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분 충전으로 415㎞ 달려…수소 대량생산이 관건


최근 고농도 미세먼지 현상이 이어지면서 친환경 에너지원이 주목받고 있다.

디젤차·석탄화력발전소 등 화석연료를 소비하는 배출원이 미세먼지 발생 주범으로 꼽히면서다.

수소(H2)는 미래 친환경 에너지원의 대표 주자다.

원소 중에서 가장 가벼운 수소는 우주의 70%를 차지할 정도로 풍부하다.

한국 수소차 기술, 세계서 가장 앞서
현대차, 2013년 첫 양산 시작
물에 담그면 스스로 광합성하는
‘인공잎’ 수소 발생 기술도 개발


지난 2일 프랑스를 국빈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이 기술연구소를 찾아 수소전기차(이하 수소차)를 시승하면서 수소에 대한 관심도 커졌다.

한국은 수소차 기술에서 가장 앞선 국가다. 현대자동차는 2013년 세계 최초로 수소차 양산에 돌입했다.

경기도 용인시에 위치한 현대차 환경기술연구소에서 수소차 원리와 성큼 다가온 수소경제의 미래 등을 들여다봤다.


지난 16일 현대차 연구소에서 시승한 투싼ix 수소차는 정지 상태에선 시동이 걸려 있는지 모를 정도로 조용했다. “슝슝” 거리는 에어컨 바람 소리만 귓가를 울렸다.

천장에 달린 수소가스 감지기를 제외하면 다른 디젤차와 다를 게 없었다. 액셀러레이터를 천천히 밟자 “윙” 하는 모터 소리와 함께 무게 1.8t 차량이 앞으로 나갔다.

연구소 앞 도로에 진입해 속도를 올려 10분을 달렸으나 운전을 하면서 화석연료 차량과 다른 점을 느낄 순 없었다.

수소차는 수소를 연료로 전기를 만든 다음 전기로 모터를 작동시켜 움직인다.

수소에서 전기를 생산하는 과정은 중·고등학교 과학실험실에서 배운 물의 전기분해 과정을 거꾸로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물에 플러스(+)와 마이너스(-) 전극을 담그고 전기를 가하면 수소와 산소 기체가 2대 1의 비율로 만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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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소차는 물의 전기분해와 반대로 수소와 산소가 만나 반응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전기를 동력원으로 사용한다.

이 반응을 이끌어내는 장치가 바로 연료전지(fuel cell)다.

연료탱크에 주입된 수소 기체는 연료전지 내부 촉매(화학반응 속도를 빠르게 하는 물질)를 만나 양극을 띠는 수소이온과 음극을 띠는 전자(electron)로 분리된다.

이때 생성된 전자가 이동하면서 전기가 만들어진다.

수소이온은 대기에서 빨아들인 산소와 반응해 물(H2O)로 합성된 다음 차량 밖으로 배출된다.

양유창 현대차 파트장은 “수소차 배기가스는 수증기 형태의 물이 전부다”며 “질소산화물(NOx) 등 미세먼지 원인 물질은 배출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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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싼 수소차에 장착된 연료전지는 주방에서 사용하는 가스레인지 크기로 이 연구소에선 ‘스택(stack·쌓다는 뜻)’이라 불린다.

신용카드보다 얇은 수백 장의 촉매판을 쌓아 만들기 때문이다.

연료전지는 수소차의 핵심 부품. 현대차는 이날 대략적인 성분만 공개했다.

양 파트장은 “스택은 흑연 등으로 만드는데 효율을 높이고 무게를 줄이는 게 수소차 개발의 핵심 과제”라고 말했다.

