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이란 무엇인가?
기록된 계시
성경에는 하나님의 계율의 말씀, 하나님이 직접 하신 말씀, 인간의 입술을 통해서 하신 말씀 등이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그 첫 번째 기록 형태는 하나님의 손가락으로 쓰신 십계명에서 발견할 수 있다(출 31:18; 32:14; 34:1, 28). 또 모세는 율법을 써서 레위 자손과 제사장과 모든 장로에게 주었으며(신 31:9-13), 여호수아도 말씀을 하나님의 율법 책에 기록하였다(수 24:26). 하나님께서는 이사야와 예레미아에게도 여호와의 말씀을 책에 기록하여 후세에 영영히 있게 하라고 하셨다(사 30:8; 렘 30:2).
예수님은 그의 제자들에게 성령이 그가 하신 말씀을 그들로 기억하게 하실 것을 말씀했고(요 14:26), 바울은 그가 고린도 교인들에게 쓴 말씀이 바로 주의 명령이라고 하였다(고전 14:37). 이렇게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의 기록된 형태를 가리킨다. 이 기록된 하나님의 계시로서 서령이란 말은 헬라 어(biblia)에서 라틴 어를 통해서 나왔는데 특별히 교회에 의해 정경으로 인식된 책들을 가리킨다. 원래 헬라 어 비브리온(biblion)은 비브로스(biblos)의 축소형으로 실제로는 기록된 문서의 어떤 것을 가리켰으나 원래에는 파피루스에 기록된 것을 가리켰다. 성경의 동의어는 문서나 성서(헬라 어, haigraphai, ta grammata)로 신약에서 자주 전체나 부분으로서 구약 문서를 가리켰다(마 21:42; 막 12:10; 딤후 3:15; 벧후 3:16).1
그러면 왜 기록된 형태의 성경이 필요한가?
첫째로, 보다 더 정확하게 다음 세대를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보전하기 위해서이다(신 31:12-13).
구전으로 전달되는 것으로는 하나님의 말씀이 전달과정에서 정확성을 기하기가 힘들다.
둘째로, 반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조사하고 연구하며 토의함으로써 더 잘 이해하고 순종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준다.
셋째로, 기록된 말씀은 구전보다 더 많은 지역, 더 많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준다.
이런 점에서 오늘날 성경 번역의 필요성은 세계 선교를 위해 절실한 교회의 우선 과제라고 할 수 있다.
성경의 구분
성경의 구분
성경은 두 개의 언약, 즉 옛 언약과 새 언약으로 되어 있다.
헬라 어 디아세케(diatheke)라는 말이 헬라 어 성경에 빈번히 나오는데 그 말은 유언이기 보다는 언약이란 뜻이다.
우리가 성경을 크게 두 언약으로 구분해서 구약과 신약으로 부르는데 구약의 책들은 옛 언약의 역사와 그것들과의 밀접한 연관 때문이며,
신약의 책들은 그것들이 새 언약에 기초한 문서들이기 때문이다(렘 31:31; 출 24:7; 히 8:13; 고전 1:25; 고후 3:14).
이렇게 성경은 구약과 신약으로 구성되나 기독교 안에서 그 성경에 얼마나 많은 책들이 포함되느냐에는 이견이 없지 않다.
예를 들어 씨리아 계통 교회의 어떤 분파에서는 신약의 베드로후서, 요한삼서, 유다서 그리고 요한계시록을 그들의 신약성경에 포함시키지 않는다.
또 로마 교회와 헬라 정교회에서는 구약에 여러 책들을 덧붙이는데 이런 책들은 기독교의 칠십인 역본에 한 부분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원래 히브리 어 성경에는 이런 외경들은 권위서에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영국 국교(루터 교회같이)가 개신교의 성경에 한두 개를 덧붙여서 포함시키고 있으나 제롬(Jerome)의 견해에 따라 삶의 모범과 교훈으로 읽을 수 있을 뿐이며
어떤 교리의 확립에 그것들을 적용하지는 않고 있다. 그러나 다른 개신교회들은 전혀 그런 책들에 성경적 지위를 부여하지 않는다.3
따라서 개신 교회에서는 웨스트민스터 신앙 고백서에 기록된 대로 39권의 구약과 27권의 신약을 합한 66권만을 하나님의 영감으로 된 신앙과 생활의 규범이라고 확신한다.
신ㆍ구약 성경의 구분
1. 구약성경
히브리 성경책들은 세 가지 구분으로 배치되어 있는데 율법과 선지서와 성문서이다. 율법은 모세의 다섯 책, 즉 오경을 가리킨다. 선지서는 다시 두 구분으로 나뉘어서 전선지서는 여호수아, 사사기, 사무엘, 열왕기서로 되어 있으며, 후선지서는 이사야, 예레미아, 에스겔 그리고 12소선지서로 되어 있다.
성문서는 나머지 구약의 책들이 포함되는데 시편, 잠언, 욥 그리고 다섯 개의 두루마리로 아가, 룻기, 예레미야애가, 전도서, 에스도 그리고 다니엘, 에스라, 느헤미야와 역대기이다. 따라서 히브리 어 성경은 모두 24권인데 39권의 개신교의 구약과 차이가 나는 것은 그 중에 어느 것을 제외시켰기 때문이 아니라 후대에 와서 소선지서를 12권으로 하고 사무엘서와 열왕기서, 그리고 역대기서와 에스라서, 느헤미야서를 각각 두 권으로 나눴기 때문이다.
2. 신약성경
신약성경은 약속의 성취란 점에서 구약의 완성이라고 볼 수 있다. 구약이 선지자들에 의해 우리 조상들에게 하신 옛 말씀이라면 신약은 그의 아들로 말미암아 말씀하신 마지막 말씀으로 그 안에서 모든 이전 계시가 요약되고 확립되고 탁월하게 되었다. 구약 계시의 능력있는 역사들이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에서 정점에 이르렀으며 구약 선지자들의 말씀들이 그 안에서 성취되었다.
