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과 무의식 

 

1. 의식과 무의식 정의

 

1) 의식의 정의

 경험하고 있는 심적 현상의 총체이다. 심리학에서는 개인이 체험하고 그 마음속으로 느끼고 있는 것을 말한다. 체험자 자신에게는 직접적으로 파악되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그 내용을 전해 듣지 않는 한 직접적으로 파악되지 않는다. 알고 있는 것의 내용을 의미하거나, 또는 알거나 깨닫는 과정을 의미하기도 한다. 의식은 주관적인 것이다. 그러나 경험이나 행동이 모두 의식되는 것은 아니다.

     

2) 무의식의 정의

현재의 의식 상태에 나타나 있지 않은 모든 심리적 내용이다. 특히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이론에 있어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개념이다. 남과 얘기하고 있다든지, 생각하고 있다든지, 눈으로 보고 귀로 들으면서도 깨닫지 못하는 의식상태, 꿈, 최면 등과 정신분석이 아니고는 의식하지 못하는 그러면서도 의식 과정에 영향을 미치는 가장 근원적인 의식 등이 모두 이에 포함된다.


 

2. 프로이트 이론

<Sigmund Freud(1856 ~ 1939)>


프로이트는 잠재의식을 빙산으로 비유했다. 의식은 잠재의식의 아주 작은 일부분이다. 프로이트는 인간의 정신에서 잠재의식이 90% 이상을 차지한다고 말했었다. 인간이 가진 정신세계에서 대략 10%가 안 되는 부분이 우리가 의식이라 부르며, 우리 정신의 전부인 것처럼 취급하고 있다고 말했다. 잠재의식에 대한 정의는 여러 가지가 있다.


뇌 의학적인 방향의 정의도 존재하고, 심리학적인 정의도 여럿 있다. 의식과 잠재의식은 서로 공존해서 사람이 살아가도록 이끌고 있다. 의식은 말 그대로 의식이다. 생각을 하며 몸에게 명령해 행동을 한다. 의식이 “배고프다 밥 먹자”라고 생각을 하게 되면, 의식은 몸을 이끌고 밥상 앞에 앉는다. 그리고 밥을 먹게 된다. 그러나 밥을 먹는 과정에서 의식은 더 이상 큰 역할을 하지 않는다. 세부적인 활동은 잠재의식이 맡게 된다. “숟가락을 잡는다. 밥을 뜬다. 밥을 입에 넣는다. 씹는다. 삼킨다” 등의 일련의 작용을 잠재의식이 전담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자잘한 일련의 행동에 의식이 간여해서 일일이 명령 내려야 된다면 그건 보통 일이 아니다. 그랬기에 이런 일에는 잠재의식이 작동하는 것이다. 의식이 간여하지 않더라도 잠재의식이 알아서 숟가락을 잡고, 밥을 뜨고 밥을 입에 넣으며, 씹고 삼키는 것이다. 이렇듯 의식과 잠재의식은 절묘한 공존을 하고 있기에 인간이 편하게 살 수 있다.

 

1) 성격의 구성

프로이트는 의식을 인간의 정신생활의 중심이라고 보지 않고 인간의 마음을 빙산에 비유하고 물위에 떠있는 작은 부분이 의식이라면 물속의 훨씬 더 큰 부분을 무의식으로 비유하고 이 거대한 무의식 영역 속에 추진력, 정열, 억압된 관념 및 감정들이 숨어 있다고 보았다. 그리고 이것들은 인간생명의 거대한 하층구조로서, 인간의 의식적 사고와 행동을 전적으로 통제하는 보이지 않는 힘이라고 생각했다.

 

가) 의식 (consciousness)

의식은 어떤 순간에 우리가 알거나 느낄 수 있는 모든 경험과 감각을 말한다. 프로이트는 정신생활의 극히 일부분만이 의식의 범위 안에 포함된다고 했다. 우리가 어떠한 순간에 경험하는 의식 내용은 외부적 요인에 의해 주로 규제되는 선택적 여과과정의 결과이며, 이 경험은 잠시 동안만 의식될 뿐 시간이 경과하거나 주위를 다른 곳으로 돌리면 그 순간에 전의식이나 무의식 속으로 들어가 잠재하게 된다. 그러므로 의식은 성격의 제한된 적은 부분만을 나타낸 것이다.

