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신앙, 무엇이 궁금하세요?  

1. 삼위일체란 무슨 뜻입니까?

삼위일체의 삼위(三位)란 성부(聖父), 성자(聖子), 성령 (聖靈)을 말하는데, 여기서 '삼위일체'란 이 세 분은 곧 한 하나님(유일하신 분)이라는 것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하나님은 오직 한 분이신데 그 존재하는 양상은 단독적인 존재가 아니라 서로 달라서 성부, 성자, 성령 3위(三位)가 계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삼위께서는 그 하시는 역할도 각각 달라서 성부는 창조의 근원이 되시고 모든 일을 게획하시며, 성자는 그 계획을 집행하시는 분이시고, 성령은 그것을 우리에게 적용하시는 분이십니다.

성부께서는 죄인인 인간을 사랑하시므로 구원할 계회을 세우셨고, 성자 예수님께서는 그 계획에 따라 이 땅에 내려 오셔서 십자가에 못이 박혀 죽으셨으며, 성령께서는 우리를 인도하시어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이라고 부르게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에서는 언제나 성부, 성자, 성령을 유일하신 하나님으로 경배하며, 세례를 베풀거나 축복할 때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라고 말하는데, 이는 본래 하나님께서는 삼위가 일체되시기 때문입니다.

삼위일체 교리를 잘 요약해 놓은 것은 웨스트 민스터의 기록인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본체는 하나이시나 삼위로 계신다.
한 본체와 한 권능과 한 영원성이시다.
아버지로서의 하나님, 아들로서의 하나님, 성령님으로서의 하나님이시다.
성부는 어떤 물질로 구성되거나 거기서 나오거나 그것에서 유출되는 것이 아니다.
성자는 영원토록 성부에게서 탄생하시고, 성령은 영원토록 성부와 성자에게서 나온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은 우주 만물의 주인이 되신 창조주 하나님,
예수님은 이 세상을 구원하시는 구세주로서의 하나님,
성령님은 항상 우리와 함께 하시고 인도해 주시는 하나님으로 생각하시면 될 것입니다.
 

2. 한 번 구원받은 사람은 회개의 기도를 드릴 필요가 없다는데 그게 사실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인간이 지은 죄에는 원죄(原罪)와 자범죄(自犯罪)가 있습니다.

원죄는 인간의 대표자이신 아담이 지은 죄로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면 용서받을 수 있으나 인간은 완전하지 않기 때문에 원죄를 용서받고도 늘 마음으로 눈으로 입으로 몸으로 죄를 짓고 삽니다.  이를 자범죄라고 합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한 사람들은 구원을 위해서는 회개할 필요는 없으나 성화(聖化)를 위해서는 죄를 지을 때마다 늘 회개의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3. 찬송가와, 복음송,  CCM은 어떻게 다른가요?

복음송이란 복음(Gospel)과 노래(Song)가 합쳐진 말입니다.
복음송은 주로 복음의 내용을 담고 있는 것으로 찬송가(Hymn)나 부흥가(Revial song)와는 구별됩니다.
복음송이 찬송가와 다른 점은 가사보다 음악성에 강조를 둔다는 데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비화성음을 사용한다든지 불규칙적인 강한 비트를 사용하거나 멜로디가 없는 불규칙적인 리듬을 사용하는데 그 특징이 있습니다.

CCM은 시대에 유행하는(contemporary) 음악 양식에 기독교적인(christan)메시지를 결합한 음악(music)을 뜻하는 말로 일반 대중음악 스타일 형식의 오락성이 강한 교회음악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가사적인 측면에서 볼 때 복음송과 CCM의 차이는 별로 없습니다.
복음송의 가사 내지 찬송가에도 대중 음악의 곡을 붙이면 CCM이 된다고 보면 됩니다.
이를 굳이 구분한다면 복음성가가 매우 제한된 그리고 온건하고 절제된 대중음악 양식만을 채택하고 있는데 반해 CCM은 팝, 록, 랩 등 대중음악의 전 장르를 제한 없이 사용하도록 허용한다는 데 있습니다.

다시 말해 좀 건전하고 은혜로운 찬양이 복음송이라면
감각적인 음악성에 의해 연주를 강조한 것이 CCM 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4. 교회는 안 나가도 '하나님'은 믿고 있는데 그러면 되는 것이 아닌가요?

