당시의 가장 유능한 성경학자인 유세비우스 히에로니무스(오늘날 제롬으로 알려져 있음)에게 라틴어 성경의 번역을 요청하였다. 제롬은 383년 복음서를 시작으로 하여 405년에 신구약 번역을 끝마쳤다. '불가타'(The Vulgata: 공통적인)라고 불리는 제롬의 라틴어 역본은 이후 중세 1,000년 동안 서구세계에서 공인성서로 그 권위를 인정받았다.

(4) 그 밖의 역본

초대 교회는 전도자들의 선교활동을 돕고 개종자들에게 그들의 모국어로 된 성경을 제공하기 위해 그리스어 성경을 다른 언어로 번역할 필요가 있었다. 그리하여 신약성경이 근동지방과 남부 유럽 여러 민족들의 언어로 번역되었는데 현재 고대 이집트어인 콥트어를 비롯하여, 고트어, 아르메니아어, 시리아어, 그루지아어, 이디오피아어, 아랍어역 사본 등이 전해지고 있다.


[2] 현대 역본

(1) 현대 성경 번역의 현황

1999년 말까지 전세계적으로 성경이 번역된 언어는 모두 2,333개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세계성서공회연합회의 통계에 따르면 현재 전세계에서 통용되는 6,500여 개 언어 가운데 371개 언어로 신-구약을 합친 성경전서가 번역됐으며, 신약은 960개 언어로 번역됐고, 단편만 번역된 언어 숫자는 902개에 이른다. 이는 98년 말 2,212개에 비해 21개가 늘어난 것이다. 성경은 단편이 먼저 번역된 다음 신약과 구약의 순서를 거치는 것이 일반적이다.


(2) 영어 성경

가. 위클리프 성경

최초의 영어 성경전서는 위클리프(Wycliffe)의 번역이었다. 위클리프는 1383년 평신도의 손에 성경을 쥐어 주겠다는 목적으로 번역한 뒤 '청빈한 사제단'을 조직, 평신도들에게 성경을 나누어주며 가르치게 했다. 후에 이단으로 몰려 화형당한 위클리프는 종교개혁의 샛별이라고 불렸다.


나. 틴데일 성경

영어 성경 번역의 큰 흐름은 틴데일(Tyndale)로부터 시작되었다. "성경을 모국어 로 평신도의 눈앞에 제시하지 않고는 그들을 진리 앞에 굳게 서게 할 수 없음"을 깨달은 틴데일은 1525년 박해를 피해 영국을 떠나 독일에서 신약을 인쇄하여 영국으로 보냈다. 루터의 독일어 성경과 라틴어 역본(불가타)의 도움을 받아 그리스어로부터 직접 번역하 였다. 틴데일역은 근대 번역이 출현하기까지 문체나 내용 면에서 표본이 되었고 영어를 훌륭한 문장언어로 만드는데 크게 기여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틴데일 역시 화형을 당 했다.


다. 흠정역

흠정역(King James Version: KJV)은 1604년 영국왕 제임스 1세가 "전 영국 교회가 하 나님 예배시에 사용할 수 있도록" 성경번역을 명령하여 성공회와 청교도 성직자 및 평신 도로 구성된 54명에 의해 1611년 완성되었다. 종교개혁의 일환으로서 10세기 이후 발간 된 각종 영역성경에 입각, 왕과 교회의 권위로써 통일시킨 표준역으로, 내용 면에서도 독 일어의 루터역 성경과 쌍벽을 이루는 명역(名譯)으로 알려져 있다. 장중한 문체, 간결하 고도 힘 있는 표현, 유려하고 격조 높은 리듬, 명확하고 구체적인 이미지 등의 특징으로 인하여‘영어 산문의 가장 숭고한 금자탑’으로 평가되고 있다. 처음 출판된 이래 수세 기를 경과한 오늘날까지 영국 국민뿐만 아니라 영어를 모국어로 하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두터운 사랑을 받아왔다.


