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부장, 백부장, 오십부장, 십부장의 의미


백부장과 천부장

출18:24-27(To), 마5:21-48(신약)


* 신약 마5:21-48


주님이 십계명에 대한 말씀을 산상수훈에서 아주 깊은 내용으로 가르치고 계신다.

그런데 주님이 아주 강력하게 말씀을 하신다.


29 만일 오른 눈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백체 하나가 없어지고 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유익하며


저도 이런 체험이 있는데, 정말 이 눈을 빼버리고 싶어서 굉장히 고통스러워했던 기억들이 있다.

왜 그러냐면, 사람이 실제 정신이 들고나면, 온 몸이 지옥에 던지우는 날이 온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사람이 정신이 들기 전에는 온 몸이 지옥에 던지워진다는 것을 평소에 모른다.

사람의 특징이라는 것, 육신의 특징이라는 것은, 육신은 하루살이이다.

바로 먹을 것이 앞에 있으면 먹고 싶어 안달을 한다.

육신, 감각의 특징이라는 것은 현재에 반응하고 만족하려고 할뿐이다.


그랬기 때문에 육신은 앞으로 무엇이 어떻게 될까, 이루어질까를 생각을 안 한다.

네가 천년만년 살 줄 알았냐라는 소리를 하기도 한다.

육신은 생각을 못하고, 마음으로 살지 못한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은,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유익하다고 하신다.


눈 하나를 빼는게 온 몸이 지옥에 던지지지 않는 것보다 유익하다는 것이다.

주님이 사실 육신을 가르치기 위해서 유익의 개념을 도입하신다.


יִתְרֹו 이트로 : 유익


왜 주님이 굳이 이런 표현을 쓰시냐면, 육신은 잘 가르치치기가 어렵다.

육신은 늘 자기의 만족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말을 해도 잘 못 듣는다.

아무리 이야기를 해도, 지금 당장 나에게 먹을 것을 주지 않으면, 죽을 것 같은 것이다.

하루살이나 불나방 같은 것이다.

아무리 지옥 이야기를 해도, 육신은 잘 듣질 않는다.

아무리 지옥 이야기를 해도 길어도 4-50년 후의 일이다.

이것은 육신에게는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육신은 내일 일도 모른다. 아는 것은 지금 내가 감각하는 것 뿐이다.

육신은 일 년 후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지금 내가 감각하는 것만을 안다.

하물며 4-50년 후에 무슨 일이 발생될까, 육신은 그때가서 이럴 줄 몰랐다고 발버둥친다.

당연히 육신은 몰랐다.


그래서 아무리 지옥 이야기를 해도, 육신은 알아듣지를 못한다.

그런데 육신이 알아들을 수 있는 단 하나의 방법이 있는데, 너에게 유익이 되지 않는다고 하면 육신은 정신이 번쩍 난다.

어떤 것을 투자하는데, 너에게 유익이 되지 않는다고 하면, 정신이 번쩍 나는 것이다.

이것은 아무런 유익이 되지 않고, 아무런 이익이 남지 않는다.

이트로라는 것은 유익의 개념이다.


왜 주님은 이트로에 와서 유익을 생각할까? 사람은 원래 받는 의지로 이루어져 있다.

사람은 육신을 기초로 하고있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왔다고 하더라도, 육신을 기초로 하고 있는 것이 어쩔 수가 없다.

육신을 기초로 하고 있다는 것은 받는 의지를 말한다.


사람들이 말하는게, 너 신앙이 좋다는데, 안 먹고 살 수 있어? 라고 치고 들어오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면 넌 기도만 하고 살라는 것이다.

이 사람들은 다 육신을 가지고 있지 않냐고 치고 들어오는 것이다.

사람은 받는 의지가 기초이다.

사람들이 주는 삶을 살고 싶지만, 내가 받으려고 한다


그런데 애굽에서 나왔다는 것이 주님이 받는 의지를 소멸시킨 것이 아니다.

사람은 받는 의지가 없으면 살 수 없다.

이게 사람의 기초이기 때문이다.

애굽, 바로라고 하는 것은 받는 의지가 무엇을 위해서 사용하느냐는 것이다.

