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에 대해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사람은 과연 어떻게 되는가?



들어가면서

어떤 사람이 전도를 하다가 한 철학 교수를 만났다. 그 철학 교수는 그 전도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만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만일 한번도 복음에 대 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들어보지 못하고 죽은 사람들을 지옥에 보내거나 심판을 한다면 그런 하나 님은 불공평한 하나님이 아니오? 그런 불공평한 하나님을 과연 믿을 수 있고 또 믿으라고 권면할 수 있는거요?”

이 질문은 그리스도 없이는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기독교인들의 주장에 정면으로 반박을 가하는 난 처한 질문이다. 만일 여러분이 위의 전도자라면 그 철학교수에게 과연 어떤 방법으로 이 질문에 답을 해주겠는가?


사랑의 하나님, 공의(公義)의 하나님


먼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가장 큰 두드러진 성품, 즉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에 대해 생각해 보아야 한다. 성경의 하나님은 창조주로서 인간을 포함한 모든 만물의 창조주이시다. 그리고 그분은 창조 후 피조 세계에서 손을 뗀 채 방관하시는 분이 아니라 자신이 창조한 모든 만물을 직접 창조 목적에 부합하게 운행, 유지, 관리, 보존하시는 하나님이시다. 따라서 하나님은 복음을 듣고 예 수를 믿는 사람들 못지않게 복음을 듣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똑같은 관심과 사랑을 가지 고 계신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벧후 3:9). 즉, 하나님의 사랑은 유대인이나 기독교인들 뿐만 아니라 불신자를 포함해 복음을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사람들에게 이 르기까지 세상의 구석구석 모든 사람에게 미치고 있다(겔 33:11, 요 3:16). 그러므로 하나님은 사람이 멸망하는 것을 원치 않고 회개하여 구원에 이르기를 원하시는 사랑의 하나님임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사랑의 하나님이 과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들어보지 못한 사람들을 심판하실까? 이 질 문과 관련해서는 하나님의 또 다른 성품인 공의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 하나님이 공의로우시다고 할 때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무엇이든지 공평하며 따라서 인간의 입장에서 보아 옳다거나 그르다거나 아니면 불공평하다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하나님이 복음을 들어보지 못하고 죽은 사람들에 대해 어떻게 행하시든지 간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행하시는 그 판단과 행위는 절대 공평한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된다.


아브라함은 소돔성을 멸망시키려는 하나님의 천사들에게 하나님의 공의를 이렇게 말하고 있다: ‘주 께서 …악인과 의인을 함께 죽이심은 불가하오며 의인과 악인을 균등히 하심도 불가하나이다. 세상을 심판하시는 이가 공의를 행하실 것이 아니니이까?’(창 18:25). 즉, 하나님의 공의적 측면에서 하나님 이 제시한 기준에 미치지 못한 사람들을 하나님이 심판하시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인 것이다. 그 러면 이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는 어떻게 서로 양립될 수 있는가? 그것은 하나님께서 죄에 빠진 인간 을 공의로 심판하셨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한 사랑으로 그 죄를 용서받을 수 있는 길을 열 어주신 것에서 해결된다.
그렇다면 복음을 들어보지 못한 사람들이 심판받는 것은 누구의 책임인가?



하나님은 자신을 모든 인간에게 계시하셨다.


1. 자연계시
하나님은 창조를 통해, 그리고 인간의 양심과 전통을 통해 세상의 모든 인간에게 자신을 계시해 주셨다. 하나님은 먼저 자연계시(일반계시), 즉 피조세계를 통해 인간에게 자신을 계시하셨다: ‘창세 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사람들이) (하나님이 없다고)핑계치 못할지니라’(롬 1:20). 이것은 우 리가 어떤 예술 작품을 보면 그 예술작품을 만든 작가의 존재와 성품을 알 수 있는 것처럼 우주와 자연만물을 보면 하나님이 존재하시며 그분의 능력과 성품들을 알 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


좀더 쉽게 말하면 우주와 그 우주 속에 우리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창조주 하나님의 존재 에 대한 증거라는 것이다.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 도다’(시 19:1). 교회 문턱에도 가보지 않은 사람이 ‘교회 안에 하나님이 계시는지 안 계시는지 모 르지만 나는 산에 오를 때마다 그 산의 위용과 아름다움 앞에서 이 산을 만든 창조자가 있음을 실감 한다.’는 고백은 결코 틀린 말이 아니다.


