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김에 대한 예화 모음


작은 섬김이 역사를 이룬다

한 초등학생이 하굣길에 구덩이에 쓰러져 있는 한 할머니를 발견했다. 갑자기 쏟아진 폭우로 자신도 물에 빠진 생쥐 신세여서 빨리 집에 가고 싶었지만 집의 위치를 물어 할머니를 모셔다 드렸다. 간호도 하고 말벗도 했다. 어린 소년의 이 같은 보살핌에 감동을 한 할머니는 건강을 되찾고 찾아와 소원 하나를 들어 줄 테니 말해보라고 했다. 소년은 “제 소원은 너무 큰 것이라 말씀드리기 곤란하다”고 주저했다. 그러자 할머니는 “도대체 그 큰 소원이 무엇이어서 그러느냐”며 답변을 재촉했다. 소년이 수줍은 듯 말했다. “교회 예배당을 새로 짓고 싶어요.”

 

자신이 주일마다 다니는 교회 예배당이 너무 오래돼 낡았다고 했다. 그래서 나중에 어른이 되면 꼭 예배당을 짓겠노라고 결심했다고 소년은 설명했다.

 

할머니는 이 교회에 새 예배당을 지어줬다. 할머니는 큰 부자였던 것이다. 어디선가 이 이야기를 듣고 이에 딱 맞는 하나님 말씀이 떠올랐다.

“선을 간절히 구하는 자는 여호와께 은총을 얻는다.”(잠11:27)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말라.”(살후 3:13)  

 

 

서로 모르는 사람이 옆자리에 앉게 되었답니다. 한 분은 60대이고 한 분은 50대였답니다. 시간이 흐르자 서로 공손히 통성명을 하였답니다. 서로 ‘김’씨라는 사실을 알고 반가워했답니다. 동성동본이었답니다. 반가워 항렬을 따져 보았답니다. 60대가 두 항렬이나 낮은 손자뻘이었답니다. 그러자 60대는 50대에게 바로 경어를 사용하며 높여 주었답니다. 한국인의 마음 깊숙이 흐르고 있는 서열의식입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면 서열을 가리고 낮은 사람은 높은 사람에게 상응하는 예를 갖추는 것이 인간의 도리로 생각을 합니다.

 

연장자 숭배문화는 절대적입니다. 출생 시기로 강고한 위계질서, 서열문화가 생깁니다. 남녀의 서열문화도 뿌리 깊지만 신분의 서열 문화도 대단합니다. 국립묘지에 가면 죽어서도 서열이 있습니다. 찬물도 위아래가 있다하며 나이, 학번, 인사년도, 시험기수, 근무년수, 직급 등에 따른 서열 문화가 인간관계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우리 조상들은 신체부위도 서열로 파악하였답니다. 오른손은 왼손보다 서열이 높고 배꼽 위는 아래보다 서열이 높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얼굴을 씻을 때는 오른손을 신발을 신을 때는 왼손을 썼습니다. 선교사 언더우드는 후배 선교사들에게 한국인의 방에 들어가 선교할 때면 상석 아닌 가장 말석에 앉아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다고 합니다. 아무런 서열 표지 없는 방인데 어떻게 상·하석을 알아내는가를 물었을 때 갓(笠)이 걸려있는 벽쪽이 상석이고 그 정반대편이 말석이라고 가르쳤다고 합니다.

 

자리를 앉을 때 서열을 중요시 합니다. 한국 정치인끼리의 비중을 알고 싶으면 그들 아내의 앉는 서열을 보면 안다고 합니다. 국회에서 정당총재가 연설하는 날이면 방청석 총재부인 양 옆을 기준으로 정확하게 2인자 3인자 아내들이 자리를 한다는 것입니다. 직원들이 식당에서 회식하러 가면 각자 머릿속에서는 서열 컴퓨터가 작동하여 자신이 앉을 자리를 추출해내 차질 없이 앉습니다. 사무실의 책상이나 의자 구조도 서열을 반영합니다. 같아서는 안 됩니다. 일반 사무원은 서랍 둘 있는 책상, 대리는 오른쪽에 서랍 두어 개가 더 붙고, 과장은 ㄱ자형, 부장은 ㄷ자형, 이사는 ㅌ자형이어야 합니다. 의자도 직각의자, 팔꿈치 받침이 하나 있는 의자, 양쪽에 둘 있는 의자, 돌리면 돌아가는 의자, 젖히면 젖혀지는 의자로 서열화되어야 폼이 납니다.

 

서열의식은 체제와 도덕 질서를 유지하고 성원들 간의 유대를 강화하며, 갈등을 조절하는 순기능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수직적 서열문화는 수평적 상호 존중문화의 걸림돌이 되고 불합리와 불평등한 관계를 유발하여 민주적인 조직문화, 토론 문화, 의사결정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니체는 일찍이 인간 존재의 본질을 "권력에의 의지"라고 규정하였습니다. 아들러 역시 인간의 행동에 동기를 부여하고 있는 원천을 권력에 대한 의지라고 말합니다. 권력에 대한 의지로 발동하는 서열의식은 인간 속에 내재된 생존본능일 것입니다. 동물들은 본능적으로 서열을 엄격하게 가린다고 합니다. 군집생활을 하는 동물들에게는 서열의식이 군집사회를 지탱하는 근간이 될 만큼 중요하다고 합니다.