교회란 건물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한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이들을 성도들이라 합니다.
그리고 예배당은 이런 성도들이 모여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해 주신 것에 대해 감사드리며, 찬송하고 간구하고, 양육을 받고, 헌신을 다짐하는 곳입니다.

교회에 안 나가도 예수만 믿으면 안 믿는 사람보다야 낫겠지요.
그러나 믿음이란 혼자서 돈독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의 형제들끼리 함께 모여 찬송하고 간구하는 가운데, 또 그런 분위기 속에서 더 견고케 되는 것입니다.

또 성도들끼리 모여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배우며 믿음의 형제들끼리 함께 모여 찬송하고 간구하는 가운데, 또 그런 분위기 속에서 더 견고케 되는 것입니다.

또 성도들끼리 모여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배우는 가운데 자신의 믿음을 점검해 보기도 하고, 헌신을 다짐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자꾸 예수님과 접할 때, 바로 믿음의 생활 속에서, 믿음의 분위기 속에서 살게 되고, 굳건한 신앙인으로 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한국 교회에서는 주일날만으로도 부족하여 주일날 오전 오후로 예배를 드리고 나서 일주일 지나면 또 믿음이 떨어지고 정신이 해이해질까 염려되어 삼일(수요일)저녁에도 예배를 봅니다.
그것도 부족해서 새벽기도, 철야기도, 구역예배를 봅니다.
이렇게 해야 자신의 믿음이 떨어지지 않게 되고 견고한 믿음의 반석 위에 서게 됩니다.
바빠서 교회에 가끔 나간다는 사람들이 있으나 이것은 아무래도 믿음이 부족한 데서 나온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죽음에서 구원해 주신 것을 안다면, 이 세상의 어떤 일보다 먼저 교회에 나가 예배드리는 것을 우선으로 여겨야 할  것입니다.
 
모처럼 나온 교회 바쁘다는 핑계로 게을리 해서 믿음이 떨어지는 일이 없도록 하십시오.
교회는 한가롭고 팔자 좋은 사람만 다니는 곳이 아닙니다.
하는 일이 말할 수 없이 많고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사람들도 하루도 빠지지 않고 교회에 나옵니다.
성경에서도 모으기를 힘쓰라고 했습니다.
아무리 바빠도 주일날 두서너 시간만 내십시오.
그리고 교회에 빠지는 일이 없도록 하십시오.
 

5. 예정론이 사실이라면 굳이 전도할 필요가 없지 않나요?

예정론은 인간 구원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에 관한 것이므로 신학적으로 일부 논란이 있으나 참고하실 성경말씀은 다음과 같습니다.

"내가 너를 복중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태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구별하였고 너를 열방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하시기로"(렘 1:5)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롬 8:29)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롬 8:30)
"그러나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은혜로 나를 부르신 이가......,"(갈 1:15)

그리고 또한 말씀하시기를,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부르는 자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 10:28),
"저를 믿는 자 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함이라"(요3:16),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고 했습니다.(롬10:13)

예수 믿으면 구원을 받습니다.
예정론에 따르더라도 우리는 누가 선택자이고, 누가 유기자인지 모르니 부지런히 전도를 해야겠지요.
전도도 성도들이 해야 할 임무 중의 하나입니다. 
 

6. 하나님의 우편에 계시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요?

이는 "내 우편에 앉으리라"(시110:1)에서 유래된 말로 상징적으로 이해해야 될 줄 압니다.
우편은 왼쪽 오른쪽의 위치의 개념이 아니라  예수님의 권위, 권능, 영광 등을 나타내는 말로 해석하는 것이 좋을 듯 싶습니다.
 

7. 성경도 결국은 인간이 쓴 것이 아닙니까?

신구약 66권은 36-40명의 저자들에 의해 씌어졌습니다.
그러나 이는 성령의 감동을 받아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저자들에게 감동을 주시어 성령님의 인도하시심에 따라 오류 없이 정확하게 기록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쓰는 것은 사람이 썼지만 1차 저자는 하나님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8. 교회는 왜 술 담배를 못하게 하나요? 성경에는 그런 말이 없지 않습니까?