지난 토라포션에서 아말렉을 공부했다.

아말렉 족속은 자기의 받는 의지를 자기를 위해서 사용하는 것이다.


지나가는 여인을 보고 음욕을 품었다.

왜 이것에 대해서 주님은 뭐라고 하시는가? 왜 이게 잘못된 일일까? 내가 피해를 준 것도 아니고 말이다.

이거 가지고 지옥까지 보내는가?


사람들의 모든 생각의 관점이 자기 자신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나라는 존재 자체의 목적이 뭐냐? 다 나를 위해서 사용한다는 것이다.

그 존재가 어떤 존재인지 상관없이, 나의 만족을 위해서 사용해버리고 만다.

하나님의 사람이던 상관없다.

그 존재를 나를 위해서 사용하고 만다.

지나가는 여인을 정말 하나님 나라로 보내기 위해서 음욕을 품은 것이다.

정말 구원받기를 바라서?

구제하기 위해서? 그 여인의 필요를 채워주기 위해서? 아니다.

그냥 자기만을 위해서 사용할 뿐이다. 이것을 악이라고 하고, 아말렉, 히틀러라고 한다.

자기를 위해서 사용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것과 대대로 싸우신다.

이것을 여호와 니씨의 하나님이라고 한다.

נִסִי 니씨 = נֵס 네쓰 : 장대


주님이 장대에 달리신 것은, 우리 대신에 십자가 위에서 죽으신 것이다.

인간이 십자가를 져야하는 중요한 이유는, 나의 받는 의지를 나를 위해서 사용하지 않겠다고 하는 것이다.

만약에 나의 이 받는 의지를 다른 사람을 위해서 사용하려는 마음을 품으면, 그 사람은 하나님 나라에 간다는 것이다.

아주 간단하다


지옥은 하나님이 보내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위해서 모든 다른 존재를 사용하고 이용하려는 것이다.

자기 만족, 기쁨을 위해서이다.

이런 자들이 모이는 곳이 지옥이다.

그냥 두어도 그리로 가게 되어있다.

 왜냐면 그 사람이 원하는 것이 그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주님은 너의 마음과 목적을 다른 사람에게 두라고 하신다.

이것이 이트로이다.


* 토라포션


출18

13 이튿날 모세가 백성을 재판하느라고 앉아 있고 백성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모세 곁에 서 있는지라


14 모세의 장인이 모세가 백성에게 행하는 모든 일을 보고 이르되

네가 백성에게 행하는 일이 어찌 됨이냐 어찌하여 네가 홀로 앉아 있고 백성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곁에 있느냐


아침부터 저녁까지 이 백성들이 쭉 모세에게 와서 서 있다.

이 상황이 웃긴 상황이다.

애굽에서 나왔다. 홍해도 갈랐다.

그리고 마라의 쓴 물도, 만나도 경험하고,

여호와 니씨의 하나님도 경험하고 대단하다.

애굽, 자아에서 이제 해방되었다.

자기 자신을 위해서 살려고 하는 것을 열 가지 재앙으로 부숴버렸다.

굉장한데, 하루 종일 그런 사람들을 데리고 재판하고 있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루종일 싸움박질 하고 있다는 것이다.

네가 맞네, 내가 맞네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게 어찌된 일이냐? 주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탓하지 않고, 이드로를 보내서 이 문제를 해결하신다.

이건 도대체 어떤 상황이냐?


사람의 받는 의지가 아직 목적, 자기의 마음을 다른 사람을 위해서 쓸 줄 아는 법을 모르는 것이다.

받는 의지 자체를 없애면 안된다. 이것이 사람의 가장 기초이다.


알렢, 신성이라는 것은 하늘의 손이 있고, 땅의 손이 있다.

우리가 땅의 손을 대표하는데, 피조물이라는 것은 하나님을 받아들이게 되어있다.

그래서 받는 의지 자체가 없어지면 안된다.

그런데 사용법을 모른다. 토라를 가르치면, 어떻게 다른 사람을 위해서 사는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받는 의지의 사용법을 주는 것이 시내 산 사건, 토라이다.

