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주의논쟁 <3> 민경국 교수 '신자유주의'

 

2008년 금융위기가 신자유주의 탓? 완전한 착각이다
자유주의는 규제 풀고 통화 묶는 것
9·11 이후 정부가 계속 돈 푼 게 주범

 

1999년 ‘한국 하이에크 소사이어티’를 창립해 초대 회장을 맡으며 우리 사회에 자유주의 이념을 본격 전파해온 민경국(한국제도경제학회 회장) 강원대 교수.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자유주의에 관한 논쟁이 ‘진보적 자유주의’와 ‘공동체 자유주의’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현상을 불편해하는 이가 있다. ‘자유주의의 원형’을 강조해 온 민경국(64·강원대 경제학) 교수다. 자유주의 연구 모임인 ‘한국 하이에크 소사이어티’ 초대 회장을 역임했고, 현재는 한국제도경제학회 회장을 맡고 있다. 그는 자유주의 앞에 붙은 각종 형용사가 불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민 교수와 같은 주장은 대개 ‘신자유주의’로 불린다. 정치적으로는 1980년을 전후해 미국 레이건 대통령과 영국 대처 총리가 주도한 정책의 이념이 다.

 민 교수는 신자유주의자란 표현은 잘못된 것이라고 했다. 자유주의 자체를 못마땅해하는 좌파의 왜곡된 선전이라고 단정했다. 신자유주의가 아니라 그냥 자유주의라고 불러야 한다는 것이다. 존 스튜어트 밀(1806~1873·영국의 사상가이자 경제학자)이 ‘사회적 자유주의’를 내세운 이래 왜곡되기 시작한 자유주의의 본령을 되살려낸다는 의미에서 ‘고전적 자유주의’라고 할 순 있다고 했다.

 그의 주장은 많은 이의 상식에 도전한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의 원인을 신자유주의의 한계로 지목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민 교수는 잘못된 진단이라며 부정했다. 금융위기는 신자유주의 때문이 아니라 주택시장에 대한 정부의 잘못된 개입과 통화량을 무진장 확장한 정책 때문이라고 했다. 좌파 이론가들이 책임을 떠넘기기 위해 신자유주의를 걸고 넘어간다는 지적이다.

 민 교수는 서울대 독문학과를 졸업하고, 75년 자유주의 경제학 강의로 유명한 독일 프라이부르크 대학에 유학해 학부부터 박사 과정까지를 마쳤다. 20세기 자유주의 이념의 부활을 선도한 프리드리히 하이에크(1899∼1992)의 이론을 유학시절부터 본격 공부했다. 15일 오후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 최장집 정책네트워크 내일 이사장이 진보적 자유주의를 새로운 진보의 이념으로 내세우면서 자유주의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자유주의에 진보적이란 형용사가 붙은 것을 보며 세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먼저 노무현 대통령 시대다. 두 번째는 20세기 초 미국의 진보주의(Progressivism) 이념이다. 세 번째는 독일의 사회민주주의(사민주의)다. 내가 독일에서 유학하던 70년대에 사민주의가 유행했다. 사민주의를 마치 자유주의인 것처럼 가공해 유권자로부터 표를 얻기 위한 하나의 술책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 미국의 진보주의란.

 “1900년께부터 유행한 이념으로 대기업 규제, 재분배와 복지 정책 등이 주로 포함돼 있었다. 그 진보주의가 1930년대 대공황을 맞아 뉴딜정책으로 이어진다. 뉴딜정책을 주도한 루스벨트 대통령을 미국과 유럽의 자유주의자들은 ‘아메리칸 히틀러’라고 부른다.”

 - 대공황을 극복한 루스벨트 대통령을 히틀러에 비유한 것은 너무 심한 표현 아닌가.

 “루스벨트가 영국의 경제학자 케인스(1883~1946)의 정부 개입 정책을 적극 도입함으로써 미국과 세계 경제가 살아났다고 하는 얘긴데 이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교과서도 대개 그렇게 가르치고 있다. 교과서가 문제다.”

 - 미국에서도 그렇게 가르치지 않나.

 “그렇다고 해서 틀린 것을 옳다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정확히 알아야 한다. 세계 대공황이 8년 동안이나 지속된 이유가 바로 정부의 개입 때문이었다. 정부의 ‘기업 때리기’가 그때부터 나왔고, 조세를 올리며 정부 지출을 늘려만 갔다. 기업인들은 불안해서 투자를 못했다. 루스벨트가 세 번째 연임하다가 사망하고 나니까 기업의 투자심리가 살아나기 시작했다. 1944년 트루먼 대통령이 등장하면서 무역규제도 풀고 그러면서 경제가 살아날 수 있었던 것이다. 루스벨트의 참모들 면면을 보면 그 성향을 짐작할 수 있다. 이탈리아 무솔리니의 파시즘을 연구한 사람들과 독일의 국가주의자 헤겔 철학을 공부한 이들이 뉴딜정책의 참모로 많이 들어가 있었다.”

