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란?


Ⅰ. 이끄는 말


기독교 교회 안에는 여러 가지 직임(職任)이 있는데(고전12:28)
그 중에 가장 대표적인 직임을 하나 꼽는다면 목사(牧師;Minister)라는 직임이다.

그것은 목사의 직임이 행정적(行政的)으로 교회의 대표권(代表權)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실제적으로 교인들을 가르치는 지도자로서의 책무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목사라는 직임은 교회에 있어서 아주 소중한 직임으로서 제반 문제들에 관하여 당연히 책임을 져야만 한다는 당위성(當爲性)도 함께 가지고 있는 것이다.


아주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가지고 있는 현대 교회는 성경적인 순수한 모습은 거의 찾아 볼 수 없으리만큼 변질이 되거나 변모가 되어 가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진리의 토대 위에 세워진 교회를 찾아보기가 쉽지 않은 현실이다.


교회에서 지켜져야 할 성경 진리가 변질이 되어가고,  도리어 교회로부터 외면당하고 있는 실정에 놓여 있는가 하면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지 아니하는 교회 아닌 교회가 당당히 교회로서의 행세를 하고 있다.(딤후 4:3~4)


이 같은 교회의 현실에 대한 책임은 당연히 목사직임을 가지고 있는 자들에게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소중한 목사의 직임이 너무도 왜곡(歪曲)되어 있다는 것이 현대 교회의 문제가 되고 있다. 목사의 직임이 무엇인지도 잘 모르고 목사의 직임을 받아 교회를 지도하고 있다면 그거야 말로 아주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목사의 직임에 대한 일반적인 견해를 살펴보면, 어떤 자들은 구약시대 선지자들처럼 하나님께 직접 음성이나 계시를 받아 장래일이나 신적 비밀을 예언하는 예언가(豫言家)로 알고 있고, 어떤 자들은 구약시대 제사장들처럼 하나님께 특별히 구별을 받아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를 성도들을 대신해서 드려주는 제사장(祭司長)으로 알고 있고, 어떤 자들은 구약시대의 왕들처럼 하나님께로부터 직접적으로 신권(神權)을 위임 받아 절대적인 권한을행사하는 교회의 최고 권력자(權力者)로 알고 있다.


이와 같이 목사의 직임에 대해 대부분의 성도들은 물론, 많은 지도자들까지도 오해를 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하나님께서는 건전한 지도자를 통해 건전한 교회를 세워 가신다.
그러므로 건전한 지도자가 없는 건전한 교회는 기대 될 수 없다. 건전한 지도자는 자기 직임
에 충실한 자이다. 목사의 직임에 충실하기 위해서는 먼저 목사의 직임이 갖는 임무와 성격(性格) 등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목사의 직임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가지고 있을 때에는 절대로 건전한 목사 직임의 수행(遂行)을 기대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초가 흔들려서 쓰러져가는 현대 교회를바로 잡고 성경 진리 위에 견고하게 세우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교회의 지도자인 목사직임에 대한 바른 이해가 선행(先行)되어야 한다.

 

 

Ⅱ.목사직의 명칭


목사의 직임에 대한 바른 이해를 돕기 위해서 먼저 목사라는 직임의 명칭에 대한 뜻이 무엇
인지 어원(語原)을 통하여 알아보기로 한다.

목사라는 말이 구약성경에서는 히브리어로 ‘로이(???)’라고 하는 단어인데, 그 뜻은 ‘목자(牧者)’라는 의미를 가진 것으로서 구약성경 예레미야 선지서에서 만 단 한 번 단수형으로 사용되고 있다.


그 뜻은 ‘양떼를 돌보다’ 또는 ‘친하게 지내다’라는 의미로 사용이 된 듯하다.