라. 그 밖의 영어 성경

흠정역 이후 17-19세기 동안 새로운 사본의 발견에 자극받아 수많은 번역이 이어졌다. 어져 나왔다. 1870년 영국에서 신교가 초교파적 개역 작업에 착수하여 1881년 신약이 출 판되었는데 영,미 양국에서 첫 해에 300만부나 팔렸고 4년 후 구약이 마저 발간되었 다(English Revised Version). 1901년에는 미국에서 이를 일부 수정한 American Standard Version이 출판되었다. 그 후로도 Revised Standard Version, The New English Bible, The New American Bible, The Today`s English Version, Good News Bible, The New International Version(NIV), The Living Bible 등이 발간되었고, 가장 최근에는 New Living Translation(NLT)이 번역, 출판되었다.


(3) 한글 성경

가. 최초의 한글 성경과 구역(舊譯) 성경

1790년에서 1800년 사이에 천주교 신자인 최창현이 4복음서의 성경 구절을 발췌하고 해 석을 붙인 한문본 '성경광익'(聖經廣益)과 '성경직해'(聖經直解)를 재편집하여 한글로 옮겼 다고 전해지는데 이것이 필사본 '성경직 광익'으로 최초의 우리말 번역이라 할 수 있다.

한편 최초로 낱권 성경 전체가 번역된 것은 1882년 만주에서 스코틀랜드 장로교 선교사 로스(Ross), 맥킨타이어(McIntyre)와 한국인 서상륜 등이 공동으로 번역한 '예수셩교 누가복음'이었다.

1883년 11월에는 일본에서 이수정이 4복음서와 사도행전을 한문 성경에 토를 달아 '懸吐韓漢新約全書'를 출판하고, 다시 한글 성경번역 작업에 착수 1885년 한 문 옆에 한글을 병기하는 형태의 '신약마가젼 복음셔언'를 출간했다. 미국인 선교사 언 더우드와 아펜젤러가 가져온 성경이 바로 이것이었다.

1887년에는 신약 전체를 번역한 '예슈셩교젼셔'가 출간되는데 이것이 최초의 한글 신약전 서인 셈이다. 이후 신약 전서는 개정을 거듭한 끝에 1906년 최초의 공인 역본이 발간된 다. 이어 1906년 '창세긔'와 '시편'의 발행을 시작으로 1911년 3월 '구약젼셔'의 번역을 마 쳐 한글 최초의 '셩경젼셔'를 발행한다. 이 성경을 개역(改譯)과 구별하기 위해 구역(舊 譯)이라고 부른다.


나. 개역(改譯) 성경

구역의 출판 이후 곧바로 영국 성서공회를 중심으로 개역 위원회를 구성하여 1911년 개 정작업이 없었던 구약부터 개역 작업을 시작했다.
1912년∼1937년에 번역을 중심으로 한 중요 작업이 이루어진 끝에 1937년 '개역성경'이 간행되고, 이후에는 번역보다는 편집 체 제와 철자상의 변화가 주를 이루어 1950년 한글맞춤법통일안에 의해 1952년 개정 출판하 고 다시 1956년 최종적으로 개역과 편집 체제의 수정을 마쳐 오늘날의 '개역성경'이 완성 되었다.

60년대에 들어와 원문에 충실하고 젊은이들을 위한 현대어역이 요청되어 60년 9 월 대한성서공회는 신약번역위원회를 조직하여 67년 12월 '신약전서 새번역'을 발행한다. 새번역을 끝낸 성서공회가 구약의 번역을 준비하는 중에 신구교가 함께 성경에 익숙하지 않은, 특히 30세 이하 청년들을 위해 전도용으로 사용할 성경을 번역하기로 결의한다. 이 에 68년 구약공동번역위원회를, 다음해 신약번역위원회를 구성하여 번역에 착수하고 71 년 신약, 77년 외경을 포함한 '공동번역 성서'를 발행한다. 이 성경은 우리 나라 성경학자 들만으로 원전에서 직접 번역을 시도하였다는 점에서 의의를 가진다.

1983년 대한성서공회는 개역의 뒤를 이어 사용하기 위해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쉬운 현대어로 성경을 번 역하기로 결의하고 1993년 '표준 새번역 성경'을 출판한다.

