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의 인구조사 무엇이 문제인가?


감동이나 격동이나 같은 원어라고...
사단이 격동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막지 않고 그대로 두신 것이라고...

여기서 많은 생각을 하게된다. 내가 지금까지 큰 죄를 짓지 않고 지내온 것이 내가 잘나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여러가지 유혹과 죄악과 사단의 격동을 막아주셨기에 그런 죄에 빠지지 않고 지내온 것이다.
주님의 인자하심과 자비하심과 안배로 인해 주님을 찬양합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주님을 경배합니다.  

 

다윗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자신의 군사력인 얼마인지 알아보고 그 군사력에 의지한 것이 다윗의 죄.
이것은 마치 이스라엘 백성이 생수의 근원되신 여호와를 버리고 물을 저축치 못할 터진 웅덩이를 판 것과 같은 것이며 다른 이방신을 선택한 것과 마찬가지이다.

 

여기서 하나님께서 일하실 때는 모든 일이 퍼즐처럼 딱딱 들어맞는 것을 볼수 있다.
반역한 이스라엘을 벌하시기 위해 다윗이 격동받는 것을 허락하시고
또한 다윗이 나라를 이루고 교만해질 지음에 이러한 사건으로 다윗의 마음을 겸손하게 하셨으며
훗날 회개와 죄의 용서가 기초가된 아라우나의 타작마당에 하나님의 성전을 세우신 것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참으로 하나님은 모사이시며 기묘이시다.

 

여기에 또한 인구조사가 왜 죄가 되는지에 대한 설명이 있다.

 

“하나님 백성”(왕의 백성이 아니라)의 인구를 조사하는 것은 재앙을 불러일으킬 뿐이라는 생각이 일찍부터 있었습니다. 여기 말고 출애굽기에서 모세가 인구조사를 할 때도 목숨 값에 해당하는 속전 贖錢을 받친 일이 있습니다(출 30:11-16). 통치자의 인구조사는 일찍부터 하나님의 권한을 무엄하게 침해하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선조들에게 그 후손들을, 그 수가 “셀 수 없이 많은” 백성으로 만들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창13:16, 15:5, 대상27:23- 24).


인구를 조사하는 것은 하나님을 의심하여 하나님의 이러한 약속을 손에 잡히는 것으로 확인해 보려는 행위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또 다른 관점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곧 하나님이 이스라엘 편에 서 계신다면, 수의 많고 적음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입니다(삿 7장). 다윗은 강권정치를 하고 싶은 유혹에 빠져서, 이제는 “자기가 주도하는 전쟁”을 하지 “여호와가 주도하는 전쟁”은 더 이상 하지 않으려고 한 것이 분명하다는 것입니다. 인구조사의 부정적인 측면을 강조한 신학적 성찰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이스라엘에서 백성은 여호와의 백성이지 왕의 백성이 아니라는 것이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바닷가의 모레처럼 하늘의 별들처럼 많게 해주시겠다고 했는데 사람 수를 세보는 행위는 이러한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고 시험하는 행위라는 것이다.


그런데 다윗은 인구조사를 통하여 자신이 실질적인 왕이 되고자 한 것입니다. 인구조사가 왜 하나님께 범죄가 됩니까? 자기가 셈할 수 있는 돈은 자기 돈입니다. 남의 돈을 셈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다윗이 인구조사를 하겠다 하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소유가 아니라 자기소유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대적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못 하고 자신이 직접 챙기고 다스리겠다는 교만이며 불순종입니다. 그리고 그 순간 순종으로 막강하던 하나님의 나라는 급전직하(急轉直下), 불손종의 약한 나라로 떨어지는 것입니다.