그런데 예레미야 선지자가 한 번 사용한  ‘목자’ 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단어는 예레미야 17장 16절에 나타나 있다.   그 내용은 여호와께서 유다의 배신 죄에 대하여 징계하실 것을 경고 하실 때에 예레미야 선지자가 여호와의 권능을 찬양하고 원수를 보수(報讐)하여 주실 것을 구하면서 “나는 목자의 직분에서 물러가지 아니하고 주를 좇았사오며 재앙의 날도 내가 원치 아니하였음을 주께서 아시는 바라”로 한 내용에 나타나 있다.  이 문장 내용의 흐름으로 보아서 ‘목자’라는 말은 선지자가 가지고 있는 임무의 성격을 표현하는 말로서 신약의 목사직임의 성격과는 차이가 있는 용어인 것을 발견하게 된다.  구약 가운데 특히 선지서에서 목자라는 명칭은 선지자나 제사장이나 왕들을 가리켜 사용하는 말로서 장차 오실 선한 목자이신 그리스도를 예표(豫表)하는 명칭인 것이다.(요 5:11~15)


목사라는 말이 신약성경에서는 헬라어로 ‘포이멘(ποιμηυ)’이다.
그 뜻 역시 ‘목자’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고 신약성경에서 거의 사용되고 있지 않으나 바울의
서신인 에베소서에서 단 한 번 복수형으로 언급이 되고 있는데 에베소서 4장 11절에서 바울이 그리스도의선물을 언급 하면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라고 기록한 내용에서 나타나고 있다. (엡 4:11~12) 그 외에도 다른 시제로 이 단어의 어근이 사용된 두 경우가 있다. 하나는  ‘포이마이네(ποιμαιυε)’라는 단어로서 그 뜻은 양 무리를  ‘치다’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요한복음 21장 16절에서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내 양을 치라’고 말씀하신 내용에서 언급되었다.(요 21:16) 다른 하나는 ‘포이마나테’라는 단어인데, 그 뜻 역시 ‘양 무리를 치라’는 뜻으로서 베드로전서 5장 2절에서 베드로가 장로들에게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부득이함으로 하지 말고······”라고 권하는 내용에서 언급된 것이다.(벧전 5:2~3)


그리고 목사직의 명칭은 ‘포이멘’이라는 단어 외에도 그 의미를 같이 하는 단어들이 다양하게 많이있다. 그 대표적인 것들 중에 하나가 ‘에피스코포스(επισκοποξ)’라는 단어로써(행20:28) ‘감독’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고, 또 하나는 ‘프레스부테로스(πρεσβυτεροξ)’라는 단어로써(벧전5:1) ‘장로’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 명칭들이 용어는 서로 다르다고 할지라도 그 의미는 목사라는 명칭과 동일한 것이다.


이상과 같이 신약성경에서 사용된 단어들의 뜻을 종합적으로 정리해 보면 ‘포이멘(목자)’이라는 말은 주의 양 무리인 성도들을 신령한 양식인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르쳐 기르는 자’라는 뜻으로 설명이 가능해진다.

 

 

Ⅲ.목사직의 기원


목사직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위해서 그 역사적인 기원(起源)을 정확하게 아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그 역사적인 기원을 잘못 아는 결과로 말미암아 목사직에 대한 오해는 너무도 클 수 있기 때문이다.


혹자들은 목사직임의 기원을 구약시대로 알고 있는 자들이 있다.
그것은 구약시대에 있었던 제사장이나 왕이나 선지자와 같은 직임들을 마치 목사직임의 기
원으로착각(錯覺)하고 있기 때문인 것 이다. 그런가하면 목사직임의 기원을 신약시대로 알고 있는 자들 가운데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직접 세우신 사도(使徒)들의 직임을 목사직임의 기원으로 오해하며 그렇게 생각하는 자들이 대다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로마 카톨릭의 경우는 베드로 사도를 1대교황(敎皇)으로 생각하고, 그렇게 신자들에게 가르치고 있다. 그 결과로 교황은 마치 신적(神的) 인 권세를 부여받은 절대 권세자로 착각하는 과오를 범하게 된 것이다. 이와 같이 목사직임의 기원에 대한 오해들은 목사직임 자체에 대한 오해를 불러 일으키기에 너무도 충분한 요인(要因)을 제공해 주는 것이다.


목사직임의 역사적 기원은 구약시대가 아니다.
뿐만 아니라 그 시대에 있었던 제사장이나 왕이나 선지자 직임들도 목사직임의 기원이 절
대로 아닌 것이다. 그 역사적 기원은 어디까지나 신약시대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 시대에 예수께서 직접 세우신 사도직임이 목사직임의 기원은 물론 아니다. 구약시대에 있었던 제사장과 왕과 선지자 직임들은 그 시대에 필요했던 직임들이고, 신약시대 초기에 있었던 사도의 직임 역시 그 시기에만 단회적(單回的)으로 있었던 직임들인 것이다. 그러므로 구약시대나 신약시대 초기에 있었던 직임들은 신약교회 초기 이후의 교회시대에는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되는 직임들임은 물론, 현재도 있을 수 없는 직임들이다.