 

나) 전의식(preconsciousness)

전의식은 흔히 이용 가능한 기억으로 불리 운다. 즉, 어느 순간에는 의식되지 않으나 조금만 노력하면 곧 의식될 수 있는 경험이나 기억을 말한다. 이 전의식은 의식과 무의식의 영역을 연결해 주는데 예컨대, 어떤 치료기법에 의해서 무의식 내용이 전의식으로 나타나고 또 그 다음에 의식이 될 수 있다고 프로이트는 생각했다. 전의식은 의식과 무의식 사이에 있는 문지기이다.

 

다) 무의식 (unconsciousness)

프로이트는 무의식이 인간정신의 가장 크고 깊은 심층에 잠재해 있으면서 의식적 사고와 행동을 전적으로 통제하는 힘이라고 생각하였다. 전의식과는 달리 무의식은 전혀 의식되지 않지만, 사람들의 행동을 결정하는 주된 원인이 된다. 인간의 모든 생활경험은 잠시 동안만 의식의 세계에 있을 뿐 주위를 다른 곳으로 바꾸거나 시간이 지나면 그 순간에 의식의 경험들은 전의식을 거쳐 깊은 곳으로 들어가 잠재하게 되는데 이를 무의식이라고 보았다.


의식 밖에서 억압되는 어떤 체험이나 생각은 소멸되는 것이 아니라 무의식 속으로 들어가 잠재하여 그 개인의 행동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억압된 생각이나 체험 혹은 그 밖의 잠재된 경험들은 생물학적 충동이나 어떤 일과 연상되어 나타나면 현실에서 불안을 일으키고 다시 밑으로 밀려나 끝없는 무의식적 갈등이 된다고 한다. 이러한 무의식적 갈등을 분석하여 환자를 치료하는 정신분석학적 방법은 초기에 최면술로 시도되었으나, 후에 자유연상법으로 억압된 무의식을 의식화하였으며 이로써 프로이트는 무의식이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증명될 수 있고 제시될 수 있는 현실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40여년간에 걸쳐 자유연상방법으로 무의식을 탐구했고 최초로 포괄적이 성격이론을 발전시켰다.

 

2) 성격의 구조

프로이트의 초기 성격구조 이론의 중심 개념은 무의식이었다.

그러나 1920년대에 이같은 정신생활의 개념 모형을 수정하여 세 체계의 기본적 성격구조이론을 제시하였다.

인간의 성격은 원초적 본능 id, 자아 ego, 초자아 super ego의 세 체계로 구성되어 있으며 무의식은 본능과 초자아로 구성되고, 자아는 의식에 포함된다.

 

가) 원초아(Id)

원초아는 성격의 가장 원시적인 체계이다. 원초아는 프로이트가 무의식이라고 불렀던 성격의 한 부분으로 유전되며 출생 시에 이미 존재하며 그 속에서 자아와 초자아가 분화되어 나오는 모체이다. 원초아는 공격적이고 동물적이며 조직되지 않은 것으로써, 규칙도 따르지 않는 개인에 내재하는 정신적 원동체이며 개인의 생의 기초가 된다. 또한 긴장을 감소시키려는 쾌락의 원리를 따르므로 자신을 괴롭히는 모든 억압을 싫어하고 무시한다. 따라서 모든 행동은 자애적인 방법으로 표현되며 언제나 비합리적이고 충동적으로 행동하고 다른 사람에 대한 영향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나) 자아 (Ego)

초자아가 "길들여지지 않은 열정"이라면 자아는 "이성과 분별"을 뜻한다. 자아의 구조와 기능은 원초아에서 파생되며 생후 6 -8개월부터 발생하기 시작하여 2 -3세에 형성된다. 자아는 원초아의 충동들을 어떤 방법으로든지 충족시켜 주어야 하지만 그것은 초자아가 침해를 받지 않는 범위내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이같이 자아는 원초아의 욕구(yes)와 초자아의 거절(no) 사이에서 현실에 맞도록 조정하여 개체를 적절히 유지시키는 기능을 한다. 자아는 원초아의 쾌락적 원리와는 달리 현실의 원리를 따른다. 현실원리의 목적은 욕구충족을 위해서 적당한 대상이나 환경조건이 이루어질 때까지 본능적 만족을 지연시켜 개체를 안전하게 보전시키는데 있다. 다시 말하면 자아의 목적은 자신이나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원초아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적절한 과정을 발달시키는데 있다.


