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람(아브라함)이 하란을 떠날 때의 연대 문제



1. 아브람(아브라함)이 하란을 떠날 때의 연대 문제.

(행 7:4)에서 스데반은 "아브라함이 자기 아비 데라가 죽은 후에 하란을 떠나 가나안으로 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창 12:4)을 보면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그의 나이가 75세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창 11:26)을 보면 데라가 아브람, 나홀, 하란을 낳은 때가 그의 나이 70세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기록을 참고해보면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그의 아비 데라의 나이는 145세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창 11:32)을 보면 데라가 죽은 나이는 205세였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보면 "아브라함이 데라가 죽은 후에 하란을 떠나 가나안으로 갔다(행7:4)"는 말은 약 60년 정도의 오차가 발생하게 됩니다.

이로 인해 일부 학자들은 스데반이 실수로 구약을 잘못 인용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이 문제에 대해서 구약 학자인 글리슨 아처는 다음과 같은 견해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창 11:26)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데라는 70세에 아브람과 나홀과 하란을 낳았더라!" 정상적으로는 앞에 거론된 이름이 장자의 이름이지만, 이 규칙에는 예외도 있다. 아브람은 맨 앞에 거론되긴 했지만 장남은 아니었다. 차라리 하란이 데라의 장남이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는 그가 아브람보다 훨씬 먼저 죽은 것을 보아 알 수 있다(창 11:28).

여기에서 아브람의 이름이 먼저 거론된 것은 그가 히브리 민족의 역사에 있어서 가장 중요했고, 또 실제적으로 장자의 역할을 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실제로 아브람은 데라의 막내였을 것이며, 아마도 데라가 아브람을 낳은 때는 그의 나이 130세가 되었을 때일 것이다."

아처의 주장은 데라가 실제로 70세에 낳은 아들은 장자인 하란이었고, 그 후에 태어난 나홀과 아브람은 훨씬 그 후에 낳았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실제로 하란이 아브람보다 훨씬 먼저 죽은 것을 보면 그가 아브람보다 나이가 훨씬 많았다는 가능성은 매우 높습니다. 또한 아브람의 후손, 즉 이삭, 야곱, 요셉, 에브라임 등이 모두 장자를 제치고 차자가 장자권을 계승한 것을 보면, 아브람이 막내로서 장자권을 계승했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습니다.

만일 아처의 주장대로 아브람이 데라의 막내이고, 데라가 아브람을 낳은 때가 그의 나이 130세였다고 추정한다면, 데라가 죽은 후(데라의 나이 205세-아브라함의 나이 75세)에 하란을 떠났다는 말은 모순이 없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2. 세겜 땅을 산 사람은 아브라함이었는가 야곱이었는가?


또 한 가지 스데반의 설교 중에서 문제가 된 것은 "아브라함이 세겜 땅을 샀다"고 언급한 점입니다(행 7:15-16).

그러나 (창 33:19. 수 24:32)을 보면, 세겜 땅을 세겜의 아비인 하몰로부터 산 사람은 야곱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로 인해 일부 학자들은 스데반이 구약을 잘못 인용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 일부 학자들은 다른 주장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아처는 세겜 땅을 아브라함이 먼저 샀으며, 먼 훗날에 야곱이 다시 그 땅을 샀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창 12:6-7)을 보면, 세겜땅은 아브라함이 하란에서 이주해 온 후에 가장 먼저 머문 장소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그 곳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최초의 제단을 쌓았습니다. 그리고 여호와께서는 그에게 나타나셔서 그 땅을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세겜 땅은 이미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시기로 약속된 곳이었습니다. 아브라함 그 곳에 머물면서 제단을 쌓았다는 것은 그 곳에 그의 생활의 본거지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모습을 야곱에게서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훗날 야곱도 삼촌 집에 있는 하란에서 돌아온 후에 가장 먼저 세겜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그 곳에 짐승을 칠 막사를 짓고, 자기가 거주할 장막을 지었습니다. 그리고 그 곳의 땅을 하몰로부터 은 100개를 주고 샀으며, 그 곳에 여호와를 위해 제단을 쌓았습니다(창 33:17-20). 이러한 모습은 아브라함의 모습과 거의 동일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점에서 볼 때에 아브라함 역시 초기에 세겜 땅에 거주지를 마련하고, 그 곳을 일정한 돈을 주고 샀을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그러나 그가 그 곳을 떠나 이주해서 사는 동안 그 곳의 소유권이 무명유실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실제로 야곱도 디나 사건으로 인해 세겜에서 도주하여 벧엘로 간 후에 일정한 기간 동안 세겜 땅의 소유권을 포기했을 것입니다.

