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된 시점이 B.C.1885년경이며 그의 죽음은 B.C. 1805년경일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모세의 출생은 B.C. 1527년경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요셉의 사망으로부터 모세의 출생까지는 약 280여 년이 경과하였다.

그러므로 모세 출생 당시의 애굽의 새 왕이 요셉을 알지 못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요셉은 애굽을 멸망의 위기에서 견져낸 역사적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1.문자적 해석


따라서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은 요셉을 완전히 몰랐다는 의미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이는 '알다(야다)'란 말이 단순히 지식적으로 아는 것뿐 아니라 순복할 의지를 가지고 기이 탐구하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으로 보아서도 알 수 있다.

'알지 못한다'는 것은 의지적 배타감을 가지고 추종하지 않느 것을 의한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새 왕'도 70인역에서는 '다른 왕'으로 번역함으로써 그 이전의 왕들과는 다른 정책을 수행했던 왕임을 암시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Living Bible이 이 부분을 '요셉의 자손들에 대해 은택을 느끼지 않는 이집트 왕좌에 오른 새 왕'이라 의역 한데서도 잘 드러난다.

 


2.역사적 해석


요셉을 등용하고 야곱 가족을 후대했던 왕조는 셈족 계통의 힉소스 왕조이다.

힉소스 왕조가 애굽을 통치한 시기는 애굽인 입장에서 보면 분명 중간 과도기였을 것이다.

또한 그 통치 지역과 시기도 애굽 잔존 왕조와 겹쳤을 것이다.


더욱이 후대 애굽인들은 힉소스 왕조의 통치에 대한 기록을 심히 왜곡시켰기 때문에 그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다.

다만 대략 애굽 13~17왕조 사이와 겹치는 것으로만 추정할 뿐이다.

그러나 어쨌든 이들이 함족 계통의 왕조를 무너 뜨리고 새 왕조를 세웠으며 같은 셈족 계통이었던 요셉을 등용하였던 것만은 분명하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함족 계통의 18왕조가 다시 힘을 모아 힉소스 왕조를 몰아내었다.

뿐만아니라 그들은 힉소스 왕조의 업적을 의도적으로 말살하였다.

그러므로 '요셉을 알지 못했던 새 왕'은 '요셉의 업적을 의도적으로 과소 평가했던 왕'으로 이해할 수 있다.


특히 여기서는 지나치게 국수주의 성향을 보였던 18왕조의 세번째 왕 투트모스 1세로 볼 수 있는데 ,

그는 애굽 본토인의 융성을 위해서 히브리인들을 압박했다.

히브리 산파를 시켜 유아를 죽이게 했던 것도 바로 이 투트모스 1세였을 것으로 추정된다.(출1:15.16)


또한 히브리 남아를 물에 던지라고 명령했던 것(출1:22)도 투트모스 1세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와같이 그는 인륜에 배치되는 극악한 방법을 동원하면서까지 계속 요셉의 민족을 억압했다.

 

3. 의의


만약 애굽 사람들이 계속 히브리인들을 후대했다면 그들은 애굽 사람들과 혼혈을 거듭함으로(창41:45,51,52) 민족성을 잃어버리고 여호와 신앙을 상실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역사의 주관자 되신 하나님께서는 애굽에 새 왕조를 일으키심으로 애굽인과 이스라엘 민족의 분리를 가속화시켜 출애굽을 가능하게 했으며 언약을 부여받은 선민이 되게 하셨다. 이렇게 볼 때 일시적인 세상적 고통이 결과적으로는 영원한 신앙적 이득을 가져올 수도 있음을 알 수 있다.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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