신약성경은 네 부분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⑴ 사복음서들, ⑵ 사도행전, ⑶ 사도들과 사도 시대 인물들이 쓴 21개의 서신들, ⑷ 요한계시록 등이다.
성경의 메시지
성경의 중심 메시지는 구원의 이야기이며 두 언약들을 통해서 전개된 이야기 안에서 세 가지 요소가 구별될 수 있는데 그것은 구원의 초래자, 구원의 길 그리고 구원의 상속자들이다. 하나님은 사람들을 계약으로 취급하시는데 그 요소로서는 언약의 중보자, 언약의 기초 그리고 언약의 백성이 있다. 하나님 자신이 그의 백성의 구주이신데 그가 그들과 그의 언약의 자비를 확립하신다. 구원의 초래자, 언약의 중보자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구원의 방법, 언약의 기초는 믿음과 순종의 반응을 그의 백성에게서 불러일으키시는 하나님의 은혜이다. 언약 백성인 구원의 상속자들은 하나님의 이스라엘이요 하나님의 교회이다.4 따라서 구원이 성경의 핵심 메시지라는 사실은 그 성경의 주요 내용이 구원의 초래자이신 성부, 성자, 성령 삼위 하나님과 구원의 대상자인 인간의 타락과 그 비참한 결과 그리고 믿음을 통한 용서와 구원의 축복과 은혜가 그 중심임을 알 수 있다.
더 나아가서 성경은 이제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구원자이신 하나님을 어떻게 영화롭게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삶의 방법과 마침내 누리게 될 영원한 천국에서의 영생의 축복에 대해 말씀하고 있다.
3. 위경(외경)과 성경
외경(Apocrayphal)이란 말은 감추어진 도는 기원이 알려지지 않은 위조의 비정경적인 책들을 가리키는 데 쓰인다. 로마 가톨릭 교회에서는 1546년 트렌트 회의(the Council of Trent)에서 외경을 정경으로 공인하였으며 그 목록은 토빗, 유딧, 솔로몬의 지혜, 집회서(즉 예수의 지혜, 시락의 아들), 바룩 그리고 마카비일, 이서이다. 같은 회의에서 역시 에스텔, 수산나와 세 가지 거룩한 어린이의 노래인 벨과 뱀, 므낫세의 기도를 더하였다.
외경의 형태는 역사적, 소설적, 설교적, 종교적 혹은 묵시적 형태 등 여러 가지 문학적 장르에 속한다.5 대체로 그 책들은 경건 서적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위경은 구약의 정경처럼 오랜 세월 동안 사용되고 읽혀지면서 그 권위를 인정받은 책들과는 달랐으며 특별히 저자들의 영감에서 떨어지는 책들이다. 물론 그 책들은 경외서로 분류되는 다른 많은 책들보다는 더 신뢰를 받아 온 것들이다. 그럼에도 외경은 아래와 같은 이유에서 영감 된 성경으로 간주할 수 없다.
1. 외경은 원래의 히브리 성경 구약에서 찾아볼 수 없다.
조세푸스(Josephus)가 마음에 두고 있던 구약 22권은 아래와 같다.
⑴ 모세의 다섯 책: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⑵ 13예언서: 여호수아, 사사기 그리고 룻기(하나로 취함), 사무엘서, 열왕기, 이사야,예레미야 그리고 애가(하나로), 에스겔, 12소선지서(하나로), 다니엘, 욥, 에스더,
에스라 그리고 느헤미야(하나로) 그리고 역대기서
⑶ 하나님께 드리는 네 가지 찬송과 실제적인 교훈들로 시편, 잠언, 솔로몬의 아가, 전도서이다.
⑶ 하나님께 드리는 네 가지 찬송과 실제적인 교훈들로 시편, 잠언, 솔로몬의 아가, 전도서이다.
2. 외경은 결코 우리 주님에 의해 인용되지 않았다.
3. 이런 외경들의 저자들 중에서는 영감을 부인하였다(벤시락의 아들, 예수의 지혜서에 대한 서언을 보라. 역시 마카비이서 2:23; 15:38).
4. 외경서들은 교회에서 읽혀졌으나 제롬의 진술의 빛에서 해석되어야 했다.
그는 교화를 위해서 읽을 것이지 신앙의 교리를 증명하기 위한 권위를 위해서는 아니라고 하였다.6
따라서 우리는 웨스트민스터 신앙 고백서의 진술대로 39권의 구약과 27권의 신약이 하나님의 영감으로 된 권위서로 신앙과 생활의 규범이라고 확신한다.
주
1. F.F. Bruce, The Bible in Philip Wesley Comfort, ed. The Origin of the Bible(Weaton: Tyndale, 1992), p.3
2. Wayne Gradam, Systematic Theology(Grand Rapids: Zondervan, 1994), p.50
3. 외경에 대해서는 외경과 성경란을 참고하라
4. F. F. Bruce, op. cit., pp.4-11
5. B. 매트거, 외경이란 무엇인가, 민영진 역(서울: 컨콜디아사, 1979), p.10
6. William Hendriksen, Survey of the Bible(Grand Rapids: Baker, 1978), pp.20-21
따라서 우리는 웨스트민스터 신앙 고백서의 진술대로 39권의 구약과 27권의 신약이 하나님의 영감으로 된 권위서로 신앙과 생활의 규범이라고 확신한다.