 - 최장집 이사장이 자유주의를 부각시킨 점의 의미가 크지 않나.

 “ 진보의 의미를 객관적으로 규정하기 어렵다. 최장집 이사장은 좋은 뜻으로 그렇게 했을 것이다. 문제는 그것을 발판으로 삼아 각종 정치꾼과 이익단체가 정부 규제를 통해 뭔가 이익을 노리려고 한다는 데 있다. 진보라는 이름으로 별의별 명분을 만들어서 시장을 규제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위험이 크다는 얘기다. 자유주의 이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국가권력을 제한하는 것이다. 진보적이라는 수식어를 발판 삼아 하나둘씩 정부 개입을 늘려가다 보면 결국 자유주의 자체가 유명무실해지게 된다. ”

 - 보수 성향의 박세일 이사장은 ‘공동체 자유주의’를 주장하는데.

 “박 이사장을 잘 안다. 같이 책도 번역했다. 무척 고심한 흔적이 있지만 자유주의에 공동체를 붙인 것은 잘못이라고 본다. 공동체와 자유주의 가치가 충돌한다. 뭐랑 같으냐고 하면 ‘네모난 원’이다. 네모난 원이 가능한가. 공동체는 집단주의 개념이고 자유주의는 개인주의다. 개인주의와 집단주의는 충돌할 수밖에 없다. 집단주의의 장점을 가져와 자유주의 단점을 커버한다는 것인데 그것은 불가능하다. ”

 - 진보적 자유주의와 공동체 자유주의를 모두 비판하는데, 그 둘을 비교한다면.

 “진보적 자유주의 내용이 정확히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20세기 초 미국의 진보주의와 비교하면 공동체 자유주의가 조금 더 자유주의 쪽에 가까운 것 같다. 그러나 이런 비교보다 더 중요한 것은 다시 말하지만 정치적인 메커니즘에 의해 자유주의 앞에 붙은 수식어가 결국 자유주의 자체를 갉아먹게 된다는 점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영국 경제학자 애덤 스미스(1723~1790)의 고전적인 자유주의 이론에 존 스튜어트 밀이 분배 정책을 포함시키면서 이른바 ‘사회적 자유주의’가 등장한다. 사회적 자유주의는 ‘페이비언 사회주의’로 이어지며 영국을 골병들게 만드는데, 영국병이라 불리는 것이다. 강성 노동조합, 과다한 정부 지출과 복지정책 등이 특징이다. 그 결과가 1971년 영국이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까지 받는 처지로 전락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된 영국을 구출하러 나선 인물이 대처 총리다.”

 - 대처 총리나 레이건 대통령의 정책을 뒷받침하는 이념을 대개 신자유주의라고 하는데.

 “ 본래 신자유주의가 아니라 그냥 자유주의였다. 하이에크, 밀턴, 프리드먼 같은 경제학자들이 이끌어온 이념이다. 경제의 규제는 풀고 통화는 묶어놓자고 했다. 정부 규제를 강화하기 위해 돈을 풀었다 묶었다 하는 케인스 이론과 다른 점을 주목해야 한다. 자유주의는 통화 준칙주의를 내세웠다. 통화 당국이 경기변화에 따라 재량적인 정책을 펴는 것이 아니라 통화의 움직임과 관련한 룰을 만들자는 것이다. 또 노동조합의 특혜를 없애고 정부의 과다한 지출을 줄이려고 했다. 그런 정책들을 신자유주의라고 부르며 비판한 것은 좌파들이다. 자유주의자들이 신자유주의라고 한 적은 없다.”

 - 우리 사회에서 더욱 발전시켜야 할 자유주의의 요소를 꼽는다면.

 “자유주의는 자유와 책임의 원칙을 중시한다. 시장경제 원칙과 작은 정부, 그리고 법치주의가 중요하다. 원래 서구 역사에서 법치를 처음 강조한 것이 자유주의다. 그런데 법치의 경우 자유주의에서 말하는 법치주의와 좌파가 말하는 법치주의가 또 다르다. 자유주의에서 중시하는 법은 개인의 자유와 재산권을 보호하는 것이다. 그런데 경제민주화, 복지, 재분배 등을 통해 정부 개입을 잔뜩 늘리는 법을 만들어 놓고 법치를 하자는 것은 다른 문제가 되는 것이다. ”

 - 빈부 격차를 줄이고 소외된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법을 발전시켜 나간 것 아닌가.

 “발전이 아니다. 사회주의와 케인스주의 같은 정부 간섭주의가 법을 타락시킨 것이다.”