즉, 자아는 성격의 조정자이며 집행자이다. 그러나 자아는 자신의 에너지가 없으므로 원초아에게서 자신의 에너지를 빌려와야 함으로 위험하고 억압된 욕망이 뚫고 나오려고 위협한다거나, 기본적인 생물학적 욕구를 만족시키기에 무력하게 느낀다거나, 원초아의 충동을 처리할 수 없을 때 신경증적 불안(neurotic anxiety)을 경험하며, 자아가 초자아로부터 처벌을 예견할 때는 도덕적 불안(moral anxiety)을 느낀다. 그리고 자아는 외부세계에 있는 위험에 대해 항상 현실적인 불안에 사로잡혀 있다. 자아는 원초아의 목적을 좌절시키는 것이 아니고 적절히 추진하기 위해 존재하며 자아와 원초아는 분리되어 존재할 수 없으므로 본능적인 요소와 주위 환경의 상태를 적절히 조정하여 개인의 생활을 유지시키는 기능을 한다.

 

다) 초자아 (Superego)

인간은 바람직한 사회생활을 하기 위해서 그 사회의 질서체계인 가치, 도덕, 윤리체계를 습득해야 한다. 이것들은 사회화과정을 통해 이루어지며, 정신분석학적 용어로는 초자아이다. 초자아는 인간의 마음속에 있는 윤리적, 도덕적, 이상적인 면을 말하며, 유전되는 것이 아니라 성격구조 중 마지막으로 발달되는 체계로써 부모의 양육태도 즉, 부모가 주는 보상과 처벌에 대한 반응으로 발달한다. 초자아는 아동이 옳고 그름을, 선과 악을, 그리고 도덕과 비도덕을 분별할 수 있게 될 때 비로소 나타나며, 아동의 생활범주가 점차 확대되면서 그 집단들이 인정하는 적절한 행동규범을 추가하면서 초자아를 형성한다. 아동은 항상 이러한 부모의 기대와 집단의 규범에 알맞게 행동함으로써 갈등과 처벌을 피한다.


프로이트는 초자아를 두 개의 하위체계 즉, 양심(conscience)과 자아이상(ego ideal)으로 나누었다. 양심은 아동이 잘못을 저질렀을 때 부모로부터의 야단이나 처벌을 통해 생기며 이것은 자신에 대한 비판적 평가나 도덕적 억압, 죄의식 등이 포함된다. 한편 자아이상은 아동이 긍정적인 일을 했을 때 부모로부터 받는 보상이나 칭찬으로부터 발달하며 아동이 목표나 포부를 갖게 하고 자존심과 긍지를 느끼게 해준다. 초자아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Oedipus Complex)가 해결되는 기간에 아버지와 동일시함으로써 형성된다. 그러므로 아버지는 도덕적 상징자로서 중요한 역할자가 된다.


 

3. 융의 이론

<Carl Gustav Jung (1875 ~ 1961)>


마음이 어떻게 생겼는지 우리는 모른다. 그러나 옛날 철학자나 심리학자는 즐겨 둥근 공으로 표시하였다. 전체정신을 설명하는 데는 이것이 가장 적절하다. 우리의 마음은 우리가 알고 있는 마음, 즉 의식(consciousness)과 모르고 있는 마음, 즉 무의식(the unconscious)으로 이루어지며 무의식은 개인적 무의식과 집단적 무의식으로 구분될 수 있다. 의식과 무의식계를 자세히 들여다 보면 그 특성과 기능에 따라 의식계에서는 ‘나’(ego)를 볼 수 있고 무의식계에는 ‘그림자’ ‘아니마(Anima)’ 또는 ‘아니무스(Animus)’ ‘자기(Self)’라 부르는 독특한 요소가 있다. 의식과 무의식을 막론하고 우리의 정신은 심리적 복합체, 콤플렉스로 이루어지며 이 가운데 집단적 무의식을 구성하는 콤플렉스는 다른 말로 원형(Archetype)이라 부른다.

 

1) 자아(ego)와 의식

자아 또는 ‘나’는 의식의 중심에서 의식된 마음을 통솔하고 또한 무의식의 마음과도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의식의 특수한 콤플렉스이다. 그래서 자아 콤플렉스라고도 한다. 내가 아는 모든 것, 내가 기억하는 모든 것, 나의 생각, 나의 지각, 나의 느낌으로 알고 있는 모든 것을 우리는 의식, 또는 자아의식이라 한다. 의식의 내용은 모두 나와 연관되고 나는 나의 의식의 영역을 넓히기도 하고 좁히기도 하며 무의식의 작용을 받아들이거나 거부하기도 한다. 나는 의식의 중심, 나를 둘러싼 의식계의 둘레에 망막한 바다와 같은 무의식의 세계가 있다. 그러므로 자아의식은 바다 속의 섬과 같다. 바다 같은 무의식은 자아의식이 그 속에 있는 보배들을 발견하고 이용하기를 기다리고 있는 처녀지와 같다. 자아의식은 무의식계의 내용들을 의식화 함으로써 그 영역을 넓혀 나간다.