주
1. F.F. Bruce, The Bible in Philip Wesley Comfort, ed. The Origin of the Bible(Weaton: Tyndale, 1992), p.3
2. Wayne Gradam, Systematic Theology(Grand Rapids: Zondervan, 1994), p.50
3. 외경에 대해서는 외경과 성경란을 참고하라
4. F. F. Bruce, op. cit., pp.4-11
5. B. 매트거, 외경이란 무엇인가, 민영진 역(서울: 컨콜디아사, 1979), p.10
6. William Hendriksen, Survey of the Bible(Grand Rapids: Baker, 1978), pp.20-21
성경의 권위
오늘날 교회의 성경에 대한 권위는 일정하지가 않다. 성경이 단지 인간 저자의 책이 아니요, 보통 서적과 다르다는 의미에서라면 성경의 권위는 과거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성경이 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권위가 있다는 입장이라면 오늘의 교회는 결�_코 일치하지 않는다. 진정한 의미에서 성경의 권위를 믿는 것은 개신교내의 복음주의 그룹과 로마 캐토릭 그리고 희랍정교회뿐이다. 물론 그것도 로마 교회의 경우는 외경과 교회의 전통의 권위도 인정하고 있으므로 성경의 절대적 권위를 인정하고 있지 않는 셈이다
그러면 과연 성경의 권위는 잘못된 주장인가? 성경의 권위가 그 무오성에 있다면 우리는 어떻게 성경의 무오함을 증명할 수 있는가? 그리고 실제로 우리가 성경의 무오를 증명할 수 있는가? 머레이(J. Murray)교수는 우리가 성경이 무오하다고 말하는 것은 우리가 그것이 무오하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니라고 하였다. 성경 앞에 증거를 두기는 불가능하다.
예컨대 어떻게 창세기 1장이 실질적으로 참되다고 증명할 수 있는가? 이것은 성경자체가 무오함을 말하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다. 우리가 성경을 변호할 때 우리는 그것으로 성경의 무오성을 증명하지 못한다. 어떻게 우리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을 때 그가 구원받지 못한 수많은 사람의 죄를 속죄했다고 증명할 수 있는가? 어떻게 우리가 그의 승천 후에 하늘에서 하나님의 우편에 있는 거룩한 곳으로 들어 가신 것을 증명할 수 있는가? 그것은 이런 일들이 참되어서가 아니라 성경이 그렇게 가르치기 때문이라고 논증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성경 그 자체와 그 자체의 기원 특성 그리고 권위에 대한 성경의 증거가 유일한 근거인 것이다. 우리가 이것들을 믿는 것은 성경이 그렇게 말씀하기 때문이다(1)
그러면 성경 자체가 무오하다고 믿을 수 있는 근거가 무엇인가?
1. 성경의 영감
성경이 보통 인간의 저작이 아니라 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그 근원이 신적인 증거가 있어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해서 성경이 하나님의 영감으로 쓰여졌다는 증거가 있어야 한다. 성경의 영감에 대한 대표적인 구절은 디모데후서 3:16이다. 거기서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되었다고 하였다. 또 베드로후서 1:21에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면 성경 자체가 무오하다고 믿을 수 있는 근거가 무엇인가?
1. 성경의 영감
성경이 보통 인간의 저작이 아니라 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그 근원이 신적인 증거가 있어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해서 성경이 하나님의 영감으로 쓰여졌다는 증거가 있어야 한다. 성경의 영감에 대한 대표적인 구절은 디모데후서 3:16이다. 거기서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되었다고 하였다. 또 베드로후서 1:21에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이라고 하였다.
이 두 구절에서 모두 성경이 성령의 감동으로 쓰여졌다고 했는데 그 말은 헬라어의 데오푸뉴스토스란 말이다. 이 말의 의미는 하나님께서 호흡하셨다는 뜻이요 성경이 전능자의 창조적 호흡으로 산출되었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모든 성경을 세오프뉴스토스라고 부르는 것은 그것들이 하나님께서 호흡하신 것이요 신적 활동의 모든 영역에 계신 성령의 창조임을 목적한 것이다(2). 다시 말해서 여기 호흡하셨다는 것은 하나님에 의해 숨을 내쉬었다는 것이요 그 말은 하나님의 활동에 대한 비유로 특별히 성령을 통한 하나님의 행위를 가리킨다(3). 이렇게 성경은 하나님의 창조적 호흡의 산물이므로 영감이란 말은 하나님의 자기계시(Self-revelation)가 성경의 말씀으로 표현되게 된 방법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러나 성경의 영감은 성경의 인간 저자에게 무관한 것이 아니다. 그 저자들에게 영감을 주어 하나님께서 쓰시고자 하시는 대로 성경을 쓸 수 있게 하였다. 영감에 대해 가우센 (Gaissem)은 정의하기를 하나님의 성령이 성경의 저자들에게 역사하셔서 그들이 쓴 단어들의 사용까지 인도하시고 그들을 모든 오류에서와 모든 생략으로부터 지키시기 위한 성령의 설명할 수 없는 능력이라고 하였다(4).
이렇게 영감은 인간 저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단어를 선택하는데서부터 원저자들을 모든 오류와 생략에서부터 지켜 주었다는 것이다(5).
그러므로 성경의 영감은 성경의 무오를 보증한다.
주
1. Collected Writings of John Murray(London : The Banner of Truth Trust, 1976). Vol. I.
pp.9-10
2. B.B. Warfield, The Inspiratio and Authority of the Bible (Phillipsburg : The Presbyterian and Reformed Publishing Company, 1979). p.296
3. Bruce Milne, Know the Truth(I.V.P. 1982) p.35
4. R.P. Lightner, The Saviour and the Scriptures(Philadelphia : Presbyterian and Reformed Publishing Co. 1966). p.59.
5. Ibid.,(L. Gaussen, The Plenary Inspiration of the Holy Scriptures, p.34)
2. 계시와 영감의 관계
계시는 하나님께서 알려 주시는 것 즉 하나님 자신과 그의 뜻에 관한 사실들의 감추어진 것을 알려 주시는 것에 대한 것이다.