이러한 일은 창세기에 종종 나타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그랄 왕 아비벨렉때에 브엘세바의 우물을 팠습니다. 그리고 그는 아비멜렉에게 양 7마리를 주고 그 우물에 대한 권리를 획득했습니다(창 21:27-30). 그러나 그가 그 곳을 떠난 후에 그 우물의 소유권은 다시 그 곳 거민들에게 넘어가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의 아들인 이삭이 그랄 땅에 가서 아버지가 팠던 우물을 다시 팠을 때에, 그 곳 거민들이 그 소유를 인정하지 않아서 큰 문제가 일어났습니다. 그때에 이삭은 그 우물을 그대로 그 땅 거민들에게 주고, 그 곳을 떠나 이동했습니다. 그리고 그 후에 다시 그랄 왕 아비멜렉과 함께 상호불가침 조약을 맺고 다시 브엘세바에서 조약을 맺기도 했습니다(창 26:28-31).

이러한 점들을 생각해보면 세겜 땅은 이미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약속을 듣고, 그 땅을 샀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그 소유권이 유명무실해 졌고, 그것을 다시 야곱이 돈을 지불하고 다시 샀을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스데반은 이러한 전통에 대해서 알고 있었고, 또한 그 전통에 근거해서 유대인들 앞에서 설교를 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존 스토트 목사님은 야곱이 세겜 땅을 살 때에, 이미 할아버지 아브라함이 샀던 땅을 다시 사면서 자기 이름 대신에 할아버지 아브라함의 이름으로 그 땅을 샀을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B.

1. 자유주의 학자들의 입장
그들은 스데반이 실수를 해서 사실을 잘못 인용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입장은 성경의 기록에 오류가 있다는 점을 인정하는 전제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복음주의 학자들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습니다.


2. 복음주의 학자들의 입장

1) 카일-델리취의 입장
카일-델리치의 경우 이 문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는 아브라함이 사라와 롯을 데리고 하란을 떠난 때에 데라가 죽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그는 아브라함이 하란을 떠난 후에 데라는 60년 정도 더 살다가 죽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렇게 보면 데라가 아브라함을 낳은 때가 70세이며, 또 아브라함이 하란을 떠난 때는 데라의 나이 145세(아브라함의 나이 75세)였고, 그 후에 데라가 약 60년 정도 더 살다가 하란에서 죽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 견해는 스데반이 말한 것("데라가 죽은 후에 아브라함이 하란을 떠났다"는 말)과 일치하지 않는 문제가 있습니다.

카엘-델리취의 경우 이 문제를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그는 데라가 죽었다는 말은 그가 육신적으로 완전히 죽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는 데라가 죽었다는 말은 데라의 정신과 육체가 완전히 쇠하여 가족에 대한 영향력이 완전히 사라졌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는 이 때에 이미 가족에 대한 데라의 영향력은 완전히 사라졌으며, 사실상 아브라함이 가족에 대한 주도권을 행사하고 있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그는 이때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데라로부터 불러내어서 인류 구원을 위한 새로운 지도자로 세우셨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그는 데라가 죽은 후에 아브라함이 하란을 떠났다는 말을 데라의 정신적 육체적 영향력이 모두 주도권을 상실한 후에 아브라함이 실제 가정의 계승자가 되어 새로운 사명을 띠고 하란으로 갔다는 의미로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2) 아처의 견해
이 견해는 제가 이미 앞에서 말한 것과 같습니다. 그는 하란을 아브라함의 형으로 보고 아브라함이 태어난 때를 보다 후대로 보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데라는 70세에 아브람과 나홀과 하란을 낳았다"(창 11:26)는 기록을 보고 데라가 아브라함을 낳은 때가 그의 나이 70세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아처는 이를 조금 다르게 해석합니다.

그는 70세에 데라가 아브람과 나홀과 하란을 동시에 낳았을 가능성이 없다고 말합니다. 그는 하란이 데라의 장남이며, 따라서 데라가 70세에 낳은 사람은 장남인 하란이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는 데라가 아브라함과 나홀을 낳은 것은 보다 후대였다고 말합니다. 그는 데라가 아브라함을 낳은 때는 그의 나이 130세였으며, 205살까지 살다가 하란에서 죽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때에 아브라함이 하란을 떠났으며 그때에 아브라함의 나이는 75세였다고 말합니다.

이러한 견해 역시 문제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에 하란이 아브라함의 형이라는 말과, 아브라함을 130세에 낳았다는 말이 나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견해 역시 매우 설득력을 가진 견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 사도행전의 증거>
1) 성령과 지혜에 충만하여 설교한 스데반의 설교의 신뢰성 인정(데라가 죽은 후에 아브라함이 하란을 떠났다는 증거)

2) 성경을 익숙하게 알고 있는 유대인들이 스데반의 설교를 듣고 그의 증거가 틀렸다고 비난하지 않음.