받는 의지를 다른 사람을 위해서 사용한다는 것이 토라이다.


그 사용법 오기까지는 이스라엘 백성은 혼란스럽다.

그래서 이트로를 통해서 하나님이 이것을 가르쳐주신다.

이트로는 굉장히 높은 지혜를 의미한다. 모세에게까지 충고를 한다.


그런데 이트로는 미디안 제사장이다. 미디안 제사장은 바로에게 충고하던 사람이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모세에게 충고할 수 있을까? 어려운 일일 것이다.

그런데 이트로가 충고를 준다


21 너는 백성 가운데서 능력 있는 사람들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진실하며 불의한 이익을 미워하는 자를 살펴서 백성 위에 세워

 천부장과 백부장과 오십부장과 십부장을 삼아


지옥에 안 가려면 반드시 이것을 배워야 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님이 오셔서 이야기한다.

즉, 홍해를 건너서 나온 사람에게 이야기한다는 것이다.

지옥에 가냐, 마냐는 애굽 사람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었다고해서 지옥에 간다, 안 간다가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내 받는 의지를 나의 쾌락과 만족을 위해서 사용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위해서 사용하는가에 따라서 결정된다.

이트로는 다 그것을 위한 것이다


יִתְרֹו 이트로 : 내 손(י)으로 십자가(ת)를 잡아서 그것을 머리(ר)로 삼는 것


그런데 어떻게해야 이 받는 의지를 다른 사람을 위해서 사용하느냐? 어떻게 육신으로 안 살고, 마음으로 사는가?

이것은 천부장, 백부장, 오십부장, 십부장을 세우라고 되어있다. 이들을 세우려면 누가 필요할까?


능력 있는 사람들(재덕이 겸전한 자) 곧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진실하며(진실무망하며) 불의한 이익을 미워하는 자


- 이런 사람들을 미리 빼야하는데, 어떻게 미리 뺄까?


וְאַתָּה תֶחֱזֶה 베아타 테헤제 : 너는 볼 것이다

아타 : 너 / 테헤제 : 네가 볼 것이다

חָזָה 하자 : 비전을 보는 것, 계시적인 봄


너가 볼 수 있을 것이다. 재덕을 겸비하고, 진실 무망하며, 불의한 이익을 미워하는 자들이다.

이 소리는 사람을 보기만해도,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볼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면 그런 사람을 딱 빼라는 것이다.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리더십을 세워야 하는데, 이런 사람을 네가 알아볼 수 있는 계시를 가지게 될 것이고, 그런 눈이 뜨여지게 될 것이다


여러분들이 토라의 삶을 사는데 있어서 이것이 굉장히 중요하다.

만약에 사람이 이것을 미리 볼 수 있다면, 얼마나 놀랍겠는가? 이 지구상에 문제는 왜 생기는가?

대통령을 뽑았는데, 잘 다스릴 줄 알고 뽑았는데, 지금에서야 그럴줄 몰랐다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미리 알았더라면, 아타 테헤제, 그것을 미리 보는 눈이 있었다면 안 뽑았을 것이다


이트로의 지혜는 리더십을 먼저 뽑는데, 이 리더십이 너희를 너 자신을 위해서 살지 않고, 다른 사람을 위해서 사는 그런 삶으로 인도할 것이란 것이다.

그런데 반드시 잘 뽑아야 한다. 잘못 뽑으면 엉뚱한데로 인도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리더십을 뽑는 방법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반드시 알 수 있을 것이란 것이다


모세가 아침부터 저녁까지 계속 그러는 이유가 이 지혜가 없어서 그렇다.

자기와 같이 이것을 담당해줄 사람이 누구인지 알 길이 없다.

누가 진실무망한지, 누가 재덕을 겸비했는지, 누가 불의한 이익을 미워했는지 알 수가 없다.

그런데 이트로가 와서 이것을 가르쳐주는 것이다.

아타 테헤제, 미리 판단하는 것을 가르쳐준다.


그러면 사기꾼을 만날 이유가 없을 것이다.

다 미리 안다.

실제로 이것 때문에 많은 정치인들이 옛날부터 점성술사나 관상보는 사람을 옆에 두었다.