2. 인간의 양심
하나님은 인간의 양심에 빛을 비추어 자신을 계시하셨다.
오스왈드 샌더스(J. Oswald Sanders)는 비기독교인(Heathen)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그들이 모세의 율법이나 그리스도의 가르침 같은 것은 것은 받지 못했지만 그들이 쓴 글들을 보면 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양심에 빛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보자.
-‘하나님은 그대 곁에, 그대와 함께, 그대 안에 계시도다. 거룩한 영이 그대 안에 계시나니 그분은 우리가 행하는 모든 선악의 감찰자요 인도자시라.

  하나님 없는 선인(善人)은 없도다. 우리 모두는 악 하니 다른 사람에 대하여 지적한 그 잘못은 곧 자신의 품안에서도 발견되느니라.’ :세네카
-‘모든 인간은 인생 길을 더듬어 찾아 나가고 있다.’ :루크레티우스
-‘나는 분명히 더 나은 길을 알고 있고 확신하고 있지만 지금 내가 가는 길은 그 길이 아니로다.’ :호레이스
-‘나는 내 영혼의 모든 악과 정욕을 제어할 힘을 내 손에 가지고 있으므로 내가 마음만 먹는다면 나는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힘은 신(Nature)이 인간에게 준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마르쿠스 아 우렐리우스
-‘내가 죄인이요 내 하는 일이 죄이며 내 정신이 죄로다 내가 죄 중에 잉태되었도다.’ :힌두교 경전

이같은 글들은 하나님께서 인간의 양심에 계시의 빛을 비추셨다는 성경의 구절을 뒷받침해준다. ‘그 이유는 하나님을 알만한 것이 저희(인간)속에 보(였기 때문)이니라’(롬 1:19). ‘(율법이나 그리스도 의 가르침을 들어보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송사하며(옳고 그름의 판단을 요구하며) 혹은 변명하여(그 판단에 대한 이유를 대며)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니라’(롬 2:15).
샌더스(Sanders)는 이것을 이렇게 말하고 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자신을 계시하셨다. 그래서 인간은 그 마음 중심에 하나님의 법에 대한 참 지식을 가지고 있다(행 14:17). 죄에 대한 희생제사 의식은 아벨시대 때부터 지금까지 인간 누구에게 나 보편적인 개념으로 전승되어 왔다. 이것은 비기독교도들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그들도 죄책감 에 사로잡혀 있고 죄 가운데 있다는 것을 스스로 드러내고 있는데 그것은 그들이 죄를 용서받기 위 하여 수많은 고행을 하고 순례를 하며 금식을 하고 자기학대나 금욕생활을 하는데서 알 수 있다. 그 들은 자신들의 미래가 기쁨일지 슬픔일지는 하나님께 달려있다고 믿고 있으며,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자신들의 운명이 결정된다고 믿고 있다.”
하나님이 이렇게 모든 인간에게 자신을 계시해주셨다면 왜 모든 인간이 구원받지 못하는가?


어떤 인간도 하나님이 계시해 준 빛대로 살지 못했다.


‘비록 하나님을 알고는 있었지만 그 아는 만큼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고 하나님을 썩어 없어질 짐승이나 벌레의 형상으로 바꾸어 놓은 사실을 지적하며 그런 자들은 진리를 거스리는 자들로 하나님의 심판이 임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롬 1:18~20). ‘의인은 없나니 단 한명도 없으며 하나님에 대해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다’(롬 3:10~11)고 선언하고 있다.


이 성경의 선언은 우리의 경험에서도 증명되고 있다. 우리들 중 누구도 완벽하게 살고 있으며, 또 흠없이 살아 왔다고 주장할 수 있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간이면 누 구나 솔직하게 고백하는 것이다. 이 말은 결국 인간은 다 죄인이며(롬 3:23), 따라서 모두 다 하나님 의 정죄의 대상이라는 말이다(롬 6:23). ‘복음을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사람들’이라는 말은 ‘하나 님에 대한 계시의 빛을 받았으나 그 계시의 빛을 거부하여 그 빛대로 살지 못한 사람들’이란 뜻으 로 이해해야 한다
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계시의 빛을 비추어주었음에도 그 빛대로 살지 못한 것은 인간의 책임이지 하나님의 책임이 아니며 따라서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정당한 것이다.


