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福)은 어디서 오는 것인가?


우리가 흔히 말하길 좋은 부모(父母)를 만나면 부모 복(福)이요, 

남편(男便)을 잘 만나면 남편 복(福)이고 아내를 잘 만나면 처복(妻福)이며,

 

자식(子息)을 잘 두면 자식 복(福)이고 돈이 많으면 재복(財福)이며,

천수(天壽)를 누리게되면 수복(壽福)이라한다.

 

그런데 이 복(福)은 과연 어디서 오는 것인가?

지어서 오는 것인가? 아니면 운(運)이 좋아져 절로 오는 것인가?

 

결론(結論)부터 말하자면 복은 지어야 받을 수 있고 받을 만한 자(者)라야 지을 수도 있는것이다.

복을 짓지 않고 받으려는 생각이나 복을 받았는데도 그것이 우연(偶然)이라 생각한다면 

이는 씨앗을 심지 않고도 수확(收穫)할 수 있고 노력(努力) 없이도 저절로 얻어지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 된다.

 

만약, 이와 같은 생각을 하는 이가 있다면 이분은 세상(世上)의 이치(理致)를 바로보는 사람이 아니며

그러한 법(法)이 있지도 아니하다는 사실(事實)을 알아야 한다.

 

부처님 말씀에 "심지 않고 거두려 하지 말라! 행(行)하지 않고 이루려하지말라!

스스로 노력(努力)하라! 그대의 운명(運命)은 그대 스스로 짓고 받는다.

 

복을 받으려거든 복 받을 일을 하여 복을 짓고 복의 씨앗을 심으라.!"고 하시었다.

 

대개의 사람들은 복을 원(願)하고 받으려고 하지만 복받을만한 일을 하거나 

복의 씨앗을 심사람들은 그다지 많지는 않는 듯하다.

 

오히려 남이 열심(熱心)히 일하고 땀 흘려 이루어 놓은 것을 큰 힘 드리지 않고 

쉽게 얻으려는 생각을 하거나 남 잘되는 것을 시기(猜忌)하는가 하면,

 

자신은 못하면서도 남이 이룩해 놓은 것을 허물하는 사람들도 간혹 있는데 

그 같은 삶은 언제나 가난(家難)하고 심적(心的)으로 괴로울 뿐이다.

 

복을 짓고 받는 일도 원인(原因)과 결과(結果)의 법칙(法則)에 의해 관찰(觀察)하면 쉽게 알 수 있다.

복을 짓는 일이 원인이라면, 복을 받는 일은 결과에 해당(該當)한다.

 

즉 큰 수고 없이 기적(奇蹟)의 복(福)더미가 터질 것이라는 바램은 버려야한다.

흔히 많은사람들은 물질(物質)의 부(富)를 복(福)으로 착각(錯覺)하는 수도 있다.

 

그러나 돈이 복(福)을 갔다 줄 수 있다면 백만 원 가진 사람보다 천만원을 가진 사람이

열배나 더 행복(幸福)해야 할 것이지만 사실(事實)은 그렇지 아니하다.

 

무심히 보아 넘기기 쉬운 이들 복 밭에는 어떤 씨앗을 심어야 하는가에 대하여 굳이 설명(說明)이

필요(必要)치 않을 것이다.

 

세상(世上)이 야박(野薄)해 졌다고 야단(惹端)들이다.

착실(着實)한 사람이 바보 취급(取扱)을 받는 세상(世上)이라고 개탄(慨嘆)하는 소리가 더 높다.

 

  

복(福)을 빌고 복(福)을 짓고


우리는 복(福)을 받기를 바라고 그래서 복을빈다.

재복(財福)을 빌고, 무병장수(無病長壽)도 빌고, 천당(天堂)에 가고, 극락(極樂)에 가기를 빈다.

 

그렇게 복을 바라는 마음이야 인지상정(人之常情)이니 그것을 두고 시비(是非)할 것은 아니다.

그러나 복을 빈다고 복(福)이 오는 것일까?

 

흔히 그런 이야기를 한다. 복이 담길 그릇이 되어야 복이 와도 받을 수있는 것이지

 그릇이 안 된다면 복이 온다한들 담을 수나 있겠느냐는 것이다.

 

귀에 담기 어려운 따가운 질책(叱責)이다.

달리 말하면  복(福)을 받느냐 그렇지 않고 화(禍)를 입느냐 하는 것은 인과(因果)를 벗어날 수 없다는 것,

뿌린 대로 거두는 것이란 것을 그렇게 말한 것이 아닐까?

 

그래서 눈치 빠른 사람들은 "복(福)을 지어라"고 말한다.

요컨대, 복을 받기위해서는 복을받을만한 착한 일을 하라는 것 일터이다.

 

그러나 만약 복을 받기 위해서 착한 일을 한다면 그게 얼마나 착할 수 있을까? 복(福)이라는

명확(明確)한 대가성(代價性)을 향하고 있는,

 

이해관계(利害關係)가 계산(計算)되어 있는 바에야  착한 일이란 것이 가능(可能)할 수 있는

것일까?