이 범죄는 또한 선악과사건과 닮아 있습니다. 바벨탑 사건과도 닮아 있습니다. 스스로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겠다, 하나님을 떠나 스스로 주인이 되겠다는 것입니다. 약삭빠른 요압은 그것이 하나님 앞에 무서운 범죄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다윗을 만류하였습니다. 그러나 한 번 뒤집어진 다윗의 눈은 되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아멘넷)

 

(다음블로거 01041171698)
삼하 24:1 여호와께서 다시 이스라엘을 향하여 진노하사 그들을 치시려고
다윗을 격동시키사 가서 이스라엘과 유다의 인구를 조사하라 하신지라
 
먼저 여기 본문 '이스라엘을 향하여'는 '이스라엘을 대항하여'로 번역되어야 한다.
 
여기 여호와께서 다윗을 감동시키사 대상 21:1 사단이 다윗을 격동하였다.
감동이나 격동이나 둘 다 같은 단어이다.
이 때에 하나님께서 친히 다윗을 격동시켜 범죄케 하신 것이 아니라
사단의 격동함을 막지 않으시고 그대로 두신 것이다.
 
그렇다면 본문의 의미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죄를 벌하시려고
그 지도자 다윗이 사단의 유혹에 빠짐을 허용하셨다는 뜻이다.
 
여기 하나님께 진노하신 이스라엘의 죄가 무엇인지 확실하지 않지만
그들이 일시적으로 압살롬의 반역을 따라 갔던 것(삼하 15:12)과
세바의 반란을 지지하였던 것(삼하 20:1-2) 등을 생각해볼 수 있다.
 
사실 다윗이 인구조사를 명령한 것은
앞으로의 전쟁을 대비하여 군인의 숫자를 파악하고자 함이었을 것이다.
그 일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그 일을 명령한 다윗의 마음 자세가
하나님보다 군인들의 수를 더 믿고 또 교만해진 것이 잘못이다.
하나님을 기뻐하고 자랑해야 할 그가 왜 이 세상 세력을 기뻐하고 자랑하려고 하는가?
 
인구조사에 대한 마음이 들어올 때 다윗은 그것을 잘 분별하여 거절했어야 한다.
늘 전쟁에서 군인의 수가 많아서 승리한 것이 아니라
주님의 능력과 도우심으로 승리하였다면 말이다.
 
그런데 다윗은 요압을 보내어 인구조사를 했다.
요압은 다윗에게 하나님께서 백성의 수를 100배나 증가하게 해 주실 터인데
어째서 인구조사를 하느냐고 만류했지만 소용없었다.
결국 인구조사는 다윗의 교만 또는 자만심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바이블 나라

Q. 사무엘하 24장과 역대상 21장을 보면 다윗이 한 인구 조사에 다윗에게 감동을준 것이 다르게 나와있습니다(하나는 하나님, 하나는 사단으로).

이에 대해 알기 쉽게 설명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A.


1. 대상 21장을 보면 "사단이 다윗을 격동하여 이스라엘을 계수하게 했다"고 기록하고 있는 반면, (삼하 24장)에서는 다윗을 격동한 주체가 "하나님"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기록의 차이에 대해서 어떤사람은 (삼하 24장)의 기록이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Lange).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유대인의 신관(神觀)에 비추어 볼 때 올바른 것이라고 보기는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사단 역시 하나님의 허락을 받아서 활동하는 존재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욥 1:12; 삼상 26:19 참조).

하나님은 사단을 포함한 세상의 모든 것을 주관하고 섭리하는 분입니다(욥 12:23; 시 104:9-31; 사 50:2-3; 갈 1:15-16). 그러므로 사단이 하나님의 허락 하에서 다윗을 격동했단느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이 두 구절은 잘못된 것이 아니며, 같은 사건을 서로 다른 관점에서 기록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Pulpit). 여기에서 우리는 사단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도구로 사용되었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2. 사단은 원래부터 의로운 성도들을 격동하고 '고소'하는 일을 해왔습니다.