사도 바울은 목사직임의 기원에 대하여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에게 보내는 서신에게 너무도 분명하게 밝혀주고 있다. 그가 기록한 에베소서 4장 7절에서부터 11절 사이에  “그가 위로 올라가실 때에 사로잡힌 자를 사로잡고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셨다.”라고 하는 시편 68편 18절의 내용을 인용하여 목사의 직임이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후 승천하실 때에 선물로 주고 가신 것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엡4:7~12) 여기에서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목사의 직임이 신약시대를 기원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신약시대 그리스도께서 승천(昇天)하실 때에 목사의 직임을 주신 것이 곧 그 기원이 된다는 것이다.


러므로 목사직임이 구약시대의 제사장과 왕과 선지자의 직임들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이며,  신약시대에도 사도직임과는 별개의 직임으로 주어진 것임으로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이다.


사도행전에 보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신 후에 사도들은 오순절에 예수께서 약속하신 성령의 능력을 받고 복음을 증거한 결과로 예루살렘을 비롯해서 이방 각처에 교회가 세워지게 되었다. 성령께서는 세워진 교회를 자라게 하시려고 사도는 물론 선지자와 감독(목사)과 교사들과 복음 전하는 자들을 세우신 사실을 찾아볼 수 있다.

 

 

Ⅳ.목사직의 소명


이제는 목사직임에 대한 소명(召命)은 어떻게 받는 것인가? 에 대한 문제를 알아보아야 할
차례이다. 이 내용 역시 목사직임에 대하여 올바르게 이해하는 데 반드시 논의를 거치고 넘어가야 할 문제인 것이다. 일반적으로 목사직임의 소명을 부여할 때에 장로교나 감리교 및 성결교 등의 경우에 노회나 지방회에서 목사 후보생(候補生)을 선발하여 신학교육을 받도록 해서 시험을 거쳐 목사로 안수(按手)를 주어 세우는 것이 통례로 되어 있다, 그래서 대부분의 교회지도자들은 목사의 직임에 대한 소명을 주는 권한이 각 교단의 노회나 지방회의 고유(固有)의 권한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만일의 경우에 목사직임의 소명을 주는 고유 권한이 노회나 지방회에 있다고 한다면 로마 카톨릭 교회의 교황제도의 원리와 하등 다름없는 것으로 볼 수 밖에 없다.


로마 카톨릭 교회의 경우에는 교황 직임의 권위가 선임자로부터 이어진다고 주장하면서 그들은 베드로 사도가 예수님으로부터 천국의 모든 권한을 완전히 위임 받은 1대 교황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1대 교황인 베드로는 죽으면서 2대 교황에게 역시 천국의 모든 권한을 위임(委任)해 주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로마 교회의 교황은 예수님과는 아무런 관계없이 고유의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개신교 각 교단(敎團)의 노회나 지방회는 예수님으로부터 어떤 권한을 완전히 위임을 받아 고유권한을 행사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그리스도께서 직접 고유 권한을 행사하시는 데 그의 몸 된 지체들은 사용하시는 것뿐이다. 다시 말하자면 로마 카톨릭 교회의 머리는 교황인 반면에 개신교 교회의 머리는 그리스도이시라는 말이다.


목사직임에 대한 소명은 어디까지나 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그리스도께로부터 주어지는 것인데, 이러한 사역을 그리스도께서 성령의 역사로 노회나 지방회를 통하여 나타내시는 것뿐이다.(딤후1:9) 이 같은 사실을 좀 더 구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목사직임에 대한 소명을 직접인 소명과 간접적인 소명으로 나누어서 설명하는 것이 편리하다. 직접적인 소명은 목사직임의 소명을 그리스도께서 직접적으로 주신다는 소명의 원리를 말하는 것이고, 간접적인 소명은 목사직임의 소명을 그리스도께서 성령의 역사로 노회나 지방회를 통하여 나타내시는 소명의 방법을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목사직임에 대한 소명은 개신교의 각 교단 노회나 지방회의 공유 권한도 아니며, 어디까지나 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고유 권한인 것이다.