주
1. Collected Writings of John Murray(London : The Banner of Truth Trust, 1976). Vol. I.
pp.9-10
2. B.B. Warfield, The Inspiratio and Authority of the Bible (Phillipsburg : The Presbyterian and Reformed Publishing Company, 1979). p.296
3. Bruce Milne, Know the Truth(I.V.P. 1982) p.35
4. R.P. Lightner, The Saviour and the Scriptures(Philadelphia : Presbyterian and Reformed Publishing Co. 1966). p.59.
5. Ibid.,(L. Gaussen, The Plenary Inspiration of the Holy Scriptures, p.34)
2. 계시와 영감의 관계
계시는 하나님께서 알려 주시는 것 즉 하나님 자신과 그의 뜻에 관한 사실들의 감추어진 것을 알려 주시는 것에 대한 것이다.
이에 비해 영감은 계시의 산물인 그 기록에 관한 것이다.
영(E.J. Young) 박사는 계시와 영감사이를 구분짓기를 ‘둘이 매우 밀접하게 연관된 것이 사실이다. 넓은 의미에서 영감은 형식이나 계시의 한 양태인 것이 사실이다.
영(E.J. Young) 박사는 계시와 영감사이를 구분짓기를 ‘둘이 매우 밀접하게 연관된 것이 사실이다. 넓은 의미에서 영감은 형식이나 계시의 한 양태인 것이 사실이다.
동시에 근본적인 차이가 있는데 계시는 근본적으로 정보에 대한 지식의 전달이요, 영감은 교훈에서 무오를 안전하게 하기 위해 계획된 것’이라고 하였다(1).
3. 영감의 범위
성경의 영감을 완전히 부인하는 교회나 신학자는 없다. 그러나 성경의 영감을 부분적인 영감으로 보고 영적인 교훈에 제한시키는 이들이 있다.
3. 영감의 범위
성경의 영감을 완전히 부인하는 교회나 신학자는 없다. 그러나 성경의 영감을 부분적인 영감으로 보고 영적인 교훈에 제한시키는 이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은 역사적인 연대나 인물 그리고 사건 등과 과학적인 일들을 기록하는 데서는 오류가 많다고 지적한다.
다시 말해서 그런 것들은 영감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결국 저들은 부분 영감설을 주장하는 셈이다.
그러면 성경은 그 자체로서 어떤 영감을 주장하는가?
1) 구약의 영감
오늘의 구약성경 39권은 히브리성경에서도 그대로 나타나는데 우리는 그것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생각하며, 유대인들은 거룩한 책들로 보아 왔다(1). 닷스(Marcus Dods)는 구약은 신약의 저자들과 그들과 동시대의 모든 유대인에 의해 영감된 것으로 수납되었다고 하였다(2).
그러면 성경은 그 자체로서 어떤 영감을 주장하는가?
1) 구약의 영감
오늘의 구약성경 39권은 히브리성경에서도 그대로 나타나는데 우리는 그것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생각하며, 유대인들은 거룩한 책들로 보아 왔다(1). 닷스(Marcus Dods)는 구약은 신약의 저자들과 그들과 동시대의 모든 유대인에 의해 영감된 것으로 수납되었다고 하였다(2).
더구나 구약의 영감에 대해서는 그리스도가 히브리성경은 하나님께서 계시하신 것으로 절대적 권위가 있다고 보셨다. 그 대표적인 구절은 마태복음 5:17-18이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이 말씀은 구약의 영감에 대한 예수님의 이해요 신념이며 확신이었다. 여기서 율법과 선지자는 구약성경에 대한 표준 명칭이다. 이 말씀은 말라기로부터 하나님께서 요한을 보내신 때까지 430년동안 하나님의 권위있는 계시로 서 있다(3).
예수님께서 구약 전체를 영감된 말씀으로 받으신 증거로 그의 시대에 성경이 실재했던 대로 성경의 삼중 구분을 언급하신 데서도 찾아 볼 수 있다.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눅 24:44). 그런데 여기 율법과 선지자와 시편은 당시 구약성경 전체를 가리켰다. 더 나아가 당시 어떤 때는 구약성경 전체를 단지 율법이라고만 불렀다. 예를 들어 예수님께서 율법으로서 오경 밖에 구절을 인용하셨다(요 10:30). 그래서 해리스(Harris)는 마태복음 5:17-18과 누가복음 24:44은 전체 구약을 가리킨다고 보았다(4).
그 밖에도 너희가 읽어보지 아니하였느냐는 말은 너희가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을 모르느냐는 말과 같은 말로서 (마 12:3, 19:4, 21:16, 22:31, 막 2:25, 12:10,26, 눅 6:3) 그것은 기록되었으되를 의미하였다 (마 11:10, 21:13, 26:24, 막 9:12,13, 11:17, 14:21,27, 눅 7:27, 19:46). 이런 구절에서 예수님은 성경의 모든 부분 즉 역사, 율법, 시편 그리고 예언서가 동등하게 영감된 것으로 적용하여 사용하셨다
이런 예수님의 경향은 구약성경의 부분 영감 대신에 전체가 다 영감되었다는 견해를 견지하셨음을 보여 준다. 예수님은 구약에 예언된 메시아직을 수행하실 때 그 말씀이 하나님의 영감된 것으로 오류가 없으므로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는 신념으로 활동하셨다. 그는 의식적으로 친히 그 세미한 부분까지도 다 이루셨던 것이다(눅 4:18, 사 61:1, 마 8:16, 사 53:41, 막 8:31, 마 26:24, 눅 22:37, 사53:12)(5).
예수님의 구약에 대한 권위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는 구약성경의 낱말에까지 영감된 것을 주장하셨다. 그 대표적인 구절은 마태복음 5:18이다 :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않고 다 이루리라!” 여기서 일점일획은 히브리어 글자에 이오타( )로서 그것은 하나의 콤마나 점을 친 것처럼 제일 작은 알파벳의 하나다. 그러나 실제로 여기서 의미하는 것은 그것도 아니라 돗(Dot 혹은 Title)으로서 영어로 하면 H자나 I자의 끝에 돌출부분을 가리킨다(6).