 

닭은 서열질서가 강한 동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1922년 노르웨이의 셸데루프-에베(T. Schjelderup-Ebbe)는 닭들 사이에 위계질서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였습니다. 최고의 서열질서를 가지고 있는 닭은 모든 닭을 쪼을 수 있지만 어느 닭도 최고의 서열질서를 가진 닭을 쪼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닭들은 엄격한 서열 사다리를 가지고 있는데 가장 서열이 낮은 닭은 모든 닭에게 시달림을 받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비투스 B. 드뢰셔는 그의 책 「휴머니즘의 동물학」에서 야생닭은 서열질서가 강하지 않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호랑이, 표범, 붉은 늑대 등 맹수들이 많은 인도의 정글에서 사는 닭을 관찰해본 결과 수탉은 자신의 휘하에 있는 닭들을 위해 보초를 서고 먹이와 잠자리를 찾아준다고 합니다. 닭들은 식량을 찾을 때 서로 돕고 알곡을 발견하면 식구들을 부른다고 합니다. 서열질서는 두 마리의 닭이 동시에 한 알의 알곡을 먹으려고 하는 경우에만 강하게 발동하더라는 것입니다. 반면에 대형 닭장에서 사는 닭들은 서열 질서가 강하여 만날 때마다 억압과 굴종을 강요한다고 합니다. 똑 같은 닭이지만 자유롭게 야생하는 닭과 갇혀있는 닭은 다르더라는 것입니다.

 

신앙인들도 종종 서열의식의 종이 되어 공동체를 어지럽게 하는 모습을 봅니다. 의식이 전쟁터인 광야에 나오지 않고 닭장에만 갇혀있으면 서열의식의 종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가 예수님께 와서 “나의 이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명하소서”라고 청탁하였을 때 예수님은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20:28)”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을 움직이는 것은 섬김이다!

 

하나. 일본 명치유신의 영웅 사까모도 료오마와 미쓰비시 재벌 창업자 이쪼

이쪼는 일본 봉건 사회에서 최하급 머슴 출신으로 일본 최대의 재벌 미쓰비시를 창업한 인물입니다. 훗날 이쪼는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겼습니다.

 

<나는 최하위 머슴 출신으로 미쓰비시를 건설하였다. 내가 이렇게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많은 사람들의 도움이 있었다. 그 중에도 사까모도 료오마의 후원이 가장 컸다. 나의 재력이 점점 커 가자 나를 도와주었거나 나를 알고 있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은근 슬쩍 기회 있을 때마다 “너는 천한 머슴 출신이야. 너 좀 컸다고 내 은혜를 잊으면 안돼!” 하는 싸인을 끊임없이 보내왔다.

 

그러나 사까모도 료오마는 달랐다. 그는 농담으로라도, <내가 머슴 출신이라는 것과 이쪼 네 이 놈, 네 놈은 내 도움을 크게 받았다는 사실을 결코 잊으면 안돼> 하는 싸인을 평생 동안 단 한번도 보낸 적이 없었다. 그러므로 나는 사까모도 료오마가 위대한 사람이라는 걸 안다. 그리고 그럴수록 그 분이 언제 나를 필요로 할까 하는 마음으로 항상 노심초사하였다>.


 

하나. 나의 딸 이혜원의 짧은 글

오늘은 시험 날이다. 친구네 집에 가서 함께 시험 공부를 하였다. 밤 10시에 돌아와 마지막 마무리를 하려고 가방을 열어보니 교과서가 없다. 친구 집에 놓고 온 것이다. 벌써 10시 30분. 밖에는 한참 비가 퍼붓고 있다. 친구 집까지는 뻐스도 없고 걸어서 30분 거리다. 할 수 없지. 내일 학교 가서 보는 수 밖에. 시험을 못봐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이 비오는 밤에 언제 친구 집까지 간단 말인가?

 

그런데 문득 현관에 벨 소리가 들린다. 문을 열고 보니 그 친구가 비를 흠뻑 맞고 찾아왔다. 너 내일 시험인데 이 책을 놓고 갔기에 걱정이 되어 가져 왔어. 잘 있어. 친구는 갔다. 친구는 그 비를 맞고 밤 11시 그 먼 길을 걸어서 책을 전해 준 것이다. 나는 너무 감동하였다.