원리(原理,principle)가 없는 방법은 하나의 형식에 불과한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목사직임의 소명을 주시지도 아니하셨는데 노회나 지방회가 어떠한 자를 목사로 안수를 해서 소명을 주었다고 한다면 그것은 형식에 불과한 것이며 어디까지나 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그리스도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교회의 정치적인 ‘쇼(show)'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이와 같은 부끄러운 불행한 일들은 불완전한 지상 교회 안에서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고, 실제로 있는 일이며, 또 있었던 일이다. 중세시대에 교회에서 성직(聖職)을 돈으로 팔고 샀던과거의 역사적인 사실은 이를 잘 증명해 주고 있다.



Ⅴ.목사직의 성격


목사직임에 대한 오해를 없애버리기 위해서는, 그 직임에 대한 성격을 올바른 파악하는 것
이 매우 중요하다. 그 이유는 목사직임에 대한 대부분의 오해가 그 성격을 잘못 알고 있는 것이 원인이 되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목사직임에 대한 오해의 유형(類型)으로는 목사직임이 구약 시대에 제사장과 왕과 선지자 등과 비슷한 직임으로 알고 있고, 신약 시대의 사도들과 비슷한 직임으로 알고 있다. 따라서 목사직임에 성격에 대한 주된 임무와 그 성격을 알아보기로 한다.


구약 시대의 제사장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배반하고 범죄 하게 되면 백성들은 대신하여 성전에서 하나님께 짐승을 잡아 피를 흘려 속죄(贖罪) 제사를 드리는 일을 하는 것이 그들의 주된 임무였다. 그들은 모두가 영원한 대제사장으로 세상에 오셔서 택한 백성들의 죄를 속하여 주시기 위해 자기의 몸을 드려 영원한 제사를 드리신 그리스도에 대한 모형(模型)과 그림자였다. 따라서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십자가에 피 흘려 죽으신 후로는 모형(模型)과 그림자적인 구약의 제사장 직임은 완전히 폐지된 것이다.(마26장~28,히7:16~19) 구약 시대의 왕들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열조와의 언약을 따라 유다 지파 자손 중에서 세우신 자들로서 백성을 대적으로부터 보호하고 다스리는 일을 하는 자들이다. 그들은 만왕의 왕으로 오셔서 택한 백성들을 죄의 권세로부터 구원하여 다스려 주시는 그리스도에 대한 모형과 그림자였다. 따라서 만왕의 왕 되신 그리스도께서 오신 후로는 그림자와 모형적인 왕직 역시 완전히 폐지(閉止)된 직임인 것이다.(마16:13~25,막15:1~3)


구약 시대의 선지자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율법을 범하여 범죄 할 때에 하나님께서 선지자들 세워 이상(異象)을 보여주고 말씀을 들려주어서 백성들의 죄를 책망하고 진노를 예언하며 위로해 주는 임무를 수행하는 자들이었다. 그들은 모두가 참 선지자로 오셔서 영생의 말씀을 전해주신 그리스도에 대한 모형과 그림자였다. 따라서 참 선지자이신 그리스도가 오신 후로는 그림자나 모형적인 구약의 선지자는 완전히 폐지된 직임인 것이다.


(마5:~16:12,눅7:16)신약 시대의 사도들은 예수께서 그리스도로 오셔서 직접 불러 주시고 보여 주시고, 들려 주시고, 가르쳐 주신 자들이었다. 그들은 예수께서 사도로 세우셔서 오순절에 성령의 능력을 입혀 표적 을 행하며 예수님이 그리스도임을 증거하게 하시고 교회를 세우게 하시며 신약 계시를 기록하게 하신 직임이다. 그러므로 이 직임은 초대교회 시대에만 국한된 직임으로서, 그 후에는 다시 세워 지지 않는 직임인 것이다.