 
유대인들은 회당에서 읽혀지는 히브리어 구약성경을 주간별로 구분해서 일 년 또는 삼 년 동안 다 읽을 수 있도록 했다. 그렇다고 구약성경의 장과 절을 구체적으로 구분했던 것은 아니었다. 처음으로 성경 속에 장(章)을 표시하기 시작한 사람은 11세기 랑 프랑(Lan franc)이었으며, 이어 훗날 켄터베리의 대주교가 된 랑통(Langton)이라는 소르본대학 교수가 랑 프랑이 구분한 것을 받아들여 완성시켰다. 16세기 초에는 유대인들도 이를 받아들여 그들의 구약 성경에 사용하였다.

한편 절을 구분한 것은 15세기 말경 도미니꼬 수도회 수사였던 이탈리아 사람 빠니뇨(Sante Pagnino)가 구약 성경의 여백에 절을 표시한 것이 처음으로 전해지며, 1551년 로베르 에티엔느 1세(Robert Estienne)라는 사람이 성경 전체를 절로 구분했다. 에티엔느 역시 절은 성경의 여백에 표시했으며, 지금처럼 성경 내용 속에 직접 절 표시를 한 사람은 1565년 테오도르 드 배재(Theodore de Beze)로 알려져 있다.
 

[1] 구약

(1) 모세 오경(5권) :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2) 역사서(12권) : 여호수아, 사사기, 룻기, 사무엘 상·, 열왕기 상·하, 역대 상·, 에스라, 느헤미야, 에스더

(3) 시서(5권)
: 욥기, 시편, 잠언, 전도서, 아가

(4) 예언서(선지서. 17권) : 이사야, 예레미야, 예레미야 애가, 에스겔, 다니엘, 호세아, 요엘, 아모스, 오바댜, 요나, 미가, 나훔, 하박국, 스바냐, 학개, 스가랴, 말라기

* 제2경전(개신교에서는 외경. 7권) : 토비트서, 유딧서, 지혜서, 집회서, 바룩서, 마카베오 상·하(이외에 에스더 부록과 다니엘서의 일부도 제2경전에 속한다)

[2] 신약

(1) 복음서(4권) :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

(2) 사도행전

(3) 서신서(21권) : 로마서, 고린도 전·후서, 갈라디아서,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데살로니가 전·후서, 디모데 전·후서, 디도서, 빌레몬서, 히브리서, 야고보서, 베드로 전·후서, 요한일서, 요한이서, 요한삼서, 유다서

(4) 요한계시록



정경의 형성과정


Ⅰ. 정경의 정의


성경은 어느 한 저자가 장문의 단일한 책을 쓰는 식으로 기록된 것이 아니다. 성경은 문학장르를 달리하는 66권의 책으로 된 일종의 전집물이다.


더욱이 각기 개성, 교육정도, 시대, 공간적 배경을 달리하는 약 40명의 저자들이 성경이라는 전집물을 만들려는 의사가 전혀 없이 각각 기록한 것이다.


그러나 이는 표면적인 현상일 뿐이고 기실은 하나님이 그 배후에서 성경 모든 내용의 주체가 되시고 성경기록 과정에서도 영감으로 간섭하셨다.


따라서 성경 66권의 직접적인 저자는 모두 다 하나님 한 분이신 것이다. 그리하여 성경은 형식적으로는 66권이지만 내용적으로는 1권의 책인 셈이다.


그러면 자연히 다음과 같은 문제가 제기된다.


왜 그 많고 많은 문서 중에서 굳이 66권만 성경인가 하는 의문이 그것이다. 보다 세부적으로 물으면, 66권 각 권은 어떤 기준에 의해서 성경임이 증명될 수 있는가?


그 기준 자체는 정당한가? 하는 의문이 가능하다. 이상의 문제와 관련된 연구가 정경론이다.


정경(Canon)에 해당하는 원어는 카논(χανων)이다.