요새도 도사를 옆에 두고 보는 기업도 있다고 한다.

저 사람 어떻냐고 하면, 아니야. 아타 테헤제? 그게 아니라 이트로가 그 방법을 가르쳐주고 있다.


이것은 내 안에 리더십을 세워야지, 그런 리더를 만난다.

천부장, 백부장, 오십부장, 십부장은 하나님이 세우시지만, 먼저 내 안에 리더십을 세워야지 그런 리더를 만난다.

내 안에 어떤 리더가 있냐에 따라서 그런 리더에게 간다.

 

Ex) 다비드를 리더로 여기고 쫓아온다는 소리는, 내 안에 그와 같은 리더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절대 못 쫓아온다.

적당히 그냥 목사로 여기고 살아가지, 그것을 쫓아오지 않고 자기가 자기 속에 세운 리더를 쫓아간다.

그래서 그 일을 하고 산다. 다비드가 하라는 일을 절대 안 한다.

토라 외우라고 해도 절대 안 외운다.

스토리텔링 하라고 해도 안 한다. 자기가 세워놓은 리더를 쫓아간다.

그래서 미드보고, 이런 일을 한다.


그래서 자기 안에 어떤 리더를 세우느냐가 굉장히 중요하다.

내 안에 이트로의 계시로 리더를 세우면, 아타 테헤제, 다 볼 수 있게 된다.

그러면 내 안에 어떤 리더를 세워야 하느냐? 그런 경우가 있다.

이럴줄 몰랐다느니, 이런 표현을 많이 쓰는 사람이 있다.

당신이 그럴 수 있냐는둥. 이런 것은 다 자기 안의 리더가 그랬기 때문이다


사기 당하는 사람들이 있다. 사기 당한 것도 억울한데, 너 오늘 아침에 뭔 소리냐? 그런데 죄송한 소리지만,

사실 사기 당할 수밖에 없는 리더가 내 안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님은 사기당한 사람이 딱 나타나서 일러바치면, 사기친 사람의 목을 싹 베실까? 아니다.

사기당한 사람이 주님에게 갔으면 어떻게 하실까? 그 안의 모든 것을 바꿔주신다


상처받은 사람들이 주님에게 딱 가면, 누가 내 딸에게 상처줬냐고 하면서 준 사람 다 죽이실까? 아니다.

치유집회 때 일어나는 것들이 이런 일들이다. 저 사람 때문에 내가 이렇게 되었어요 하는데, 치유집회 끝나고 나서의 결론은 보복이 하나도 없었다.

치유집회 하면 하는 동안에 상처준 사람이 죽어 나자빠지고, 주님이 천군 천사를 보내서 이런 일이 벌어져야 하는데, 하나도 안 벌어지고,

그 사람에게는 어떤 일도 벌어지지 않고, 주님은 그 사람만을 치유한다


우리 삶 속에 어떤 일이 벌어진다고 하는 것들을 미리 볼 수 있는 것은, 내 안에 어떤 리더가 세워졌느냐를 통해서 미리 보게되는 것이다.

그러면 내 안에 리더가 세워질 때 아타 테헤제, 미리 알 수 있다.

절대 내 삶에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

그러면 어떤 사람을 세워야 하는지를 보자


מִכָּל־הָעָם אַנְשֵׁי־חַיִל 미콜 하암 안쉐이 하일 : 재덕이 겸전한 자


אַנְשֵׁי 안쉐이 : 사람 from 아나씸 = 에노쉬(에노스) : ​알렢(א)부터 아주 신실(נ)하게 쉰(שׁ)까지 가는 것


- 어떤 형상이 되는데 신실한 것을 사람이라고 한다.

이것을 그냥 사람이라고 번역한다.

아주 신실하게 형상까지 가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 중의 하일이다.

하일을 하는 사람을 사람으로 치는 것이다.


우리가 테헤제, 미리 보는 것을 못하는 이유가 내가 사람으로서 살지만, 무엇이 사람인지를 리더십으로 세워놨어야 한다.

무엇을 사람이라고 하느냐가 굉장히 중요한 내 안의 리더십이다.