신약 교회의 목사직임은 구약의 제사장이나 왕이나 선지자 직임은 물론, 신약 시대의 사도 직임과도 그 성격을 아주 달리하고 있다. 어디까지나 목사직임은 다른 직임과 관련이 없이, 승천하신 그리스도께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교회를 유익하게 하시려고 은사와 직임을 각 사람에게 직접 나누어 주신 것 가운데 하나의 직임 것이다.(고전12:4~11)

 

 

Ⅵ. 목사직의 임무


목사직임의 임무(任務)는 구약 시대의 제사장들처럼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일이 아니고,
왕들처럼 성도들을 다스리는 일도 아니고, 선지자들처럼 묵시를 받아 예언을 하는 일도 아니고, 신약시대의 사도들처럼 성령의 능력으로 기적적인 표적을 행하며 복음을 증거하거나 신약 계시를 기록하는 일도 아니다. 뿐만 아니라 축복권과 저주권을 받아 가지고 성도들에게 복을 빌어 주어서 복을 받아 누리게 하거나 저주를 빌어 주어서 저주 받아 고통을 받게 하는 신통력(神通力)을 발휘하는 일은 더욱 아니다.

그렇다면 목사의 직임이 수행해야 하는 임무는 무엇인가?


이와 같은 질문은 “목사란 무엇인가?” 라는 본 논고(論考)의 주제에 대한 결론적인 해답을
요구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질문이다.

목사직임의 교리적인 임무는 말씀을 전파하는 것과 성례를 집행하는 것과 권징을 행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와 같은 세가지의 임무가 차등이 없이 다 동등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 임무들 중에 말씀을 전파하는 것은 궁극적인 임무로 볼 수 있고, 그 나머지 성례를 집행하는 것은 말씀 전파의 방법이고, 권징을 행하는 것은 말씀 전파의 한 결과로써 이루어지는 지엽적인 임무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목사 직임자가 세례와 성찬을 집행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에 대한 복음의 말씀을 전파하기 위한 것이고,(마28:19~20,고전11:26) 권징을 행하는 것은어떤 정치적인 권세로 행하는 것이 아니라 전파되는 말씀의 능력에 의해 행해지는 결과인 것이다.(딤후3:16~17)


성경적인 신약 교회의 목사직임의 임무는 궁극적(窮極的)인 임무와 지엽적(枝葉的)인 임무로 나누어서 정리하는 것이 이해하기에 편리하다. 궁극적인 임무는 목적(目的)이 담긴 임무라고 할 수 있는데, 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그리스도께서 성령의 능력으로 목사에게 계시의 말씀인 성경을 먼저 깨닫게 하셔서 지체된 교회들을 진리로 가르쳐 자라게 하여 승리케 하시는 일에 도구로 쓰임 받는 일이다. (딤후4:1~2)


지엽적인 임무는 방법이 담긴 임무라 할 수 있는데,  여러 가지로 표현할 수 있으나 간단하게 요약해서 정리한 다면 머리가 되시는 그리스도께서 성령의 능력으로 세우신 교회에서 세례를 베풀고 성찬을 행하며, 성도가 서로 교통하게 하며, 선한 일을 행하게 하며,  말씀으로 책망하고 격려하며 위로하는 일에 쓰임 받는 일이다. 이 같은 지엽적인 임무들은앞에서 말한바있는 궁극적인 임무 수행의 방법인 경우도 있고, 또는 임무 수행의 결과인 경우도 있다.(엡3:16~21) 다시 말하자면, 진리의 말씀인 성경을 가르치는 궁극적인 임무를 수행하는 데 있어서 구체적인 방법이나 결과들을 가리켜 지엽적인 임무라고 한다는 말이다.


결과적으로 신약교회 목사직임의 궁극적인 임무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와 지식의 말씀의 은사를 받아 더하거나 덜하지못 하는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 66권을 정확하게깨달아 택한 백성들에게 잘 가르쳐 주는 것이다.그래서 바울사도도 성도들을 가르쳐야 하는 디모데에게 성경을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고 당부한 것이다.(딤후3:14~15)



Ⅶ. 맺는 말


지금까지 성경적인 목사의 직임에 대하여 여러 가지 측면에서 알아보았다.
결국 목사의 직임은 하나님의 말씀을 풀어서 하나님을 알고 그의 뜻을 깨닫게 하여 경외케
하시는 성령의 사역에 쓰임 받는 일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주된 궁극적인 임무는 등한이 여긴 채 지엽적인 수단이나 아니면 본연의 임무를 떠난 일에만 몰두하고 있는 직임자들이 많이 있다는데 문제의 초점이 모아지는 것이다.