그러니까 전체로서 율법이 다 이루기까지는 율법의 단어의 돌출부분도 없어지지 않으리라는 말씀이다. 그 본문에서 예수님은 구약성경의 영감이 글자에까지 미친 완전한 영감을 주장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서 예수님은 축자 영감과 같은 것을 가르치신 것이 분명하다. 그가 권위를 돌릴 때 저자보다 기록된 것들을 보신 것을 알 수 있다. 그 작품들은 단어들로 구성되었으므로 단어의 영감에 대한 어떤 형태가 있어야 한다(7).
이렇게 구약성경은 그 부분과 전체가 심지어는 그 단어에 이르기까지 다 영감되었다는 것이 주님의 가르침이었고 그 당시나 우리 교회의 전통적 신앙이다.
주
1. The Infallible Word(Phillipsburg : Presbytarian and Reformed Publishing Co. 1946), p.55
2. Marcus Dods, Inspriation, A Dictionary of Christ and the Gospels, ed, James Hastomgs.
,(1907). 1831-32(R.P. Lioghtner, Opcit., p.60)
3. R.C.H. Lenski, The Interpretation of St. Lukes Gospel(Columbus : The Wartburg Press)
pp.839-40
4. R. Laird Harris, Inspiration and Cononicity of the Bible(Grand Rapids : Zondervan, Pub. Co,.1957) p.46
5. J.I .Paker, Fundamentalism and the Word of God(Grand Rapids : Eerdmans Pub, Co., 1960). pp.57-58
6. J. Montgomery Boice, Fundations of the Christian Faith(Downers Grove : I.V.P. 1986). p.43
7. J.W. Wenham, Our Lord’s View of the Old Testament(Downers Grove : I.V.P. 1953) p.25
성경은 어떤 책인가?
성경이란 무엇인가?
성경(Bible)이란 말은 헬라어 비브리온(Biblion)에서 왔는데 그 의미는 두루마리 혹은 책이란 뜻이다.
비브리온이라는 말이 이렇게 파피루스의 두루마리란 뜻이지만 이 말은 보다 폭넓게 쓰여 왔다.
오늘날 헬라어의 비브리온은 훨씬 더 중요한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원래 이 말은 중성(中性)이므로 마술의 책들로 쓰이기도 했고(행 19:19) 이혼증서로 쓰이기도 했으나 (막 10:4) 역시 거룩한 책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계시의 기록으로 인식되기도 하였다.
성경이란 말의 기원은 구약성경 단 9:2(LXX)로 거슬러 올라가며 거기 나오는 타비브리아( Tabiblia)는 선지자들의 글들을 가리켰다. 그런데 그 말은 일반적으로 구약성경을 가리켰다. 그리고 기독교회로 이 말이 유입되면서(클레멘트2서 14:2) 5세기경에는 오늘날 우리가 가지고 있는 정경적 글들의 전체를 포함하는 성경이 되었다.
구약성경은 처음부터 하나님의 계시된 뜻이므로 사람들을 제어해 왔으나 주전 2세기까지는 고정된 형태를 이루지 않았었다. 또 신약성경의 정경은 1세기에 다양한 책들이 교회 안에서 회람되었으나 그 중에 어떤 책들이 신약의 정경으로 확정된 것은 350년대에 와서 된 일이다. 제2세기 교회는 밖으로는 박해의 공격을 받았으며 안으로는 이단의 발생으로 시달리게 되었다.
특별히 영지주의(Gnosticism)와 그 대표자였던 말시온은 사적인 정경 목록을 만들어 교회들을 유혹하게 되었으므로 정통교회는 정경결정의 필요성을 인식하게 되었다. 교회는 이미 교회들안에서 회람되고 있던 책들을 선별하여 정경으로 수납하게 되었는데 그 최종확인은 397년 칼라고회의 때였다(1).
그러면 왜 많은 회람서 중에서 어떤 책들은 정경에서 제외되었는가? 그런 책들은 정경의 기준에 일치하지 못하는 것들이었다. 일반적으로 정경의 기준이나 수납요인은 영감과 사도성 그리고 일관된 윤리였다. 그러나 여기서 기억할 것은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정경을 결정할 권위가 있었다는 것이 아니다.
교회가 정경이 아닌 책을 정경서로 만들 수 없을 뿐 아니라 정경서를 정경에서 제외시킬 권한도 없었다. 교회는 다만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미 폭넓게 회람되던 책들을 정경으로 확인하고 수납했을 뿐이다.
성경의 원문은 세 가지 말 즉 히브리어와 헬라어 그리고 약간의 아람어로 쓰여졌다. 저자는 40여명으로 1600년어간에 기록되었으며 구약 39권과 신약 27권 도합 66권으로 되어있다.
성경은 자연계시(일반)에 비하여 특별계시라고 부른다. 자연계시를 통해서도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창조주시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 그러나 타락으로 인해서 우리의 이성이 손상되었을 뿐아니라 자연까지 오염되었으므로 하나님에 대한 바른 이해를 할 수 없게 되었다. 더구나 자연계시는 사람이 죄인이므로 구세주가 필요한데 그분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이시며 그를 믿을 때 구원을 받는다는 복음을 가르치지 못한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특별계시를 주셨다. 여기서 특별계시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말한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특별계시는 성경 안에서와 성경을 통해서 우리에게 오기 때문이다(2).
그러면 성경(특별계시)은 무엇을 계시하는가?
성경은 역사 속에서의 구속을 계시한다. 그리고 이 구속은 주 예수그리스도의 사역에 중심이 되었다. 그가 죄인의 위치에서 죽으셨고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칭의의 증거로 살아나셨다. 이것이 성경이다. 그러므로 성경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구속을 위해 그가 하신 일에 대한 해석적 기록이다(3).
다시 말해서 성경의 이야기는 역사 속에서 능동적인 하나님의 간섭에 대한 기록이다. 성경의 인물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게 하시고 그들을 통해서 말씀하신
인물들이었다. 그 중심은 성육신하신 하나님이시다(4).