 

하나. 대학 때 일입니다. 친구들과 눈 덮힌 백운대에 올랐습니다. 잘 놀다가 하산 하여 막 뻐스를 타려는데 한 친구가 카메라를 산에다 놓고 왔다는 겁니다. 당시 카메라는 집안에 재산입니다. 날도 어두워 가는데 누가 올라 갈 것인가? 모두 피곤하고 힘든 판인데. 그 때 한 친구가 말없이 산을 향하여 걷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는 마침내 카메라를 찾아 가지고 내려 왔습니다. 날은 이미 어두웠습니다. 기다림과 걱정으로 몹시 피로하였지만 우리 모두는 무언가 모를 충만한 기쁨으로 그 날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스위스의 신학자 칼 바르트는 “섬김의 삶은 자기의 목적이나 계획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교회의 필요와 의도와 지시에 따라서 행동할 때의 의지(Will)와 수고(Working)와 행동(Doing)이다”라고 정의했습니다.


봉사를 섬김이라고 말합니다. 섬김은 디아코니아(diakonia)라고 하는데, ‘시중드는 일, 섬기는 일’을 의미합니다. 이 말이 기독교에 들어와서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를 위해 자신을 바치는 것, 헌신, 자기 자신을 포기하는 생활’이란 의미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사람은 시간과 몸, 재물을 가지고 있습니다. 동일한 시간과 몸, 재물을 어떤 사람들은 향락에 낭비하고, 어떤 사람들은 자신만을 위해 사용하고,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과 사랑을 드러내기 위해서 사용합니다.


큰일뿐 아니라 작은 일에 있어서도 섬김이 뒤따라야 합니다. 섬김의 삶을 충성스럽게 실천하는 사람은 집단 이기주의적인 탐욕을 극복할 수 있는 능력을 발휘합니다. 변함없는 섬김의 의지 및 수고와 행위로 인해 믿음의 공동체인 교회를 더욱 든든히 세워나가는 귀한 일꾼이 되십시오.



▣ 참된 섬김


과일가게를 하는 분이 있었습니다. 인근 교회의 교인이 자주 찾아와 전도를 하였습니다. 예수 믿을 마음이 전혀 없는 이 분에게는 참 귀찮게 여겨졌습니다. 그런데 이분이 찾아와 전도를 하고는 과일을 사가는데 매번 다른 사람과는 반대로 가장 작은 것, 흠집이 있어 팔기 곤란한 것만 골라가지고 사가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손님이 와서 그 분이 하던 대로 똑같이 작은 것 흠집있는 것으로 골라 사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자기도 모르게 "당신도 저 교회 교인이에요?" 하고 묻게 되었답니다.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을 보고 다음 주일부터 자기 발로 교회를 찾게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참된 섬김의 모습이 아닐까요? 섬김이란, 자원하여 내가 손해보고 내가 바보가 되려고 할 때 진실하게 실천할 수 있는 것입니다.
/문기태 목사 (창원침례교회)



▣ 섬김으로


그리스도인의 리더십은 섬김에 있다. 만왕의 왕이시요,만주의 주이신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며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하셨다. 남을 높이기 위해 낮아져서 디딤돌이 되고자 하는 자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다.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아무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뭇사람의 끝이 되며 뭇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막9:35)고 하셨다. 탈무드에는 “누워 있는 자는 넘어질 염려가 없다”는 말이 기록돼 있다. 남을 섬겨보라. 시험에 들지 않을 것이다.
/최낙중 목사(해오름교회)



▣ 섬기는 마음


한때 성공회의 감독이 되기를 꿈꾸었던 사무엘 브랭글이라는 청년이 구세군에 지원하기 위해 대서양을 건너 영국으로 건너왔습니다. 그러나 부스 장군은 그의 지원을 마지못해 허락하면서 그에게 겸손한 마음을 키워 주기 위해 다른 훈련생들의 군화를 닦으라고 지시했습니다. 낙심한 브랭글은 속으로 ‘내가 군화나 닦으려고 내 꿈을 좇아 대서양을 건너왔단 말인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중 그는 어느 날 환상 중에 예수님께서 무식한 어부들의 발위로 허리를 굽히시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때 그는 조용히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님은 그들의 발을 씻기셨습니다. 저는 그들의 구두를 닦겠습니다.” 테레사 수녀가 어느 날 한 어린이의 상처를 지극한 정성으로 치료해 주고 있을 때, 인근에 살던 이웃 주민이 물었습니다. “수녀님, 당신은 당신보다 더 잘 살거나 높은 지위를 가진 사람들이 편안하게 사는 것을 보면 부러운 마음이 안 드시나요? 당신은 평생 이렇게 사는 것에 만족하십니까?” 테레사 수녀는 대답했습니다. “허리 굽히고 섬기는 사람에게는 위를 쳐다볼 시간이 없답니다.” 콜롬비아 신학교 스티븐 올포드 박사에게 학생들이 물었습니다. “저희들에게 크리스천 리더십의 비결이 무엇인지 좀 말씀해 주십시오! ” 올포드 박사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비결이요? 무릎을 꿇으십시오. 눈에 눈물이 흐르게 하십시오. 그리고 심장이 깨어져도 참으십시오! ”


* 기도: 섬기러 오신 왕이여! 왕이신 주님께서 섬김의 본이 무엇인지를 저희에게 부여주셨지만, 섬겨야 할 저희가 섬김을 받음으로 섬김이 무엇인지를 잊어버렸습니다. 저의 무지함을 깨우쳐주셔서 바르게 섬길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 꾸준한 섬김