카논은 원래 갈대, 긴 나무가지라는 뜻이다. 정확한 자(尺), 즉 길이를 재는 도구가 없었던 고대에는 이런 것들을 자의 대용품으로 삼았었다.


그리하여 카논은 결국 어떤 것을 재는 기준, 척도라는 뜻을 가지게 되었다.

따라서 기독교는 성경이 성도의 인식과 행위의 척도가 된다는 측면에서 그 영감성과 계시성이 인정된 성경을 정경 곧 카논이라고 부른다.


또 66권만을 정경이라고 부를 수 있는 근거—정경의 기준을 연구하고 정경의 기록및 수립—즉 정경의 형성과 전승 과정을 밝혀 정경으로서 성경의 절대적 권위를 확립하고자 하는 연구를 정경론이라 부르는 것이다.


Ⅱ. 정경의 기준


유독 66권의 성경만이 정경으로 인정되는 근거 또는 기준은 무엇인가?


이 물음에 대하여 답을 하는 방식은 객관적으로 확실성을 줄 수 있는 속성들이 성경 66권에 내재하여 있음을 확인하는 길이 최선일 것이다.


또 실제로 성경 66권은 모두 다 다음과 같은 기준에 의하여 그 정경성이 인정된 책들이다.


그러면 성경에만 고유한 것으로서 정경 인정의 기준으로 사용된 기본 속성들을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다.

① 영감성 : 본문 전체가 하나님의 계시로서 일점 일획도 틀림없이 영감으로 기록된 사실, 즉 그 내용의 신적 기원이 인정될 수 있어야 한다.
② 목적성 : 말씀의 내용 자체와 그 기록이 인간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는데 기본 목적이 있어야 한다.
③ 신뢰성 : 하나님의 영감을 받고 쓴 인간 저자의 신실성이 입증되어야 한다. 저자의 하나님에 대한 진실성과 성경의 기록자로서 하나님께서 흔연히 인정하셨는가의 의문에 관한 문제이다. 구약의 경우 하나님의 소명과 기름 부음, 신약의 경우 사도성이 바로 이에 속한다.
④ 보편성 : 본문의 내적 속성에 근거하여 구체적으로 어느 한 책이 정경성을 갖고 있다는 교회의 보편적 확증이 요구된다.
⑤ 보존성 : 성경 원본의 권위에 근거하여 그 본문이 신적 간섭에 의하여 훼손됨 없이 전달되어졌는가 하는 보존과정의 완전성이 요구된다.

한편 우리는 성경 66권 자체는 교회가 그것을 확증 공포하기 이전에도 정경이었음을 명심해야 한다.


왜냐하면 교회의 인증이란 결국 성경의 내적 속성에 대한 외적 인정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성경 66권이 완전히 수집 공인되기까지에는 일부 책들에 대하여 논란이 있었으나 이는 인간 교회가 임의로 정경이냐 아니냐를 정하는 과정이 아니었고, 오히려 분명한 내적 속성을 공고히 확증하기 위한 작업 과정에 불과하였다. 즉 성경은 교회가 이를 정경으로 인정해서 정경인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이미 하나님의 섭리에 의하여 기록되었고 또 하나님께서 이 사실을 인간이 발견, 순복하도록 섭리하셔서 정경으로 있게 되었던 것이다.


Ⅲ. 정경의 형성, 기록과 수집의 전과정


물론 정경 곧 성경 66권은 첫 책이 기록됨으로 시작하여 마지막 책이 기록됨으로써 종결되었다. 그러나 정경의 형성이란 기록의 종결 이상을 뜻하는 것이다.


① 성령의 영감으로 하나님의 계시를 기록한 인간 저자의 집필.
② 그 기록에 대한 정경 확립 이전 시대 성도들의 평가.
③ 공의회를 통한 교회의 공식적 인정과 선포.


이상의 전과정, 즉 기록과 수집 및 공인의 전과정을 정경의 형성이라고 표현하는 것이다.