하나님께서 욥을 칭찬하실 때에 사단에게 하나님께서 욥을 축복해 주셨기 때문에 그가 경건한 것이라고 항의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사단에게 엽을 시험해 보도록 허락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단의 유혹 과정에서 욥은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받았으며, 넘어지기도 하고 실족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하나님은 이러한 연단을 통해서 욥의 믿음을 정금과 같이 단련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로 인해 그는 더 큰 축복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3. 하나님은 다윗에 대해서도 그의 믿음을 칭찬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단은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큰 축복을 주셨기 때문에 다윗이 경건한 것이라고 도전했을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경우 하나님은 얼마든지 사단에게 다윗을 시험해 보라고 허락해 주셨을 수 있습니다. 이 경우 하나님께서 사단에게 다윗을 시험하도록 허락하신 일은 다음과 같은 여러 가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것으로 보입니다.


1) 압살롬의 난과 세바의 난이 일어났을 때에 하나님께서 기름부어 세우신 종 다윗을 거역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형벌하기 위해서(삼하 24:1).

  (삼하 24:1)을 보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향하여 진노하사 저희를 치시려고" 다윗에게 인구조사를 하게 하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구절은 (삼하 24:2-9절)에 나오는 다윗의 인구 조사가 "범죄한 이스라엘을 징계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에서 나온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기름버어 세운 종을 반역한 이스라엘을 징계하기 위해서 다윗이 사단의 유혹에 빠지는 것을 방임하셨을 수 있습니다(대상 21:1).

이스라엘은 압살롬의 난(15:7-12)과 세바의 난(20:1, 2)이 일어났을 때에 하나님이 세운 종을 쫓아내고 반역자를 왕으로 세웠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이러한 반역적인 행동에 대해 징계하시려고 했을 수도 있습니다.


이 일을 위해서 하나님은 '사단이 다윗을 격동하도록 허용하셨습니다. 그리고 다윗은 이러한 사단의 유혹에 넘어가서 교만한 일을 행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로 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염병으로 죽고 말았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다윗의 인구 조사는 범죄한 이스라엘을 징계하기 위해서 사단의 격동과 교만한 마음을 품은 다윗을 통해 이루어진 사건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2) 형통하는 다윗 왕이 교만하지 않도록 만들기 위해서.

또한 하나님께서 이러한 일을 허락하신 것은 다윗의 절정기에 그가 교만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인구조사가 있었던 때는 다윗이 외적인 모든 주변국가를 정복하고, 네적으로 일어난 반역을 모두 잠재우고 태평 성대를 누릴 때였습니다. 대부분 이러한 때에는 아무리 경건한 자라도 교만해서 넘어지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이 사건을 통해서 다윗이 교만하지 않기를 원하셨을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욥의 신앙을 연단하기 위해서 사단을 통해 욥을 연단했듯이, 다윗을 겸손하기 위해서 사단에게 시험을 허락했을 수도 있습니다.


3) 궁극적으로 성전 건축을 이룰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기 위해서
  다윗이 인구조사를 한 후에 속죄를 드리기 위해서 제사를 드린 타작 마당은 장차 성전이 세워질 장소였습니다. 하나님은 이 사건을 통해서 이스라엘의 죄를 용서 받은 곳에 성전을 지을 부지를 마련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하심으로 장차 성전이 지어졌을 때에도 이스라엘 사람들이 자신의 의로움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성전을짓게 되었다는 사실을 기억하게 해 주셨을 지도 모릅니다.
 
민영진 목사



다윗의 인구조사가 왜 문제가 되는가?

구약 성서를 읽다가 보니까 다윗 왕이 치세 기간 동안 인구조사를 한 일이 있는데,

그런 인구 조사는 요즘도 나라들마다 일정 기간을 두고 하는데,

성경은 다윗의 인구조사를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고 있습니다.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안산의 김현수


김현수 님께,
김현수 님께서 물으신 내용은 사무엘하 24장과 역대상 21장에 나옵니다.