성경: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빌3:14)

안주는 2,000호 되는 개척 부락인데 단오날이 되면 그 부락 사람들이 체육대회를 합니다. 그 가운데 1만 미터(m)경주가 있는데 처음에는 수백 명이 뛰다가 도중에 차츰차츰 떨어져 나가고 나중에는 몇 명만 남습니다. 그 사람들이 결승점에 다 들어왔는데 한 사람이 남아서 천천히 뛰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구경하던 사람들과 뛰다가 중지해 버린 사람들, 먼저 다 뛴 사람들이 모두 그 사람이 오는 것을 기다렸습니다. 그 사람은 머리가 하얗고 60세 정도 된 초등학교 교장 선생님이었습니다. 천천히 뛰었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걸렸지만 그 분은 끝까지 뛰어서 드디어 완주를 했습니다. 그 분은 다 뛰고 나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교훈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 비록 꼴등이었지만 끝까지 뛰었습니다. 인생을 저처럼 뛰십시오." 얼마나 잘 한 것입니까 ! 우리는 1등을 하기 위해 뛰는 것은 아닙니다. 비록 1등이 아니고 꼴등이라고 해도 마지막까지 뛰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주님을 섬길 때 오래오래 꾸준히 섬겨야 합니다.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아날지라도 오직 상 얻는 자는 하나인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얻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고전9:24)



▣ 섬기는 삶


일본이 낳은 세계적 스승으로 가가와 도요히꼬(1888-1960)를 꼽을 수 있습니다. 메이지 학원과 고배 신학교를 졸업하고 미국 프린스톤에서 신학과 생물학을 전공하고 귀국하여 빈민굴에서 그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전도와 사회사업, 농민 운동에 헌신한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젊었을 때, 폐결핵으로 사형선고를 받고 죽는 날을 기다릴 때가 있었습니다. 친지와 교회에서 찾아와 고별 예배를 드리고 갔습니다. 그날 밤 그는 몹시 번민했습니다. 이왕 죽기는 마찬가지인데 죽는 시간을 기다리는 것보다 남자답게 목숨을 끊는 것이 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밤새도록 몸부림을 치다 다음날 결론을 얻어 가재도구를 정리하고 몇 가지 살림도구만 수레에 싣고 빈밀굴로 찾아갔습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나 같은 경우를 당했다면 어떻게 했을 까? 하는 질문에서 결론을 얻은 것입니다.


주님이라면 목숨을 끊지도 않을 뿐 아니라 이대로 죽는 날을 기다리지도 않았을 것이다, 목숨이 붙어 있는 날 까지 섬김을 받으러 오신 분이 아니라 섬기고 받들어 주기 위하여 오신 분이었기에 섬길 자를 찾아 갔을 것이라는 데서 결론을 얻어 실천하였습니다. 빗자루와 걸레를 들고 다니면서 청소와 어린이를 돌보는 그의 삶은 70이 넘도록 가장 보람있는 생이었습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20:28)



▣ 성공을 원하면 남을 섬겨라


1993년 8월호 리더스 다이제스트는 제임스 피셔 2세의 ‘더불어 사는 삶의 지혜’라는 짧은 글을 실었다. 그는 기업 심리학자이기 때문에 직장생활 속에서 어떻게 성공할 수 있는가의 관점에서 인간을 보고 있었다.
“친구를 얻고 싶거든 당신이 먼저 친구가 되라”는 규칙으로 시작되는 그의 인간관계 성공비결은 “남에게 바라는 대로 남에게 해주라”는 황금률로 끝을 맺고 있다. 그가 말하는 성공비결은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남을 섬기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섬겨야 할 대상을 생각하기보다 나를 섬겨줄 사람을 찾고 계산하는 것이 현대인의 모습이다. 보장된 미래와 지위를 포기하거나 다른 사람을 위해 섬기는 자로 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기득권을 포기하는 일, 자기 자리를 내놓는 일, 그래서 나를 버리고 너를 살리는 일이 십자가의 정신이며 삶이다. 십가가의 정신을 깨달을 때 우리 사회는 훈풍이 넘치는 삶의 현장이 될 것이다.
/박종순 목사