우리나라 말로는 재덕이 겸전한 자라고 했다. 상당히 추상적이다.

그러나 가장 리더십은 안쉐이 하일이 되어야 한다


חַיִל 하일 : 생명(ח)을 훈련(ל)하는 것


생명을 훈련하겠다고 하는 것, 이것이 나의 리더십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다.

즉, 제자가 되겠다.

내가 다 되겠다, 나 잘 먹고 잘 살려고 하는 것이 인생이 아니라, 제자가 되겠다.

끊임없이 배우고 훈련하겠다는 것이다


딱 보면 어느 누구의 제자도 아닌 사람들이 있다.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최고의 목적이고, 제자가 될 생각, 어디가서 배울 생각을 안 하면, 아타 테헤제는 없다.

그 사람을 이끄는 최고의 리더십은 자기 자신이라 어느 무엇도 배우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어떤 것도 볼 수 없다.

제자가 되려고 할 때 인간은 테헤제, 미리 볼 수가 있다


사람이 제자가 되는 것을 최고의 목적으로 놓으면, 그 사람은 이제 자기 자신의 구조를 세울 수가 있다.

내 안에 리더십을 세워나갈 수 있는데, 이 리더십을 천부장, 백부장, 오십부장, 십부장이라고 한다.


육신은 어떤 일이 생기면 그냥 결정해버리는데, 이것은 그런데 아니라, 어떤 일이 생기면, 나의 리더십에 따라서 결정을 해야한다.

함부로 하면 안된다.

내 안의 십부장, 오십부장, 백부장, 천부장에게 물어봐야 한다.

그런데 이런 삶을 살려고 하지 않고, 자기만을 위해 살려고 하는 사람은, 정말 질서를 모르는 사람이 있다.

질서도 필요없고, 자기에게 닥치는 일이 있으면 여기도 갔다가, 저기도 갔다가 한다.

자기를 위해 살기 때문에 질서, 이런건 중요시 여기지 않는다.

이런 질서를 내 안에 세워야 한다.


1) אֶלֶף 엘레프 : 천부장 = 신적 사랑

​천부장은 신성(א)을 훈련(ל)하는 것을 말한다.

내 안의 최고의 리더십은 천부장이어야 한다.

내 안에서 무엇을 결정할 때, 내가 최고로 결정하는 것은 신성을 훈련하는 것이다.

이것이 나의 최고의 리더십이어야 한다.

어떤 것도 상관없다.

판단하는 기준이 신성을 훈련하는 것이어야 한다.


Ex) 그래서 오른뺨을 치면 왼뺨을 내밀라는 것이다.

왜 내밀어야 하는가? 사람이 육신으로 살지 않고, 마음으로 살 수 있는 길은 이 천부장을 사람이라고 해야한다.

오른뺨을 쳤을 때 승질을 내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 짐승이다.

뭘 사람이라고 하는가? 오른뺨을 쳤을 때 왼뺨을 내미는 것을 결정하는 것은, 내 안에 천부장이 세워진 사람만이 할 수 있다


그런데 천부장이 안 세워지고, 그냥 자기 Ego가 최고의 목적인 사람은, 오른뺨을 치면 이것이..!라는 결정을 바로가 내린다.

그런데 천부장이 딱 세워진 사람은, 이것이..!라고 바로가 내리면, 바로 너는 나타나면 안된다고 하면서, 천부장이 여기서 지금 내가 결정하는데,

오른뺨을 치면 왼뺨을 내밀라고 결정한다.

밑에서 내 신경계통, 이런 애들이 아프다고 난리가 나고, 상처받았다고 난리가 날 것이다.

온 몸을 동원해서 빨리 명령을 내려서 내 손도 올라가게 하세요라고 하는데, 천부장이 노라고 한다.

이 지휘체계가 세워져 있기 때문이다.

네 손이 아니라, 왼뺨이 나가라..!


누가 나를 겁나게 승질나게 했다.

마누라가 바가지를 박박 긁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하는가?

여러분들은 어떤 결정을 내리시는가? 아무리 바가지를 깨라고 밑에서 난리여도, 천부장이 사랑하라고하는 것이다


이 최고의 머리 밑에는 항상 백부장이 있어야 한다.