투싼 수소차의 수소 탱크는 140L로 3분 충전이면 415㎞를 달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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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소가 미래 에너지원으로 주목받고 있는 이유는 환경친화적인 것 말고도 몇 가지 더 있다. 우선 수소는 화석연료와 달리 무궁무진한 자원이다. 지표면의 70%를 덮고 있는 바닷물을 분해하면 쉽게 얻을 수 있다. 저장이 어렵다는 전기에너지의 단점도 수소를 이용하면 극복할 수 있다. 전기를 저장하는 배터리는 자연 방전을 피할 수 없지만 풍력·조력발전소에서 만들어진 잉여전기로 물을 분해해 수소를 만들면 영구 저장이 가능하다.

김세훈 현대차 연료전지개발실장은 수소를 ‘저수지’에 비유했다. 김 실장은 “농촌에서 저수지를 만들어 갈수기에 논에 물을 대듯 남는 전기로 물을 전기분해해 수소로 저장하는 시대가 다가올 것”이라고 말했다.

신재생 에너지 분야에서 앞서 있는 유럽에선 수소를 에너지원으로 활용하기 위한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다. 풍력발전으로 필요 전기의 60%를 조달하고 있는 덴마크에선 잉여전기를 수소로 바꿔 저장한 다음 수소차 연료로 활용하고 있다. 독일은 2020년까지 수소충전소 1000개를 신설하는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김 실장은 “자동차 외장제를 모두 버리고 연료전지와 수소만 놓고 보면 소형 수소발전기가 된다”며 “수소차가 각 가정에 보급되면 수소를 공급받아 필요한 전기를 만들고 이를 이웃에 재판매하는 시대가 다가올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투싼 수소차에 장착된 연료전지는 30~40가구에 공급할 수 있는 전기를 만들 수 있다.

수소 대량 생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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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과학기술대 연구팀이 개발한 인공나뭇잎. 물 속에 담그면 햇빛을 받아 수소를 생산한다.



과학자들은 다가오는 수소경제 시대에 대비해 신종 연료전지 개발과 수소 대량 생산에 연구력을 모으고 있다. 투싼 수소차의 차값은 8500만원으로 웬만한 고급승용차와 맞먹는다. 연료전지에 포함된 백금 때문이다. 백종범 울산과기대 친환경에너지공학부 교수 연구팀은 연료전지의 백금을 대체하는 ‘탄소기반 촉매’를 지난해 개발했다. 실용화에 성공하면 연료전지 가격을 획기적으로 낮출 수 있다. 백 교수는 “백금 촉매 제조비는 ㎏당 1억원 이상이지만 이를 탄소 촉매로 교체하면 ㎏당 100만원 이하로 가격을 낮출 수 있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안전성과 연료 전지 효율을 높이는 기술이 개발되고 있다.


태양빛을 이용해 수소를 생산하는 기술도 개발 중이다. 이재성 울산과기대 에너지및화학공학부 교수 연구팀은 햇빛을 이용해 물을 수소와 산소로 분해하는 ‘인공나뭇잎’을 만들어 지난해 공개했다. 2011년 대니얼 노세라 하버드대 교수가 발표한 실리콘 태양전지를 한 단계 발전시킨 것이다. 물을 분해해 산소를 배출하는 나무 이파리처럼 ‘비스무스 바나데이트 산화물’ 광촉매가 물을 산소와 수소로 분해하는 원리다. 이 교수는 “인공나뭇잎의 효율은 현재 5% 수준이며, 이를 실용화하기 위해선 효율을 10%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한다”고 말했다.


원자력발전을 통해 수소를 대량 생산하는 기술도 연구되고 있다. 4세대 원전이라 불리는 초고온가스로(VHTR)는 950도의 높은 열로 물을 수소와 산소로 분해할 수 있다. 한국원자력연구원은 2030년 상용화를 목표로 초고온가스로를 개발하고 있다. 김민환 원자력연구원 기술개발부장은 “초고온가스로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 않고 수소와 전기를 만들 수 있어 차세대 에너지원으로 주목받고 있다”고 말했다. 여기에 더해 폐암모니아를 분해하거나 금 나노입자 촉매에 빛을 쪼여 수소를 만드는 등 다양한 수소 대량 생산 기술이 연구되고 있다.

강기헌 기자 emck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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