 

 

2) 무의식(the unconscious)

무의식이란 글자 그대로 ‘의식되지 않은 것’이다. 우리가 가지고 있고 시시각각 의식생활에 영향을 주고 있으면서도 모르고 있는 마음의 세계는 모두 무의식이다. 무의식의 상당부분은 우리가 적극적으로 인식함으로써 의식의 내용에 동화시킬 수 있다. ‘인식’이라는 말을 철학적인 인식과 혼동하지 않도록 하려면 의식화라는 말을 쓰는 것이 좋다. ‘의식화’는 ‘깨달음’이다.


무의식은 자아의식이 외곬으로 나가면 그렇게 되지 않도록 의식의 방향과는 다른 방향의 이미지를 활발히 보내서 그것을 보상한다. 그리하여 지나치게 이성적인 남자의 꿈속에서 그로 하여금 매우 비합리한 행동을 하게 하거나 평소와는 달리 열력한 사랑을 나누게 만든다. 혹은 지나치게 소심한 사람의 꿈에서 깃발을 들고 데모행진의 선두를 달리는 영웅상을 보여준다. 이것은 욕구충족을 위해서가 아니라 의식의 일방성을 깨우치고 의식이 소홀히 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려주기 위한 무의식의 의도를 드러낸 것이다.(자율성과 보상작용)

 

가) 그림자

의식에 가장 가까이 있는 무의식의 내용. 무의식의 열등한 인격이며 나, 자아의 어두운 면이다. 다시 말해 자아로부터 배척되어 무의식에 억압된 성격측면이다. 그래서 그림자는 자아와 비슷하면서도 자아와는 대조되는, 자아가 가장 싫어하는 열등한 성격을 지니고 있다. 자아의식이 한쪽면을 지나치게 강조하면 그림자는 그만큼 반대편 극단을 나타낸다.

 

나) 아니마, 아니무스 (Anima, Animus)

아니마는 독일어의 제엘레에서 아니무스는 가이스트에서 빌려온 라틴어 용어이다. 융은 인간의 무의식속에 그와 같은 독자적 인격이라 할 만한 것이 존재한다고 보았다. 그는 이를 내적인격이라 불러 집단 사회에 적응하는 가운데 형성된 외적인격인 페르조나에 대응하는 무의식적 인격이라고 보았다. 내적인격도 남성과 여성에 따라 각기 다른 특성을 나타내는데 남성의 무의식의 내적인격은 여성적 속성을, 여성의 무의식의 내적인격은 남성적 속성을 띠게 된다. 즉, 아니마는 남성들에게 있는 무의식적인 여성성이고, 아니무스는 여자들에게 있는 남성적인 무의식이다.

 

다) 자기(Self, selbst)

자기란 자기실현의 종착점이자 시발점이다. 자기란 전체정신, 의식과 무의식이 하나로 통합된 전체정신이다. 이것은 무의식의 의식화 작업을 통해 그림자와 아니마, 아니무스를 의식화 하여 자기실현을 하는, 인격성숙의 목표이며 그 이상이다.


 

4.프로이트와 융의 무의식관

 

1) 프로이트

프로이트가 처음 환자들 가운데서 발견한 무의식의 내용은 현실의 도덕규범과 맞지 않아서 의식에서 무의식으로 억압된 여러 가지 충동이었다. 특히 억압된 성적 욕구와 유아적 충동, 여기에 더하여 지나치게 엄격한 도덕적 감독 기능을 하는 부분이 무의식 속에서 발견되었다. 프로이트는 처음에는 억압된 성적 욕구를 무의식의 주된 특성으로 여겼으나 뒷날에는 ‘삶의 본능’ ‘죽음의 본능’이라는 이름으로 사랑의 욕구와 파괴적 욕구의 영면이 무의식의 충동을 이룬다고 보았다. 그는 또한 무의식은 사람이 태어나 의식이 생긴 뒤 거기서 떨어져나간 내용으로 이루어지며 무의식속에 신화적이고 고태적인 요소가 엿보이기는 하나 그것은 진화의 과정에서 남은 낡은 흔적에 불과하며 그 자체가 어떤 큰 작용을 하는 것은 아니라고 보았다.