천부장이 신적 사랑이라면, 백부장은 진리이다.


2) מֵאֹ֔ות 메오트 : 백부장 = 진리

신성을 훈련하겠다고하면 반드시 진리가 무엇인지 알게된다. 머리가 깨어나게 되어있다.

어떤 사람이 나에게 잘못을 했다.

백부장이 성립을 안 한 사람은, 이 잘못한 것을 완전히 진리로 만들어서 계속해서 그것을 진리로 여긴다.

이 진리로 그 사람을 대한다.

그러면 끊임없이 그 사람을 미워하게 되는 것이다.

백부장은 이것이 진리냐는 것이다.

이 사랑을 이룰 수 있는 진리냐는 것이다.

이것만을 생각한다.


3) חֲמִשִּׁים 하메쉼 : 오십부장 = 단계를 아는 것

오십부장은 단계를 안다. 100의 절반인데, 단계를 안다는 것이다.

이 사랑과 진리를 성취하기 위해서는 어떤 단계를 거쳐서 올라가야 한다는 것을 구체적이고 실질적으로 아는 것이다.


하메쉼이라는 오십부장이라는 말은 살찌다는 의미도 있다.

살이 있어야 사람들은 무엇을 성취할 수가 있다.

옛날 어른들이 피골이 상접했냐고 하면, 어른들은 항상 살이 빠졌다고 생각하신다.

수용소를 생각해보면, 살이 없어서 피골이 상접하면 사람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살이 있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단계를 거쳐서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선과 진리가 있어서 오십부장이 없어서 살쪄있지 않으면, 단계를 알지 못하면 그것을 이룰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이 오십부장은 단계를 아는 머리이다.

이렇게이렇게 하면 되는구나라고 아는 것이다.


대개 오십부장이 발달을 안 하면, 사람들이 단계를 안 거치려고 한다.

인카운터, 포스트 인카운터, 디스커버리가 있어도, 그런거 안 하고 가는 법 없냐는 것을 질문하는 사람이 있다.

단계를 거치는 일들이 삶 속에서 벌어지질 않는다.

오십부장이 없는 사람은 단계를 안 거치려고 해야한다.

히브리어 알파벳부터 단계를 거쳐야 한다. 그게 오십부장이다.


4) עֲשָׂרֹֽת 아싸로트 : 십부장 = 부유함

부유함이라고 하는 것은, 사랑과 진리와 단계를 거칠 수 있는 것은 부유함 속에서 온다.

뭔가를 가지고 있어야 거칠 것이 아닌가? 세상은 무조건 부유하려고, 십부장을 꼭대기에 놓는다.

사랑과 진리, 단계도 없고 십부장을 맨 위에 갖다놓으려고 한다.

그런데 여기서는 십부장은 맨 밑이다.


신체 중에서 가장 부유한 곳을 다리라고 한다.

그래서 다니엘의 금신상에서도 다리, 로마가 제일 부유하다.

이 십부장은 사실 기초가 되면서, 천부장, 백부장, 오십부장 전체에에 영향을 미친다.

이게 사람의 형상이다.


이트로는 사람의 받는 의지가 다른 사람을 위해서 사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이익을 남길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이 결국 이익을 남기고, 나에게 유익이 되는 길이 어떤 길인가? 지옥에 안 가는 길이 어떤 길인가? 훈련하는 삶을 살려고 한다는 것이다.


육신은 훈련하는 삶을 사는 것은 유익이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트로가 와서 그게 유익이고 이익이라는 것이다.

가만히 보면, 훈련하는 삶을 살았던 제 제자들이 아무런 이익이 없이 산 것 같다.

세상 사람들은 제자들에게 니들은 왜 그렇게 사냐, 무슨 유익이 있냐고 한다.

그런데 지금 지나서 보면, 물론 에*더가 그동안 아무런 유익이 없었다.

에*더에게 와서 너 왜 그러냐고 하는데, 지금 와서 정말 유익을 바라고 살았던 애들을 보면, 오히려 빚더미에 올라앉아있는 것을 본다.