▣ 먼저 보는 사람이


필리핀의 유명한 부자 사업가의 아들 카풍카우라는 청년이 신학교에 들어갔습니다. 학교에 가 보니 화장실과 욕실이 더럽고 냄새가 나는 등 너무 불결해서 불만을 품고 학장에게 갔습니다. “교수님, 이렇게 더러운 곳에서 어떻게 공부를 할 수 있겠습니까? 이것 좀 치워주십시오. 깨끗하게 해주세요.” “알았네. 내가 다 알아서 조치할 테니 가 있게.” 조금 뒤에 이 학생이 그 화장실에 가 보았습니다. 요란한 소리가 들렸습니다. 씻는 소리, 닦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청소부를 데려다가 청소하는 줄 알고 들어가 보니 학장님이 직접 청소하고 있었습니다. 학장님이 기쁘게 청소를 하다가 이 학생을 보았습니다. “조금 있다가 들어오게. 이제 개끗해질 테니 염려하지 말게.” “학장님, 청소부 데려다가 시키면 될 텐데 왜 직접 화장실 청소를 하십니까?” “천국은 그런 곳이 아니라네. 교회나 신학교는 일을 보는 사람이 먼저 하는 걸세. 돈으로 해결하는 것이 아니란 말이네. 힘으로 하는 것도 아니네. 불결하다고 생각하는 사람, 잘못됐다고 보는 사람, 쓰레기를 보는 사람 하나하나가 청소할 때 우리 삶의 주변은 깨끗해질 수 있는 걸세. 자네가 부잣집 아들로 여기 와서 보니까 좀 불결하게 보이지. 다른 사람은 별로 그렇게 느끼지 못한다네. 그러니 느끼는 사람이 일을 하면 이 학교는 깨끗해질 수 있는 거라네.”


여러분, 이 나라 사람 모두가 180도로 바뀔 수는 없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 보는 사람이 그것을 고치고 바꾸고 줍고 쓸 때, 나 하나가 회개하고 나 한 사람이 겸손하게 주님과 조화를 이룰 때 우리의 삶, 우리의 주변, 이 나라 모두가 조화되는 밝은 날이 올 것입니다.
/ 김삼환



▣ 섬기는 힘


성경: 빌2:5,7
“예수 그리스도는…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돈이 힘이다.” 바로 이런 논리가 세상 문화의 대부분을 움직이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때로는 자신의 정직함을 내어버리면서까지 자기들이 원하는 곳에서 원하는 식대로 살 수 있는 힘을 얻기 위해서, 그리고 자기들이 원하는 차를 타고 다니기 위해서, 그 밖에도 원하는 모든 것들을 소유하기 위해서 부를 얻으려고 몸부림을 칩니다.


돈을 숭배하는 문화 속에서는 그리스도인들도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행동할 수 있는 위험이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자기 가족들을 자기 마음대로 하기 위해 돈을 이용하고, 어떤 사람들은 교회가 자기들이 원하는 대로 하지 않으면 헌금을 중단하겠다고 위협하기도 합니다.


이것은 예수님과는 너무나 다른 방법입니다. 병고치는 권능을 가지신 예수님은 그것으로 병든 자를 고치는 데 쓰셨습니다. 바다를 잔잔케 하시는 권능을 가지신 예수님은 그것으로 두려움을 제거하는 데 쓰셨습니다. 예수님은 또한 창조의 권능을 가지고 수천명의 사람을 먹이는 데 쓰셨습니다. 그는 죄를 사하실 수 있는 권세로 죄인을 용서하셨습니다. 그는 그 자신의 생명을 구할 수 있는 권세를 가지셨으나 그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기꺼이 내어주셨습니다 (롬 10:13).


예수님은 모든 권능을 가지셨으나 그 권능을 다른 사람들을 섬기는 데 쓰셨습니다. 다락방에서 제자들은 그를 “주”라 불렀으나 그는 그곳에서 홀로 섬기는 역할을 하셨습니다 (요 13:2-17). 그가 제자들의 발을 씻으셨던 것입니다! 베드로가 안된다고 했을 때 예수님은 대답하셨습니다. “내가 너를 씻기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8절).


돈이나 다른 어떤 것들도 이기적인 수단으로 쓰지 말고 다른 사람을 섬기는 데 쓰십시오. 그것이 바로 힘을 바르게 사용하는 것입니다. 서로를 섬기고 서로의 필요를 충족시킬 때 우리는 주님의 생각과 말과 행동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더 섬기면 섬길수록 우리의 자아를 덜 섬기게 될 것이다.



▣ 교회를 위한 섬김


교회는 이 세상에서 가장 영광스런 공동체이다. 교회란 그리스도의 핏값으로 세운 그분의 몸이요 교회의 머리가 예수 그리스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10명도 채 안 모이는 작은 개척교회요, 아무리 녹슨 종탑과 초라한 간판을 내건 지하실 교회라 할지라도 그 교회가 진정 예수님의 이름으로 설립되었다면 가장 영광스러운 곳이다. 그러기에 개척교회를 섬기는 목회자라고 해서,혹은 개척교회에 출석하는 성도라고 해서 결코 기죽을 필요가 없다. 주님의 교회는 크든 작든 모두 똑같이 영광스럽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오늘날 많은 성도들이 교회의 영광스러움을 너무나 모르고 있다는 사실이다. 성도들이 교회의 영광을 모르니 종종 교회를 우습게 여기는 실수를 범한다.성도들이 교회를 우습게 여기니 어느새 세상도 교회 우습게 여기는 것이 당연시되고 있다. 그래서 지금 한국교회는 세상 사람들로부터 얼마나 많이 손가락질을 받고 있는가. 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이 교회를 험담하고 대적하는 자이다. 자식들이 앉아있는 밥상 앞에서 교회를 헐뜯는 자이다.자기 생각에는 그것이 의라고 여기고 교회의 부정적이고 어두운 면만을 들추어내며 교회를 소란시키는 자이다. 물론 교회가 완전한 곳은 아니다. 교회도 잘못하고 실수할 수 있기에 비판받으며 성숙해가는 곳이다. 지금의 한국교회는 고쳐야 할 것도 많고 갱신해야 할 요소도 많다. 하지만 우리는 이것을 알아야 한다. 교회의 머리가 예수님이라는 사실을, 또한 교회를 인간의 단체나 한 기관으로만 보아선 안 된다는 사실을.


