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부들의 신학적 특징/Origen (185-254)
Ⅰ. 생애
1.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대표적 인물. 헬라계 이교에서 개종한 부모하의 모태신앙 (터툴리안, 클레멘트, 져스틴 어거스틴 처럼 이교의 과거가 없다.)요 순교자의 아들 (아버지 따라 순교하려 해서 어머니가 옷감춤, 스스로 거세를 할 만큼 열정있는 교사. 그러나 평신도로서 설교하는 사람이었고 (이것이 화근되어 훗날 교회정치의 감독전제주의자인 데메트리우스의 화를 사서 장로직 박탈, 출교당함, 231-232) 70세까지 내내 큰 활약. 카파도기아 학파의 대표인 그리고리 타우마투르거스 (Gregory Thaumaturgus), 니케아의 영웅 아타나시우스, 교회사가 유세비우스, 암브로시우스등이 친구요 제자들.
Decius황제 박해때 심한 고문당해 결국 그 후유증으로 사망.
2. 본격화된 핍박의 시기, 순교자의 자녀로 순교의 체험.
삶 자체도 극히 순교자적이다.
3. 헬라적 교양인들의 조롱과 비난. 예로서 플라톤주의자 켈소스의 True Discourse를 반대하여 Contra Celsum 을 썼다.
Henry Chadwick, Cambridge: CUP, 1965.
4. 라틴교회/ 신학과 더불어 교회정치적 정통노선의 강화라는 부담. Ortho-doxy/ ortho-praxis)
5. 오리겐 개인은 매우 극적인 면이 있는 인물
정치적 희생은 당했으나 개인적 열정과 가르침이나 행동거지의 카리스마가 대단했을 것이 틀림없는 인물. (Henk Hart???)
6. 유세비우스의 교회사에 나타난 정보에 의하면 오리겐도 초기에는 philology, 수사학등을 배격했으나 나중에는 자신의 학교의 학과에 철학을 비롯 희랍학문을 재도입하였다.
그 이유는 이단의 교설 뿐 아니라 철학자들이 진리에 대해 주장하는 바를 고려해볼 가치가 있기 때문이라 했다.
7. 그러나 그의 가르침의 궁극적 목표는 제자들로 하여금 최고의 덕인 <경건 piety>에 도달하도록 인도하는 것. 물리, 지리, 천문학 모두가 학생들로 우주에 있는 하나님의 통치에 대한 이성적 경외를 갖도록 인도하고, 철학은 사물의 원인에 대한 지식, 특히 덕인 자기를 앎에 이르게 하고, 성경주석은 감추어진 진리에 도달하게 한다.
8. 그의 제자 그레고리에게 비친 오리겐은 <철학자>였다. 그러나 그의 사상의 특징은 경건과 이성을 결합하는 것. the conjunction of piety and reason
9. 희랍인들은 철학을 가장 고귀한 교육 the pre-eminent paideusis 즉 문화 Bildung 교화,와 학식을 얻는 최고, 주된 방법으로 여겼다.
알렉산드리아의 기독교 사상가들은 그것을 오로지 준비적인 단계 a pro-paideusis 로 보았다.
Ⅱ. 오리겐의 사상
1. 오리겐은 보기에 따라 이단에서 부터 극도의 순수주의자, 변증가, 교사, 순교자로 보인다. 또는 살기는 기독교적으로 살았으나 생각은 철저히 헬라적이라고 혹평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은 참으로 기이한 평가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다른 개종한 지도자와 달리 그가 모태신앙인 점, 순교자라는 점이 그렇다.
2. 자신의 가르침에 대한 상대화를 마지않음. (신학에 대한 지나친 권위의식을 갖지않음) 즉 사도들의 전통이 말하지 않은 영역 부분들에 대한 자신의 가르침에 대하여 교조적 권위를 주장하기 보다 그리고 자신의 가르침을 성경이 분명히 말하는 것에 대한 해석이나 반복으로 주장하기 보다, 이성적/합리적이고 방법론적인 추론으로 진리에 근접하는 것으로 주장하고 있다. mere approximations of the truth
3. 오리겐 시대는 기독교의 교리가 아직 완성되지 않은 시기요, 아직도 많은 실험의 단계였다. experimenting stage: 철학과 심지어 영지주의 종파들 (종교들)이 제공하는 수 많은 개념들과 수 많은 체계들이 기독교의 신앙을 정확하게 제시하는 일에 실험적으로 사용되는 시대였다. 그리고 그런 자료들은 정말 풍부했다.
