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어있는 세계사] 천년 번성한 마야문명도 가뭄에 무너졌어요                                

우리나라는 최근 들어 일찍 찾아오는 폭염과 지각 장마 등의 영향으로 가뭄 피해가 심해지고 있어요.

지구온난화로 인해 북극의 빙하가 녹아내리는 정도가 매년 최고치를 경신하는 등 기후변화로 인해 나타난 현상이에요.

날씨와 기후를 예측하는 기술이 지금보다 뒤처졌던 과거에는 기후변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 멸망의 길을 걷기도 했는데요.

오늘은 가뭄으로 몰락한 고대 문명에 대해 알아볼게요.

◇평균기온 하락으로 쇠락한 아카드

최초의 제국으로 알려진 아카드 문명의 석판.
최초의 제국으로 알려진 아카드 문명의 석판. /위키피디아


기원전 2350년경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 사이 비옥한 땅에 '아카드'라는 도시국가가 세워졌어요.

아카드는 메소포타미아 지역을 처음으로 통일했고 150여 년 동안 번영했죠.

그런데 기원전 2150년경 갑자기 멸망했어요.

별다른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이민족의 침입으로 멸망했을 것이라 추측만 했죠.

1993년 미국과 프랑스 공동 연구팀이 폐허가 된 아카드 제국의 도시를 조사하기 시작했어요.

그들은 기원전 2200년경부터 300여 년간 이 지역의 기후가 건조해져 극심한 가뭄이 지속됐고,

지구의 평균기온이 2도나 낮아져 농사를 짓기 힘들어졌다는 사실을 확인했어요.

'비옥한 초승달 지대'라고 불렸던 곡창지역은 제국의 북부 지역에서 시작된 가뭄으로 인해 점차 농사를 지을 수 없는 땅으로 변했어요.

그러자 남쪽으로 인구의 대이동이 이루어졌고, 기존의 도시는 텅텅 비게 되었죠.

인구가 급증한 남부지방에서는 농업이 확장되고 관개시설이 늘어났어요.

로 인해 나무를 대량으로 소비하면서 삼림이 감소해 사막화가 진행됐어요.

사람들은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다른 땅을 찾아 또다시 떠나게 돼요.

인구가 곧 국력이었던 시대에 인구가 감소하게 된 아카드 제국은 쇠약해질 수밖에 없었어요.

그리고 결국 이민족의 침입을 받아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지게 된 것이죠.

◇어느 날 사라져버린 마야 문명

세계의 모든 문명이 큰 강과 평야에 위치한 것과 달리 고(古) 마야 문명은 열대 밀림에 자리 잡았지만, 찬란한 문명을 꽃피웠어요.

마야인들은 기원전 500년경부터 석판에 글을 썼고, 수백만 명이 관개시설을 만들어 농사를 지었어요.

그들의 거주지 유적을 보면 인구밀도 1㎢당 500명 이상으로 굉장히 높았어요.

도시에는 신전과 궁전 등 3000개가 넘는 석조 건축물이 있었고,

1년을 365.2420일로 계산하여 개기월식을 정확하게 예측할 만큼 수학과 천문학도 발달했었죠.

멕시코 캄페체주의 고대 마야 도시는 정글 깊숙한 곳에 있어요. 고(古) 마야 문명 역시 가뭄 때문에 급격히 몰락한 것으로 밝혀졌어요.
멕시코 캄페체주의 고대 마야 도시는 정글 깊숙한 곳에 있어요. 고(古) 마야 문명 역시 가뭄 때문에 급격히 몰락한 것으로 밝혀졌어요. /위키피디아


그랬던 마야인들이 기원후 900년경 갑자기 사라져버렸어요.

16세기에 스페인이 침공해왔을 때 마야의 도시들은 이미 몇백 년 동안 버려져 있던 상태였죠. 마야 문명이

갑자기 사라진 이유에 대해 고고학자들은 반란이나 전염병 등을 추측했지만 확실한 근거는 없었어요.

2003년 스위스의 하우크 박사 연구팀이 마야 문명 유적지가 있는 유카탄반도 근처의 바닷속 퇴적물을 조사한 결과를 발표했어요.

하우크 박사는 마야 문명 유적지에는

티타늄이 많이 포함되어 있는데 비가 많이 온 해에는 퇴적물에 티타늄이 많이 포함되어 있고,

가뭄이 든 해에는 티타늄의 양이 줄어든다는 사실을 알아냈어요.

그 사실을 바탕으로 810~910년 사이의 강수량이 다른 시기보다 적었고,

중간중간에 극심한 가뭄이 찾아와 마야 문명을 붕괴시켰다고 결론지었죠.

◇'죽음의 신'도 무릎 꿇린 기후변화

이집트가 사막지대임에도 기원전 3200년경 문명이 들어설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나일강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매년 6~10월 나일강은 홍수로 범람해, 상류에서 하류로

비옥한 흙이 운반돼요. 홍수를 겪고 난 땅은 농작물을 키우기에 좋은 토지로 바뀌었죠.

따라서 가뭄은 농사와 직결된 문제였어요. 이집트인들은 건기에 발생하는 나일강의 가뭄을 죽음으로, 우기의 범람을 부활로 인식했어요.

이 같은 사고방식 때문에 그들은 죽음과 부활을 주관하는 '오시리스' 신이 나일 강의 범람을 책임진다고 생각해 태양신 다음으로 좋아했어요.

그래서 신전을 짓고 성대한 제사를 지내며 풍년을 빌었죠.

기원전 27세기~기원전 21세기에 거대한 피라미드를 지을 정도로 번성했던 이집트 고왕국은 나일강 상류의 가뭄으로 농경지가 줄어들면서 몰락하고 말았어요.
기원전 27세기~기원전 21세기에 거대한 피라미드를 지을 정도로 번성했던 이집트 고왕국은 나일강 상류의 가뭄으로 농경지가 줄어들면서 몰락하고 말았어요. /카이로=노석조 기자


죽음의 신도 기원전 2200년 무렵부터 시작한 기후변화 앞에서는 무기력했어요.

나일강 상류에서 수분 증발이 심해지면서 강의 수량이 크게 줄었죠.

강의 폭은 좁아졌고, 삼림이 점차 사라졌어요. 나무가 사라질수록 사막화도 빠르게 진행돼 농사짓기가 힘들어졌어요.

식량이 부족해진 이집트인들은 남쪽으로 이동해 아프리카 대륙 중앙부의 원주민들과 섞이거나, 북쪽으로 이동해 지중해 연안에 정착했어요.

당시 이집트는 고왕국 시대(기원전 2686년~기원전 2181년)였어요.

후변화로 인한 인구 이동과, 지방의 귀족들과 승려들이 파라오의 권력에 도전하는 혼란스러운 상황이 더해져

결국 이집트 고왕국은 쇠락했고 동쪽 이민족의 침입으로 멸망했어요.

물론 이 제국들의 멸망 원인을 단순히 '기후변화로 인한 가뭄' 하나로만 볼 수는 없지만 가뭄이 몰락에 기여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에요.

반복되는 가뭄을 제대로 극복하지 못하면 국운이 쇠한다는 사실 - 그들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우리가 마음속에 새겨야 할 교훈 아닐까요?


 


공명진·숭문중 역사 교사 기획·구성=박승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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