그렇기에 우리는 인간적인 동기에서 교회를 비판하고 공격해서는 안된다. 꼭 해야 한다면 신학적 동기와 신앙의 동기에서 해야 하고 반드시 대안을 가지고 해야 한다. 어떻게 대안도 없는 비판을 한단 말인가. 또 우리는 알아야 한다. 영광스런 교회에서는 진실과 사실을 밝히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덕을 세우는 것임을.
2000년 교회 역사를 보면 성도들이 교회의 영광을 알 때 교회의 진정한 영광이 회복되었다. 오늘도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자는 교회의 영광을 회복하는 자이다. 가장 행복한 자는 교회를 말없이, 아니 엎드려 눈물로 섬기는 자이다.
/소강석 목사<새에덴교회 담임목사>



▣ 섬김의 삶


봉사를 섬김이라고 말한다. 섬김은 디아코니아(diakonia)라고 하는 데 ‘시중드는 일,섬기는 일’을 의미한다. 이 말이 기독교에 들어와서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를 위해 자신을 바치는 것, 헌신, 자기 자신을 포기하는 생활’이란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스위스의 신학자 카를 바르트는 “섬김의 삶은 자기의 목적이나 계획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교회의 필요와 의도와 지시에 따라서 행동할 때의 의지(Will)와 수고(Working),행동(Doing)”이라라고 정의했다.


누구든지 사람은 시간과 몸, 재물을 가지고 있다. 동일한 시간과 몸, 재물을 가지고 어떤 사람은 향락에 낭비하고, 어떤 사람은 자신만을 위해 사용하고,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뜻과 사랑을 드러내기 위해서 사용한다.큰일뿐 아니라 작은 일도 미래를 위해 좋은 결과를 얻도록 섬김의 생활을 잘해야 하겠다. 섬김의 삶을 충성스럽게 실천하는 사람은 집단이기주의적인 탐욕을 극복할 수 있는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변함없는 섬김의 의지 및 수고와 행위로 인해 믿음의 공동체인 교회의 분위기를 밝고 환하게 만들 수 있고 살기좋은 사회를 이룩할 수 있다.
/고수철 목사



▣ 루즈벨트의 섬김


세계 2차대전 때 미국의 많은 젊은이들이 전쟁터의 이슬로 사라졌다. 병력이 부족하고 또 졸지에 일어난 전쟁이기 때문에 각 지방의 젊은 청년들은 영장을 받은 후 큰 도시로 집결해서 기차를 타고 훈련소로 갔다. 당시 국민들의 마음을 안정시키기 위하여 장정들을 태운 기차는 주로 밤늦게 떠났다. 그러므로 워싱톤에도 밤마다 유니온 기차 정거장에는 수백 명의 장정들이 몰려들었고 시민들이 나와서 그들의 편의를 도와주고 있었다. 그때 시민 가운데 밤마다, 밤늦게까지 다리를 절면서 뜨거운 코코아잔을 쟁반에 들고 젊은 장정들에게 봉사를 한 사람이 있었다. 어떤 때는 임시로 마련된 주방에서 코코아를 끓이기도 했다. 어느 장정 하나가 그 노인을 자세히 살펴보니 보통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분명히 대통령이었다.


"각하, 루즈벨트 대통령이 아니십니까?"
루즈벨트 대통령은 육체적으로 자유스러운 사람이 아니었다. 육체의 불편을 무릅쓰고 밤마다 기차 정거장에 나와 기차로 떠나는 청년들에게 뜨거운 코코아를 들고 다니며 봉사했다. 대통령이 친히 기차 정거장에 나와서 따라주는 코코아를 마신 청년들의 사기는 대단했다. 이처럼 섬기는 일에는 위아래가 없는 법이다. 성경 말씀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모든 사람의 종이되라고 했다. 종이되는 길은 으뜸이 되는 지름길이 되는 것이다.



