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기록·보존에 공헌한 사람들
성경이 오늘의 66권으로 완성되기까지는 매우 복잡하면서도 다양한 형성과정을 거쳐야만 했다.
그것은 고통스러운 해산의 수고였고, 불꽃 튀기는 토론의 장이었고, 끊임없이 되풀이된 도전과 반전의 연속이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특히 성경을 기록하고 보존하는 데 남달리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몇몇 역사적 인물들이 있다.
◇알렉산더(Alexander, 주전 356∼323)
사실상 알렉산더는 성경이나 유대교 혹은 기독교와는 아무런 연관이 없는 한낱 냉혹한 정복자에 지나지 않는다.
역사에는 가정법이 없다고 하지만, 만일 알렉산더가 없었다면 오늘날과 같은 형태로 성경이 보존되었을까 하는 의문을 품게 할 만큼 그의 영향력은 실로 막강하였다.
아버지 필립의 뒤를 이어 마케도니아 왕이 된 청년 알렉산더는 당시 최강국이었던 파사(페르시아)의 왕들을 차례로 격파한 후 팔레스타인을 비롯하여 이집트와 인도 서쪽에 이르는 광범위한 지역에 대제국을 건설하였다.
그는 전쟁터에서도 호메로스의 시를 즐겨 읽었으며, 학자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헬라 문화를 보급하는 데 온 힘을 기울였다.
무엇보다도 알렉산더 대왕은 그동안 도시국가별로 다르게 사용되고 있었던 각종 헬라(그리스) 방언을 한데 모아 간결하면서도 읽기 쉬운 코이네(Koine·공용) 헬라어로
언어를 통일시켰다.
이 코이네 헬라어로 구약성경이 번역되고(70인역),
신약성경이 기록되었을 때 당시 헬라 문화권에 속해 있었던 전 세계인은 누구든지 손쉽게 하나님 말씀을 접할 수 있었다.
말하자면 알렉산더가 닦아놓은 헬레니즘의 토양 위에 헬라어로 기록된 하나님 말씀의 씨가 뿌려져 순식간에 수백 배 복음의 열매들이 맺혀졌던 것이다.
◇마르키온(Marcion, 주후?∼160?)
그는 사도 시대가 끝나갈 무렵 소아시아 북쪽에 있는 시노페(Sinope)라는 곳에서 태어났는데,
교회사에서는 파문당한 이단자로 기록되어 있다.
마르키온은 초대교회를 큰 혼란에 빠뜨리게 했던 영지주의를 주창하였고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부정한 가현설을 지지하였다.
더욱이 그는 구약성경을 정경에서 전부 폐기시켰고 구약과 신약 사이에는 모순이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런데 아이러니컬하게도 그는 성경 형성사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로 평가되고 있다.
그 이유는 그가 누가복음서(1·2장 제외)와 바울서신들(목회서신과 히브리서 제외)을 모아 최초로 정경목록표를 작성했기 때문이다.
그 후 250여년 동안 여러 회의에서 마르키온의 목록표는 끊임없이 비판과 보충과 수정의 대상이 되었으며,
모든 논의는 카르타고 회의(주후 397)에서 66권을 정경으로 최종 확정함으로써 완전히 종결되었다.
◇제롬(Jerome, 주후 340∼420)
그는 달마디아의 국경 부근에 있는 스트리돈(Stridon)에서 태어났으며,
성경번역사에서 가장 탁월한 업적들 중 하나인 벌게이트(Vulgate)역을 완성하였다.
당시에는 정경이 확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정경과 외경, 위경 사이에 많은 혼선이 빚어지고 있었다.
그는 신구약 성경을 20여년에 걸쳐 세계 공용어였던 라틴어로 번역했는데, 이 벌게이트역은 지금까지 가톨릭교회의 공식 성경으로 사용되고 있다.
세베르스는 제롬을 “밤낮 쉬지 않고 읽거나 쓴 사람”이라고 평하였다.
그는 연구와 집필에 전념하기 위해 스스로 성불능자가 된 극단적인 금욕주의자였다.
알렉산더와 마르키온, 제롬! 그들은 서로 다른 색채로 하나님의 최고 걸작품을 그려낸 엑스트라들이었다.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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