성경에는 '술 취하지 말라'는 말이 여러 군데 나옵니다.
'재앙이 뉘게 있느뇨. 근심이 뉘게 있느뇨. 분쟁이 뉘게 있느뇨. 까닭 없는 창상이 뉘게 있느뇨. 붉은 눈이 뉘게 있느뇨. 술에 잠긴 자에게 있고, 혼합한 술을 구하러 다니는 자에게 있느니라.
포도주는 붉고 잔에서 번쩍이며 순하게 내려가나니, 너는 그것을 보지도 말지어다.
이것이 마침내 뱀같이 물 것이요, 독사같이 쏠 것이며, 또 네 눈에는 괴이한 것이 보일 것이요,
네 마음은 망령된 것을 발할 것이며, 너는 바다 가운데 누운 자 같을 것이요,
돛대 위에 누운 자 같을 것이며, 네가 스스로 말하기를 사람이 나를 때려도 나는 아프지 아니하고, 나를 상하게 하여도 내게 감각이 없도다. 내가 언제나 깰까 다시 술을 찾겠다 하리라'(잠 23 : 29-35 ).

'술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엡 5 : 18 )
'낮에와 같이 단정히 하고 방탕과 술취하지 말며'(롬 13 : 13 )

성경은 이처럼 술을 경계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는 술을 빚는 누룩을 부패의 상징으로 보고 있습니다.
술에 취해서 잘못을 저지르고 실수를 하고 때로는 술 때문에 인생을 망쳐 버리는 이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이들은 한결같이 술이 원수라고 말합니다. 
 
술은 일종의 마약과 같은 것입니다.
마실 때는 좋으나 많이 마시고 나면 두려움이 없어지고, 자제력이 약해지며, 이성이 흐려지고, 방탕하고 싶은 충동이 일어납니다.
따라서 횡설수설하게 되고 실수를 많이 저지르게 됩니다.
성도들이 이런 생활을 해서야 되겠습니까?

어떤 사람은 성경에 '술취하지 말라'는 말은 있어도 '마시지 말라'는 말은 없지 않느냐, 적당히 먹고 실수하지 않으면 괜찮지 않느냐고 먹도록 권하는데 이는 하나의 유혹입니다.
술은 취하지 않게 적당히 마시면 된다고 유혹하고 나서, 그 권함에 못 이겨 술을 마시게 한 후에는 집사가 술을 마신다, 장로가 술을 마신다, 목사가 술을 마신다고 하면서  엉터리 집사, 엉터리 장로, 엉터리 목사, 엉터리 교인이라고 비방을 합니다.
이게 마귀의 유혹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그 소리가 듣기 무서워서가 아니라 술은 한 잔이 두 잔이 되고 두 잔이 석 잔이 됩니다.
그러다 보면 자연히 이성이 흐려지게 되고, 실수를 하게 되고, 눈으로 마음으로 입으로 손으로 죄를 짓게 됩니다.
만약 교회 집사나 장로라는 분이 여자가 있는 술집에 가서 술을 마시고, 술에 취해 뱀눈처럼 눈이 시뻘겋게 충혈되어 비틀거리다가 아무데서나 소변을 보고,
토하여 여러 사람이 있는 곳에서 냄새를 풍기고, 횡설수설 떠들거나, 길에 드러눕고, 여자들을 희롱했다고 합시다.
이것이 어찌 하나님을 믿는 사람의 모습이라 하겠습니까?  

교인이라고, 집사라고, 장로라고 해서 그렇게 되지 말라는 법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술이 사람을 그렇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담배에 대한 언급은 성경에는 없으나 이것도 인체에 해가 되면 되었지 이로울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교회에서 술과 담배를 못하게 금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그래서 교회에서는 만에 하나라도 행동으로나 마음으로 죄를 저지를까 봐 교인들에게 술을 못 마시게 하고,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해로운 담배를 못 피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술, 담배 때문에 교회에 안 나간다면 이보다 더 안타까운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술, 담배를 하더라도 일단 계속 교회에 나가십시오.
교회에 오래 다니다 보면 사람이 달라지고 술, 담배도 저절로 끊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거룩하신 영(성령)이 우리 육체를 성전으로 삼으시고 끊임없이 성도들의 몸과 마음을 정결케 유지하도록 이끄시기 때문입니다.
 