이러한 두 가지 증거는 성경에는 기록되지 않았지만, 스데반과 유대인들이 모두 알고 있는 아브라함에 대한 유대인의 전승이 있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의 경우에는 기록된 구약 성경과 구전으로 전해오는 여러 가지 전승들을 동시에 가지고 있었습니다. 만일 아브라함에 대한 스데반의 증거가 잘못되었다면, 율법에 능통한 유대인들이 가만히 있었을 리가 없습니다.

< 성경 외의 증거>
미드라쉬나 유대인의 역사 기록을 보면 성경에 기록되지 않은 참고 자료들이 많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특히 미드라쉬와 같은 책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아브라함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가족 이야기나, 아버지 데라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아브라함이 고향을 떠나게 된 배경에 대해서 많은 자료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이야기는 구전으로 전해 내려오는 전승들이기 때문에 성경만큼 신뢰할 수는 없지만, 성경에 기록되지 않은 내용을 아는 데에는 좋은 참고 자료가 될 수 있습니다.

유대인의 역사 기록을 보면 위의 문제에 대해 도움이 될 수 있는 자료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제가 이 중에서 몇 가지 자료만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요셉푸스는 가장 유명한 유대 역사학자 중에 하나입니다. 그가 쓴 유대 고대사나 유대 전쟁사는 유대 역사책의 고전으로 간주되고 있습니다. 그가 쓴 유대 고대사를 보면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아브람에게는 두 형제 나홀과 하란이 있었다. 하란은 아들 롯과 두 딸 사래와 밀가를 낳고 우르라고 부르는 갈대아 도시에서 세상을 떠났다. 지금도 이 곳에는 그의 기념비가 남아 있다. 이들은 조카들과 결혼했다. 나홀은 밀가와 결혼했고, 아브람은 사래와 결혼했다. 갈대아를 미워한 데라는 하란의 죽음을 슬퍼하여 가족들을 데리고 메소포타미아의 하란으로 이사했다. 그리고 그 곳에서 20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유대교대사 6장 5절)."

이 기록을 보면 데라가 갈대아 우르를 떠난 이유가 나오고, 나홀과 아브람이 형의 딸, 즉 조카인 밀가와 사래와 결혼을 했다는 사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아는 대로 사라와 아브라함의 나이는 10살 차이입니다. 이는 이삭을 낳았을 때에 아브라함 100세, 사라 나이 90세였던 것을 생각하면 알 수 있습니다.

하란의 딸인 사래가 아브라함과 불과 10살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다는 사실은 형인 하란이 아브라함보다 훨씬 더 나이가 많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아브라함과 조카인 롯과도 큰 나이 차이가 없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 뒤에 요셉푸스는 계속해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브람은 아들이 없었으므로, 형의 아들이요 아내 사래의 형제인 롯을 양자로 맞아들였고, 75세의 나이에 갈대아 땅을 떠나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해서 가나안으로 들어가서 그 곳에 거했으며, 가나안을 후손에게 물려주었다(유대 고대사 7장 1절)."

이 글을 보면 아브라함이 롯을 양자로 받아들인 이유가 기록되어 있으며, 또한 아브람이 하란의 동생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이야기가 역사책에 기록된 것을 보면 이러한 내용은 유대인들에게 잘 알려져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은 스대반의 설교의 내용에 대해 강력하게 항의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러한 점들을 생각해 보면, 아처의 주장이 상당한 설득력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3. 저는 개인적으로 성경의 오류를 전제로 하는 자유주의 학자들의 입장을 지지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이 입장을 받아들이면 성경에 대해서 이렇게 논의할 필요도 없기 때문입니다. 오류 투성이인 성경의 숫자와 연도에 대해서 우리가 왈가왈부하는 것은 아무 가치가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 문제에 대해서 이렇게 논의하는 것도 성경 자체의 내용에 대해서 신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저는 개인적으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해서 한 스데반의 설교 내용을 신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당시 율법에 익숙한 유대인들이 스데반의 설교내용을 지적하지 않은 것을 볼 때에 스데반의 설교 내용이 큰 하자가 없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카일-델리취의 견해가 맞는지 아니면 아처의 견해가 맞는 지 우리는 확인할 수 없습니다. 어느 쪽을 받아들일 것은 개인의 선택에 달려있을 것입니다. 한 가지 중요한 점은 아처의 견해가 모순되거나 무모한 것이 아니며, 나름대로 상당한 근거와 설득력을 가진 주장이라는 점입니다.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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