 

계산(計算)이 치밀(緻密)하면할수록 그리고 대가성(代價性)을 요구(要求)하는 마음이

강(强)하면 강(强)할수록 착한 것과는 멀어질 것이다.

 

그러니 착한 일을 해서 복(福)을 받는다는 계산(計算)은 맞아 들어가기 어려울지 모른다. 

렇게 보면 "복(福)을 비는 것"이나 "복(福)을 짓는다."는 것의 질적(質的) 차이(差異)는

없는 셈이다. 오십 보 백보다.

 

뒤집어 말하면 대가성(代價性)을 요(要)하지않을수록

그리고 복(福)에 대한 계산(計算)이없을수록 착(善)한 것이며 

복(福)을 받을 가능성(可能性)도 높아진다는 역설(逆說)이 성립(成立)한다.

 


오복(五福)을 부르는 삶


궁극적(窮極的)인 행복(幸福)이란 무엇인가? 복(福)받는 삶을사는 것이고 

그중 으뜸은 오(五福)을 다 갖춘 삶이다.

오복(五福)이란 "수(壽), 부(富), 강녕(康寧), 유호덕(攸好德), 고종(考終命)"을 일컫는다.

 

01.수(壽): 오복(五福) 가운데 으뜸은 장수(長壽)다.

권력(權力)을 지닌 임금이나 최고의 부(富)를지닌 석숭(石崇)같은 사람의 자식(子息)으로

어나도 일찍 죽으면 복(福)이 있는 삶이 아니다.


옛말에 "개똥밭에 굴러도 저승보다는 이승이 났다"고 하지 않았던가!

 

02.부(富): 둘째는 부자(富者)로 사는 삶이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고 했지만, 한평생을 가난(家難)속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복(福) 받은 삶은 아니다. 정당(正當)하게 부(富)를 일구라는 권려(勸勵)의 의미(意味)도 있다.

 

03.강녕(康寧): 셋째는 복(福)은 강녕(康寧)으로 건강(健康)을 뜻한다.   

오래도록 부자(富者)로 살아도 건강(健康)하지못하게 살아간다면,

본인이나 주변(周邊)사람들에게 힘든 삶이 된다.

 

04.유호덕(攸好德): 넷째는 복(福)은 유호덕(攸好德)으로 좋은 덕(德)을지닌 삶을의미(意味)한다.

동양학(東洋學)에서는 덕(德)은 만물(萬物)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다고 본다.

논어(論語)에 "덕불고필유린(德不孤必有隣)"이란 말이 나온다. 

“덕(德)이 있으면 외롭지 않고 반드시 이웃이 있다.”는 의미(意味)이다.

 

05.고종명(考終命) : 오복(五福)의 마지막은 고종명(考終命) 즉 잘 죽는 것이다.   

어린 자식(子息)을두고 불의(不義)의사고(事故)로 죽거나,

젊어서 병사(病死)한 사람의 장례식장(葬禮式場)은 비통(悲痛)함과

애통(哀痛)함이 젖어 있는 것을 목도(目睹) 한다.

 

우리 조상(祖上)들은 천수(天壽)를 누리고 죽으면 죽는것 자체가 무겁고 서글픈 것임에도 기쁘게 받아들였다.

그래서 호상(好喪)이란 말이 실제로 존재(存在)하며 호상(好喪)엔 장례(葬禮)를 축제(祝祭)처럼 치렀다.

 

위의 오복(五福)을 정리(整理)하면

(1)장수(長壽)와강녕(康寧),고종명(考終命)은 건강(健康)에 관한 복(福)으로 분류(分類)할 수 있고,   

(2)유호덕(攸好德)은 주변인(周邊人)과의 좋은 관계(關係)의 중요성(重要性)을 이야기한 부분이다.  

(3)그리고 부(富)는 사회적(社會的) 성공(成功)의 필요성(必要性)을 언급(言及)한 것이다.

 

오복(五福)을 누리고사는 사람은 드물지만 그것을 누리는 사람들의 행동(行動)에는 한 가지

공통점(共通點)이 있다.

 

1)그것은 그들의 생각과 삶의 방식(方式)이 복(福)을 부르는 행위(行爲)를 반복(反復)한다는 사실(事實)이다.

 

2)복(福)이 있는 사람들은 자기(自己) 자신(自身)을 잘 관리(管理)하며,

  주변(周邊) 사람들을  따뜻한 시선(視線)으로 배려(配慮)하고 성공(成功)을 이루기 위해 부단(不斷)히

  노력(努力)하는 삶을 살아간다.<김명기 아발론 교육 대표>


 

현대인(現代人)들이 생각하는 오복(五福)

 

1. 건강(健康)한 몸을 가지는 복(福)

2. 서로 아끼며 지내는 배우자(配偶子)를 가지는 복(福)

3. 자식(子息)에게 손을 안 벌려도 될 만큼의 재산(財産)을 가지는 복(福)

4. 생활(生活)의 리듬과 삶의 보람을 가질 수 있는 적당(適當)한 일거리를 갖는 복(福)

5. 나를 알아주는 참된 친구(親舊)를 가지는 복(福)

 

- 좋은 글 중에서 -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