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 물고기 이야기
성경의 물고기 이야기
구한말 우리나라에서는 처음 등장한 전등을 가리켜 '증어'라고 불렀다. 물고기를 끓인다는 뜻이 재미있다. 왜 그랬을까? 1887년 우리나라에서 발전기를 통해 처음으로 전기를 만들 때 경복궁 향원정의 물을 이용해 석탄을 원료로 발전기를 가동했기 때문이며 전등이 물고기 모양과 비슷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그런데 발전기를 가동하자 물고기가 떼죽음을 당하곤 했다. 발전기 가동으로 수온이 올라갔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정전이 빈번하여 전기불을 '건달불'이라 불리기도 했다고 한다.
한문자에서 처음 만들어진 글자는 '魚'(물고기 어)자라고 하는 학설이 있다. 고대인들에게 물고기는 그만큼 강한 인상을 준 생명체이자 식량이었던 모양이다. 초기 인류가 물가에 살면서 식수도 얻고 물고기도 구할 수 있었으니 물고기는 최초의 사냥 양식인 셈이기도 하다.
물고기는 문자 그대로 물에 사는 고기다. 물에서 생명이 시작되었고 물에서 활동은 땅에서보다 더 많은 힘이 필요하다. 따라서 물고기는 자연스레 건강과 생명의 상징이 됐다.
우리나라에서 예로부터 물고기는 '아들 출산'과 '출세'를 상징했다. 또한 우리 선조들은 자물통을 물고기 모양으로 많이 만들었다. 물고기는 24시간 밤낮으로 눈을 감지 않아 귀중품을 잘 지킬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물고기는 고대 바빌론, 인도, 고대 이집트, 고대 그리스 등의 전설에서 신으로 자주 등장하며 이스라엘의 사사시대와 왕정 초기 이스라엘의 큰 위협이었던 블레셋 민족이 숭배하던 다곤은 블레셋이 원래 해양민족이었던 만큼, 반인반어(半人半漁)의 우상이었다.
성경에는 물고기가 나오는 대목이 많다. 구약성경에서 인간은 바다에 사는 물고기로 비유된다. 인상적인 대목은 뭐니뭐니해도 요나 이야기다. 신약성경에서는 요나가 경험한 사건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상징적으로 나타낸다(마 12:1-4). 성전에서 솟아나는 기적의 물에 의해 다시 소생하는 물고기는 하나님의 구원을 받는 상징적 의미를 띈다(겔 47:1-12).
또한 고기잡이 이미지는 때때로 개인에 대한 하나님 심판을 묘사하는 데 사용되었다(암 4:2). 물고기에 대한 중요한 상징적 태도 중 하나는 바다에 대한 뿌리 깊은 두려움이다. 아마도 이것은 이스라엘이 바다와 접촉이 거의 없었다는 점에 기인하는 듯하다.
신약성경에서도 물고기는 인간을 비유한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사람을 물고기에 비유하시면서 말씀하셨다."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겠다"(마 4:19).
또한 하나님 나라를 온갖 종류의 물고기를 잡아들이는 그물로 비유한다. "또 하늘나라는 바다에 던져 온갖 종류의 고기를 모아들인 그물과 같다"(마13:47).
초대교회에서 물고기는 구원을 가져오는 그리스도의 상징으로 해석했다. 실제로 물고기는 사도 베드로의 상징이었으며 때로는 '세례'의 상징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로마의 지하묘소인 카타콤 벽화에 물고기가 많이 그려져 있고 최후의 만찬을 묘사한 성화에 빵과 물고기가 함께 등장한다.
성경에는 물고기(Ichtous)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라고 말씀하셨다.(마4:19, 막1:17) 비유적인 개념으로서 사람의 운명은 그물에 걸린 고기와 같다(합1:14-15)
“대저 사람은 자기의 시기를 알지 못하나니 물고기가 재앙의 그물에 걸리고 새가 올무에 걸림 같이 인생도 재앙의 날이 홀연히 임하면 거기 걸리느니라.”(전 9:12)
어부였던 베드로가 고기를 잡지 못하였을 때,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그물을 다시 던지자 물고기가 잡혔다는 성경의 기록(눅 5:2-6, 요 21:6-11)은 단순한 물고기를 낚은 것에 대한 의미가 아니라, 예수와 제자들로부터 전파되는 복음과 함께 기독교의 시작을 상징하는 것으로 비유된다.