실제에 있어서 성경 각 권이 기록 완료된 시기와 정경으로 공인된 시점 사이에는 상당한 시간적 격차가 있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한편 교회사를 돌이켜 볼 때 우리는 정경이 수집되게 된 직접적인 동기가 숱한 외경과 위경의 등장, 심지어는 기독교 사상과 이단 사설을 교묘히 접합시킨 이단 서적의 등장으로 인하여 변증적 차원에서 참 하나님의 말씀의 범위를 구분할 필요성이 발생하였기 때문이라는 사실도 참고할 필요가 있다.

1. 구약 정경의 형성


일단 공식적으로 현재의 구약 39권만 정경으로 밝힌 최초의 경우는 A.D. 90년경의 얌니아 랍비 회의이다.


그러나 이미 그 이전에 예수님께서 구약 전체를 지칭하면서 ‘아벨에서부터 사가랴까지’라는 말씀(눅11:51)을 주신 것은 A.D.90년 이전에도 이미 구약 정경의 범위에 대한 확증이 있었다는 결정적 암시가 된다.


왜냐하면 아벨의 기사는 창세기에 있고, 사가랴의 기사는 역대하에 있는데 히브리 구양 분류 방식상 창세기는 그 첫권이고 역대하는 마지막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눅11:51의 표현은 결국 구약 전체의 범위가 이미 확증되어 있었음을 암시하는 증거로 채택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정통주의 신학자들은 성경의 기록과 이스라엘 역사의 정황을 면밀히 검토한 후에 구약 정경의 형성 시기를 포로 이후 시대인 B.C.440년경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시기는 포로 귀환시대로서 느헤미야의 행정, 외교적 영도와 에스라의 종교적 지도 아래 언약 백성으로서의 이스라엘의 지위가 회복되던 시기이다.


이런 시대적 상황하에서 학사 에스라와 당시의 장로 회의에 의하여 구약 정경의 범위가 확정되었을 가능성이 가장 높다.


사실 에스라 이후 시대, 즉 소위 중간사 시대에는 상당히 풍부한 역사적 기록이 남아 있음에도 이스라엘 민족의 종교적 특성상 민족적 대사건이 분명한 정경 확립에 대한 기사가 전혀 없고, 이미 정경의 범위가 확정된 상태임을 암시하는 기사만이 있는 사실도 이러한 사실을 반증한다.


한편 히브리인들의 전통적인 삼 단계 구약 분류 방식, 즉 율법(토라), 예언서(네빔), 성문서(케투빔) 이상 세 분류 방식의 순서가 정경 형성의 순서를 반영한다고 고등비평 학자들은 주장한다.


율법은 B.C.400년, 예언서는 B.C.300 ~200년, 성문서는 B.C.165 ~ 100년경 각각 수집과 편집이 끝나 정경으로 인정되었다는 소위 단계별 형성 이론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는 신빙성이 없다. 만약 고등비평학자들의 가설이 사실이라면 히브리인의 구약 분류 방식은 구약 정경에 관한 한 거의 철칙처럼 여겨져야 마땅하나 구약의 가장 중요한 역본인 70인역 조차 정경의 범위에서는 일치하지만 분류 방식은 이를 따르지 않고 있다.

2. 신약 정경의 형성


구약이 B.C.1400년경 모세 오경의 기록을 시작으로 B.C.400년 경의 소선지서, 에스라, 느헤미야 등의 기록에 이르기까지 약 1000년의 시대차가 있는 반면, 신약은 27권 모두가 A.D. 50 ~ 100년 사이 즉 50년 상간에 기록된 것이다.


그러나 정확히 신약 37권을 공식적 정경으로 인정한 것은 대략 300년이 지난 A.D.397년 칼타고 공회였다.


신약 27권은 기록 이후 교회의 중요한 이론과 실천의 기준으로서 존중되었다.


초대 교부들의 각종 기록과 교회와 관련된 각종 역사 문헌을 보면 신약 성경 27권이 상당히 광범위하게 처음부터 다른 일반 문헌들 보다 높게 인정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렇기는 하지만 지역과 개인에 따라 어떤 책은 보다 더 존중되고 또 어떤 책은 그 정경성을 의심 받기도 하였다.