9. 마귀가 정말 있습니까?

마귀와 귀신은 분명히 있다는 것을 먼저 말해 둡니다.
귀신은 마귀의 졸개입니다.
마귀는 '무저갱의 사자', '바알세불', '세상 임금', '공중 권세 잡은 자', '사단' 등의 여러 이름으로 성경에 나옵니다.

사단은 하나님으로부터 지음 받았으나 교만해져서 하나님께 대항하고 반역을 일으켰다가 하늘에서 내쫓김을 당한 타락한 천사입니다.
이 사단이라고도 하고 마귀는 교활하고 악랄합니다.
태초에 아담과 하와에게 선악과를 따먹게 한 뱀의 뒤에도 이 사단이 있었습니다.

욥기 1장 9절을 보면,
'사단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가로되, 욥이 어찌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이까'하는 말이 나오는데, 마귀는 이렇게 중상모략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면서도 때로는 광명한 천사로 가장하기도 합니다(고후 11 : 14 ).
또 마귀들은 궤계에 능합니다.( 엡 6 : 11 )
많은 수의 마귀세력들이 이 세상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계획을 좌절시켜 보려고 발광하고 있고, 또 불신자의 아비로 행세합니다.
 
마귀는 인간과는 달리 육체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마음은 물론 그 육체까지도 사로잡아 자신의 소유물인 것처럼 때때로 그 속에 들어가서 마음대로 조종하기도 합니다.

'가로되 모든 궤계와 악행이 가득한 자요,
마귀의 자식이요, 모든 의의 원수요,
주의 바른 길을 굽게 하기를 그치지 아니 하겠느냐'(사도행전 13장 10절).

이렇듯이 마귀는 불신자의 속에 들어가 악을 행하게끔 역사합니다.
열두 제자 중 하나인 가룟인이라 하는 유다에게 사단이 들어가서 예수를 배반하여 팔게 하였고, 베드로에게도 유혹하여 주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게 하였습니다. 
 
마귀가 하는 일은 하나님과 인간을 멀어지게하고, 이간시키는 일입니다.
의심하게 하고, 교만하게 하며, 중상모략하여 믿는 자를 훼방합니다.
인간을 하나님을 반역하는 범죄의 길로 몰아넣습니다.

속임과, 음탕함과, 시기와, 질투 등의 죄를 짓게 하여 올무에 빠뜨립니다.(디모데후서 2장 26절).
또 때로는 몹쓸 질병을 퍼뜨리기도 합니다(마태복음 9장 33절).
믿음있는 자를 번뇌케 하여 그 믿음이 떨어지게 합니다.(사무엘상 16장 14절).
또 인간을 멸망시켜(베드로전서 5장 8절) 심판의 대상이 되게 하여 사망에 이르게 하려고 밤낮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귀신에 대해 사람들은 하나의 허상 혹은 미신적 현상 같은 것으로 이해하려 합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의사들도 귀신들린 현상을 정신질환의 한 유형으로 취급하려 합니다.
물론 정신 질환도 있겠으나 세상에는 기이한 현상들이 많이 있습니다.
과학적으로도 설명할 수 없고, 상식적으로 볼 때도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일들이 우리 주변에 널려 있습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는 보이지 않는 어느 영적 존재들이 본래의 보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 우리와 공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영적 존재들의 작용 때문에 발생하는 무시무시한 일들이 지금도 수없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살인, 마약 중독, 성적 도덕적 타락, 퇴폐 풍조, 저속한 유행 음악, 문화적 타락, 잘못된 신앙 등을 보십시오.

그런데도 영적 분별력이 없는 이들은 이런 일들을 하나의 시대적 현상으로만 볼 뿐, 그것이 사단의 궤계 때문에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은 모르고 있습니다.  
 
귀신의 존재를 믿지 않다가 귀신의 궤계에 빠져드는 아타까운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 예수께서 귀신들린 사람들을 고쳐 주는 장면들이 실감나게 그려져 있는데, 왜 예수님은 귀신을 내쫓고 사람들을 구해 주셨을까요?

