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가 갑자기 핑 돌면 십중팔구 귀에 이상

 
갑자기 머리가 핑 돌고 어지러울 때가 있다.
그럴 땐 “뇌에 이상이 있나”라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번지수가 틀렸다.
대부분 귀에 이상이 있는 경우다.
신경과나 내과가 아닌 이비인후과에 가서 먼저 상담해 봐야 한다.
어지럼증의 원인은 다양하고, 치료법도 수십 가지다.
원인을 제대로 짚어야 정확한 치료를 할 수 있다.

삼성서울병원 이비인후과 정원호(대한이비인후과학회 총무이사·사진) 교수에게
어지럼증의 다양한 원인과 치료법을 들었다.
 
-어지럼증도 여러 종류가 있다던데.
 “어지럼증은 크게 네 가지로 나눈다.
흔히 말하는 어지럼증은 ‘회전성 어지럼증’이다.
자신은 가만히 있는데 주변이 뱅뱅도는 듯한 어지럼증이다.
전체 어지럼증 중 약 40%를 차지한다.
다음으로 단순히 어질어질한 ‘현기증’(20~30%)이 많다.
중심을 잘 못 잡고 똑바로 걷지 못하는 ‘자세불안증’이 10~20%다.
빈혈 등으로 갑자기 쓰러지는 ‘실신 전 단계 어지럼증’도 10~20%가량 나타난다.”

-‘회전성 어지럼증’은 왜 생기나.
 “대부분 귀에 이상이 생겨서다. 이석증(耳石症)이 원인일 때가 가장 많다.
우리 귀의 전정기관이라는 곳에는 작은 주머니가 있다.
이 속은 액체로 가득 차 있고 그 안에 먼지만 한 작은 돌이 여러 개 있다.
이 돌은 몸의 움직임에 따라 한쪽으로 쏠리면서 평형감각을 느끼게 해준다.
그런데 돌의 일부가 주머니 속에서 빠져 세반고리관이라는 곳으로 흘러 들어가는 게 이석증이다.
이 돌이 세반고리관의 신경세포를 자극해 어지럼증이나 구역감을 느끼게 한다.

심할 때는 균형감각을 잃고 쓰러진다.
눈동자가 심하게 떨리는 게 특징이다.
고개를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경우에는 아무일도 없는 듯 괜찮다가
고개를 돌리거나 특정 자세(선반 위의 물건을 꺼내거나 신발끈을 묶을 때, 옆으로 누울 때 등)를 취하면,
돌이 제자리를 벗어나 극심한 어지럼증을 느낀다.
이런 경우 돌을 다시 제자리로 넣는 이석치환술을 받으면 호전된다.”

-귀에 염증이 생겨도 어지럼증이 생긴다던데.
 “그렇다. 귀 안쪽 평형감각을 담당하는 기관에 바이러스가 침투하거나 염증이 생기면 어지럼증이 생긴다.
이 경우 염증을 가라앉히는 약물을 주입하고 평형감각을 되살리는 재활치료를 병행한다.
초기에 치료해야 결과가 좋다. 늦게 오면 신경이 파괴돼 이미 되돌릴 수 없는 상태일 수 있다.”

-메니에르병도 원인인가.
 “최근 많이 이슈화되고 있는 병이다.
갑자기 심한 어지러움과 함께 귀가 터질 것 같은 팽만감과 청력 이상,
귀에서 소리가 나는 증상인 이명(耳鳴)을 느낀다.
보통 한 번 발생하면 3~4시간 지속된다.
한 달에 3~10회까지 나타나지만 매일 증상이 계속되거나 1년에 몇 번 겪는 사람도 있다.

 메니에르병은 귀의 달팽이관과 전정기 관의 액체가 갑자기 증가하거나 제대로 배출되지 않을 때 생긴다.
액체로 인해 압력이 증가하면 심한 어지럼증이 생긴다.
메니에르병 역시 초기에 치료하지 않으면 귀의 기능이 망가진다.
치료는 이뇨제 또는 약물을 투입해 귀의 압력을 줄이는 방법을 쓴다.
최근에는 겐타마이신이라는 약물을 저용량(40㎎/㏄)으로 주입하는 치료법이 좋은 효과를 보이고 있다.
메니에르병은 스트레스 상황에서 발생하는 경향이 있다.
심한 스트레스를 지속적으로 받는 직업군은 조심해야 한다.
짠 음식을 먹으면 귀의 압력이 증가할 수 있기 때문에 피하는 게 좋다.”

-뇌에 문제가 생긴 경우도 있나.
 “주변이 빙빙 도는 회전성 어지럼증의 원인 중 5% 정도가 뇌 이상 때문이다.
뇌에서 평형감각을 관할하는 부위에 문제가 생긴 경우다.
뇌출혈이 생겨 해당 부위를 누르거나 뇌경색으로 혈액이 전달되지 않을 때 어지럽다.
하지만 이런 경우 손·발 마비와 함께 자세를 바로잡기 힘들고 두통 및 다른 증상이 함께 생긴다.
뇌졸중이 원인이라는 걸 금방 알 수 있다. 또 편두통이 심해도 회전성 어지럼증이 생긴다.
이때는 편두통을 치료하면 어지럼증도 사라진다.
어지럼증이 생기면 뇌에 문제가 있나 많이 걱정하는데 그런 경우는 아주 드물다.”

-현기증은 왜 생기나.
 “가만히 있는데 주변이 빙빙 도는 심한 어지럼증(회전성 어지럼증)이 아니라 좀 어질어질하고 기운이 없는 정도를 현기증으로 분류한다.
이런 경우는 대부분 정신적인 문제다.
우울증 또는 불안증이 있거나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 때, 우리 몸의 모든 기관의 기능이 떨어진다.
평형감각을 담당하는 자율신경계도 이상이 생겨 어질어질한 거다.
이런 경우 항우울제를 조금만 먹어도 어지럼증이 많이 사라진다.”

-자세불안증은 뭔가.
 “ 노화 때문이다. 귀의 양측 평형감각기능이 떨어지는 데다 시력도 나빠지고 손발 감각기능도 저하되면서 자연스레 걸음걸이가 엉거주춤해진다.
전체적으로 평형감각이 떨어지기 때문에 발을 헛디디는 경우도 많다.
이 때문에 낙상(落傷)으로 이어지기 쉽다. 노년층 낙상은 사망의 중요한 원인이다.
자세불안증은 재활치료가 답이다.
몸 전체 평형을 잡는 데 사용되는 모든 감각을 계속 자극한다.
요가나 중국무술 등 평형 잡는 동작이 많은 운동을 꾸준히 하면 자세불안증을 예방할 수 있다.”

-빈혈 때문에 생기는 어지럼증은 어떤가.
 “의학적으로는 ‘실신 전 단계 어지럼증’이라고 한다.
주로 젊은 여성에게 많이 생기는데, 빈혈이 문제인 경우 철분 등 약을 먹으면 금세 좋아진다.
혈압이 낮은 경우 기립성 저혈압(갑자기 일어나면 어지러움)이 생기기도 하는데,
운동을 하고 물을 많이 마시면 혈압을 올릴 수 있어 증상이 개선되기도 한다. ”

 
배지영 기자 jyba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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