여기서 보다더 명확한 이해를 돕기 위해 성경이 계시하는 진리를 구체적으로 설명하기로 한다.
1. 하나님께서 자신을 들어 내셨다. 그는 조물주와 주인으로 그의 영원한 능력과 신성을 보여 주셨으며(롬 1:2) 그의 성품과 그의 사람을 취급하시는 방법들을 보여 주셨다(출 34: 6, 신 5:9, 렘 9:24, 요일 1:5, 4:7-10). 이 점에서 하나님의 아들의 성육신이 그 정점을 이루고 있다.
2. 하나님은 그의 나라를 드러내셨다. 하나님은 그의 우주적 왕직의 실제를 보여 주셨다(선지자들이 어떻게 하나님의 보좌의 환상은 보았는지를 기록했고(왕상 22:19, 사 6:1, 겔 1:26, 계 4:2) 어떻게 시편기자가 하나님의 통치를 축하했는지를 기술하였다(시 93:1, 96:10, 97:1, 99:1, 계 19:6). 여기서는 앞으로 있을 메시아의 구원의 통치로 임할 역사의 종말이 그 정점을 이룬다(마 28:18, 히 1:3,8,13). 믿는 자와 반대자의 운명을 드러냈다(고전 15:24, 빌 2:9-11).
3. 하나님은 그의 계약을 드러내셨다. 여기서는 그와의 관계가 중심인데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맹서하시며 그들을 축복하시며 그들이 그를 섬기도록 그에게 맹서케 하셨다. 내가 너의 하나님이 되겠고 너희가 내 백성이 되리라 이것은 하나님께서 계약적 축복의 새로운 단계마다 반복하신 관계적 헌신이었다(창 17:7-14, 출 19:4-6, 레 26:12, 신 7:6, 14:2, 렘 11:3, 30:22, 31:33, 겔 11:20, 고후 6:16, 계 21:3). 이런 계약적 관계로 인한 축복이 새로운 그리스도를 중보자로 인한 계약에서도 지속된다(히 8장 –10장).
4. 하나님은 그의 율법을 나타내셨다. 이 율법은 만인을 위한 것이지만 토라(권위있는 아버지의 교훈)로서 그의 백성에게 보이신다.
“저가 그 말씀을 야곱에게 보이시며 그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보이시는도다” (시 147:19). 구약시대에 하나님은 그의 백성의 아버지시였으며 새 계약 아래서는 하나님의 유일한 독생자를 영접한 모든 사람에게 아버지시다(출 4:22, 말1:6). 그리고 그들은 입양과 중생으로 예수님의 형제가 되었다(요 1:12, 20:17, 갈 4:4-7).
5. 하나님은 그의 구원을 보이셨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파멸시키려는 어떤 위협에서든지 예컨대 애굽의 포로나(출 14:13 ,15:2) 바벨론 포로(사 51:5-6,8) 그리고 민족적 원수나 개인적 고난(시편) 또 죄와 사탄에서(신약에서 여러 번 나옴) 양 무리를 구출하시는 구원의 행위를 드러내셨다. 이 점에서 계시의 정점은 하나님께서 복음의 말씀을 주신 대로(갈 1:11) 그리스도의 완성된 사역과 그리스도의 성령의 지속적인 사역을 설명한다(롬 1:16, 엡 1:13)(5).
그러므로 성경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말씀하신 구원의 기쁜 소식이며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법이요 교훈이다. 그리고 이런 맥락에서 바울사도는 디모데후서 3:16-17에서 다음과 같이 갈파하였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주
1. Baker’s Dictionary of Theology(Grand Rapids : Baker Book House, Fouth Printing,
1969). pp.94-95
2. Bruce Milne, Know the Truth(Downers Grove : I.V.P. 1982) p.27
3. James M. Boice, Foundations of the Christian Faith(Downers Grove : I.V.P.1986). p.37
4. R. Laird Harris, Inspiration and Canonicity of the Bible(Grand Rapids : Zondervan
Publishing House, Ssevnth Printing, 1974). p.1
5. J.I. Packer, God’s Words (Downers Grove : I.V.P, 1981), pp.21-23
서론 정경과 성경의 권위
정경과 성경의 권위는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것은 성경의 정경은 그 성경의 권위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정경이라고 말할 때 그것은 그 책이 정경에 속했거나 성경의 목록에 속했다는 뜻이며 그 책이 바로 성경이란 말과 다르지 않다.
그러면 정경이란 무엇인가부터 살펴보고 정경의 결정 요인 그리고 신구약의 정경에 관하여 알아보기로 한다.
1. 정경이란 무엇인가?
영어의 캐논(Canon)이라는 정경이란 말은 헬라어 카논에서 왔는데 적어도 아래 세 가지 의미로 쓰이고 있다.
그러면 정경이란 무엇인가부터 살펴보고 정경의 결정 요인 그리고 신구약의 정경에 관하여 알아보기로 한다.
1. 정경이란 무엇인가?
영어의 캐논(Canon)이라는 정경이란 말은 헬라어 카논에서 왔는데 적어도 아래 세 가지 의미로 쓰이고 있다.
1) 갈대 혹은 막대기로 후에 자막대란 뜻이 되었다.
2) 교회회의의 권위있는 결정을 의미했다.
3) 성경에 적용되어서는 표준에 맞으며 만족할 만하며 하나님의 영감된 공인서로 A.D. 350년 후에 곧 성경과 연관되어 처음으로 사용되었다.1)
개신교의 정경에는 구약 39권과 신약 27권이 포함되나 로마 캐토릭에는 몇 권의 외경이 추가되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개신교의 구약 39권만을 권위서로 인정하고 있다.2)
2. 정경의 결정 요인
예수님께서는 책을 남기지 않으셨으므로 교회는 최고의 권위서의 여부를 그 책들이 사도들에게서 온 것인가에 따라서 판단하였다.