그러면 그 계시의 빛을 거부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어떻게 하시는가?


하나님은 계시에 반응하는 사람들에게 자신을 점진적으로 더 분명하게 계시해주신다.


하나님의 계시의 빛에 반응을 하는 사람은 그 계시대로 완벽하게 살았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 을 영화롭게 하기로 작정했기 때문에 하나님으로부터 더 많은 계시의 빛을 받게 된다.


이것에 대한 예가 사도행전 8장에 나와있다. 에디오피아 내시는 자신이 받았던 계시의 빛에 반응을 했고, 따라서 유대교로 개종했으며, 성경을 알게 되었음에 틀림없다. 그는 진지하게 진리를 추구했으 며, 하나님은 그에게 빌립을 보내어 복음을 듣게 했으며, 그리하여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되었다.


고넬료도 분명히 보다 많은 계시의 빛을 받기 위해 기도했으며 기도 응답의 결과로 베드로가 그를 찾아가게 되었다. 그 역시 비유대교적 배경의 사람이었지만 후에 유대교 교리의 상당부분을 접 하게 되었고 마침내는 복음에 대해 듣게된 것이다.


성경은 바로 이 점을 일관되게 가르치고 있다. 바울은 하나님의 의(義)가 믿음에서 믿음으로 나타나 있다고 말한다. 즉, 하나님의 의에 대하여 믿음으로 반응을 보이는 사람은 더 깊은 믿음으로 점차 인 도된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롬 1:17). 이것이 단순히 이론이 아니라는 사실은 오늘날의 사람들의 생 활 속에서도 발견되고 있다.


남 태평양으로 선교사로 나갔던 대학생선교회(C.C.C.) 선교사들 중 한 사람이 인도네시아의 이리얀 자야(Irian Joya)에서 돌아와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이전에 이곳으로 파송되었던 선교사들은 극심한 언어장벽 때문에 도무지 이 섬에서 사역을 할 수가 없었다. 데이브 선교사가 비행기에서 내리자 한 원주민 청년이 그에게로 달려오더니 자신을 소개하고 그와 함께 일하기를 간청했다. 그 후 사 개월 동안 그 청년은 데이브가 집을 짓고 정착할 때까지 그 의 언어 교사 노릇을 했다.


그 덕에 데이브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빠른 시간 안에 그 어려운 언어를 마스터할 수 있었다. 그 청년이 데이브에게 다음과 같은 얘기를 들려준 것은 그 후 얼마의 시간이 지 난 후였다.


데이브가 그 마을에 오기 바로 전에 그 청년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그 아버지는 죽기 전에 자기 아 들을 불러놓고 그가 본 환상에 대해 들려 주었다. 그 환상에서 한 백인이 자기 마을로 들어오더니 하 나님에 대한 진리를 설명해주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아버지는 그 백인의 모습을 설명해주면서 그 백인이 마을에 나타나거든 그가 생명의 메시지를 전해주고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길을 설명해줄 것이 므로 그를 도와 언어를 가르쳐주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청년은 아버지의 말에 순종하여 데이 브가 그 섬에 내리자마자 달려왔던 것이다. 데이브가 그곳에서 첫 선교임기를 보내는 동안 약 10,000 명이 회심을 했다.

하나님은 믿음으로 반응하는 사람들에겐 자신을 계시해주신다. 복음은 반응하는 사람들에겐 결코 감 추어져 있지 않다.



나오면서


예수 그리스도 없이는 어느 누구도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이 기독교의 기본 진리다. ‘나는 길이 요 진리요 생명이니 누구든지 나를 통하지 않고는 하나님 아버지께로 갈 수가 없다’(구원 받을 수 없다)(요 14:6). ‘(예수 그리스도 외에)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다’(행 4:12).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도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여러 이론들을 내세우고 있지만 그러나 성경은 이 주제와 관련된 모든 의문 에 대해서 다 답하고 있지는 않으며 또 그같은 이론들에 대해 어떠한 뒷받침도 하고 있지 않다. 아무 런 편견적 이론 없이 성경에 접근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예수 그리스도 없이는 아무도 구원을 얻을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될 것이다.


오진탁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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