▣ 섬기는 삶


스코틀랜드 가정의 표어 가운데는 “봉사하기 위하여 구원받았다”(Saved to serve)란 말이 있습니다. 섬김을 모르는 삶은 구원의 감격이 없는 삶입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것은 섬기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고침받은 것은 섬기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일어난 것은 섬기기 위해서입니다. 섬기는 것이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하나님의 사명입니다. 어떤 이는 “인생은 테니스 경기와 같다. 서브(섬김)를 잘 하지 않고는 이길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서브는 경기의 승패를 결정적으로 좌우하는 테크닉입니다. 서브 하나로 많은 점수를 거둬들이는 경우도 많습니다. 인생도 마찬가지로 서브를 잘 해야 합니다. 인생은 섬김을 잘 해야 합니다. 잘 섬기는 사람이 잘 사는 사람입니다. 잘 섬기는 사람이 이기는 사람입니다. 인생의 성패는 얼마나 서브를 잘 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이성희 목사(연동교회)



▣ 섬김이 없는 결혼


남녀간 사랑의 생명은 생각보다 짧다고 합니다. 미국 코넬대학 연구팀의 연구 결과 남녀가 결혼하면 애정을 느끼는 기간이 18개월에서 30개월 정도라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이 단계가 지나면 상대방을 보아도 더 이상 가슴이 뛰거나 손에 땀이 나는 일은 없어진다고 합니다. 그래서 예로부터 허니문이라는 말을 사용했습니다. 결혼후 얼마동안은 꿀맛 같지만 시간이 흐르면 덤덤해진다는 말입니다.


결혼후 3∼4년이 지나면서 파경을 맞는 부부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부부의 결합은 언제까지나 애정만 따질 일이 아닙니다. 그 삶에는 서로를 위한 섬김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결혼 전에는 눈을 크게 뜨고 상대방을 살펴보고 일단 결혼한 후에는 눈을 반쯤만 뜨고 상대를 보라고 했습니다. 결혼 생활의 3할은 사랑이고 7할은 용서입니다. 부부 사랑의 성공은 이해와 용서와 섬김으로 서로 감싸주는 것입니다.
/이정익 목사(신촌성결교회)



▣ 아름다운 부부


과실치사라고밖에 말 할 수 없는 큰 죄로 정씨는 사형을 받고 독방 수인 생활을 하는 중 예수를 영접했다. 예수 믿느냐는 재판관 질문에 “네”라고 대답했기에 사형수에서 무기수로, 무기수에서 장기수로 복역하며 우리 교회 오 집사와 8년 동안 사귀다 옥중결혼했다. 복역 17년 만에 특별사면 받아 출옥,자유를 찾았고 부부 집사로 임명받아 이삭장애인선교회를 자비량으로 운영하며 장애인을 섬기고 있다. 여자 집사는 초등학교 4년 중퇴에 두 다리를 쓰지 못하는 지체장애인이다. 남자 집사는 비록 사형수였으나 유학까지 다녀온 대학 종합병원 치과과정까지 지낸 의사였다. 17년을 기다리며 사랑해준 장애인 아내를 위해 남은 생애를 다 바치겠다고 생활비와 가정생활,의식주생활에 아내의 손발이 되어 섬기며 모든 성도들 보기에 가장 모범적으로 남편 역할을 한다. 요즘 이 부부의 아름다운 삶을 보려고 많은 사람이 교회를 찾는다. 사랑은 감동이다. 사랑은 희생이다. 사랑은 섬김이다.
/고훈 목사(안산제일교회)



▣ 낮은 곳의 예수


천재로 불리던 한 소년이 있었다. 그의 인생은 항상 오르막길이었다. 그는 주위의 기대대로 하버드대학의 교수가 됐다. 그가 집필한 30여권의 책은 모두 베스트셀러가 됐고,그를 만나기 위해 수많은 사람이 모여들었다. 그의 인생은 오직 성공과 성취로 장식됐다. 어느날 이 사람이 폭탄선언을 했다. “나는 교수직을 포기한다. 이제 정박아시설에 들어가 새로운 인생을 살아갈 것이다.” 사람들이 그에게 물었다. “그 많은 명예와 보수를 왜 버리려 하는가. 차라리 후학을 양성하라.” 그의 대답. “오르막길 인생은 성공과 칭찬에 가려 예수가 보이지 않았다. 이제 낮은 곳에서 예수를 만날 것이다.”
그는 인생의 말년을 매사추세츠 정박아시설에서 장애인들의 용변 식사 목욕 등 구질구질한 일을 하는데 보내고 소천했다. 이 사람이 바로 ‘상처입은 치유자’의 저자 헨리 나우웬. 인생의 오르막길에서는 예수가 보이지 않는다. 고통과 눈물의 돌자갈이 깔린 곳에 예수의 미소가 있다. 꼭대기 인생은 추락의 위험성도 그만큼 크다.
/임한창 국민일보 기자



▣ 신자의 낮아짐


스위스의 종교개혁자 쯔빙글리는 "신자의 낮아짐이 신앙의 상승"을 이룬다는 진리를 염소들을 통해 깨달았다.
어느 날 쯔빙글리는 스위스의 산 위를 걷다 좁은 산길에서 두 마리의 염소를 보았는데 한 마리는 위로 올라가려고 하고 또 한 마리는 아래로 내려가려고 했다. 그러나 워낙 좁은 길이라 두 마리가 다 오르고 내려갈 수 없었다. 서로 팽팽히 맞선다 싶은 순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올라가려던 염소가 길가에 누웠고 그 위를 밟고 위에서 염소가 내려왔다. 그런 다음 누웠던 염소가 일어나 올라가는 것이었다. 하나님 앞에서와 사람 앞에서 폭삭 엎드리는 사람이 은총으로 올라간다.



