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 일관성과 통일성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무오하며 그 말씀은 변개할 수 없으며 약속은 인간의 허망함과는 비교할 수 없는 신실한 것이다.
우리는 성경대로 말하자면 신약시대에 살고 있다.
이 말은 새언약에 따라 적용을 받으며 그 안에서 하나님과 계약을 맺고 명령을 따라 살아간다는 뜻이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정경은 구약 39권과 신약 27권을 합하여 총 66권의 성경을 말한다.
이는 하나님의 무오하신 말씀으로 믿고 그 말씀에 따라서 순종할 것을 선서하고 동의하는 자에만 세례를 베푸는 의식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구약(구언약, 옛언약)의 말씀이 왜 신약시대의 성도들에게 말씀 그대로 믿어야 하느냐?이다.
또한 구약에서 약속하신 말씀을 우리는 그대로 적용받는다고 생각하느냐? 인 것이다.
구약은 계약 주체가 하나님과 유대인이며 신약은 하나님과 모든 열방과 족속이다.
다만 공통점이 있다면 계약의 주체인 삼위일체 하나님이 같다는 것이다.
계약의 주체는 같지만 계약서의 이행조항을 따를 주체는 엄연히 다른 것이다.
구약이든 신약이든 하나님과 타락한 피조물 사이에서는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그 어떤 것도 이행할 수가 없다하여 개혁주의에서는 양자를 '은혜언약'이라고 본다.
물론 구약의 모세언약은 행위언약과 은혜언약 두가지 관점으로 볼 수 있다.
즉, 타락한 인간은 하나님을 찾을 수도 없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선도 행할 수 없기에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을 얻고 해당 조항들을 이행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받기에
은혜언약이 되는 것이다.
또한 모세의 율법에는 말씀 순종에 대한 상벌의 행위의 언약이 내포되어 있는데,
말라기 이후에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이 행위구원에 빠져들어갔으며 백성들을 진리에서 멀어지게 하고 잘못 인도한 책망의 원인이 된 이유이기도 하다.
이 행위언약적 측면에서 완전한 행위로 의를 얻음은 오직 메시야이신 예수님만이 이행할 수 있는 것이다.
엄밀히 구원은 전적인 은혜이지만 굳이 나눈다면 믿음으로 얻는 기본구원과 말씀 순종 여부에 따른 상벌 규정인 성화구원으로 구분할 수 있다.
성화구원은 인간과 하나님의 협력적 사역이 된다. 하나님께서 주도하시지만 인간의 지정의가 협력하기에 그러하다.
1. 기본구원 - 구원은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약이 수건에 가리워지고 메시야나 구원에 대한 진리가 감춰진 비밀에 붙여져 있었으며 천사라도 그것을 감히 알지 못했다.
다만 하나님이 택한 선지자들과 소수의 사람들만이 그 진리를 알고 있었을 뿐이다.
예수님이 구약의 약속대로 오시고 그동안 비밀에 붙여진 것들이 확연히 드러나서 그를 믿고 모든 족속들이 구원을 얻은 것은 모형과 실체,
그림자와 실체 등으로 비유가 된다. 유대인은 희미한 것을 보았고 그리스도인은 밝히 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 또한 구원 역사에 있어서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만 가능하다.
밝히 보여주고 있지만 타락한 인간은 소경과도 같아서 하나님께서 눈을 열어주시기 전에는
예수님을 메시야로 인정하지 않는다.
신구약 모두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생 구원을 얻음을 말하고 있다.
'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또는 무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실 하나님은 한 분이시니라 (롬3:30)'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라 증거하였으니(히11:13)'
2. 성화구원 - 말씀 순종의 축복과 징계
구약 신명기서 28장에 보면 말씀 순종에 대한 축복과 저주가 나와 있다.
신명기 28장 1-2절에서 "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미치리니"'라고 말씀해 주고 있다.