여기에 우리가 귀신의 정체를  알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마귀는 온 천하를 꾀는 자'라고 했는데, 이만큼 마귀는 교활합니다.
때로는 부모를 통해, 때로는 친구를 통해, 때로는 애인의 모습으로 나타나 달콤한 말과 달콤한 미소를 지으며 접근하여 우리를 현혹시키고 죄악으로 빠져들게 만듭니다.
성적 범죄를 저지르게도 하고, 거짓말을 하게도 합니다.
미워하는 마음을 갖게도 하고, 시기하는 마음을 갖게 하고, 마약을 복용하게 하고, 술취하게 하고, 강도짓을 저지르게 하고, 비리와 부정을 저지르게 하고, 살인을 하게 합니다.

그뿐 아닙니다.
마귀는 강신술을 하게 하고, 마술을 하게 하고, 점술을 하게 합니다.
예수를 헐뜯는 거짓된 종교로 인간을 현혹시킵니다.
하나님을 모방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이 없다고 말하게 합니다.
사람들 앞에서 그리스도를 비난합니다.
진리를 보지 못하게 합니다.
인간의 마음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빼앗아 갑니다.(마 13 : 4 ).

이렇게 해서 마귀는 인간을 멸망의 길로 빠뜨립니다.
지금도 마귀는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고 있습니다. ( 벧전 5 : 8 )
 
그러면 이렇게 무서운 마귀를 물리치는 방법은 무엇이겠습니까?
우리는 먼저 마귀의 정체와 그 궤계를 알아야 합니다.
그 다음에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속에 거하도록 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굳게 믿고 그 믿음으로 마귀를 물리쳐야 합니다.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고 마귀에 대적해야 합니다( 엡 6 : 11 )

하나님의 전신갑주란 믿음으로 완전무장하는 것을 말합니다.
믿음은 마귀를 물리칩니다.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 앎이라'( 벧전 5 : 9 ).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약 4 : 7 ).
근신하라 깨어 있으라 (벧전 5 : 8 ) 성경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마귀는 결코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으로 무장된 그리스도인을 정복할 수 없습니다.
 
마귀는 마지막 때에 거짓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말세가 되면 마귀는 자기의 때가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알고 더 극성을 부립니다.
사람들을 충동하여 하나님을 배반하도록 유혹합니다.
우리들은 마귀가 확실히 존재한다는 것을 믿고
마귀에게 사로잡히는 일이 없도록 경계 태세를 늦추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10. 하나님은 선악과를 따먹게 왜 그냥 두셨나요?

하나님은 인간을 스스로 선택할 수없는 로봇처럼 만드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인간으로서의 가치가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 하신 것은 강제적인 명령이 아니라  지키면 보상이 따르고 어기면 벌칙이 따르는 행위 계약 또는 생명 계약이었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으심으로가지게 된 자신들의 자유의지를 따라 먹지말라고 한 선악과를 따먹을 수도, 안 먹을 수도 있었습니다.  이는 오로지 아담 부부의 자유의지에 의해 선택, 결정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하나님은 강제로 따먹지 못하게 하실 수도 있겠으나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지음받은 인간이 하난미의 형상을 따라 갖게된 자유의지를 사용하여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말씀에 순종하기를 원하셨습니다.

결국 인간의 자유의지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생명이요,
하나님이 주신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가지게 된 인간의 자유의지로 하나님의 원하시는 말씀을 불순종하는 것은 사망임을 알게 하신 것입니다.
 

11. 노아 홍수의 사건이 사실이라면 하나님은 너무하신 것이 아닙니까?

사람들을 모두 물로 죽게 한 것이 하나님의 사랑의 속성에 모순되지 않느냐 하는 질문 같은데 그렇지 않습니다.
불의(不義)를 멸하시고 공의(公義)를 실천하시는 것이야말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거룩한 하나님 나라의 건설을 위해서는 공의가 필요하며, 죄악을 보고 멸망시키지 않을 수 없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이라 하겠습니다.

그래서 이 노아 방주의 사건은 말세에 있을 심판의 예표로 보고 있습니다.
구원받은 노아 가족은 오늘날의 성도로,  방주는 우리를 구원해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로 볼 수 있겠습니다.

 

 

(cafe.daum.net/cgsb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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