헬라어로는 물고기를 익투스(ΙΧΘΥΣ-ichtous )라고 한다. 이 단어의 각 알파벳을 첫 글자로 하여, 초대교회 기독교인들은 일종의 암호를 만들어 냈다.
IΗΣΟΥΣ(Iesus: 예수)
ΧΡΙΣΤΟΣ(Christos: 그리스도)
ΘΕΟΥ(Theou: 하나님의)
ΥΙΟΣ(Uios: 아들)
ΣΩΤΗΡ(Soter: 구세주)
물고기라는 단어는 “예수스 크리스토스 데우 휘오스 소테르”(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 구세주)가 된다. 이런 단어를 합체문자(合體文字:그리스어로acrosticos)라고 하는데, 어떤 단어들이나 문구들의 첫 글자들을 따서 합성하는 단어이다.
물고기를 그린 이 형상은 그리스도를 가리켜 가장 널리 보급된 상징이었으며, 어쩌면 그리스도교 신앙의 요체요 표징이라고 하겠다. 그래서 초대교회 기독교인들은 물고기를 표시함으로써 서로가 신자임을 확인하였다고 한다.
요즈음도 자동차의 뒤에 이러한 물고기의 장식물을 달고 다니는데, 자신은 기독교인임을 알리는 의미가 된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며 구세주라는 것을 고백하는 것이다.
또 거의 모든 초대 기독교인의 가족 무덤에는 빠지지 않고,
물고기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고 한다.
마태복음 12장 40절을 보면 "요나가 밤낮 사흘을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을 땅 속에 있으리라"라는 구절이 있다. 구원자이신 하나님은 요나를 통해서 그리스도가 사흘 만에 부활할 것임을 미리 예표로 보여 주신 것이다.
마태복음 17장 24-27에 보면 베드로는 예수님의 분부대로 바다에 가서 낚시를 해서 잡은 물고기 입에서 나온 한 세겔의 돈으로 예수님과 베드로 자신의 성전세를 납부하였다. 이에 대하여 영국의 신학자 윌리암 바클리는 그의 저서(예수의 사상과 생애)에서 다음과 같이 서술하였다.
"이 사건은 복음서에서 유일하게 예수님이 자신을 위해서 이적(능력)을 사용하신 예라 할 수가 있기에 (혹시) 베드로는 물고기를 잡아서 그것을 팔아서 그 돈으로 자신과 예수님의 성전세를 납부한 것이다." 라는 것이다.
오병이어의 기적은 물고기와 떡이다.
"예수께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어 사람들 앞에 놓게하시고 또 물고기 두 마리도
모든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매 다 배불리 먹고 남은 떡 조각과 물고기를
열두 바구니에 차 거두었으며 떡을 먹은 남자가 오천명이었더라"(막6:41-44)
성경에서 밝히고 있는 빵과 물고기의 기적은,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몸을 사람들에게 떼어 줄 것임을 시사하고 있다. 빵과 물고기의 기적에 관한 그림은 대부분 식탁을 앞에 놓고 일곱 사람이 앉아있는 모습을 그 내용으로 하고 있는데, 일곱이라는 숫자는 상징적인 것으로서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에게 구원받을 수 있음을 나타낸다.
“또 천국은 마치 바다에 치고 각종 물고기를 모는 그물과 같으니 그물에 가득하매, 물가로 끌어내고 앉아서 좋은 것은 그릇에 담고 못된 것은 내어 버리느니라(마 13:47-48)
또 성경은 “그물을 깁다”는 구절이 있다.
“조금 더 가시다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보시니 저희도 배에 있어 그물을 깁는데(막1:19, 참고: 마4:21)
어부의 사명은 바다에 나가면 베드로와 안드레처럼 그물을 던져 고기를 낚는 것이요,
육지에 돌아오면 야고보와 요한처럼 배안에서 그물을 깁는 것이다(마 4:18-22)
그런데 “그물을 깁는다”는 단어는 헬라어로 "카타르티조"이다.
이 단어는 “교회를 온전하게 한다” 혹은 “성도를 온전하게 하다”는 말과 같은 단어로 사용되었다.