 

2) 융

융은 처음에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운동에 적극 가담하여 프로이트의 학설에 따라 환자를 이해하고 치료하였으나 그 과정에서 그의 학설과 일치하지 않는 현상들을 목격하게 되었다. 무의식에는 억압된 성적 충동뿐 아니라 그 밖의 여러 가지 다른 충동과 심리적 요소가 있고, 현실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아 억압된 충동뿐 아니라 단순히 잊어버린 것들이나 자극이 약해 의식까지 미치지 못하는 내용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와 같이 태어난 이후 개인이 살아오면서 이루어진 무의식의 층을 융은 개인적 무의식 (the personal unconscious)이라 하였다.


프로이트 초기학설의 무의식은 여기에 포함된다. 융은 나아가 이미 태어날 때부터 마음의 토대를 이루고 있는 무의식의 층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것은 개인의 특수한 생활사에서 나온 무의식의 층과는 달리 태어날 때부터 갖추어져 있는 인간 고유의 원초적인, 그리고 인간이면 누구에게나 있는 보편적인 특성을 나타내는 무의식의 심층으로 이것을 융은 집단적 무의식(the collective unconscious)이라 이름 하였다.

융의 이와 같은 가설은 환자뿐 아니라 많은 건강한 사람의 꿈과 원시종족의 심성, 신화와 종교, 서양사상과 인도, 중국 등 동양의 사상을 비교하여 고찰한 결과이다. 개인생활의 경험자료 뿐 아니라 인류의 태곳적부터 끝없이 반복되어 경험되는 일정한 인간적 체험의 조건들을 갖추고 있는 무의식은 수많은 신화적 상징으로 표현되고 경험되며 모든 의식된 마음에 활력을 주고 그 기능을 조절하여 의식과 무의식이 통일된 전체정신을 실현시킬 수 있는 원동력을 가지고 있다. 한마디로 무의식은 충동의 창고, 의식에서 쓸어낸 쓰레기장이거나 병적인 유아기 욕구로 가득 찬 웅덩이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마음을 성숙케 하는 창조의 샘이라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3) 프로이트와 융의 차이점

융의 무의식관은 무의식이 자율성을 가진 창조적 조정능력을 지닌 것이라는 점에서 프로이트와 근본적으로 다르며, 인간의 원초적 행동유형의 조건들을 갖추고 있다고 보는 집단적 무의식에 이르러서는 그것이 의식의 뿌리를 이루며 정신생활의 원천이라고 보는 만큼, 진화의 흔적으로 보는 프로이트의 생각과는 크게 다르다.

 

가) 프로이트는 “무의식”에 대해 의식에서 무시되거나 잊혀진 내용들이 쓰레기통에 버려지듯, 뭉쳐져서 억압된 것, 즉 개인 무의식 차원만을 인정했고, 무의식의 본질이 리비도 (Libido:성욕=인간은 성욕덩어리)에 있다고 보았다. 고로 인간행동의 모든 동기가 파괴성과 성욕에 있다고 보았다(성악설적) 반면, 융은 리비도를 성적인 것에 국한하지 않고 모든 지각, 사고, 감정, 충동의 원천이 되는 에너지(마음의 에너지)로 간주했고, 마음은 쾌감원칙에 지배되는 것이 아니라 이 에너지에 의해 자율적이되 일정한 법칙을 따라 조절된다고 하였다.

 

나) 프로이트는 무의식의 부정적인 면에 초점을 맞춘다. 무의식은 정신병의 근원이고, 의사는 이러한 무의식의 실타레를 풀어 헤쳐서 그 굴레로부터 환자를 해방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반면, 융은 무의식의 부정적인 측면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긍정적이고 창조적인 측면 또한 중히 한다. 특히 집단 무의식은 인간으로 하여금 내면의 신비한 세계에 이르도록 하였고, 그래서 융은 이를 종교가 지향하는 영적인 세계를 가능하게 하는 채널로 보고 있다 (성선설적)

 

