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남산
서울 남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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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이 도읍이 된 이래 북악(北岳)과 인왕(仁王)은 왕기(王氣)를 다툰 산인 데다 생김새도 바위투성이 골산(骨山)이라 민초들이 접근에 부담을 가졌다.
하지만 남산은 모양이 부드러운 육산(肉山)이고 궁궐과도 거리가 있어 한양 백성들이 편하게 찾는 산이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목멱산(木覓山·남산의 옛 이름)이 360여 차례나 등장하는데, 대개 기우제를 지냈다는 내용이다. 유교를 정치이념으로 하면서도 나라의 굿당이라 할 국사당(國師堂)이 남산의 정상에 지어졌다. 무속은 민초들의 신앙이었다.
백성들과 가까워서일까. 남산은 온갖 풍상을 겪어야 했고 사연도 많은 산이다.
애국가에 ‘민족의 영산’ 백두산과 함께 등장하는 남산의 ‘철갑을 두른듯’했던 소나무들은 지금은 찾아보기 어렵다. 소나무를 비롯해 남산이 크게 훼손된 건 일제강점기 때였다. 남산은 일제에 의해 훼손을 넘어 ‘유린’됐다고 할 만하다.
조선초 한성부판윤을 지낸 정이오가 여덟가지로 남산을 예찬한 ‘남산팔영(南山八詠)’ 중에는 ‘영상장송(嶺上長松)’이 들어있다. 산마루에 우거진 낙락장송의 풍치를 이르는 것으로 남산에 오래된 소나무가 많았다는 얘기다.
남산은 백악(북악산), 인왕, 타락(낙산)과 함께 도성을 둘러싼 사산(四山) 중 하나로 관리를 두어 보호됐고 주변 주민들에게도 나무나 돌의 훼손을 막을 책임을 지웠다.
소나무를 베다 걸리면 장(杖)이 100대로 초죽음을 만들 만큼 엄했고, 관리가 걸리면 관직을 내놓아야 했다. 남산은 목밀산(木密山)이라고도 불렸을 만큼 나무가 빽빽했다.
그러던 것이 먼저 임진왜란 때 왜(倭)에 의해 소나무 숲 크게 다쳤고, 조선후기에 기강이 헤이해지면서 방귀깨나 낀다는 자들이 산림을 훼손하기 시작했다.
결국 국운이 기울어 일제에 의해 결정적으로 유린을 당했다.
일본공사관과 통감부청사를 비롯한 지배·착취를 위한 건물들과 저들의 귀신을 모시는 신사 등이 남산에 지어지며 산림이 훼손됐고 일본 사찰을 짓는답시며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베어지고 아름다운 돌들이 파헤쳐졌다.
1925년에는 정상의 국사당을 철거해 인왕산으로 옮겼는데 신사보다 높은데 국사당이 있다는 게 이유였다. 현재 남산의 모습은 일제 때 큰 틀이 만들어졌다고 보면 된다.
해방 이후에도 남산은 편해지지 못했다.
1945년 당시만 해도 삼각산에서 창덕궁 후원을 거쳐 종묘, 남산으로 이어지는 녹지축이 연결돼 있었지만 각종 개발을 이유로 모두 끊기고 말았다.
지금은 분수대가 있는 일본신사 자리에는 1958년 당시 세계에서 가장 컸다는 높이 25m 규모의 이승만 동상이 세워지고 지금의 정상 팔각정 자리에는 정자가 지어져 이승만의 호를 따 우남정(雩南亭)이라 이름 붙였다.
동상은 4·19혁명 당시 시민들에 의해 중앙청까지 끌려가 내버려졌고 우남정도 훼손됐다가 나중에 팔각정으로 시민들에게 돌아왔다.
지난 15일 남산을 찾았을 때 남산은 여전히 ‘공사중’이었다.
숭례문에서 힐튼호텔 방면으로 오르자 옛 어린이회관(현재 교육연구정보원) 아래쪽으로 ‘남산 회현자락 지형과 성곽복원’ 공사를 진행하며 온통 파헤쳐지고 새로 짓고 있다. 성곽 복원이야 그렇다해도 남산을 복원 한다면서 새로운 건물과 길을 내는 것은 생각해 볼 문제다.
현재 남산은 크게 N서울타워가 있는 정상을 중심으로, 분수대가 있는 회현자락, 국립극장 방면의 장충자락, 팔도소나무단지 등 산책로가 잘 개발된 한남자락으로 나뉘어 있다.
봉우리는 현재 팔각정이 있는 정상이 서봉이고, 동봉은 미군통신대가 자리잡고 있어 접근할 수 없다. 산책로가 사방팔방으로 잘 연결돼 있어 꼼꼼하게 걷자면 서너 시간이 걸린다. 이날은 회현자락으로 분수대를 거쳐 정상에 닿은 후 남측순환로-북측순환로로 원점회귀했다. 이 코스가 남산 대부분을 잘 볼 수 있고 시간은 3시간 정도 걸린다.
‘삼순이 계단’을 통해 분수대를 거쳐 정상에 오르다 잠두봉포토아일랜드로 이름 지은 전망대를 만난다.
정상전망대도 있지만 여기가 서울 시내를 가장 잘 조망할 수 있는 곳이다. 앞서 얘기한 남산의 여덟가지 경관 중에는 ‘사월초파일 남산에 올라 연등행사를 내려다보는 야경’을 꼽고 있는데, 그렇다면 조선시대에도 남산이 서울의 야경을 바라보는 명소였다는 걸 알 수 있다.
정상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봉수대다. 전국 각지에서 달려온 봉수를 최종적으로 종합하는 조선시대 중앙봉수대다. 새로운 것은, 타워 옆에 프랑스 파리 예술의 더리를 흉내낸 자물쇠 트리가 만들어져 연인들이 수만 개는 돼 보이는 자물쇠를 글귀와 함께 걸어놓았다.
남산을 돌아보면 남산의 식생이 소나무 중심이 아니라 겨울에는 잎이 떨어져 황량해 보이는 신갈나무 등 활엽수들이 차지했다는 점을 볼 수 있다.
나이 먹은 소나무가 사라진 데다 온난화 등으로 식생이 변하는 과정에 있기 때문에 인위적으로도 소나무 조성이 쉽지 않다.
이에 따라 산의 남측과 북측에 소나무를 집중적으로 심어 탐방로를 만들고 보호하고 있지만 나이들이 어려 우리가 생각하는 ‘철갑을 두른듯’한 소나무는 볼 수 없는 게 아쉽다.
엄주엽기자 ejyeob@munhwa.com
<코스>
▲서울 전경·야경 코스=남산분수대-잠두봉-팔각정-서울타워 ▲생태 탐방코스=야외식물원-야생화원-팔도소나무단지
▲역사·전통 코스=장충단비-수표교-서울성곽-봉수대 ▲조깅·산책 코스=분수대-북측순환로-와룡묘-석호정-국립극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