고전1:10 교회 내의 분쟁을 없앰
고후13:11 서로 온유하며 마음을 같이 하여 평화함
살전3:10 믿음의 부족함을 온전케 함
갈6:1 온유한 심령으로 그릇된 것을 바로 잡음
히10:5 한 몸 예수 그리스도를 예비하셨도다
히13:21 선한 일에 성도들을 온전케 함
벧전5:10 고난받는 이를 온전케 하여 굳건하게 함
그물로 고기를 잡는다는 것은 새로운 성도를 교회로 받아들이는 전도를 의미한다.
또 그물을 깁는다는 것은 잡은 물고기가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
그물이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도록 하는 보수 작업이며 예비작업으로 필수적인 것이다.
성경에는 물고기의 종류들을 일일히 열거하지 않았다. 히브리어의 두 단어 <따그, 따가>인데 일반적으로 모든 종류의 물고기를 의미할 뿐만이 아니라 조개류, 갑각류 및 바다에 사는 포유류까지 총 망라하는 말이다.
성경에 처음 나타난 곳은 창세기1:21에서 하나님이 다섯째 날 창조하신 것으로 "하나님이 큰 물고기와 물에서 번성하여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그 종류대로"라고 나온다.
레위기11:9, 신명기14:9,10의 음식법에서 "물고기"라는 말은 사용되지 않았지만 "물에 있는 모든 것 중"으로 나온다. "지느러미와 비늘 있는 것은 너희가 먹되" 없는 것은 못 먹는 것으로 분류되었다. 뱀장어, 메기, 미꾸라지 등은 못먹는 것으로 분류되었다. 그러나 먹을 수 있는 것 중에 "틸라피아"(Tilapia)는 베드로의 고기로 알려져 오늘날에는 비싼 값에 관광객들에게 팔리는 물고기가 되었다고 한다.
요나서1:17, 2:1, 10에 나온 큰 물고기의 내용에서 이 물고기가 정확히 어떤 것인지는 모르지만 고래와 같이 큰 물고기였을 가능성이 많지만 고래로 단정지을 수는 없다. 고래는 식도의 직경이 작아서 큰 물고기는 삼킬 수가 없다고 한다.
예수님은 요나의 이야기를 마12:40에서 인용하심으로 역사적 사실을 뒷받침 해주셨을 뿐만이 아니라 자신이 요나가 고기 뱃속에서 지냈던 것과 같이 무덤에서 있게 될 것을 예언하셨다. 그리고 천국비유에서 "또 천국은 마치 바다에 치고 각종 물고기를 모는 그물과 같으니"(마13:47)에 사용하셨다.
그리고 기도에 대한 확답으로 "생선을 달라 하면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마7:10, 눅11:11)고 반문하시면서 사용하셨다.
또 오병이어의 이야기에서 이 물고기도 정확히 어떤 종류인지는 모르나 갈릴리 호수에서 나오는 물고기일 것이다. 베드로는 자신의 옛 직업인 어부로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 잠시 옛 직업으로 돌아갈 생각을 가졌었던 것 같다.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요21:3)하고 다른 제자들과 나갔으나 밤이 새도록 한 마리의 물고기도 잡지 못했다. 예수께서는 그 바닷가에 나타나셨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그물을 배 오른쪽에 던져라. 그러면 고기가 잡힐 것이다.' 그래서 제자들이 그물을 던졌더니, 고기가 너무 많이 걸려 그물을 끌어 올릴 수가 없었다. 예수께서 사랑하신 그 제자가 베드로에게 '주님이십니다'하고 말하였다. 주님이시라는 말을 듣자, 옷을 벗고 있던 베드로는 겉옷을 두르고 호수로 뛰어들었다"(요 21,6-7).
제자들은 예수님의 분부대로 그물을 던지고 그물이 찢어질 만큼 잡혔는데 153 마리가 잡혔다(요21:11). 그리고 예수님은 미리 해변가에 아침식사를 준비하셨다. 제자들이 육지에 올라보니 숯불(당시에는 초식동물의 배설물이 숯 대용으로 사용되었다.)이 있었고 그 위에 생선이 놓였고 빵도 있었다.
현대의 표현으로 하면 아름다운 호수가의 아침식사였을 것이다. 예수님과 함께한 아침식사(朝餐)였다.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막 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