그래서 에*더에게 부자라고 했다. 빚이 없으니까 말이다. 진짜 부자 아닌가?


훈련하는 삶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른다.

사람이 이것을 유익이라고 여기게 될 때, 그리고 사람이 사랑, 신성을 훈련하는 것이 최고의 유익이 남는다.

내가 한대 맞으면 한대 치는 것이 엄청난 유익이고 살 것 같지만, 죽는다.

내가 나를 즐겁게하면, 나에게 유익일 것 같은가? 모든 죄는 그게 얼마나 짜릿한가? 그런데 죽는다.

진짜 유익은 다른 사람을 사랑해주는 것이다.


이것을 진짜 유익이라고 선포하고, 이런 리더십들을 내 안에 두게되면, 나는 다른 어떤 곳에 가서도 테헤제, 미리 볼 수가 있다.

천부장이 내 안에 있으면, 절대로 사기 안 당한다.


사실은 내가 바라는 것이 있기 때문에 사기를 당한다.

자기가 무조건 다 주려고 하는 사람은 절대로 사기를 안 당한다.

죄송하다. 그동안 우리는 계속 사기를 당하고 살아왔다.

오늘 우리 아침에 사기당한 네가 사기꾼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동안 나는 내가 많은 상처를 받고 산 것 같은데, 주님은 그런 네가 죄인이라고 하시는 것이다.

네 안에 이트로의 진리가 없었던 것이다.

이것을 인간이라고 여기고, 앞으로는 테헤제, 모든 것을 미리 볼 수 있는 여러분 되길 축복한다.


스토리텔링 : 여러분들 안에 안쉐이 하일, 천부장, 백부장, 오십부장, 십부장을 세워야 한다


사람이 이트로의 지혜에 의한 구조가 세워지지 않으면, 죽었다 깨어나도 토라를 못 받는다.

이런 것들을 자기의 리더로 삼지 않는한, 자기 안에 이런 인격들을 리더로 삼지 않는한, 죽었다 깨나도 토라를 못 받고, 주님이 오셔서 주님을 못 박고 만다.

이것은 믿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사실 안 믿는 사람들은 이런 이야기가 필요도 없다.

그리고 또한 자기 자신도 절대로 어디로 인도하지 못한다.


이트로에 의해 자기 자신의 구조를 세울 때 우리는 전진할 수 있다.

내가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 이것도 미리 봐야한다.

이 일을 하면 내가 어떤 사람이 될 것인지 미리 봐야한다.

사실 이 지혜를 가지게되면, 모든 사람을 미리 볼 수 있다.

그래서 절대로 악인을 만나지 않는다


결혼할 때 제일 알고 싶은 것이, 이 인간에 대해서 미리 알고 싶은 것이다.

그런데 미리 아는가? 모르는가? 미리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단, 내 안에 이트로의 구조가 세워질 때이다.

그 이야기인 것은 내가 무엇을 할지, 나에 대해서 내가 먼저 알아야 한다.

사람이란 것은 내가 이 일을 행했을 때, 어떤 존재가 되는지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이 음욕을 품으면, 어떤 존재가 될지를 미리 안다.

어떤 사람인지 미리 안다.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진다는 것을 미리 안다.

어떻게 그것을 미리 아냐면, 천부장이 세워져있으면, 어라? 저것은 무조건 신성을 훈련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내가 어떤 사람이 될지, 아타 테헤제, 너는 미리 보게된다.


그런데 이게 안 세워져있으면 다 헷갈린다.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있다고 하면서 말이다.

그래서 이트로가 너무나 중요하다.

이트로를 꼭 세우시길 축복한다.

정말 재미있다.

다 미리 보게된다.

여러분들이 LTG할 때 제일 어려운 것이 미리 보지 못하는 것이다.

자녀를 키울 때 미리 보면, 그 자녀를 온전히 키울 수가 있다.

그리로 가면 안돼..! 미리 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자녀들 앞에 비로소 리더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미리 보지 못하면, 그럴 수도 있지, 그런 것이다.

그래서 미리 보는 여러분들 되길 축복한다



(받은 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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