그리하여 정확한 정경의 지침이 있기 전까지는 오리겐 또는 유세비우스 등 영향력 있는 교부들의 분류방식이 매우 널리 유포되었었다.


이들 두 교부는 교회에 널리 전해오는 문서를 ‘호모루구메나’(Homolo-goumena : 고역된 또는 인정된 책들)와 ‘안티레고메나’(Antilegomena :이의가 있는, 논쟁중인 책들)로 크게 나누었다.


개인차가 있지만 대략적으로 보면 ‘호모로구메나’에는 사복음서, 바울서신, 베드로전서, 요한일서, 사도행전, 요한계시록 등이 포함되었고, ‘안티레고메나’에는 히브리서, 베드로후서, 야고보서, 요한이.삼서 그리고 신약 외경 등이 포함 되었다.


한편 일부 교부들은 이 ‘안티레고메나’를 다시 구분하여 다만 그 정경성에 논란이 있다는 점에서 그냥 ‘안티레고메나’와 전혀 그 정경성이 성립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노다’(Noda : 널리 알려졌으나 인정될 수 없는)로 보다 세분하였다.


그리하여 전자에는 히브리, 야고보, 베드로 후서 등이 분류되었는데, 이 책들은 지금은 신약 정경이지만 당시에는 논쟁의 대상 되곤 했던 책이다.


반면 ‘노다’에는 각종 신약 외경 문서들이 분류되었다.


이것은 일부 논쟁 대상이 된 책 들중 일부가 그 정경성에 있어서는 근본적으로 외경이나 그밖의 문서들과는 본질적 차이가 있었음을 초대 교회가 처음부터 인정.인지하고 있었음을 암시하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대략적 구분만으로는 말시온(A.D.140년경) 등의 노스틱주의자들을 대표로 하는 이단주의자들과의 대외적 논쟁에서는 물론 대내적으로도 전교회의 통일성에 완전을 기할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A.D.4세기 중엽부터 정경 확립의 중요성을 깨달은 동서 교회는 A.D.363년 라오디게아 종교 회의, A.D.393년의 히포 종교 회의 등 주요한 종교 회의를 거쳐 마침내 A.D. 397년 칼타고 종교 회의에서 현재와 같은 신약 27권의 정경을 확립하기에 이르렀다.


(그랜드 종합 주석에서 올렸습니다)



위경의 형성 과정


구약성서는 일찍부터 두 언어로 전승되어 왔다. 하나는 히브리어로 기록된 구약성서이고, 다른 하나는 기원전 3세기부터 히브리어에서 그리스어로 번역된 그리스어역 구약, 일명 칠십인역(LXX)이다.


초기 기독교는 히브리어 구약성서보다는 그리스어 구약성서를 경전으로 받아들였는데, 거기에는 히브리어 구약성서에는 없는 소위 외경(外經)이라고 하는 책들이 더 편집되어 있어서 가톨릭의 성서가 된다.


개신교에서 외경이라고 부르는 것을 가톨릭에서는 ‘제2경전(第二經典,deuterocanonical)’이라고 부른다.


따라서, 히브리어 구약성서와 그리스어 신약성서를 합친 성경을, 가톨릭에서는 ‘제1경전’ 혹은 ‘원경전(原經典,protocanonical)’이라고 한다.

제2경전에 들어가는 책은 역사적으로 변천되어 왔다.


또 편집 형태에 따라,책의 권 수도 일정하지 않다.


1977년에 나온 우리나라의 신.구교가 번역한 '공동번역성서'(1977)에 보면, ‘토비트’ ‘유딧’ ‘에스델(제1경전 에스더기의 추가부분)’ ‘지혜서’ ‘집회서’ ‘바룩서’ ‘다니엘서(제1경전 다니엘의 추가부분)’ ‘마카베오상’ ‘마카베오하’ 이상 9권이다.