4. 우의적 성경해석 allegorical interpretation : 오리겐의 우의적인 해석은 유대인들의 구약해석 (선민사상등)이나 말시온파와 같은 문자적 해석으로 이단에 떨어진 이들을 배격하기 위한 변증적 신학의 한 방편이었다.
오리겐은 Marcion (최초의 성경편집, 문서설적 이단)의 (구약을 예언적, 영적으로 해석해야 하는데 문자적으로 해석하는 오류를 배격하기 위해 노력했다. "문자가 표시하는 것보다 성경이 말하는 바를 읽으라." 말시온은 <선>한/<공의로운> 하나님의 상반 주장: 구약/신약의 하나님, 예수님의 육체탄생 부정, 가현론 Doceticism
참고로 안디옥학파는 역사적 해석 (Alam어권, 네스토리우스 이후 정죄된 곳, 수리아어권, 삼위일체보다 모나키안적) 뚜렸한 신학자 부재. 라틴교회는 문법적 해석. Grammatical-historical interpretation/ allegorical interpretation.
5. 교육적 섭리 (철학적 신학): God's pedagogical providence 란 사실에 대한 우의적 해석과 같다. "Read: what it says is not what the words convey." "See: what is there is not what the eye beholds."
오리겐은 가시적 세계, 성육신을 포함한 역사의 전 과정이 영적인 존재 (인간)으로 하여금 물질적인 것이 아닌 신적 실재 (divine reality) 지식을 갖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보았다. 인간이 주변을 살펴 자신의 영적 근원을 바라보게 하려 함이다. (시8편, 전도서 3:11) 기독교 신앙은 영원한 로고스와 함께 있던 영혼이 본향을 그리워하며 결국 그곳으로 돌아가야 함을 가르친다는 것이다.
그런데 오리겐의 이런 주장은 순수히 성경적인 것 만은 아니다. 거기에는 플라톤 철학의 이원론적 세계관과 철학이란 곧 영혼의 본연적 자세로 주장된 <회상 recollection> 의 고상한 작업이라는 이론의 냄새가 짙게 풍긴다. 오리겐 당시 철학은 이미 근본적 질문을 던지며 지혜를 추구하는 전통을 떠나서 신학적이고 주석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즉 3세기의 플라토니즘은 종교화된 철학으로서 구원이나 삶의 의미에 대한 해답을 제공하여 삶의 안정을 주는 기능을 하고 있었다.
그는 기독교가 철학 (특히 최고의 형태인 플라톤주의) 을 무시한다는 켈수스의 비난에 대항하여 기독교는 오히려 플라톤 철학이 추구하는 영적세계로의 복귀를 이루는 참된 철학이라 주장한다.
여기서 오리겐의 문제점은 영계로의 복귀의 방법을 philo-sophical 철학, 지혜의 추구, 지식으로 본 것이다. 그리하여 오리겐은 기독교 신앙을 플라톤적/희랍적 신앙, 즉 이성적 (사변적) 방법을 통한 구원의 추구 성향에 접근시키는 위험성이 있다. 이 면에서 오리겐은 철학적 신학자라 할 수 있다.
6. 정죄됨: 이러한 오리겐의 철학적 자세는 553년 Constantinople에서 모인 6차 ecumenical 공의회에서 이단으로 정죄된다. 여기에는 종교적 이유와 더불어 정치적 이유가 있었다.
유스트니안 Emperor Justinian (527-65) 과거의 로마제국을 군사력이나 황제숭배의 이데올로기로 통합했던 것 처럼 교리적으로 통합된 기독교제국 Christendom의 이념으로 회복하려는 야망가. 그 일환으로 첫째 플라톤의 유서깊은 the Academy in Athens 폐교 (529) 하고 이어서 교회와 신학영역의 이단 색출 작업에 착수하여 이미 543년에 오리겐을 정죄했던 것.
물론 이런 정치적 개입이나 심지어는 교회정치의 힘이 기독교와 희랍철학의 문제를 풀거나 종결시킬 수는 없었다. 이 문제는 오늘까지 내려온다.