2. 정경의 결정 요인
예수님께서는 책을 남기지 않으셨으므로 교회는 최고의 권위서의 여부를 그 책들이 사도들에게서 온 것인가에 따라서 판단하였다.
1) 사도적 권위
예수님의 제자 중에 사도바울만큼 활동적으로 글을 쓴 이는 없었다.
바울의 사도직에 대해서는 의심하는 이들도 있었으나 이방인 교회에서는 그의 사도성을 의심하지 않았다.
신약의 책들 중에는 바울의 서신들처럼 저자의 이름을 쓴 것은 쉽게 정경으로 수납될 수 있었으나 전혀 저자의 이름이 없는 책들도 있어서 문제가 되었다. 마태와 요한의 사도적 저작권은 전통에서 잘 확립되어 있었다. 그러나 마가와 누가는 어떤가? 누가복음의 경우 그 저자는 일찍이 바울이 사랑하는 의사 누가로 부른 인물이었다(골 4:14). 그것은 그가 바울의 조력자의 한 사람이었으며 바울의 사도적 권위의 어떤 것이 그에게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이런 경향은 초대교회가 얼마나 정경의 결정 요인에 사도의 권위를 중요하게 생각했는지의 예가 될 것이다.
그리고 초기에서까지도 만일 사도적 권위의 어떤 형태가 확립될 수만 있었다면 직접적인 의미에서 사도적 권위를 고집하지는 않았다. 거룩한 가족의 일원이 되는 자격은 명백하게 거의 사도적 신분을 수반하였다. 바울은 실로 주님의 동생 야고보를 사도들에 포함시킨 것 같다(갈 1:19). 그러나 야고보에 관한 한 바울 자신에게서처럼 그 이상 고려할 것이 있었는데 주께서 부활로 그에게 나타나셨다는 것이다(고전 15:7).
그러므로 만일 흩어진 12지파에게 보내는 그 서신의 저자로서 야고보가 주님의 동생과 동일시되었다면 그것은 그 서신이 사도적 문서 중에 수납될 수 있는 충분한 이유가 되었다. 만일 유다가 예수그리스도의 종이요 야고보의 동생이었다면 그 유다는 그 거룩한 가족의 일원이 되는 것이며 그것은 바로 그 서신이 짧은 것이었을지라도 호의로 교회가 수납하는데 충분한 이유가 되었다. 또 요한일서는 항상 제 사복음서와 밀접하게 제휴되었으므로 그 복음서가 사도적이요 정경으로 인식되었듯이 비록 그 서신이 복음서처럼 무명이었을지라도 사도적이요 정경서로 인식되었다.
2) 오래됨
만일 한 작품이 사도의 것이거나 사도와 절친한 어떤 사람의 것이었다면 그 책은 사도시대에 속했음이 확실하였다. 그러나 후대의 작품들은 그것들의 장점에도 불구하고 사도적 작품이나 정경에 포함될 수 없었다. 예컨대 헤르마스 목자서(Hshepherd of Hermas)는 무라토리 정경 목록의 편찬자가 높게 평가하였다.
2) 오래됨
만일 한 작품이 사도의 것이거나 사도와 절친한 어떤 사람의 것이었다면 그 책은 사도시대에 속했음이 확실하였다. 그러나 후대의 작품들은 그것들의 장점에도 불구하고 사도적 작품이나 정경에 포함될 수 없었다. 예컨대 헤르마스 목자서(Hshepherd of Hermas)는 무라토리 정경 목록의 편찬자가 높게 평가하였다.
그는 분명 이 책이 예언의 진품이라고 인식하였다. 그러나 그 책이 나타난 연대가 너무 늦어서 정경 예언서 가운데 포함되지 못하였다. 그
러므로 정경의 결정 요인은 사도와 그들의 동료들이 쓴 것인가에 달려 있었다.
3) 정통성
정경의 결정 요인은 그 책의 정통성에 있었다.
3) 정통성
정경의 결정 요인은 그 책의 정통성에 있었다.
여기서 정통성은 사도적 신앙을 가리키며 그것은 사도적 책들에서 설명된 신앙이며 사도들에 의해 세워진 교회들 안에서 지속된 신앙이었다.
그들은 가현적(docetic)이고 그노시스적인(gnostic) 이단에 대항하여 신앙의 규범으로 요약된 사도적 교훈을 변호하였다.
정통성에 대한 표준으로는 그 책이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에 대해서 무엇을 가르치는가?
예수를 역사적 나사렛 예수로, 십자가에 죽으시고 죽은 자 가운에서 살아나셔서 만주의 주가 되신 높아지신 분으로 사도적 증거를 하고 있는지가 고려되었다.
이런 결과 베드로 행전(Acts of Peter)나 바울의 행적(Acts of Paul) 같은 책은 그 이름이 사도와 연관이 있었으나 그 책들의 내용에서 비사도적 특성때문에 영구하게 신약의 정경 속에 가입될 수 없었다.
4) 보편성
어느 책이 한 지역에서만 알려진 것은 보편교회의 정경의 일부로 인식되지 않았다. 반면에 보편교회에서 광범위하게 인식되었던 책은 그 즉시나 혹은 후에 보편적으로 수납될 수 있었다. 예컨대 로마교회가 궁극적으로 히브리서를 정경서로 동의한 것은 나머지 정통교회와 공동보조를 취한 결과였다. 서신들의 경우 어떤 것은 아주 지역적으로 인식되었으나 이따금 보편적으로 수납되고 영구적으로 권위를 가지게 되었다. 이렇게 지역적으로 용납되던 서신들이 점차 확산되어 보편적으로 인식되게 되었다. 요한계시록은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에 보낸 서신이었으며 복음서나 사도행전까지도 사실은 우선적으로 계획된 독자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 책들이 정경의 신분을 얻게 된 것은 그것들이 처음보다 점차 넓게 인식 되어진 결과였다.