‘바룩서’ 안에는 ‘예레미야의 편지’가 마지막장으로 편집되어 있고, ‘다니엘서의 추가 부분’에는 ‘세 젊은이의 노래’ ‘수산나’ ‘벨과 뱀’이 들어 있다. 영어개역표준성서(Revised Standard Version) (1957)에 실린 제2경전에는 ‘제1에스드라’ ‘제2에스드라’ ‘므낫세의 기도’가 더 들어 있다.

제2경전에 속하는 이러한 책들은 본래 유대교가 번역한 그리스어역 구약인 ‘칠십인역’에 들어 있던 것들을 초기 기독교가 받아들이고, 그것이 그대로 가톨릭의 경전이 된 것이다.


그러므로 제2경전에 속한 책들이 제1경전과 합본된 것은 기독교의 작업이 아니라 유대교의 경전사와 관련된 것이다.

히브리어 구약성경에 익숙하지 않던 초기 기독교가 그리스어로 번역된 ‘칠십인역’ 구약을 읽게 되면서 거기에 들어 있는 제2경전에 속한 책들까지 함께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고대 라틴어역 성서(Old Latin Version)는 바로 ‘칠십인역’에서 번역된 것이다.


교부들 사이에서도, 히브리어로 된 구약에는 없고 그리스어로 번역된 구약에만 나오는 책들에 대한 경전으로서의 권위를 문제삼기는 하였으나, 1546년 트렌트 회의에서는 그리스어 외경을 히브리어 성경에 들어 있는 39권 책과 동일하게 영감 받은 권위 있는 경전으로 인정하게 된다.


히브리어 구약에 들어 있는 39권의 책은 이미 경전으로 전해져온 것이므로 이것을 ‘제1경전’이라고 하였고, 그리스어 구약에 들어 있는 나머지 책들은 늦게 경전이 되었다고 하여 ‘제2경전’이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논의의 편의상 여기에서 ‘제1경전’ ‘제2경전’이란 말을 쓰지만, 이런 용어는 16세기 트렌트회의 이후부터 사용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므낫세의 기도’ ‘제1에스드라’ ‘제2에스드라’는 불가타역 성서에 들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경전으로 인정 받지 못하였다.


따라서 불가타역은 이 세 책을 부록으로 취급하여 별도로 편집하였고, 나머지 책들은 구약의 여러 곳에 적절히 재배치하였다.


‘토빗트’와 ‘유딧’은 ‘느헤미야기’ 다음에, ‘에스더기 추가 부분’은 ‘에스더기’ 안에, ‘마카베오상’과 ‘마카베오하’는 ‘에스더기’ 다음에, ‘지혜서’와 ‘집회서’는 ‘아가’ 다음에, ‘바룩서’는 ‘애가’ 다음에, ‘다니엘서 추가 부분’은 ‘다니엘서’ 다음에 각각 편집해 넣었다.



개신교의 성경은 39권의 낱권으로 형성된 구약과 27권의 신약으로 구성되어 있다.



개신교의 성서가 유대교의 경전과 다른 것은 구약외에 신약을 더 가지고 있다는 것이며, 구약의 경우도 내용은 같지만 책의 분책과 배열이 다르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기독교에서는 '사무엘 상' 과 '사무엘 하'로 나누지만 유대교 경전에서는 '사무엘, 한 권으로 구성하고 있다.



책의 배열에 있어서도 개신교는 욥기, 시편, 잠언등으로 되어있는데 유대교 경전에서는 시편, 욥기, 잠언등의 순서로 되어 있다.


가톨릭과 다른 것은 가톨릭이 제2경전이라고 부르는 외경(外經)을 경건문학으로는 받아들여도 경전으로는 고백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가톨릭에서는, 외경의 경전성 문제가 논의되어 오다가 ‘제2경전’으로 정착되었지만, 개신교쪽에서는 종교개혁 당시부터 외경의 경전성 문제가 논의되다가 끝내 경전 안에는 들어 올 수 없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개신교 목사들이 편집한 츄리히 성서(Zurich Bibel or Swiss-German Bible)(1527-1530)는 외경을 신약 다음에 부록으로 편집해 넣었다.