소위 교회 강단에서 목사에 의해 전해지는 설교 내용은 성경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인간의 사상이나 도덕 또는 철학적 이론들로 그럴 듯하게 채워지고, 그런가 하면 교회나 기도원 등지에서는 소위 부흥회나 영성훈련(靈性訓練)이라는 그럴 듯한 명목 아래 심령술(心靈術)에 의한 잡다한 행위들이 목사나 부홍사들에게 의해 거룩한 성령의 역사로 가장(假裝)이 되어 자행되고 있는 어처구니 없는 현실이 바로 그것이다.


성경적인 건전한 교회는 성경 진리만을 순수하게 가르치는 목사직임의 건전한 수행을 통해서만 세워져 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순수한 목사직의 수행이 없이는 순수한 성경적인 교회는 성장은 기대할 수 없다. 따라서 교회의 개혁은 목사직임의 올바른 인식으로부터 시작이 되어야 한다.



목사직의 기원.

 

  에베소서 4:7-12

 부활 후부터 모세의 율법에 의한 교회는 끝이 나고 주님으로 말미암은 은혜의 교회가 시작이 된다. 이때부터 영구적이고 정상적인 상태의 교회가 정착이 된다. 이때까지는 주님께서 그의 사도들에게 특별히 일해 주신 것이다. 장차 성공할 수 있는 성취할 수 있는 기초를 놓아 주신 것이나 다름없다. 주님께서 사도들에게 주신 능력이나 은사는 다 예외적인 특별한 것이었다.  신약 교회의 정치 형태 에베소서 4장 11절에 나타난 다섯 가지 직분 중 사도와 선지자와 전도자는 주님께서 특별히 세우신 예외의 임시직이었으며 나머지 두 가지 직분, 목사와 교사는 드디어 안정되고 정규적이며 영속적인 직분 인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아주 특별하게 거의 비상시에 사도와 선지자와 전도자들을 가졌고 교회가 정상적인 되어갈 때 항존 직을 가지게 되었는데 그것이 곧 목사와 교사의 직분으로서였다.



1. 사도


(1) 사도직만의 특성


  사도직에는 그 어떤 직분도 추종할 수 없는 시간적인 그리고 공간적인 독특성이었다.

즉 사도란 주님의 목회와 주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고 승천하신 일에 대하여 눈으로 손으로, 피부로 목격한 증인이라는 사실이다.


(2) 직접 부름 받고, 세움을 받고, 보내심을 받음


(3) 초자연적인 능력을 받음

주님은 사도들에게 예외적인 은사를 주셨다. 그의 교회를 완성시키는데 필요한 능역도 주셨다.


(4) 사도들은 어떤 특정 지역에서 한정된 그리스도의 대표자가 아니라 우주적인 대표자

  사도들은 어떤 지역에서도 구애받을 것이 없었다. 유다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였다.



 2. 선지자 


(1) 선지자 직은 주님이 주신 임시직

  신약 성서에 언급된 선지자 직은 당시 교회와 성도들에게 주어진 특별한 직분이었는데 이는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기 전에 그의 제자들에게 주시기로 약속한 직분이다.


(2) 선지자 직은 불규칙적으로 있었다.

  사도들이 설교할 때 가르칠 때 선포할 때 그들에게 영감으로 나타나서 예언의 일을 하게 하였다. 선지자직과 목사와 교사직의 차이는 영감을 받을 때와 그렇지 않을 때였다.



3. 복음 전하는 자 


 초대 교회에서 가장 시급한 일꾼들은 복음을 전하는 일군들이었다. 그들을 선출하고 뽑아 보내는 일 만큼 급한 일이 없었다. 사도들이 복음을 전하고 회개 운동과 믿음의 일을 수행해 놓으면 전도자들이 남아서 확인하고 설명하며 교회를 조직하는 일도 하였다. 그리고 사도가 부재하여 논쟁이 일어나고 거짓 교리가 침투되고 교회 내에서 문제가 일어났을 때 이에 대한 수습은 바로 “복음 전하는 자들”이 감당하였다. 그들은 조직 운영, 정치 행정 보다 복음 이었다. 어떤 외형적인 일이 아니라 내적인 일이었다. 바울에게는 복음 전하는 자의 동역 자가 많았다. 디시쿠스,에바브로디도,마가,누가.디모데,디도등이 있는데 이들은 바울과 동행도 하였지만 그들은 따로 복음을 전할 줄 알았으나 어느 한 교회에 항존 직으로 고정된 적이 없었다. 그들은 전부가 임시직이었다.