5) 전통적인 사용
정경의 결정 요인은 역시 전통의 지속에 있었다. 가정된 고안서들은 우리가 항상 배운 바요 우리가 항상 행한 것이라는 논법으로 배격되었다. 그러므로 어느 교회 지도자가 3세기나 4세기 이전에 알려지지 않은 책을 진정한 사도적 저작으로 추천한다면 그는 그것을 수납되도록 하는 데 얼마나 어려운지를 깨닫게 될 것이다. 그 지도자가 이끄는 회중은 우리들 중에는 아무도 그것에 대해 들은 사람이 없다고 말할 것이다. 이렇게 모든 교회의 전통이 그렇게도 강경하였다.
6) 영 감
영감과 정경은 언제나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어서 정경에 포함된 책들은 그것들이 영감되었기 때문이라 생각하였다. 영감된 것으로 알려진 책은 그것이 정경 안에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였다. 일반적으로 서방에서 정경의 원리가 사도성이라면 동방에서는 영감이라고 생각하였다. 알렉산드리아에서 필로에 의해 시도되었던 성경의 풍유적 해석이나 오리겐의 풍유적인 취급은 다같이 그 본문이 축어적으로 영감되었다는 확신에 근거하였다. 그런 영감된 본문은 풍유적인 방법으로만 나타낼 수 있는 깊은 의미를 지녔다고 보았다.
7) 그 밖의 문제들
그 밖의 정경 결정 요인으로서는 보다 실제적인 문제로 박해 때 그 책 때문에 순교한 책들은 생명자체의 값을 지불한 것이므로 다른 책과 구별되기도 하였다.
이런 결과 베드로 행전(Acts of Peter)나 바울의 행적(Acts of Paul) 같은 책은 그 이름이 사도와 연관이 있었으나 그 책들의 내용에서 비사도적 특성때문에 영구하게 신약의 정경 속에 가입될 수 없었다.
4) 보편성
어느 책이 한 지역에서만 알려진 것은 보편교회의 정경의 일부로 인식되지 않았다. 반면에 보편교회에서 광범위하게 인식되었던 책은 그 즉시나 혹은 후에 보편적으로 수납될 수 있었다. 예컨대 로마교회가 궁극적으로 히브리서를 정경서로 동의한 것은 나머지 정통교회와 공동보조를 취한 결과였다. 서신들의 경우 어떤 것은 아주 지역적으로 인식되었으나 이따금 보편적으로 수납되고 영구적으로 권위를 가지게 되었다. 이렇게 지역적으로 용납되던 서신들이 점차 확산되어 보편적으로 인식되게 되었다. 요한계시록은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에 보낸 서신이었으며 복음서나 사도행전까지도 사실은 우선적으로 계획된 독자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 책들이 정경의 신분을 얻게 된 것은 그것들이 처음보다 점차 넓게 인식 되어진 결과였다.
5) 전통적인 사용
정경의 결정 요인은 역시 전통의 지속에 있었다. 가정된 고안서들은 우리가 항상 배운 바요 우리가 항상 행한 것이라는 논법으로 배격되었다. 그러므로 어느 교회 지도자가 3세기나 4세기 이전에 알려지지 않은 책을 진정한 사도적 저작으로 추천한다면 그는 그것을 수납되도록 하는 데 얼마나 어려운지를 깨닫게 될 것이다. 그 지도자가 이끄는 회중은 우리들 중에는 아무도 그것에 대해 들은 사람이 없다고 말할 것이다. 이렇게 모든 교회의 전통이 그렇게도 강경하였다.
6) 영 감
영감과 정경은 언제나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어서 정경에 포함된 책들은 그것들이 영감되었기 때문이라 생각하였다. 영감된 것으로 알려진 책은 그것이 정경 안에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였다. 일반적으로 서방에서 정경의 원리가 사도성이라면 동방에서는 영감이라고 생각하였다. 알렉산드리아에서 필로에 의해 시도되었던 성경의 풍유적 해석이나 오리겐의 풍유적인 취급은 다같이 그 본문이 축어적으로 영감되었다는 확신에 근거하였다. 그런 영감된 본문은 풍유적인 방법으로만 나타낼 수 있는 깊은 의미를 지녔다고 보았다.
7) 그 밖의 문제들
그 밖의 정경 결정 요인으로서는 보다 실제적인 문제로 박해 때 그 책 때문에 순교한 책들은 생명자체의 값을 지불한 것이므로 다른 책과 구별되기도 하였다.
또 그 책이 크리스챤의 신앙과 생활을 세우는 데 도움이 되는지의 여부가 정경 결정의 한 요인이 되었다.3)
그 책의 내용이 교화적인 것이며 교회 안에서 대부분이 확실하게 믿는 것이냐는 질문이 또다른 정경 결정의 원리로 작용하였다.
주
1. Henry C. Thiessen, Lectures in Systematic Theology(Grand Rapids : Eerdmans, 1977). p.102
2. The Zondervan Pictorial Bible Dictionary, Merrill C. Tenney, EditedGrand Rapids : Zondervan Pub, Co., 1975) p.144
3. F.F. Bruce, The Canon of Scripture,(Downers Grove, Illinois, I.V.P. 1988), pp.255-269에서
요약 인용하였다.
주
1. Henry C. Thiessen, Lectures in Systematic Theology(Grand Rapids : Eerdmans, 1977). p.102
2. The Zondervan Pictorial Bible Dictionary, Merrill C. Tenney, EditedGrand Rapids : Zondervan Pub, Co., 1975) p.144
3. F.F. Bruce, The Canon of Scripture,(Downers Grove, Illinois, I.V.P. 1988), pp.255-269에서
요약 인용하였다.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
'기독교 이야기 > 기독교 자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존재의 의미 (0) | 2017.01.20 |
---|---|
교부(敎父) (0) | 2017.01.20 |
어떻게 성경난제를 취급할 것인가? (0) | 2017.01.18 |
신약 정경원리 (0) | 2017.01.18 |
유대인의 식법 (제 153-165 계명) (0) | 2017.01.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