또한 신명기 28,8에서도 " 여호와께서 명하사 네 창고와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내리시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서 네게 복을 주실 것이며 "라고 분명히 선언하셨다. 신명기 28장 15절에 보면 말씀 불순종에 대한 저주의 말씀이 선언되고 있다.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여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과 규례를 지켜 행하지 아니하면 이 모든 저주가 네게 임하고 네게 미칠 것이니”
구약의 언약 성도가 따라야 할 계명이 모세오경의 율법이라면 신약의 언약 성도가 따라야 할 새계명들은 산상수훈, 평지설교의 계명들이 핵심이다.
신약 성경에는 말씀(계명) 순종에 대한 축복으로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 (요일3:22)” ,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행하는 자니 이 사람이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 (야고보1:26) “
불순종으로 임하는 징계와 채찍으로는 “또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을 잊었도다 일렀으되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히12:5)” ,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계3:19)”
구약시대엔 모형인 율법을 따랐기 때문에 실체인 예수그리스도가 오셔서 성령의 법을 선포하신 후에 성화라는 개념이 생겨난 것이다.
이는 구약의 말씀 순종과 율법의 정신을 추구하는 삶에서도 성화가 가능하였으나 모형의 한계를 인정해야 하고,
실체인 신약에서는 친히 주님께서 그 길을 걸어가셨으니 말씀을 순종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행할 때 신의 성품을 닮아갈 수 있다.
우리 신약의 언약 성도들이 반드시 천국 갈때까지 붙들고 추구해야 할 사명이며 이러한 삶을 통하여 세상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선하심을 증거하고 영화롭게 해드리는
궁극적인 요소인 것이다.
현세적이고 물질적인 복도 기도를 통하여 얼마든지 공급 받을 수 있는데 이는 주님이 땅과 하늘의 권세를 모두 가지셨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마태28:18)" 요한1서 3장 22절에서도 증거하고 있다.
3. 행복(幸福)- 마카리오스와 율로기아
신약에서 복에 대한 헬라어는 복의 상태를 말하는 ‘마카리오스’와 영적이고 물질적인 은택을 말하는 ‘율로기아’이다.
마카리오스는 최상의 복과 영원하고 영적인 행복한 상태를 말한다.
즉, 우리가 땅에서 받아누리는 복은 천국,부활,영생,재림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말씀에 순종할 때에 하나님 보시기에 순전하고 ‘마카리오스’의 상태에 이른다는 것이며
결과적으로 ‘율로기아’인 영적인 은택이 필수적으로 따라오며 부수적으로 물질적인 은택도 함께 한다는 뜻이 된다.
4. 새언약과 구언약의 관계 ? 모형과 실체
구약의 말씀이 하나님으로부터 왔고 신약의 말씀도 하나님으로부터 왔다. 마르시온파의 주장처럼 구약은 사탄이 준 말씀이 아니다.
구약을 사용할 때는 우리는 항상 조심해야 한다. 구약은 폐해지기도 했지만 구약은 계속 존속 되고 참고해야 할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이다.
폐해졌다는 말은 마치 구약이 가로등과 같은 빛을 내고 있으나 신약에서 본질인 의의 태양이 비추고 있기 때문에 더이상 구약의 율법의 조항들이나 약속들이 태양 앞에서 힘을 내지 못하고 있다는 말과 같다.
새 언약이라 말씀하셨으매 첫 것은 낡아지게 하신 것이니 낡아지고 쇠하는 것은 없어져 가는 것이니라 (히8:13)', '전엣 계명이 연약하며 무익하므로 폐하고 (히7:18)'
구약을 가지고 신약시대에 교훈을 삼을 수 있고 하나님의 섭리를 아는데 유익한 것은 모형으로써 신약과 아주 유사하다는 점이다.
말씀 순종과 온전한 믿음, 예수님에 대한 예표들과 죄에 대한 경책 등 성도들을 하나님의 뜻대로 살게 하고 의롭고 바르게 함에 유익하게 한다.
다만 십일조, 제사장, 성전과 같은 제도에 있어서 많은 변화가 있으니 이에 대해서는 신중해야 한다.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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