4.교회의 주된 직은 목사


 교회의 직원이나 직분을 논할 때 임시직이다. 항존 직이다 라는 말 자체가 처음 확정된 것은 1643년에서 1647년까지 영국 총회에서 발혀 진 이름이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가 선포하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세워 주신 교회 자체를 위해 존재한다. 이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진리를 위주로 한다.  Paster는 에베소 4장 11절에 언급된 “포이멘”이었다. 선지자와 복음 전하는 자의 언급에 이어서 처음으로 목사와 교사의 복합 명사가 나온 다 교회는 급성장하여 방방곡곡에서 정착이 되고 있을 무렵 사도 바울은 이미 앞날을 내다보며 목사와 교사의 직분이 필요하고 실존 화하고 있음을 동시에 언급한 것이다. 목사와 교사는 상주하여 고정된 양떼를 가르치며 돌보는 상태의 직분이다. 그러나 교사가 다 목사일 수는 없다. 목사로서 가르치는 것은 가능한 것이다. 목사는 사도 교회 후기에 사도들의 손이 모자라서 장로들을 교회의 직분자로 도입하였으나 그들이 교회 일을 한다는 데는 감당할 수 없는 한계점에 있을 때 생겨난 직분이다.


  그러나 종교개혁과 더불어 교회의 재발견과 교회 정치 체제의 재형성을 주장하여 과연 사도직의 수행은 어떤 직분이 감당하여야 가장 성서적이고 신학적인가를 놓고 연구할 한 사람들은 목사로 귀결을 내렸다. 대표적인 사람이 바로 칼빈이었다. 따라서 스위스 교회와 스코틀랜드 교회와 Westerminster 총회에서는 목사로서 주의 교회를 먹이고 장로들이 목사를 돕는데 있어서 옛날에 사도들을 돕듯이 하는 교회를 참 주님의 교회로 고정시킨 것이다.


 (1) 사도직과 목사직

장로는 목사의 직이 아니다. 비록 비상시에 그런 일을 겸하기는 했어도 장로가 사도의 일을 대행 또는 수행하기로 된 성서적 근거는 전혀 없다. 장로는 원래 회당의 직분으로 사도들이 주의 일을 하는 데 사도 밑에서 도움을 주는 보조직에 지나지 않는다. 에베소서 4장 11절 말씀에는 지금까지 언급되지 않는 교회의 직분이 언급되었는데 그 직분이 바로 “목사”이며 “교사”이다. 목사와 교사의 직은 장로나 감독이나 집사의 직분과는 본질을 달리한다. 다시 말해서 교회의 주직은 사도였으나 그들은 사도 교회 에서였고 사도 이후의 교회는 목사가 주직임을 장로와 집사는 보조직임을 칼빈과 웨스터민스터 총회에서 확정하였다.


 (2) Paster와 Minister

Paster는 한 마디로 유럽 쪽에서 많이 쓰고 Minister는 미국 쪽에서 많이 사용한다.

Paster는 교회의 직분으로 분명히 성서에 언급된 직분이나 Minister는 직원으로 언급된 직분이 아니라, 교회 직원이나 직분 자는 누구든지 Minister이어야 한다는 뜻으로 즉 직분으로 보다는 기능으로 언급된 점이다.

 * Minister의 어원은 “디아코노스”다

복음서에는 “종(Servant)”으로 서신에서는 “섬기는 자(Minister)”로 언급되었다. “디아코니아”는 사도행전과 바울 서신에서 목회라는 뜻으로 번역되었다.

  이러한 단어가 목사의 어원이 되는 가장 직접적인 원인은 “왕의 종”이라는 뜻에서다. 그리고 “장관으로서 하나님의 행정을 지상에 수행하는 자”에서 적용되었다. 그리고 “기독교를 가르치는 교사”로 도 적용되었다. 이런 일은 주로 사도들이 한 일이며 주의 종들이 할 일이나 목사들이 한다는 뜻이다.

^^ 글을 읽는 분들에게 간단하지만 편협 된 사고의 오해를 줄이기 위하여 간단하게 올리며 차후에 자료를 더 확보하여 올리려합니다. 참조만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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