같은 사건을 서로 다른 두 책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두 곳에서 다 다윗 왕의 인구조사를 부정적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실 더 중요한 것은 인구조사 그 자체가 아니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셔서 그 백성을 치실 어떤 구실을 잡으시려고 다윗을 부추기시어서 다윗으로 하여금

인구조사를 하게 했다는 그 이야기부터가 예사롭지 않습니다.


다윗이 인구조사를 한 것 때문에 하나님께 혼납니다마는 그것은 다윗이 스스로 그렇게 한 것이라기보다는 하나님께서 다윗을 부추기시어서 그렇게 하게 하신 것이라고 볼 때 우리는 하나님의 이해할 수 없는 마음을 문제 삼을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왕은 자기의 장군 요압에게 인구조사를 지시합니다. 그러자 요압은 그 일을 말립니다. 여기에 오늘 우리 질문에 대한 어떤 시사하는 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여하튼 요압과 군대 사령관들은 왕의 뜻을 꺾지 못합니다. 왕을 설득시키지 못합니다. 그래서 왕명을 따라 아홉 달 스무날 동안 인구조사를 실시합니다. 군에 징집할 수 있는 인구가 남북 합쳐 1백 30만이나 된다는 사실을 확인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본문에 보면 다윗은 이렇게 인구를 조사하고 난 다음에 스스로 양심의 가책을 받았다고, 그래서 다윗이 주님께 자기가 이러한 일을 해서, 큰 죄를 지었다고, 그러나 이제 자기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빕니다. 참으로 자기가 너무나도 어리석은 일을 했다는 것입니다(삼하 21:10).


인구조사에 무슨 문제가 연관되어 있기에 하나님도 그 문제를 가지고 다윗을 부추기고, 다윗의 장군들은 무엇을 벌써 알고 있기나 한 것처럼 인구조사를 말리고, 그 조사를 끝내놓고 다윗은 자신의 죄를 자백하고, 하나님은 그 죄를 벌하시려고 예언자 갓을 시켜 다윗에게 받을 벌 세 가지를 제시하면서 그 가운데서 하나를 택하라고 하시고.


1) 나라에 일곱 해 동안 흉년이 들게 한다.
2) 왕이 자기 목숨을 노리는 원수들을 피하여 석 달 동안 도망을 다닌다.
3) 나라에 사흘 동안 전염병이 퍼진다.


다윗은 세 번째 재앙을 택합니다.

나라에 사흘 동안 전염병이 퍼져 백성 가운데서 칠만 명이 죽습니다. 다윗 왕은 아라우나에게 그의 타작마당과 소를 사서 하나님께 제단을 쌓아,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니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들어 주셔서, 이스라엘에 내리던 재앙이 그쳤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무엘하 24장 이야기의 대강입니다.


인구조사가 왜 문제가 됩니까? “하나님 백성”(왕의 백성이 아니라)의 인구를 조사하는 것은 재앙을 불러일으킬 뿐이라는 생각이 일찍부터 있었습니다. 여기 말고 출애굽기에서 모세가 인구조사를 할 때도 목숨 값에 해당하는 속전 贖錢을 받친 일이 있습니다(출 30:11-16). 통치자의 인구조사는 일찍부터 하나님의 권한을 무엄하게 침해하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선조들에게 그 후손들을, 그 수가 “셀 수 없이 많은” 백성으로 만들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창13:16, 15:5, 대상27:23- 24). 인구를 조사하는 것은 하나님을 의심하여 하나님의 이러한 약속을 손에 잡히는 것으로 확인해 보려는 행위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또 다른 관점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곧 하나님이 이스라엘 편에 서 계신다면, 수의 많고 적음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입니다(삿 7장).


다윗은 강권정치를 하고 싶은 유혹에 빠져서, 이제는 “자기가 주도하는 전쟁”을 하지 “여호와가 주도하는 전쟁”은 더 이상 하지 않으려고 한 것이 분명하다는 것입니다. 인구조사의 부정적인 측면을 강조한 신학적 성찰을 볼 수 있습니다. 


민영진 목사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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