다) 융은 무의식을 생명력이 넘치는 자아의 근원으로 보았고 무의식의 세계는 개인적 무의식과 집단적 무의식의 두 가지 종류로 나뉘어 있고 이 중, 집단적 무의식은 인류가 수많은 세대를 거치면서 축적된 집합적 기억과 사고형태를 발전시킨 것이라고 보았다. 융은 이러한 사고형태를 원형이라고 정의했다. 이 원형이란 모든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한 번에 딱 떠올릴 수 있는 어떤 특정 대상에 대한 이미지 정도로 생각할 수 있다. 융은 인간의 본능보다는 이성적이고 정신적인 부분의 발전을 강조했고 인간 성격의 근원이 리비도만이 아닌 과거의 조상으로부터 확대되는 역사적 연속성의 감각을 지녔기 때문에 인간은 자신의 성격을 조화로운 전체로 통합 할 수 있는 능력을 지녔고 그러므로 항상 자기실현의 의지를 가지고 행동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5. 적용(예술치료에의)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과 융의 분석심리학은 환자의 내면세계의 정신역동을 이해하는데 근거를 둔다. 정신분석과 분석적인 심리치료에 대해 다양한 접근방법들이 있으며, 많은 것들이 내면의 갈등을 다루는 것에 더하여 발달상의 현상과 인간 사이의 현상을 강조한다. 모두가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이 힘을 발휘하며, 그 문제들은 종종 무의식에 있다고 생각한다.


프로이트는 무의식에 속하는 꿈이나 상징은 시각적인 이미지를 통하여 표출되며 이러한 상징적 표현은 언어를 대신할 수 있다고 하였으나 그림을 일차적인 매체로 사용하지는 않았다. 융은 자신의 체험을 통해 무의식은 이미지로 채워져 있고 그 이미지의 상징적인 의미를 분석하는 것을 중요시하였다. 그는 환자의 그림을 통해 집단 무의식의 내용을 이해하고 창작행위를 통해 인간정신 중심에 있는 무의식의 창조적인 자기가 자극되고 활성화된다고 보았다. 융학파는 프로이트학파보다 정신분석적 치료의 일부로서 예술활동을 더 많이 격려하는 것으로 보이며, 여러 예술가의 관심을 끌었다.

 

1) 프로이트 정신분석학

프로이트는 인간의 정신세계를 일차적인 과정이라고 부른 무의식 세계와, 이차적인 과정이라고 부른 의식세계, 두 가지 차원으로 구분하였다. 그의 치료원칙 즉 무의식을 의식화 한다는 차원을 예술치료에서는 내면의 세계를 창작과정과 창작품읠 통하여 외부세계로 외면화 한다는 차원으로 상징화 과정을 거쳐서 일차적인 사고과정을 이차적인 사고과정 즉, 심리적인 발달을 촉진한다는 것으로 본다.

(마거릿 나움버그, 이디스 크레이머, 울만, 로리 윌슨, 아서 로빈스, 밀드레드 라흐만차핀, 마이라 리빅, 위니컷, 램버트와 밀너, 미어즈, 픽포드, 제이캅, 호로위츠, 클라인 등)

 

2) 융의 정신분석이론

창조성에 대한 분석심리학적인 입장은 집단적이고 원형적인 우리의 정신과, 전체의 상징이자 인간 정신구조의 핵심이 되는 자기에게로 초점이 맞추어지고 있다.

따라서 융은 예술을 예술가의 개인적 생활사에 결부시키는 단순한 인과주의적 심리학의 접근방법의 부당함을 강조한다.


분석심리학의 중심 개념이자 집단 무의식의 표현인 원형은 주로 상징이라는 이미지를 통해 나타난다. 상징은 개인이 의도적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선험적인 자료로서 만들어지는 것으로서, 무의식의 창조적인 콤플렉스에 의한 것이다.


개성화 과정이 적극적인 상상이나 예술작업으로만 가능하다는 측면에서 분석심리학적인 예술치료자들은 원형적인 자기실현에로 초점을 맞춘다. 무의식의 창조적인

콤플렉스의 파괴성에 희생이 된 자아 경계가 취약했던 소수의 예술가들이 있지만 진정한 자기를 탐구했던 대부분의 예술가들은 자기실현을 한 것으로 드러난다.


(융, 노이만, 스타인, 아들러, 베인스, 에딩거, 하딩, 울라노브, 왈러스, 위버, 에드워즈, 셰이버린, 마이클 포드햄, 존 앨런, 캐럴 제프리, 칼프, 페니 루이스 등.)

 


  참고문헌

「예술,문학,정신분석-프로이트 전집-」 정장진 열린책들

「분석심리학의 탐구」 이부영 한길사

「미술치료학개론」 Judith Rubin 학지사

「인간행동과 사회환경」 인인정,최해경 나남출판

「심리학 개론」 양서원

  현대사상의 키워드 98년 7월호 中 「융의 집단 무의식」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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