7. 오리겐은 이처럼 보기에 따라 매우 극단적으로 상반된 모습을 보인다. 즉 한편으로 순교자요 다른 면에서는 이단자이다. 과연 그는 기독교도인가 희랍철학자인가? 결국 질문은 "오리겐이 어떻게 근본적으로 희랍적인 방식으로 기독교 신앙을 설명하면서도 아무런 문제없이 그 신앙에 신실할 수 있다고 믿었는가?" 하는 점이다. 이점에 대한 답이 그의 로고스론이다.
Ⅲ. 오리겐의 로고스론
1. logos 개념에 대한 현대 (개혁) 신학자들의 반대: 기독교 신앙의 인격적이고 윤리적인 요소가 논리와 객관성의 제단에 희생되었다. 또 영원불변, 단 한번에 모든 것에 통용되는 (which holds once and for all) 그 무엇을 뜻하므로 전혀 새로운 것을 바라는 종말론적 요소에 장애로 봄.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대 기독교 지성인들 이 개념을 기꺼이 수용하여 매우 널리 사용했다.
2. 오리겐도 예외가 아니며 그는 이 개념을
1) 일반인과 로고스의 관계
모든 사람이 로고스에 참여 (또는 분신임)이기 때문에 신적 진리 (divine truth, 신존재 의식, 신에 대한 막연하기도 하고 때로는 명확한 지식; 초월적 존재, 능력, 지혜, 공의, 심판, 복주는 존재, 조물주 의식등) 에 대해 다소간에 알고 있다는 설명한다.
바로 여기에 철학과 기독교의 연결점이 있으나 철학은 몇가지 약점을 가진다. 첫째 약점은 그것이 많은 바른 통찰을 가짐에도 불구하고 바울이 롬1:8에서 지적한 것과 같이 "불의로 진리를 막는 (suppressing the truth in unrighteousness)"(예를 들면 죄를 구조화하는 것) 등의 왜곡이 있다. 둘째 철학은 대부분의 사람의 지적능력을 넘어서는 엘리트적 속성이 있다. 세째로 철학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의 지혜와 인간 스스로를 의존하는 수준을 넘어서지 못한다. 그러므로 철학은 진리에 이르는 일에 꼭 필요하거나 불가결한 것이 아니다.
2) 신자들에게 있어 로고스
그리스도는 로고스의 한 이름일 뿐으로 영원한 로고스는 성육신한 로고스와 구분되어야 한다는 이단적 교리와 더불어 영원한 로고스는 지성소로 들어가는 계단이라 봄. 즉 철학은 준비이고 신자들 가운데도 대부분은 이적을 믿는 신앙이나 목자, 치유자, 십자가에 못밖히신 이 등의 "열등한 이름들" (inferior names)로 안다. 그러나 소수는 영원한 로고스에 가까이 가는 지속적인 교육을 통해서 종래에는 하나님 자신을 명상하는 visio Dei의 단계에 이르는다는 것.
오리겐의 이 교리는 신자들 간의 우열이 지적인 구분이며 자칫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his person and works 마16 (28), 막8 (16), 눅9 (24), 요12: 23 (21) 대신 명상적, 사변적 신앙을 고무할 수 있다는 위험을 내포한다. 그러나 한편으로 볼 때 이시기는 아직도 대속설이 표준교리, 정통화되는 과정에 있었던 신학적 실험시기 였다는 점을 또한 고려해야 한다. 그러나 여러면으로 볼 때, 오리겐은 매우 철학적인 면에 비판정신이 약했다는 것은 의심할 나위없다.
3. 결국 오리겐은 로고스론을 통해 철학과 기독교 신앙의 연속성과 보편성을 보장하고 아울러 양자의 조화 가능성을 모색했다고 볼 수 있다.
희랍인들이 만인의 영혼이 참여한 영원한 로고스를 진리의 근원으로 본 점에 주목하여 이 로고스와 요한복음 초두의 로고스를 동일시 하므로서 그는 일견 철학 (특히 훌륭한 통찰력이 깊은 플라톤 철학등)과 기독교 신앙의 연결과 조화를 보장하는 듯 하다.
그러나 결국 그의 철학적 신학은 연속성을 강조할 때에 예수 그리스도를 이 영원한 로고스의 한 양상, 이름으로 축소시키는 위험한 경향을 보인다.
또 신앙의 우위를 강조하고 철학을 열등한 것으로 놓을 때에는 이원론적 분리로 나아간다.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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