 - 약자를 위한 사회안전망이 없는 자본주의는 너무 냉혹하지 않은가.

 “자유주의가 무조건 복지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최소생활 수준을 국가가 보장해야 한다는 게 자유주의다. 빈곤 문제와 관련해 우리나라에 기초생활보장법이 있다. 그 법이 굉장히 좋은 법이다. 기초생활보장법만 제대로 실천하면 다른 복지정책은 필요가 없는데 그게 잘 안 되고 있다. 정말 자기 능력으로 생활할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무의탁 노인, 결손 가정 등을 포함해 약 10% 정도 잡는다. 이 사람들만 철저하게 보호하면 빈곤과 실업 문제 등은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 자유주의를 보수의 이론으로 보는 경우가 많다.

 “엄밀히 말해 보수주의와 자유주의는 추구하는 가치가 다르다. 자유주의는 정치적으로는 언론·출판의 자유를 중시하며, 경제적으로는 개인과 기업의 시장에서의 활동을 자유롭게 하고 정부가 개입하지 않는 것을 기본 가치로 한다. 그런데 보수주의는 현 체제에 대한 안정을 중시하고 변화를 두려워한다. 19세기 영국을 예로 들면 당시 자유주의자들이 진보적이었 다. 당시 보수주의자는 대개 대토지 소유자였고, 자유주의자들이 주장한 자유무역으로의 개혁을 막으려 했다. 다른 한편 보수주의가 자유주의와 같은 경우도 있는데 사회주의와 싸울 때다. 반공주의, 반사회주의에서는 함께한다. 한국의 보수주의자들 가운데 경제적으로는 개입주의를 지지하는 이들이 많다. 박정희정부가 개입정책을 펼쳤기 때문에 잘했다고 보는 것이다.”

 - 박정희정부를 어떻게 평가하나.

 “사유재산을 철저히 보호한 점은 아주 잘했다. 60~70년대 남미와 비교하면 사유재산과 관련해서 우리가 철저했다. 그게 경제성장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 다음에 높게 평가하는 것은 시장 개방정책이다. 은둔의 나라 한국이 문을 활짝 열었다. 수입 관세를 붙였다 하더라도 다시 수출을 하면 환급해 주기도 해서 수입도 자유화한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70년대 들어와 중화학공업 육성 정책의 경우 결과적으로는 좋았지만 어쨌든 정부 개입이고 관치였다. 자유주의 관점으로 볼 때 정부 개입이 없었다면 결과가 더 좋았을 수도 있었다고 본다. 종합적으로 평가하면 70점 이상이다.”

 - 2008년 미국발 경제위기 원인을 신자유주의로 보는 사람이 많다.

 “완전히 착각이다. 자유주의자들은 규제는 없애되 통화는 묶어두라고 했다. 그런데 2002년 9·11 사태 이후 계속 돈을 풀었다. 그게 주범이다. 그리고 종범이 있다. 클린턴 대통령의 1가구 1주택 정책이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문제가 그때부터 생겼다. 서브프라임이 뭐냐, 담보능력이 없는 사람에게 돈을 빌려주고 집을 사면 그 집을 담보로 잡는 거다. 금융거래 내용도 확인 않고 대출을 하는 등 별일이 다 있었다. 시민운동단체들은 돈 없는 사람에게 돈을 빌려주는 은행을 칭찬했고, 잘 안 빌려주는 은행은 욕하고 비판했다. 풀린 돈들은 주택 쪽으로 갔다. 그래서 주택 버블이 터진 거다. 그게 원인이다. 자유주의 때문에 그런 게 아니다. 돈이 넘치니까 월가에서 돈놀이를 한 것이다.”

 - 현재 한국과 미국의 주요 정책을 자유주의 관점에서 비교한다면.

 “대기업 규제와 노동시장 유연성의 측면에선 오바마 정부의 정책이 박근혜정부보다 더 자유주의적이다. 하지만 정부 지출 측면에선 미국이 달러를 찍어내서 경기를 살리려 하고 있는데 이게 모든 문제의 근원이다.”

 - 미국 경제가 살아나고 있다는 소리도 있는데.

 “돈을 찍어내면 경기가 당장은 살아나겠지만 6개월 지나면 효과가 없다. 결국 경제를 왜곡시킨다. 물가 안정이라는 차원에서 통화관리를 해야 한다는 게 자유주의의 원칙이다.”

 - 우리나라 대학에서 주류 경제학은 대개 자유주의 쪽 아닌가.

 “그렇지 않다. 엄밀히 말해 정부의 간섭을 허용하는 쪽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미국에서 유행했던 ‘맨큐 경제학’과 조순·정운찬 전 서울대 교수 등이 소개한 개입주의 경제학이 90%가량을 차지한다.”

글=배영대·이상화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중앙일보] 2013.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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