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너 박지민 英 무대서 활약

 

 

"오디션 190번 떨어지며 오기 키웠죠"
세계 3대 오페라극장 코벤트가든 무대에 초청

"나는 어떤 배역도 소화할 수 있는 오페라가수"

 

 

지난 19일 매일경제신문사를 찾은 테너 박지민 씨는

 "유학 시절 케밥과 라면으로 연명했지만

노래를 부를 때는 행복했다"고 말하며 활짝 웃었다.

<이충우 기자>

 

 

`불합격.`

2005년 겨울부터 이듬해 엄동설한까지 무려 190번이나 유럽 오페라극장들의 오디션에서 떨어졌다. 결혼식 축가를 불러 모은 유학 자금 3400만원도 바닥났다. 돈을 아끼기 위해 10시간 동안 저가 항공기와 기차를 갈아타고 오스트리아 빈에서 독일 캠리츠 오페라극장으로 오디션을 보러 갔다. 단 두 소절을 불렀을 때 극장 감독은 "우리가 찾는 목소리가 아니야"라고 차갑게 거절했다.

테너 박지민 씨(33)는 숙박비를 아끼려고 비행기 대합실에서 자고 다음날 벨기에 극장에서 오디션을 봤는데 또 떨어졌다.

처량한 이야기를 하면서도 그는 매일경제신문사 빌딩 로비가 쩌렁쩌렁 울릴 정도로 웃었다. 환하고 경쾌한 소리였다. 그 긍정의 힘이 인생 역전을 일궈냈다. 그는 수많은 실패를 딛고 세계 3대 오페라극장인 영국 로열오페라하우스(코벤트가든) 무대의 주인공이 됐다. 세계 최대 클래식 매니지먼트 회사인 아스코나스홀트의 전속가수가 되는 영광도 누렸다.

그는 실패를 철저하게 분석해 성공의 디딤돌로 삼았다. 창피함을 무릅쓰고 극장 관계자들을 찾아다니며 오디션에서 탈락한 원인을 물었다. 대부분 그의 목소리에 한 가지 색깔밖에 없다는 게 이유였다.

박씨는 "오페라극장에서는 다양한 역할을 원하니까 작곡가 푸치니나 베르디 오페라 전문 가수는 필요 없는 거죠"라며 "그 순간부터 다양한 목소리를 내기 위해 유명 성악가들의 노래를 연구했어요"라고 말했다.

모차르트와 로시니 오페라 전문가인 테너 루이지 알바의 노래를 모창하고, 도니제티 오페라를 잘 부른 루치아노 파바로티의 음반을 분석했다. 숨을 어떻게 쉬는지, 목을 어떻게 쓰는지 철저하게 연구했다. 밥 먹고 노래만 부르니 다양한 음색이 가능해졌다. 자신감이 생긴 그의 오디션 대응법도 달랐다. 극장 관계자들에게 "무슨 노래를 듣고 싶나요, 당신이 원하는 것은 뭐든 다 부를 수 있으니 골라봐요"라고 말했다.

얼마 후 그 당찬 노력이 효력을 발휘했다.2006년 겨울 독일 겔젠 키리헤 오페라극장 오디션에 합격했다. 그해 11월 이탈리아 비오티 콩쿠르 심사위원이었던 극장장이 그를 눈여겨보고 부른 것.

그런데 행운이 겹쳤다. 코벤트가든의 젊은 성악가 육성 프로그램인 `제트 파커 영 아티스트`로도 선정됐다. 안정된 월급이 보장되는 키리헤 오페라극장 전속 가수와 큰 무대에서 배울 수 있는 코벤트가든 견습생 사이에서 고민했다.

답답한 마음에 강병운 서울대 음대 교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강 교수는 "네가 뭔데 벌써 주인공을 하니, 밑바닥부터 다시 배워라"고 따끔하게 충고했다. 코벤트가든에서 박씨는 `문제아`였다. 첫 공연인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 단역을 맡았을 때 지휘자는 그에게 지휘봉을 던지며 "노래 뜻은 알고 부르냐"며 화를 냈다.

"다른 출연자들은 가만히 있게 하고 저 혼자 노래하고 움직이라더군요. 시키는 대로 노래와 동작을 수없이 반복하다보니 집에 가고 싶어지데요. 보다 못한 소프라노 안나 넵트렙코가 제 볼을 딱 잡더니 `너같이 연기 잘하는 성악가는 처음 봐`라고 속삭여줬어요. 세계적인 소프라노가 그런 말을 해주니 정말 힘이 났죠."

"190번의 오디션에서 실패하면서 터득한 다양한 음색을 마음껏 보여줬어요. 어떤 배역도 소화할 수 있는 제 가능성을 보고 계약을 체결했죠."배우 설경구를 보고 연기를 연습하고 감기에 걸려도 무대에 올랐다는 박씨. 8년 후 노래로 불우이웃을 돕는 자선사업가가 되고 싶다고 했다. 다음달에는 코벤트가든의 오페라 `잔니스키키`주인공이 된다.<시리즈 끝>

[매일경제 & mk.co.kr, 전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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