1534년에 끝난 루터의 독일어역은 외경을 구약과 신약 사이에 부록으로 엮어 넣고, 그 서문에 “외경은 경전과는 동등하지 않지만 읽어서 유익한 책”이라고 언급하였다.



1535년에 프랑스 개신교가 처음으로 번역하여 발간한 성서도 외경을 구약과 신약 사이에 부록으로 넣고, 머리말에서 “히브리어와 아람어로 쓰여진 구약에는 없지만 불가타역본에 들어있는 외경”이라고 언급하였다.



1535년에 카버데일(Miles Coverdale)이 번역한 영어성서도 외경을 구약과 신약 사이에 부록으로 편집하였다. 즉 구약의 일부로 다루지 않고, 별도로 묶어 경전성이 확보되지 않은 책임을 밝혔다.



1560년에 나온 제네바성서는 본문을 절로 나누어 출판한 최초의 성서일뿐만 아니라, 외경에 대해서도, 그 서문에서 개신교의 견해를 분명하게 밝혔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는다.


서문에서, 외경을 두고서, 이 책들이 교회가 공적으로 읽고 해석하는 것이 공인된 점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한다.


경전이 확증하는 것과 같은 내용에 동의하는 한에서만 도움이 되는 책임을 밝혔다.


그러면서도, ‘므낫세의 기도’만은 역대지하 끝에 편집해 넣은 예외를 보인다.



1611년에 나온 제임스왕 역본(King James Version)도 외경을 경전과 구 별하는 점에서는 개신교의 전통을 그대로 따르지만 신약성서 관주(전후참조)에서 외경과의 관련구절을 여러번 언급하여 외경에 대한 중요성을 보여주고 있다.

1546년 트렌트 회의에서 가톨릭교회가 외경을 ‘제2경전’으로 결정하면서부터 개신교쪽에서도 외경에 대한 태도를 좀 더 분명하게 하기에 이른다.



1562년에 영국교회가 발표한 39개조 종교조항 제6조는 “(외경은) 교회가 신도에게 생활의 모범이나 교훈을 가르치려고 할 때 읽을 수 있다.


그러나 외경을 근거로 하여 교리를 제정할 수는 없다”고 하였다.



1647년 웨스터민스터 신학자 총회에서 결정한 신앙고백 제1장 3절은 “외경은 영감으로 쓰여진 책이 아니므로 경전이 될 수 없다.


따라서, 외경은 성경과는 달리, 교회 안에서 어떠한 권위도 가지지 못하고, 인정되거나 사용되어서는 안된다”고 하였다.


(대한성서공회 에서 퍼 왔습니다)



지혜서


정식명칭은 《솔로몬의 지혜》이다. 가톨릭에서는 제2정경(正經)으로 채택하였으며, 《공동번역성경》(외경부)에도 들어가고 있다.


《벤시락의 지혜》와 함께 외경의 2대 지혜문학서이다.


저자는 솔로몬 왕이 아니라 BC 50년경 알렉산드리아의 유대인 철학자가 그리스어로 쓴 것으로 보고 있다. 저자는 유대 사상과 그리스 사상을 융합시키고자 하였는데, 그리스 철학에서도 분명히 신의 초월성과 인간의 영생, 영혼의 선재(先在)를 말하고 있다.

19장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3부(2부 ·4부 분류설도 있다)로 나뉘어져 있다. 제1부(제1∼5장)에서는 의인과 악인의 운명을 다루어, 신에 바탕을 둔 지혜와 신 없는 현세의 지혜와의 대립에 관하여 말하고 있다.


제2부(제6∼9장)에서는 신의 지혜가 어떤 것이라는 것을 설명하고, 지혜에 관한 미덕을 서술하고 있으며, 제3부(제10∼19장)에서는 지혜가 이스라엘의 역사상에서 보여준 기적을 말하고, 형벌의 이론을 설명, 우상숭배와 이에 따라 죽을 수밖에 없는 악을 책망한다.

이 책은 사도 바울로나 《히브리인들에게 보낸 편지》의 저자에게도 영향을 미쳤다(Ⅱ고린 8:1∼4. 히브 1:3, 9:15).



(백과사전)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