▣ 섬기는 자


성경: 마23:11
"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마틴 루터 킹 목사님의 유언입니다.
“내가 이 세상을 하직한다면, 나는 당신들에게 다음과 같은 유언을 남기고 싶습니다. 내가 이 세상을 떠난다면, 거창한 장례식을 삼가해주시오. 그리고 긴 찬사도 삼가주시오. 또 내가 노벨상 수상자라는 것도 말하지 말아 주시오 나의 학벌도, 그것들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내가 바라는 것은 마틴 루터 킹은 다른 사람들을 위해 살다가 갔다고 말하여 주는 것입니다. 나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빵을 주기위해, 헐벗은 사람들에 옷을 주기 위해 살다가 갔다고 말해 주시오. 내 생애에서 감옥에 갇힌 사람들을 찾다가 갔다고 뭇 사람을 섬기고 사랑하다가 갔다고 말해 주기를 나는 바랄 뿐입니다.”
오늘도 이와 같은 믿음 안에서 사랑의 사람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송태승 목사



▣ 사람의 가치


우리에게는 자신의 재능과 환경을 즐기는 삶의 여유가 필요하다. 비는 대기 중의 입자가 점점 커져서 마침내 지상으로 떨어지는 액체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그 비를 때에 따라 다양하게 즐기는 사람들이 있다. 봄비 보슬비 소낙비 여우비…. 어떤 사람은 비가 오면 짜증을 낸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비를 즐긴다. 요즈음은 기술 혁신으로 인해 사람의 재능이 제한을 받는다. 예전에는 주판만 잘 다뤄도 칭찬 받고 은행에 취업도 됐다. 그런데 지금은 전자계산기가 그 몫을 대신하고 있다. 머리 터지게 외우던 지식도 컴퓨터 키워드만 치면 전문지식이 줄줄 흘러나온다. 이런 시대를 사는 현대인들은 스트레스도 그만큼 많다. 노동도 즐기면서 할 때 더욱 효과가 크다.
인생의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최선의 방법은 뭘까. 그것은 봉사와 섬김의 삶을 사는 것이다. 하나님은 봉사의 삶을 사는 사람에게 맑은 머리와 단잠을 선물로 주신다.
/설동욱 목사 (예정교회)



▣ 한성교회 여집사


5년 전,뉴욕 한성장로교회에서 집회를 인도할 때였다. 30대 젊은 집사 내외분이 저녁식사를 대접하겠다며 강사인 나와 담임목사를 집으로 초대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세숫대야에 따뜻한 물을 담아 가져왔다. 그들은 수건과 새 양말을 준비해놓고 내 발을 씻어주겠다는 것이었다. 몇 차례 거절했다. 그러나 사연을 듣고서 발을 내밀었다. 그녀는 목사의 딸이었다. 아버지 뜻대로라면 당연히 목사 사모가 되어야 했다. 그러나 자신도 없고 소명도 없다는 핑계로 도망치듯 미국에 유학와 지금의 신랑을 만나 행복하게 산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목사님들이 뉴욕에 오신다는 말만 들으면 반드시 집에 초대해 식사를 대접한 후 발을 씻겨드린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라도 사모가 안된 불효를 씻겠다는 것이었다. 그날 그토록 피곤했던 몸과 마음이 그 집사 부부의 정성스런 섬김으로 모두 풀렸다.
/고훈 목사 (안산제일교회)



▣ 섬길 사람을 찾으세요.


바나바와 바울은 안디옥에서 1년 동안 함께 머물며 사역을 했습니다. 아마도 바울은 복음을 전했고, 바나바는 그 복음을 듣고 온 영혼들을 잘 양육했을 것입니다. 이 두 사람의 사역으로 안디옥교회는 굳게 서 나갔고 많은 영혼들이 유익을 누렸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홀로 일하게 하지 않으시고, 그 사람 주의에 다른 사람들을 붙여 주어 연합하여 섬기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함께 섬길 사람을 잘 찾는 것도 하나님을 잘 섬길 수 있는 비결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래서 존 웨슬리는 말했습니다.
“당신이 그리스도인으로 서 잘 섬기기 원합니까? 그러면 함께 섬길 동역자를 찾으십시오. 기독교는 혼자 믿는 종교에 대해 아는 바가 없습니다.”
섬김이 힘든 시대입니다. 시대상황이 그런 것이 아니라, 은혜의 감격이 점차로 줄고 있기 때문입니다.
/김남준



▣ 섬김에 관한 성경 말씀


0 (사무엘상 8:8) 내가 그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날부터 오늘까지 그들이 모든 행사로 나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김 같이 네게도 그리하는도다
0 (마태복음 20:28)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0 (마23:11) 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0 (마가복음 10:45)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0 (빌2: 5- 8)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0 (빌립보서 2:17) 만일 너희 믿음의 제물과 섬김 위에 내가 나를 전제로 드릴지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니
0 (요한계시록 2:19) 내가 네 사업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를 아노니 네 나중 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도다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